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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6일 오후 4시 16분, 교실에서 이 영상을 볼 겁니다

[아이들은 나의 스승] 학생회가 주도한 색다른 세월호 10주기 추모 행사

등록 2024.04.16 14:47수정 2024.04.16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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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동장 가장자리 언덕에 노란 바람개비를 이용해 세월호 형상을 꾸며 놓았다.
운동장 가장자리 언덕에 노란 바람개비를 이용해 세월호 형상을 꾸며 놓았다.서부원
 
'10'이라는 숫자가 주는 무게감은 남다르다. 해마다 맞는 4월이지만, 특히 올해 4월은 허투루 보내면 죄를 짓는 듯한 느낌이 들 것만 같다. 3월 개학하자마자부터 아이들과 함께 세월호 참사 10주기 추모 행사를 고민해 온 이유다. 학교의 한 해 농사를 간추려 놓은 교육과정 운영계획서에도 세월호 추모는 맨 앞자리다.

해마다 세월호 추모 행사는 학생회 아이들의 몫이었다. 학년 초 분주했던 3월이 지나고 4월이 시작되면, 학생회실은 행사 준비로 북적인다. 마라톤 회의를 통해 아이디어를 모으고 역할을 분담하느라 경황이 없다. 한쪽에는 작년에 사용했던 노란 리본과 패널, 색종이 등이 쌓여있다. 매년 이맘때쯤 학생회실은 온통 노란색이다.

지금 전국의 학교 교문에는 세월호 10주기를 추모하는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기존의 '잊지 않겠다'는 다짐부터 '기억은 힘이 세지', '가슴에 노란 리본, 마음에 새긴 약속', '손 맞잡고 끝까지 함께' 등의 새로운 문구까지 다양하다. 10주기라서인지 올해는 교육청도 공문을 통해 견본 현수막까지 제시하는 등 특별한 관심을 쏟고 있다.

그런데, 정작 요즘 아이들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하다. 되짚어 보면, 추모 행사의 규모가 가장 컸던 때는 참사 발생 이듬해인 2015년이었다. 유족이 진상규명을 외치며 여전히 길 위에 있었고, 온 국민의 눈물이 아직 마르지 않던 때였다. 교사와 아이들의 팔목에 노란 고무링을 차고 가슴에 노란 리본 배지를 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러나 해가 갈수록 행사의 규모가 작아지더니 어느덧 관행처럼 여겨지기 시작했다. 코로나가 덮친 지난 몇 해 동안은 그마저도 취소되어 애를 태웠다. 안산의 세월호 기억 교실을 찾는 발길이 뜸해지고, 목포 신항에 거치된 세월호 선체가 녹슬어 가는 만큼 우리의 기억과 다짐도 시나브로 흐릿해져만 갔다.

기억은 분명 힘이 세지만, 손바닥의 한 줌 모래처럼 흩어지기도 쉽다. 특히 당시의 기억이 애초 옅은 아이들에겐 더욱 그렇다. 올해 추모 행사를 준비하는 학생회 아이들에게 세월호 참사는 '교과서 속 역사'에 가깝다. 고작 나이 열여섯인 그들에게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 무엇이었는지 물으면, 세월호 참사보다 이태원 참사를 먼저 댄다.

10주기를 맞아 아이들이 준비하는 행사는 작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재작년 것과도 거의 똑같다. 재작년의 행사가 작년 것의 모범이 되고, 작년 것을 따라 올해의 행사를 준비하는 까닭이다. 모르긴 해도, 내년에도 얼추 비슷할 것이다. 그들의 공감 능력과 창의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세월호 참사를 '역사'로 기억하고 있어서다.


'기억을 위한 기억'이 되지 않도록 
 
 아침 등굣길에도 노란 바람개비를 줄지어 세워놓았다.
아침 등굣길에도 노란 바람개비를 줄지어 세워놓았다.서부원
 
올해에도 학생회 주관으로 노란 바람개비를 만들어 교정 곳곳에 세워놓았다. 전교생을 대상으로 잊지 않겠다는 각자의 다짐을 노란 종이에 적어 게시하고 공유하는 행사도 그대로 진행된다. 늘 해오던 것이라, 종이 위에 담긴 아이들의 다짐은 입이라도 맞춘 듯 똑같다. 언뜻 다짐이라기보다 '숙제' 같은 느낌이 든다.

그저 4월 16일이 세월호 참사가 있은 날이라는 사실에 대한 기억은 별 쓸모가 없다. 추모 행사는 참사가 왜 일어났는지에 대한 진상을 밝히고, 참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우리 사회의 성찰을 요구하는 자리여야 마땅하다. 이른바 '기억을 위한 기억', '행사를 위한 행사'는 자칫 추모의 의미를 퇴색시킬 우려가 크다.


비유컨대, 지식을 머리에만 욱여넣는 건 진짜 공부가 아니다. 가슴에 가닿지 못하는 지식은 실천으로 옮겨지지 못하는 지적 허영에 불과하다. 세월호 참사를 머리로만 기억하는 아이들이 추모 행사의 취지를 가슴에 새길 수 있도록 하는 실효적인 방안이 절실했다. '10'이라는 숫자가 더욱 발을 동동 구르게 했다.

