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등굣길에도 노란 바람개비를 줄지어 세워놓았다.
서부원
올해에도 학생회 주관으로 노란 바람개비를 만들어 교정 곳곳에 세워놓았다. 전교생을 대상으로 잊지 않겠다는 각자의 다짐을 노란 종이에 적어 게시하고 공유하는 행사도 그대로 진행된다. 늘 해오던 것이라, 종이 위에 담긴 아이들의 다짐은 입이라도 맞춘 듯 똑같다. 언뜻 다짐이라기보다 '숙제' 같은 느낌이 든다.
그저 4월 16일이 세월호 참사가 있은 날이라는 사실에 대한 기억은 별 쓸모가 없다. 추모 행사는 참사가 왜 일어났는지에 대한 진상을 밝히고, 참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우리 사회의 성찰을 요구하는 자리여야 마땅하다. 이른바 '기억을 위한 기억', '행사를 위한 행사'는 자칫 추모의 의미를 퇴색시킬 우려가 크다.
비유컨대, 지식을 머리에만 욱여넣는 건 진짜 공부가 아니다. 가슴에 가닿지 못하는 지식은 실천으로 옮겨지지 못하는 지적 허영에 불과하다. 세월호 참사를 머리로만 기억하는 아이들이 추모 행사의 취지를 가슴에 새길 수 있도록 하는 실효적인 방안이 절실했다. '10'이라는 숫자가 더욱 발을 동동 구르게 했다.
학년 초엔 지역 주민과 함께하는 추모 공연을 계획했다. 몇 해 전 근린공원에서 치러본 경험이 있어 조금만 보완하면 어렵지 않게 해낼 수 있으리라 여겼다. 행정복지센터 등의 협조를 구해 주민들과 소통하고, 음향 장비 등 외부의 지원을 받아 일사천리로 진행될 터였다. 학교에선 무대에 오를 아이들을 선발해 연습시키기만 하면 됐다.
그러나 학생회 아이들로부터 제동이 걸렸다. 이름을 어떻게 붙이든 '행사를 위한 행사'일 뿐이라고 말했다. 누군가는 무대에 올라 노래하고, 대다수는 무대 아래에 줄지어 앉아 박수를 보내는 '동원된' 공연이라면 더는 감동을 줄 수 없다는 거다. 더욱이 땡볕이 내리쬐는 야외에서라면, 추모는커녕 분노를 촉발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가성비'가 떨어진다고 강조했다. 학사일정을 조정하는 것부터 무대 설치에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을 고려하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클 수 있다는 거다. 어쩌면 평범한 일상 속 은근하고 소소한 추모 행사가 오히려 더 큰 감동을 줄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행사의 '규모'가 아닌, 추모의 '의미'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이후 며칠간 '일상 속 추모'라는 다섯 글자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바로 그때 스치듯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4월 16일, 오후 4시 16분에 추모 사이렌을 울린 뒤 14분 동안 교실에서 전교생이 함께 추모 영상을 시청하자는 것! 아이들의 하교 시간이 오후 4시 30분이어서, 수업에 큰 지장을 주지 않는 시간이다. 등굣길 노란 바람개비로 맞이한 하루가 하굣길 추모 영상으로 마무리되는 셈이다.
이는 광주 도심 옛 전남도청 앞 시계탑에서 벤치마킹한 것이다. 시계탑에 설치된 작은 스피커에선 1년 365일 매일 오후 5시 18분이면 어김없이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진다. 그 시간 그곳을 지나는 광주시민들은 그 노래를 들으며 추모의 마음으로 옷깃을 여민다. 광주시민이 5.18 민주화운동을 기억하는 방식이다.
14분짜리 추모 영상을 제작하는 일이 남았다. 인터넷에 올라온 기존의 영상들을 짜깁기할 요량이었으나, 우리의 힘으로 새로 만들어보자는 주장이 일었다. 한 동료 교사와 학생회가 대본을 짰고, 방송반 아이들은 기술을 보탰다. 세월호 참사 당일을 또렷이 기억하는 교사들을 인터뷰하는 내용이었고, 포맷은 한때 EBS의 대표 꼭지였던 '지식채널 e'를 차용하기로 했다.
10년 전 4월 16일, 우리가 잊지 못하는 그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