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낀 무슬목 바다 풍경에 취하다

전남 여수 돌산도 무슬목의 사계

등록 2007.10.28 10:44수정 2007.10.28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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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슬목의 해 안개와 구름이 뒤덮인 무슬목, 해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구름을 걷어내고 환한 미소 지으며 솟아오른다. 눈이 부시다. ⓒ 조찬현



안개가 온 세상을 감싸고 있다. 안개 숲을 헤치고 새벽길을 나섰다. 한 사내가 헬멧라이트 불빛을 쏘며 자전거를 타고 달린다. 안개의 부드러운 손길에 아직 사람들은 잠들어있다. 해안도로의 가로등은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길을 비추고 있다. 밤새 쏟아진 비로 인해 촉촉이 젖은 거리는 한산하다.


불빛이 사윈 돌산대교를 건너 찾아간 곳은 전남 여수 무슬목 몽돌해안이다. 한 발짝 옮길 때마다 달그락 달그락 몽돌이 내게 말을 걸어온다. 밤새 옹알이하던 바다이야기를 들려준다. 바다에는 어선 한 척이 떠있다. 안개 속에서 빛을 반짝이며 어부는 고기잡이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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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목 무슬목 몽돌해변의 나목 ⓒ 조찬현



무슬목의 가을

새벽녘에 무슬목에 가면 무슬목을 지키는 한 사내가 있다. 오늘도 역시 그가 있었다. 그는 1년 365일 무슬목의 변화하는 표정을 세세히 관찰하며 카메라에 담고 있다. '무슬목 지킴이' 한창호 선생이다. 현재 여수공고에서 교사로 재직 중이며, 수년째 무슬목 사진을 찍고 있다.

"해를 볼 수 있겠습니까?"
"수평선에 붉은색이 안 나오는걸 보니 오전이 돼야 나오려나."



그가 카메라에 담은 사진을 잠깐 봤다. '아~!'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다. 순간을 잡은 것과 장시간 노출하는 차이점이라고 그는 말했다.

"정지된 것과 역동적인 것의 차이점입니다. 사람들이 전화해서 무슬목의 어느 때가 좋냐고 묻곤 합니다. 노하우를 가르쳐 달라고요. 이런 풍경은 순간 촬영이 되지 않기 때문에 수십  번의 경험을 통해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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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완두꽃 몽돌해변에는 갯완두꽃이 듬성듬성 피었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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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호 선생 무슬목 지킴이 한창호 선생 ⓒ 조찬현



그는 이어 사진 찍기의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저도 어려워요. 오늘도 찍고 싶은걸 못 찍었어요. 비가 올 때는 청색과 약간 붉은색의 톤을 잡아야하는데, 이건 순간입니다. 그 순간을 놓치면 못 찍습니다. 그 다음은 시험 촬영입니다. 날마다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겁니다."

그는 새로움에 날마다 도전한다며 삼각대를 챙겨 총총히 몽돌해변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이제 무슬목 바닷가에는 아무도 없다. 파도만이 철썩이며 안개 숲을 오간다. 안개가 지배하는 바다에서 태양을 보기란 여간 힘이 드는 게 아니었다.

오전 7시, 해 뜰 시간이 지났는데도 해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가르릉 가르릉~" 울어대는 몽돌의 외침은 더 커져만 간다. 물살은 몽돌 사이사이로 밀려왔다 밀려가기를 한없이 되풀이하고 있다. 갈매기 서너 마리가 어선 주위를 선회한다.

오전 7시 10분, 갑판위에 어부들의 모습이 또렷하다. 숭어 한 마리가 수면위로 펄쩍 뛰어오른다.

오전 7시 20분, 지평선에서 붉은 빛이 감돌기 시작한다. 파도는 더 거세게 다가온다.

오전 7시 21분, 안개와 구름이 뒤덮인 무슬목, 해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구름을 걷어내고 환한 미소 지으며 솟아오른다. 눈이 부시다.