학년 초엔 지역 주민과 함께하는 추모 공연을 계획했다. 몇 해 전 근린공원에서 치러본 경험이 있어 조금만 보완하면 어렵지 않게 해낼 수 있으리라 여겼다. 행정복지센터 등의 협조를 구해 주민들과 소통하고, 음향 장비 등 외부의 지원을 받아 일사천리로 진행될 터였다. 학교에선 무대에 오를 아이들을 선발해 연습시키기만 하면 됐다.

그러나 학생회 아이들로부터 제동이 걸렸다. 이름을 어떻게 붙이든 '행사를 위한 행사'일 뿐이라고 말했다. 누군가는 무대에 올라 노래하고, 대다수는 무대 아래에 줄지어 앉아 박수를 보내는 '동원된' 공연이라면 더는 감동을 줄 수 없다는 거다. 더욱이 땡볕이 내리쬐는 야외에서라면, 추모는커녕 분노를 촉발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가성비'가 떨어진다고 강조했다. 학사일정을 조정하는 것부터 무대 설치에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을 고려하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클 수 있다는 거다. 어쩌면 평범한 일상 속 은근하고 소소한 추모 행사가 오히려 더 큰 감동을 줄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행사의 '규모'가 아닌, 추모의 '의미'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이후 며칠간 '일상 속 추모'라는 다섯 글자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바로 그때 스치듯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4월 16일, 오후 4시 16분에 추모 사이렌을 울린 뒤 14분 동안 교실에서 전교생이 함께 추모 영상을 시청하자는 것! 아이들의 하교 시간이 오후 4시 30분이어서, 수업에 큰 지장을 주지 않는 시간이다. 등굣길 노란 바람개비로 맞이한 하루가 하굣길 추모 영상으로 마무리되는 셈이다.

이는 광주 도심 옛 전남도청 앞 시계탑에서 벤치마킹한 것이다. 시계탑에 설치된 작은 스피커에선 1년 365일 매일 오후 5시 18분이면 어김없이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진다. 그 시간 그곳을 지나는 광주시민들은 그 노래를 들으며 추모의 마음으로 옷깃을 여민다. 광주시민이 5.18 민주화운동을 기억하는 방식이다.

14분짜리 추모 영상을 제작하는 일이 남았다. 인터넷에 올라온 기존의 영상들을 짜깁기할 요량이었으나, 우리의 힘으로 새로 만들어보자는 주장이 일었다. 한 동료 교사와 학생회가 대본을 짰고, 방송반 아이들은 기술을 보탰다. 세월호 참사 당일을 또렷이 기억하는 교사들을 인터뷰하는 내용이었고, 포맷은 한때 EBS의 대표 꼭지였던 '지식채널 e'를 차용하기로 했다.

10년 전 4월 16일, 우리가 잊지 못하는 그날   
 
 우리 학교의 세월호 10주기 추모 행사는 참사 당시의 충격을 트라우마처럼 안고 사는 교사들의 또렷한 기억을 담아낸 영상을 만들어 아이들과 공유하기로 했다. 사진은 영상의 한 장면을 캡처한 것이다.
우리 학교의 세월호 10주기 추모 행사는 참사 당시의 충격을 트라우마처럼 안고 사는 교사들의 또렷한 기억을 담아낸 영상을 만들어 아이들과 공유하기로 했다. 사진은 영상의 한 장면을 캡처한 것이다.서부원
 
동료 교사들은 기꺼이 인터뷰에 응했고, 10년 전 그날의 충격을 날 것 그대로 증언했다. 인터뷰 도중 울컥해 말을 잇지 못하는 교사도 있고, 카메라가 치워진 뒤 그제야 눈물을 쏟아낸 이도 있었다. 참사 당시 유치원생이었다는 방송반 아이들조차 먹먹해 촬영하다 말고 잠깐 고개를 돌리기도 했다.

"선생님은 어제 오전 9시에 무엇을 하고 계셨는지 기억하시나요?"
"선생님은 10년 전인 2014년 4월 16일 오전 9시에 무엇을 하고 계셨는지 기억하시나요?"


질문은 이 단 두 가지였다. 예상대로 어제의 일은 십중팔구 떠올리지 못했지만, 참사가 일어난 당일 아침은 모두가 또렷이 기억했다. 누구와 무엇을 먹고, 어디에 있었고, 무슨 대화를 나누었는지 막힘이 없었다. 심지어 그때 어떤 옷을 입고 있었는지까지 기억한다는 이도 있었다. 완성된 영상은 4월 16일 당일 오후 4시 16분에 모든 교실에 송출된다.

10주기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올해 우리 학교의 세월호 추모 행사는 그 어느 해보다 단출하다. 준비하는 데 비용도 거의 들지 않았으니, 아이들 표현대로 '가성비 갑'인 셈이다. 하지만 여느 해에 견줘 세월호 참사를 머리로만 기억하는 아이들의 가슴을 울리는 데에 효과가 클 것으로 본다. 교사들이 전하는 충격적 기억은 그들에게 그 무엇보다 강렬하게 다가갈 것이기 때문이다.

사족. 유튜브를 통해 공유하고 싶지만, 30명이 넘는 교사들의 얼굴과 목소리가 고스란히 담겨있어 영상 공개가 어렵다. 다만, 추모 영상을 제작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통해 새삼 깨달은 바가 있다. 교사들의 자발적 참여와 실천이야말로 아이들의 가슴을 울리는 가장 중요한 동인이라는 사실! 기실 그것은 교육자가 갖춰야 할 기본적인 소양이기도 하다.
#세월호참사10주기 #518시계탑 #임을위한행진곡 #지식채널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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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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