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마왕>을 보는 이유

드라마를 선택하는 나만의 기준

등록 2007.03.25 10:19수정 2007.03.27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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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홈페이지

내가 드라마를 선택하는 첫 번째 기준은 바로 주인공이 누구냐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남자 주인공이 누구냐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남자 배우가 나온다면 그 작품의 작가가 누구든지, 연출이 누구든지, 내용이 어떻든지 간에 채널 고정하고 방송을 본다.

지난 21일부터 공중파 3사에서 경쟁적으로 새 드라마가 시작됐다. 무엇을 볼까. 내가 좋아하는 남자 배우가 나오는 건 어느 것인가. 장혁, 신성록 vs 엄태웅, 주지훈 vs 재희, 김정훈, 데니스 오. 안타깝게도 내가 굉장히 좋아하는 배우는 없었다. 하물며 SBS의 세 남자 주인공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축이었으므로 <마녀유희>는 바로 탈락. 장혁, 신성록과 엄태웅, 주지훈이 경합을 벌였다.

두 번째는 바로 작가가 누구냐는 것이다. 이경희 작가는 남자 주인공을 참 잘 그리는 것 같다. 내가 좋아하지 않던 배우라 할지라도 그 인물 자체는 매력적으로 느껴져 드라마가 하는 동안은 그 배우까지 좋아하게끔 만드는 힘. <상두야 학교 가자>의 상두가 그랬고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차무혁이 그랬다. 김지우 작가의 전작인 <부활>은 '부활패닉'을 낳았다는 소문만 들었을 뿐, 아쉽게도 <내이름은 김삼순>을 보느라 보지 못했다. 하지만 나도 패닉에 한 번 빠져 보고 싶기도 했다. 결정 보류.

세 번째 기준은 어떤 이야기인가 하는 것이다. 치매 걸린 할아버지와 에이즈 걸린 딸을 둔 미혼모에, 애인을 위암으로 먼저 보낸 남자주인공까지. <고맙습니다>는 너무 많은 질병이 부담스러웠지만 거기서 삶의 고마움을 일깨워 준다는 건 좋은 것 같았다. 인간의 선과 악에 대한 이야기를 복수와 진실 찾기를 통해 한다는 <마왕>은 다소 무거운 이야기긴 해도 그 무거움을 안고 싶을 만큼의 호감은 있었다. 결국 막상막하.

뭔가 뒤바뀐 것 같지만 그래도 나는 지금껏 이 기준을 고수해 오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가 주인공으로 나온다고 하는 것은 그저 멋진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 외에, 감정이입이 잘 된다는 것 이상으로, '신뢰'가 가기 때문이다.

저 배우라면, 그저 그런 드라마엔 나오지 않을 거야, 하는 믿음. 작가에게도 마찬가지 기준이 적용된다. 저 작가라면, 그저 그런 드라마는 쓰지 않을 거야.

시트콤 <논스톱>에서 비호감이었던 현빈이 <아일랜드>를 통해 완전호감이 되었기에 <내이름은 김삼순>을 보았던 것이었다. <아일랜드>를 본 건 인정옥 작가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고.

아무튼 방송 당일까지 어느 것을 볼 지 결정을 내리지 못했던 나는, 공교롭게도 첫방송 날 갑자기 생긴 약속으로 아무 것도 보지 못했다. 1회 시청률은 <고맙습니다>가 제일 높게 나왔고, <마왕>이 제일 낫게 나왔다.

나는 22일 목요일 밤, <마왕>을 선택했다. 내가 드라마를 선택하는 마지막 기준은 바로 시청률이다. 시청률이 높게 나오는 드라마가 아니라, 낮게 나오는 드라마. 어릴 때부터 청개구리 기질이 있었던 탓인지 이상하게 그런 묘한 심리가 내게는 있다. 친구들이 모두 댄스 가요를 들을 때 혼자 힙합 음악을 들으면서, 너희가 모르는 랩퍼를 나는 알아, 이게 얼마나 좋은지 모르지, 하는 우월감.

드라마 <아일랜드>를 본방송에, 재방송에, 케이블 채널에서 해주는 재방송에, 인터넷으로까지 보면서도 시청률이 낮게 나올수록(작가와 배우, 스태프 등 드라마 관계자 분들께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나는 더욱 뿌듯했던 것 같다. 사람들이 그 드라마 재미없어, 지루해, 그걸 누가 봐, 라고 비아냥댈 때마다 나만이 보물을 발견하고 그 가치를 알고 있는 것처럼 뿌듯했던 것이다.

백 명이 보고 백 명이 잊는 드라마보다, 한 명이 보고 한 명의 가슴에 평생 남는 드라마가 더 가치 있는 것이 아닐까. 물론 드라마는 일상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서 본다고들 하고, 웃음을 주는 드라마가 단지 웃기다는 이유만으로 폄하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보면서 더 피곤하고 더 불편하고 더 머리 아파지더라도, 그런 드라마도 하나쯤은 필요한 것 아닐까.

<마왕>은 그런 드라마다. 일상의 고단함을 웃음으로 날려주는 것도 좋고, 삶의 고마움을 온갖 질병을 통해 가르쳐 주는 것도 좋지만, 인간의 선함과 악함에 대해 머리 싸매고 고민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1, 2회를 다 본 결과, 마치 예고를 하는 듯 빠르게 편집해서 보여주는 화면은 근사하다기보다 사족 같았지만 <궁>을 보지 않아 몰랐던 '주지훈'에 대해 알게 된 건 큰 소득이었다. 머리를 자르고 까만 정장을 차려 입은 겉모습은 물론이고 야누스적인 역할을 그럴 듯하게 소화해 내는 그의 모습은 아직은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배우'라는 이름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대를 낳게 한다.

물론 아직 속단하기엔 이르다. 이제 고작 두 걸음을 뗐을 뿐이다. 하지만 배우와, 작가와, 이야기에 힘이 느껴진다. 그 힘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을 수 있도록 <마왕>의 선전을 기원해본다.

덧붙이는 글 | 티뷰 기자단 기사입니다.

덧붙이는 글 티뷰 기자단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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