오전 7시 24분, 찬란함도 순간 해는 또다시 구름 속으로 숨어든다. 바다는 또다시 고요 속에 잠겼다. 멀리 수평선에 어선 한 척이 지나간다.

몽돌해변에는 갯완두꽃이 듬성듬성 피었다. 빗방울을 머금은 여린 꽃잎이 갯바람에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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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슬목의 봄 해변에는 봄이 끝없이 밀려든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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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부 무실목의 안개바다에서 어부들이 통통배에 그물을 걷어 올리고 있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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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바다 무슬목 안개바다 ⓒ 조찬현



무슬목의 봄

오고 또 오고
가고 또 가고
삼백예순다섯 날
해 뜨는 아침, 무슬목
해변에는 봄이 끝없이 밀려든다.


살짝 살짝, 넘실넘실
보일 듯 말듯 한
무슬목의 봄은 얄밉다.

- 자작시, <무슬목의 봄>

새 생명의 봄기운이 가득한 돌산도, 돌산도에 봄이 찾아오면 상춘객들의 마음은 이미 들떠있다. 돌산도의 봄은 무슬목에서 시작된다. 몽돌을 굴리며 다가오는 파도와 갯바위 해초위로 불어오는 봄바람이 봄소식을 전하면 어부는 새벽녘부터 고기잡이에 나선다. 금빛으로 반짝이는 바다의 올망졸망한 섬 사이를 오가는 고깃배는 아름다운 풍경이다.

무슬목에 아침이 밝아오면 섬도, 바다도, 어부도, 기지개를 켠다. 하늘과 바다는 은은한 색감으로 붉게 물들어간다. 바다와 하늘이 맞닿은 낮은 수평선에서 해가 살포시 얼굴을 내민다. 아! 찬란한 붉은 불덩이가 바다에서 솟구쳐 오른다. 끝없이 펼쳐진 몽돌해변에 햇살이 비추면 갯바위에 붙은 향긋한 파래가 모습을 드러낸다.

무슬목의 새벽바다가 허연 속살을 드러낸다. 부끄러움 때문인지 파도는 자꾸만 밀려와 드러난 몸매를 가리곤 한다. '철썩 쏴아아~ 철썩 쏴아아~', 무슬목의 봄은 그렇게 아침마다 파도와 함께 밀려온다.

한 걸음 한 걸음 발걸음을 뗄 때마다 몽돌은 달그락달그락 노래를 한다. 바다와 몽돌이 맞닿은 여수 돌산도 무슬목(무실목) 해변은 '우우웅~ 처얼썩' 파도가 오가며 안개 속에서 봄노래를 한다. 거품을 가득물고 밀려오는 파도는 몽돌과 정담을 나누다 이내 안타까움으로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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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오름 살포시 얼굴을 내밀며 솟아오르는 해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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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슬목의 봄 파도와 함께 밀려오는 무슬목의 봄 ⓒ 조찬현



통통배 한 척이 수평선을 가로지르다 섬 앞에 멈춰 섰다. 소리 없이 굴 양식장으로 미끄러져 간다. 바다는 온통 스티로폼 부표로 뒤덮여 있다. 그 가운데는 어선 두 척이 형제 섬처럼 버티고 서있다. 선상에서 일을 하는 어부들의 모습이 이따금씩 실루엣으로 다가온다. 조금 전 섬 부근에서 멈춰 섰던 통통배도 굴 양식장의 부표사이로 조심스레 접근한다.

