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현 드라마가 이렇게 끝나지는 않겠지...

[아줌마, TV를 말하다 11] SBS 월화미니시리즈 <내 남자의 여자>

등록 2007.04.17 12:01수정 2007.04.17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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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월화미니시리즈 <내 남자의 여자> 스틸컷 ⓒ SBS

"라이트 펀치."
"오~ 레프트 받아치고."
"앗, 프라이팬 작렬! 우하하하."
"이번엔 업어치기 한판! 야. 정말 잘한다. 이번엔 누가 이긴 거야? 화영이야? 은수야?"


<청춘의 덫> <불꽃> <부모님전상서> 등 드라마의 역사와 같은 작품을 만들어낸 언어의 마술사 김수현 작가와 정을영 감독이 만나 만들어낸 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가 회를 거듭하면서 강도를 더해가는 여자들의 싸움장면으로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다.

머리채를 휘어잡고 마룻바닥에 내동댕이치는 장면 정도는 세미타이틀 매치에 지나지 않는다. 회를 거듭하면서 싸움의 기술은 정도를 더해 주먹세례는 기본, 고난도의 업어치기와 이단 발차기, 반칙에 해당하는 프라이팬 가격은 물론 쌍코피까지 작렬하는 등 링 위에서도 보기 힘든 격투기를 선보여 시청자를 놀라게 했다.

여자 이종격투기를 방불케하는 이 장면은 남편을 뺏긴 여자와 빼앗은 여자의 싸움도 아닌 빼앗을 여자와 빼앗긴 여자의 언니가 벌이는 싸움이라 더욱 흥미진진하다. 당사자간의 싸움에서는 보기 힘든 딴죽걸기, 이죽거리기, 야유와 욕설 퍼붓기, 회유와 협박이 동시에 진행되기 때문이다.

연기를 충실하게 해내기 위해 무술감독을 동원, '싸움의 기술'까지 전수 받았다는 하유미(은수역) 때문일까, 새로운 배역에 맞추어 독한 변신을 감행했다는 김희애(화영)의 살신성인적 리액션 때문일까. 두 여자의 싸움은 드라마 속 최고의 리얼리티로 꼽히기까지 하니, 이쯤 되면 작가 김수현이 다루고자 하는 이야기가 '싸움'인지 '불륜'인지 헛갈릴 판이다.

명작가의 이름을 무색케 한 싸움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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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라이팬으로 은수(하유미)의 머리를 내려치는 화영(김희애) ⓒ SBS

"여자들이 정말 저렇게 싸워? 저거 여자프로레슬링보다 더 재미있는데. 푸하하하. 여자들 싸우는 거 진짜 재미있네. 코피 줄줄에 눈탱이 밤탱이…. 완전 하드고어인걸."

"말도 안돼. 아무리 외도를 한다 해도 이혼하면 그만이지 뭐 하러 저렇게 무식하게 싸우겠어. 그것도 당사자도 아닌 언니가 말이야."

"시앗을 보면 부처님도 돌아앉는단다. 저 정도는 해 줘야 분이 풀리지. 난 속이 다 시원하더라. 나 같아도 머리채 확 잡아 반쯤 죽여 놨을 걸."

"깡패영화에서 남자들 치고 받고 싸우는 거 보다가 여자들끼리 욕하고 때리고 싸우는 거 보니까 웃긴다. 그러고 보니 아줌마들도 화나면 무섭네. 하하하."


메가톤급 작가와 감독의 이름만큼이나 화려한 출연진 그리고 김희애의 파격 키스신까지 무엇하나 예사롭지 않은 것이 없던 <내 남자의 여자>. 이들의 명성에 못지않은 기대를 한 건 사실이지만 화려한 대사도, 연기자들의 출중한 연기력도, 완벽한 연출력도 아닌 여자들의 선정적인 싸움장면이 화제가 되고 있다니 명작가의 이름이 무색하기만 하다.

"불륜을 미화하지도 매도하지도 않겠다", "무늬만 '불륜'인 드라마가 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라는 김수현 작가의 출사표는 신선했었고 시청자의 기대 또한 작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초반부를 접하고 보니 딱 기대만큼의 실망이 밀려온다. 대작가에 대한 과량의 기대치를 복용한 부작용일 것이다.

설마, 김수현 작품인데 이렇게 끝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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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애의 '팜므파탈' 연기를 두고도 말들이 많다 ⓒ SBS

독한 불륜, 현실적인 스토리, 선도 악도 없는 불륜 그 자체를 다루겠다는 작가의 의지가 너무 강해서일까, 신선한 스토리를 만들어 내고 싶은 나머지 지나친 실험정신을 발휘한 때문일까. 스토리는 현실과 자주 멀어지고, 그녀가 늘 비난하는 말도 되지 않는 비약과 과장이 지나쳐 수시로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그뿐인가, 관념적으로 그려진 주인공들 때문에 숨차게 쏟아 놓는 김수현표 '생활어' 대사조차도 그 위력을 잃어가고 있으니 유려한 필력과 현실감 있는 캐릭터를 기대했던 시청자로서는 과한 일탈이 불편한 건 물론이고 작가가 의도하는 의미까지 이해하기엔 심히 피곤하기까지 하다.

배부르고 등 따뜻해 외도마저 취미로 즐기는 상류층 된장아줌마들의 꼴불견 머리채싸움이라거나 작품마다 국민의 1%도 되지 않는 상류층만 소재로 삼아 위화감을 조성하는 대표적인 된장녀 작가라는 둥 말들도 많지만 그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이루어 놓은 드라마 역사가 깊고 탄탄하기에 시청자로서 그녀에게 거는 기대를 내려놓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오늘도 수도 없이 채널을 돌려버리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여자들의 몸싸움 말싸움을 지켜본다. 그래도 대작가 김수현의 작품인데 설마 이렇게 끝나버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희망을 걸면서 말이다.

덧붙이는 글 | 김혜원 기자는 티뷰기자단입니다.

덧붙이는 글 김혜원 기자는 티뷰기자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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