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요"삶을 정갈하게 만드는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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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요"가 쉽지 않은 것은 집단생활에서의 생존 본능 때문이라고 한다. 이제는 시대가 변했지만 아직도 불안감은 여전하다. 하지만 집단의 역할이 이전과 같이 생존을 위하지 않는다. 집단 속 개개인이 중요해진 만큼 자신을 관리하는 것이 집단에도 도움이 된다.
"아니요"를 남발(?)하다보면 하나 깨닫게 되는 것이 있다고 한다. 아직 그런 경지까지 다다르진 못했지만, 상대의 거절에도 내성이 생긴다는 거다. 거절을 해봄으로써 상대의 거절에도 이유가 있음을 알 수 있고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길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내가 거절하는 이유를 들여다보면 상대를 크게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내 몸이 피곤해서, 내 가정에 사정이 있어서, 내 시간이 없어서. '당신이 싫어서'라는 경우는 정말이지 드물다(아예 없을 순 없다).
이런 입장을 생각하면 상대가 내게 하는 거절에 대해서도 딱히 '내가 뭐 잘못했나?', '나를 싫어하나?' 등으로 확대 해석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만에 하나 정말로 그것이 이유라면, 당황스럽고 가슴 아프겠지만, 그렇다 해도 어찌할 도리가 없을 뿐이다.
이런 메커니즘에 의해 "아니요"에 익숙해지면 요청하는 것에도 부담이 적어진다. 언제든 거절 당할 수 있음을 이해하고 그것이 그리 치명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것만으로 중요한 요청을 머뭇거리지 않게 된다. 여전히 쉽지 않은 일이지만 확실히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이전에는 팀장이나 상급자에게 요청이 아닌 보고를 하면서도 망설였었다. 내 의견에 대한 반대나 지적에 상당히 많은 신경을 썼다. 따지고 보면 모든 보고는 상대에게 의견을 묻는 일종의 요청이고 그것은 언제나 거절당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부담감이 확연히 줄었다.
아 다르고 어 다른 인간 사회에서 그 표현이 다소 거슬릴 수도 있지만, 그것은 그 상황을 객관적으로 두려워할 만한 사안이 아니다. 어차피 보고는 피할 수 없고 언젠가는 해야 하는 것이기에. 오랜 시간 붙잡고 고민하기 보단 어느 수준에선 보고를 하는 것이 훨씬 일을 잘 풀어나갈 수 있는 방법이다.
"아니요"를 말하는 것은 집안에 불필요한 물건을 들이지 않는 것과 같다. 물건이 적으면 정리할 일이 적어지고 청소도 쉽다. 어질러진 거실을 보며 한숨을 쉬는 일도 적고 몸도 마음도 여유로워진다. 들였으면 좋을 것도 분명 있겠지만, 잘못 들인 물건으로 속상할 일을 줄이는 게 조금 더 현명한 판단일 테다.
삶을 정갈하게 정리하는데 '아니요'만큼 확실한 방법은 없다. 비록 확실한 방법을 두고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 이렇게 분투하고 있지만, 후회의 또 다른 말이 지혜라는 말을 믿으며 다음을 기약하고 있다. "아니요", "아니요", "아니요" 깊숙이 장전한 이 말을 적시 적소에 발사하고 말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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