갯내음이 싱그럽다. 파도가 실어다 놓은 해초다. 바람이 스칠 때마다 코끝을 자극한다. 청각과 미역줄기가 몽돌에 널브러져 있다. 몽돌 해변에 햇살이 비춘다. 파도는 신바람이 났다. 그 기세는 갈수록 등등하다. 하늘로 솟구친다. 힘차게 봄이 솟구친다. 무슬목의 봄은 쉼 없이 달려온다. 몽돌을 절반쯤 삼켜버렸다. 무슬목의 봄은 또 다시 몽돌을 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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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슬목의 여름 파도가 오갈 때 마다 무슬목 바닷가에서 파도가 몽돌을 굴리며 노래를 한다. ⓒ 조찬현



무슬목의 여름

'들어보셨나요? 무슬목의 몽돌 구르는 소리', 무슬목에 가면 '달그락 달그락 가르르~가르르~' 돌구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비오는 날은 빗소리가, 바람 부는 날은 바람소리가 들린다. 파도가 오갈 때 마다 무슬목 바닷가에서 파도가 몽돌을 굴리며 노래를 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 1년 365일 단 하루도 빠짐없이 파도는 해변을 오가며 무슬목의 몽돌을 굴리고 있다. 비가 내린다. 무슬목 바다에 비가 내린다. 몽돌은 빗물에 젖고 바닷물에 젖어도 달그락거리며 파도와 함께 구르기를 멈추지 않는다.

무슬목의 크고 작은 몽돌이 구르며 내는 소리에 귀 기울이면 바다의 이야기가 들려온다. 빗줄기가 거세지면 파도는 거칠게 오간다. 출렁출렁 넘실넘실 오가는 파도는 해변에 다다르면 고개를 치켜들고 거세게 달려온다.

파도는 몽돌을 한 아름 안은 채 무슬목으로 달려온다. 갯가에 몽돌을 내려놓고 사라진다. '쏴아~쏴아~ 철썩~ 처얼썩~' 파도는 오늘도 비 오는 해변에서 몽돌을 굴린다. 모난 돌을 골라 이리 굴리고 저리 굴려 반질반질 윤기 나는 둥근 몽돌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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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돌해변 무슬목 몽돌해변 ⓒ 조찬현



무슬목의 겨울

겨울바다 쪽빛은 외롭고 쓸쓸하다. 지난밤 날 잠 못 이루게 하고 밤새 뒤척이게 했던 외로움이 출렁이는 텅 빈 겨울바다에 나 홀로 섰다. 두 손으로 시린 귀를 감싸고 휘청거리며 서 있다. 바람이 불고 파도가 밀려올 때마다 제 몸이 깎이는 아픔에 '가르륵∼' 울어대는 무슬목 몽돌해변에 난 서 있다.

카메라를 챙기고, 취재수첩을 빈 벤치 위에 올려놓기가 무섭게 바람이 수첩을 훔치듯 채간다. '팔랑팔랑 파르르' 순식간에 페이지를 넘긴다. 크고 작은 몽돌들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채 기록하기도 전에 바람이 먼저 수첩에 흔적을 남긴다.

무슬목에 가면 섬 세 개가 눈에 들어온다. 꿩이 많이 날아든다는 섬 외치도, 정면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그 뒤편에는 내치도가 있다. 중간에 보이는 섬은 섬 가운데 구멍이 있어 '혈도'라 불리는 섬이다.

오른편에 보이는 섬은 대나무가 많은 섬 죽도, 무슬목 바다에는 이렇게 4개의 섬이 사이좋게 일렬로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무슬목은 계절마다, 갈 때마다 그 모습이 다 다르다.

이 가을날, 무슬목에 가서 하얀 물거품 이는 바닷가를 오가는 파도소리를 들어보라. 가슴에는 알 수 없는 그리움이 솟구친다. 안개 낀 가을날이면 무슬목으로 가라. 그곳에서 들려오는 새벽을 가르는 파도소리를 들어보라.

덧붙이는 글 | [찾아가는 길]
호남고속도로 순천IC - 17번국도 - 여수- 돌산대교 - 돌산도 - 해양수산과학관 - 무슬목

<'테마'가 있는 나만의 여행> 응모 글


덧붙이는 글 [찾아가는 길]
호남고속도로 순천IC - 17번국도 - 여수- 돌산대교 - 돌산도 - 해양수산과학관 - 무슬목

<'테마'가 있는 나만의 여행> 응모 글
#무슬목 #몽돌해변 #안개바다 #갯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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