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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다들 할 말 있을 텐데... 연결점 못 찾은 것 같아요"

[다시 놀고 싶다, 이태원 ⑪] 기록단 윤보영씨와 신솔아씨의 이야기

등록 2023.11.23 15:07수정 2023.11.23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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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놀고 싶다, 이태원>은 이태원을 구성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각자에게 이태원은 어떤 의미인지, 참사 이후 무엇을 느끼고 어떻게 기억해 왔는지, 앞으로 우리는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 이 기록이 또 다른 이야기를 여는 마중물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지난 여름, 7명의 기록단이 아홉 명의 인터뷰이를 인터뷰했습니다. 그리고 이후, 7명의 기록단을 역으로 인터뷰했습니다. <다시 놀고 싶다, 이태원>은 이야기를 듣는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이태원과 참사의 의미를 폭넓게 그리고자 합니다. - 기자 말


#3 모하메드씨의 이야기를 들은 윤보영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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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6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서 열린 '10.29 기억과 안전의 길 조성 기자회견'에서 공개된 추모 구조물에 참사를 추모하는 시민이 써놓은 메모가 적혀 있다. ⓒ 공동취재사진

 
마음속 깊이 자리 잡은 탐구 과제

보영씨는 벌써 두 번의 인터뷰에 참여했다. 지역 주민이자 참사 현장의 목격자로서 곳곳에 이야기를 보탰다. 행여 비슷한 대답을 반복할까 걱정도 많았지만, 어쩐지 할 말은 자꾸만 늘었다. 이태원에 산다는 건 과연 무슨 의미일까. 이전에 해 본 적 없는 질문이 어느새 보영씨 마음속 깊이 탐구 과제처럼 자리 잡았다.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도 더는 힘들지 않다. 그보다 뒤따르는 감정과 생각을 나누지 못할 때 보영씨는 못내 답답한 기분이 든다.

"처음에는 왜 내가 인터뷰를 하는 걸까 싶었어요. 이태원에 사람 많지 않나? 분명 다들 할 말이 있을 텐데, 연결점을 찾지 못한 것 같아요. 비유하자면, 저는 그냥 아파트 동대표로 나온 느낌이에요. 뭐랄까, 사명감 같은 표현은 조금 거창한데, 나름 엄청난 책임감을 느껴요. 제 말이 어디 기록된다는 게 얼마나 좋은 기회에요. 그런 즐거움도 있고요. 또 당사자성을 갖고 참사를 바라볼 수 있게 된 거잖아요. 그 시각을 통해서 앞으로 제 학업과도 연결시키고 싶어요."

보영씨는 현재 대학원에서 미술 치료를 공부하고 있다. 전공을 선택하는 데에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기억이 크게 작용했다. '왜 피해자는 자기 잘못도 아닌데 비는 걸까.' '왜 가해자는 그 절박한 외침을 무시하고 돌을 던지는 걸까.' 보영씨는 뉴스에 나오는 유가족들이 마치 비명을 지르는 것처럼 보였다.

그토록 잔인한 현실에 분노했고, 그렇다면 자신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고민스러웠다. 과거 심리 상담을 받은 경험을 떠올리기도 했다. 무조건적으로 나를 믿어주고 나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소중한가. 언젠가 보영씨도 그렇게 힘을 얻은 적이 있었다.


"대학원 지원할 때 학업계획서를 제출해야 했어요. 사회적 참사 피해자들이 당하는 사이버 불링에 대해 미술 치료를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를 주제로 썼는데, 원서 접수 직전에 이태원 참사가 벌어진 거죠. 이번에도 참사 당일부터 2차 가해가 심했잖아요.

그런 상스러운 말들을 무수히 보다 보니까 머리가 차가워지면서 결심이 굳었던 것 같아요. 나 공부 진짜 열심히 하고 싶다. 그래서 나중에 제가 이태원에 심리센터를 차리는 상상까지 했어요. 안산에도 트라우마 센터가 생겼잖아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대학원 면접도 간절하게 준비했어요."


어려움을 풀어 가는 활동, 사람들

시스템의 부재와 책임자의 회피. 이태원 참사는 세월호 참사와 닮았지만, 동시에 뚜렷한 차이를 지녔다. 유가족들의 연고가 비교적 다양했고, 희생자들을 향한 시선이 지역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얽혀 곱지 않았다. 그렇듯 보영씨가 느끼기에 이태원 참사는 너무 어려웠다. 그런데 그 어려움을 풀어 갈 수 있는 활동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 게 보영씨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구나.' 보영씨의 우울은 한동안 깊어져만 갔다.

