▲이태원 스트롱 파티 현장 사진.
DJ Seesea
#4 클럽 DJ들의 이야기를 들은 신솔아씨의 이야기
이태원, 핼러윈 그리고 클럽 문화
솔아씨는 클럽 DJ를 인터뷰이로 섭외했다. 이태원과 핼러윈을 언급할 때 클럽 문화가 빠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참사 직후, 소셜미디어와 각종 커뮤니티에는 이태원에서 핼러윈을 즐긴 사람들에 대한 비난이 가득했다. '문란하게 놀다가 죽은 건데 왜 추모해야 하냐' '사람 많은데 왜 가는지 이해 안 된다' 그런 반응을 접하며, 솔아씨는 큰 충격을 받았다. 바람이 있다면, 순수하게 음악을 즐기고 이태원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보여 주고 싶었다.
"참사 직후에 무슨 일인지 많이 찾아봤거든요. 저도 이태원을 애정하는 사람인데, 굉장히 안타까운 마음이었어요. 사람들의 선입견이 강하구나, 누군가 희생되었는데 비난하는 말부터 꺼내는구나. 이태원은 DJ씬이 잘 구축돼 있는 지역 중 하나거든요. 하지만 그 문화는 기성세대가 이해하기 어려울 것 같아요. 핼러윈도 외국인들 축제라 비난하기도 하고... 그런 분들에게 이태원의 문화가 어떤 의미인지 알리고 싶었어요."
타인의 이해를 돕는 것을 목표로 한 작업은, 뜻밖에도 솔아씨 스스로 이해를 넓히는 경험이 됐다. 가령 이태원에 거주하는 민희씨와 원기씨 부부의 이야기를 통해 솔아씨는 처음 알았다. 가족 단위로, 모든 세대가 즐길 수 있는 게 핼러윈 축제라는 것을. 또한 클럽 DJ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추모가 얼마나 다양할 수 있는지도 깨달았다. "이렇게도 가능하구나." 솔아씨가 미처 떠올리지 못한 세계가 낯설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태원은 희생자들이 재밌게 시간을 보낸 공간이잖아요. 이태원을 죽음의 땅으로 내버려두는 게 아니라 다시 살리는 것이야말로 추모 방법 중 하나라는 말이 기억에 남아요.
저도 '추모'라고 하면, 왠지 모든 것을 중단하거나 슬퍼하는 방법만 상상했던 것 같아요. 추모와 애도에 관해 많이 논의했으면 좋겠어요. 추모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사회적으로 합의되어 있지 않다 보니까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나는 이 죽음을 추모하는데 왜 너는 공감하지 않냐고, 혹은 너는 얼마나 선하길래 아직도 추모하고 있냐고."
"방관자가 되지 않아 좋은 것 같아요"
나의 또래, 혹은 나보다 어린 사람들. 솔아씨는 분향소에 늘어선 앳된 얼굴들이 너무 안타깝고 슬펐다. 사실, 솔아씨 역시 참사 당일 이태원에 방문할 예정이었다. 워낙 자주 가던 공간이었고, 코스튬을 하고 핼러윈 축제를 즐긴 적 또한 많았다.
그런데 그날은 하필 다른 일정이 늦게 끝나는 바람에 약속을 취소해야 했다. 그래서일까. 솔아씨에게는 참사 소식이 훨씬 공포스러웠다. 자신이 그 희생자가 됐을 수 있었다는 두려움이 머릿속을 휘감았다. 더군다나 인터넷에 떠도는 날것의 이미지에 과다 노출된 채로 밤을 지새운 탓에, 한동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집 근처가 이태원인데, 갑자기 도로 통제를 왜 하는지 의문이 들었어요. 그러다 참사가 일어난 걸 알았는데, 꼭 공포 영화 같았어요. 이태원은 저에게 익숙한 곳인데... 죽음이 나의 일상 속에 가까이 있구나. 나중에 우연히 기록단 모집 포스터를 보고 다시 생각나더라고요. 이태원 참사에 대한 슬픔을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신청했어요. 물론, 슬픈 건 여전한데요. 그럼에도 그런 감정을 가진 사람이 나 혼자만이 아니라는 안도감을 느낄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솔아씨는 '생존'과 '연대'에 대해서도 말한다. 참사로 인해 바뀐 삶을 정상 궤도로 올려놓고 싶은 마음. 그건 생존 의지와 비슷해 보였다. 그리고 걱정하기를, 간접적으로 참사를 겪은 자신조차 이렇게 힘든데 다른 사람들은 오죽할까.
솔아씨는 그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연대하고 싶었다. 프리랜서 에디터로 활동하는 솔아씨에게 인터뷰는 이미 익숙했다. 인디 아티스트와 서브 컬쳐를 주로 다뤄왔기에 클럽 DJ를 만나는 것도 수월했지만, 이런 주제의 취재는 처음이라 그 과정이 마냥 쉽지만은 않았다.
"인터뷰이가 참사 당시 기억을 이야기하는데, 그 말을 듣고 있는 것 자체가 힘들더라고요. 하지만 인터뷰를 진행해야 하니까 참았어요. 공감하면서도 동시에 그 감정에 거리를 둬야 한다는 걸 그때 깨달았어요. 참사 당시의 상황을 얼마나 자세히 써야 할지도 고민했고요. 계속 봐 버릇해야 트라우마를 해소하는 데 제일 효과적이지 않나 싶기도 했고, 참사를 있는 그대로 묘사해야 읽는 사람이 당시 상황을 이해하는 데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런 시간을 통해 솔아씨의 죄책감은 서서히 줄어들었다. 그전까지는 거리에서 이태원 참사 관련 현수막을 볼 때마다 무거운 기분이 들었다.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내가 무언가 해야 하지 않았을까, 지금 할 수 있는 건 없는 걸까. 그런데 이제 솔아씨는 조금 다른 소회를 전한다. "방관자가 되지 않아서 좋은 것 같아요."
'연결'과 '이해'가 필요한 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