"이태원119안전센터 버스 정류장에 붙은 포스터를 보고 기록단에 신청했어요. 별로 고민 안 했던 것 같아요. 활동에 대한 갈증이 있었거든요. 세월호 참사 때는 학생 신분으로 뭐라도 바로 했는데, 사회인이 되니까 어렵더라고요. 한 번은 녹사평 이태원 광장 분향소에 가서 봉사를 하고 나니까 좀 나아졌어요. 아무래도 그런 활동으로 참사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겠다는 믿음이 있는데요. 세월호 때도 그런 식으로 도움을 받았던 경험이 있거든요."

기록단을 통해 비슷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겠다는 설렘도 있었다. 내심 동네 친구를 사귀고 싶기도 했다. 그만큼 보영씨에게 <다시 놀고 싶다, 이태원>의 의미는 각별한데, 그래서인지 활동이 종료된 이후에 대한 아쉬움도 앞선다. 상담을 제외하면, 보영씨가 참사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관계는 많지 않다. 가족을 비롯해 주변 사람들에게는 말을 아껴 왔다. 서로 입장이 다르다 보니, 공감을 바라는 대신 기대를 접는 데 익숙했다.

"여기 들어오길 잘한 것 같아요. 가끔 안부 주고받는 사이가 되면 좋겠어요. 끝나면 되게 좀 뭐랄까... 외롭겠다는 생각을 조금 해요. 10월이 되면 핼러윈이 다가오잖아요. 그때 내가 혼자 견딜 수 있을까 싶어요. 저는 기록단 자체에 긍정적인 의미를 두고 있어요. 지금껏 어느 활동에서도 보지 못한 모습이라서. 이런 기회가 많아진다면, 살기 좋겠다 생각했어요. 다 지역 주민이잖아요. 개인에게도 지역에게도 재밌는 추억이 많이 생기지 않을까요."

'이태원'에서 산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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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8일 토요일 밤, 이태원 참사 생존자 이주현씨와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활동가들이 이태원에 모여 애니메이션 영화 '코코' 분장을 한 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피해자권리

 
이태원에 산다는 건 과연 무슨 의미일까. 보영씨는 다른 사람들의 생각도 궁금했다. 인터뷰이로 외국인부터 떠올렸던 까닭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다문화 공동체가 형성되어 있어서 사는 건지, 이곳에서 겪은 차별은 없는지, 본국이 아닌 한국에서 경험한 참사는 어땠는지. 그런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이태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케밥집이 보영씨의 섭외 후보 1순위였다. 하지만 인터뷰이를 구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보영씨가 신경 써야 할 일도 몹시 많았다.

"주말에 보면, 케밥집 매출이 좋아요. 유동 인구가 많은 자리를 다 차지하고 있고요. 그런데 접근하기가 어려웠어요. 전화를 안 받아서 가게에도 몇 번 찾아갔는데, 너무 바빠 보여서 말을 못 걸겠더라고요. 그래서 같은 아파트에 사는 외국인분들에게도 물어봤어요. 같이 엘리베이터 타면, 파파고에 미리 쓴 문장 보여 주고... 모하메드씨를 만나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질문 짜면서 그런 고민도 했어요. 모하메드씨는 한국어가 익숙지 않은데, 잘 이해할 수 있을까? 원래는 그림 그리는 프로그램도 준비했는데, 예상이 잘 안 되기도 하고 너무 길어질 수 있겠다 싶어 과감히 뺐고요."

기록단 활동을 할수록 보영씨는 이태원에 대해 새로 배웠다. 주민마다 느끼는 게 다르다는 걸 확인하면서, 인터뷰하는 재미도 깨달았다. 그런데 보영씨는 스스로를 회의적인 사람이라 설명한다. 이태원 참사의 해결에 대해 묻자 의아한 듯 되묻기도 했다. "해결? 해결될 수 있을까요?" 하지만 그런 말들 이면에 숨 쉬는 건, 오히려 어느 한 부분 뭉뚱그리지 않고자 하는 보영씨의 의지다. 이태원 참사가 어렵다면, 어려운 만큼 어렵게 풀어 가겠다는 정직한 의지.

"참사 이후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어떤 고민이 있을까. 이게 잘 해결되기 위해서는 주민이나 상인뿐만 아니라 여기 놀려오는 사람들까지 소통이 원활해야 할 텐데… 진짜 어려운 문제네요. 저는 어떤 대안도 세우지 못하겠어요. 상인들 안에서의 이야기도 궁금해요. 왜 그런 게 있잖아요. 소비재 파는 분도 계시고, 요식업 하는 분도 계시고, 클럽 쪽도 따로 계시고. 서로 이야기가 될까. 아니, 같이 모일 수 있을까. 그래서 더 집요해지는 것 같아요. 그런 틈새를 충분히 헤아리고 싶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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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스트롱 파티 현장 사진. ⓒ DJ Seesea

  
#4 클럽 DJ들의 이야기를 들은 신솔아씨의 이야기

이태원, 핼러윈 그리고 클럽 문화

솔아씨는 클럽 DJ를 인터뷰이로 섭외했다. 이태원과 핼러윈을 언급할 때 클럽 문화가 빠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참사 직후, 소셜미디어와 각종 커뮤니티에는 이태원에서 핼러윈을 즐긴 사람들에 대한 비난이 가득했다. '문란하게 놀다가 죽은 건데 왜 추모해야 하냐' '사람 많은데 왜 가는지 이해 안 된다' 그런 반응을 접하며, 솔아씨는 큰 충격을 받았다. 바람이 있다면, 순수하게 음악을 즐기고 이태원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보여 주고 싶었다.

"참사 직후에 무슨 일인지 많이 찾아봤거든요. 저도 이태원을 애정하는 사람인데, 굉장히 안타까운 마음이었어요. 사람들의 선입견이 강하구나, 누군가 희생되었는데 비난하는 말부터 꺼내는구나. 이태원은 DJ씬이 잘 구축돼 있는 지역 중 하나거든요. 하지만 그 문화는 기성세대가 이해하기 어려울 것 같아요. 핼러윈도 외국인들 축제라 비난하기도 하고... 그런 분들에게 이태원의 문화가 어떤 의미인지 알리고 싶었어요."

타인의 이해를 돕는 것을 목표로 한 작업은, 뜻밖에도 솔아씨 스스로 이해를 넓히는 경험이 됐다. 가령 이태원에 거주하는 민희씨와 원기씨 부부의 이야기를 통해 솔아씨는 처음 알았다. 가족 단위로, 모든 세대가 즐길 수 있는 게 핼러윈 축제라는 것을. 또한 클럽 DJ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추모가 얼마나 다양할 수 있는지도 깨달았다. "이렇게도 가능하구나." 솔아씨가 미처 떠올리지 못한 세계가 낯설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태원은 희생자들이 재밌게 시간을 보낸 공간이잖아요. 이태원을 죽음의 땅으로 내버려두는 게 아니라 다시 살리는 것이야말로 추모 방법 중 하나라는 말이 기억에 남아요.

저도 '추모'라고 하면, 왠지 모든 것을 중단하거나 슬퍼하는 방법만 상상했던 것 같아요. 추모와 애도에 관해 많이 논의했으면 좋겠어요. 추모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사회적으로 합의되어 있지 않다 보니까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나는 이 죽음을 추모하는데 왜 너는 공감하지 않냐고, 혹은 너는 얼마나 선하길래 아직도 추모하고 있냐고."


"방관자가 되지 않아 좋은 것 같아요"

나의 또래, 혹은 나보다 어린 사람들. 솔아씨는 분향소에 늘어선 앳된 얼굴들이 너무 안타깝고 슬펐다. 사실, 솔아씨 역시 참사 당일 이태원에 방문할 예정이었다. 워낙 자주 가던 공간이었고, 코스튬을 하고 핼러윈 축제를 즐긴 적 또한 많았다.

그런데 그날은 하필 다른 일정이 늦게 끝나는 바람에 약속을 취소해야 했다. 그래서일까. 솔아씨에게는 참사 소식이 훨씬 공포스러웠다. 자신이 그 희생자가 됐을 수 있었다는 두려움이 머릿속을 휘감았다. 더군다나 인터넷에 떠도는 날것의 이미지에 과다 노출된 채로 밤을 지새운 탓에, 한동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집 근처가 이태원인데, 갑자기 도로 통제를 왜 하는지 의문이 들었어요. 그러다 참사가 일어난 걸 알았는데, 꼭 공포 영화 같았어요. 이태원은 저에게 익숙한 곳인데... 죽음이 나의 일상 속에 가까이 있구나. 나중에 우연히 기록단 모집 포스터를 보고 다시 생각나더라고요. 이태원 참사에 대한 슬픔을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신청했어요. 물론, 슬픈 건 여전한데요. 그럼에도 그런 감정을 가진 사람이 나 혼자만이 아니라는 안도감을 느낄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솔아씨는 '생존'과 '연대'에 대해서도 말한다. 참사로 인해 바뀐 삶을 정상 궤도로 올려놓고 싶은 마음. 그건 생존 의지와 비슷해 보였다. 그리고 걱정하기를, 간접적으로 참사를 겪은 자신조차 이렇게 힘든데 다른 사람들은 오죽할까.

솔아씨는 그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연대하고 싶었다. 프리랜서 에디터로 활동하는 솔아씨에게 인터뷰는 이미 익숙했다. 인디 아티스트와 서브 컬쳐를 주로 다뤄왔기에 클럽 DJ를 만나는 것도 수월했지만, 이런 주제의 취재는 처음이라 그 과정이 마냥 쉽지만은 않았다.

"인터뷰이가 참사 당시 기억을 이야기하는데, 그 말을 듣고 있는 것 자체가 힘들더라고요. 하지만 인터뷰를 진행해야 하니까 참았어요. 공감하면서도 동시에 그 감정에 거리를 둬야 한다는 걸 그때 깨달았어요. 참사 당시의 상황을 얼마나 자세히 써야 할지도 고민했고요. 계속 봐 버릇해야 트라우마를 해소하는 데 제일 효과적이지 않나 싶기도 했고, 참사를 있는 그대로 묘사해야 읽는 사람이 당시 상황을 이해하는 데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런 시간을 통해 솔아씨의 죄책감은 서서히 줄어들었다. 그전까지는 거리에서 이태원 참사 관련 현수막을 볼 때마다 무거운 기분이 들었다.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내가 무언가 해야 하지 않았을까, 지금 할 수 있는 건 없는 걸까. 그런데 이제 솔아씨는 조금 다른 소회를 전한다. "방관자가 되지 않아서 좋은 것 같아요."

'연결'과 '이해'가 필요한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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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오른쪽부터)과 권은비 작가 등이 지난 10월 26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 해밀톤호텔 옆 골목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곳을 ‘10·29 기억과 안전의 길’로 조성한 내용을 설명한 뒤 3개의 빌보드를 제막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하는 게 더 좋은 사회를 만드는 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문제를 해결하는 첫걸음을 만들 수도 있고요. 그래서 자기 일에 사명감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기분이 좋아요."

솔아씨 역시 그런 사명감으로 <다시 놀고 싶다, 이태원>에 참여했다. 솔아씨는 인터뷰가 지니는 가치로 두 가지를 꼽는다. '지금, 여기'에 대해 남길 수 있다는 것, 이야기에서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 이야기는 저절로 전해지지 않는다. 누군가의 입에서 나오는 생생한 말을 듣고 기록으로 남길 때, 비로소 역사가 된다. 그러고 보면, 솔아씨가 '연결'과 '이해'를 강조하는 까닭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미주권이나 유럽에서는 처음 보는 사이일지라도 눈이 마주치면 인사 정도는 건네거든요. 길거리에서 만난 사람과 친구가 되는 것도 이상하지 않은 문화예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낯선 사람에게 대개 두려운 마음을 품잖아요. 그만큼 경계심이 높다 보니까 어쩌면 이태원이 안식처가 돼 주는 것 같아요. 핼러윈 축제에 가는 이유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고요. 축제에 참여했다는 이유 하나로 사람들이 모두 반겨주는 거예요. 다들 갈증이 있나 봐요. 연결되고 싶지만, 그게 너무 어려운 사회이니까…"

한편, 솔아씨는 더 많은 사람들이 목소리 내기를 바란다. 그리고 동시에 사람들이 왜 참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지 이해한다. 특히 정치적으로 어느 한 쪽을 지지하는 뜻으로 읽힐까 지레 피하는 경우를 흔히 본다. 그렇다면 솔아씨의 경우, 어떻게 가능했을까. 그런 부담을 안고서 어떻게 입을 열 수 있었을까. 

"참사에 대해 목소리를 내기 전에 두려움도 있었어요. 저의 정치 성향이 하나로 비춰지는 건 아닐지, 그 때문에 피해를 입지는 않을지 걱정도 되었고요. 하지만 그런 말이 있잖아요. 사람은 자신을 인정해 주는 단 한 명의 사람만 있으면 잘 살아갈 수 있다는 말. 저도 사람들이 다 나를 욕하더라도, 나를 지지해 주는 가족이 있으니까 괜찮다는 마음이거든요. 그 덕분에 용기를 낼 수 있었어요."

- 인터뷰어 : 이상민 / 인터뷰이 : 윤보영, 신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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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구에서 주민들과 마을방송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지역에 주요 현안을 콘텐츠로 제작하고 지역주민과 청소년 대상 라디오 교육을 통해 라디오방송 DJ을 양성하고 있습니다. 2012년부터 용산구에서 활동하고 있는 비영리민간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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