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의 몰카VS 2000년대의 몰카

너무 늦게 다시 찾아와 너무 늦게 종영한 프로그램

등록 2007.11.05 09:53수정 2007.11.05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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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많고 탈도 많던 '일요일 일요일밤에'(이하 '일밤') 몰래카메라가 드디어 막을 내렸다. 2005년 가을에 시즌 2 형식으로 방영을 재개한 지 2년 만이다.

그러나 끝나도 끝난 게 아니다. ‘이경규의 몰래카메라’라는 타이틀을 내건 프로그램은 막을 내렸지만, 기본적으로 ‘몰카’라는 포맷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이미 몰카는 더 이상 일밤과 이경규로 대표되는 고유한 상품이라기보다는 수많은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지금도 끊임없이 변주되고 복제되는 보편적인 아이템으로 자리잡았다.

언제 어떤 프로그램에서건 분위기 전환용으로 써먹을 수 있고, 일반인이건 연예인이건 누구를 상대로도 사용할수 있다는 점에서 몰카는 예능가의 코카콜라라고 해도 좋을 히트 상품이다. 일밤 역시 닳고 닳은 아이템이지만 언제건 시즌 3를 내세워 다시 몰카 코너를 부활시킬 가능성은 앞으로도 충분하다.

1기 때도 그랬지만 10여 년 만에 부활한 몰카는 유난히 숱한 논란과 파문에 휩싸였다. 세월이 흐른 만큼 몰카의 규모와 스타일도 변했다. 가장 큰 차이는 요즘 예능가의 트렌드를 반영하듯 많이 ‘독해졌다는 데’ 있다.

짓궂은 장난에 가까웠던 90년대 몰카

사실 90년대의 몰카는 지금 수준으로 보면  장난에 가깝다. 인터넷이 없던 그 시절에 시청자들의 반응은 뜨거웠지만, 적어도 몰카 자체가 지금 만큼 연예인의 인격모독과 심각한 프라이버시 침해로 위험 수위로까지 치달을 정도는 아니었다.

90년대판 몰카는 지금보다 ‘속임수’의 느낌보다는 짓궂은 장난의 이미지에 가까웠다. 규모는 작고 아기자기했다. 탤런트 홍학표에게 코믹 CF 촬영을 한다면서 상의는 양복, 하의는 민망한 파자마를 입혀놓거나, 고소공포증이 있는 최진실을 우스꽝스러운 복장으로 와이어에 매달아놓고 ‘나는 천사다’를 외치게 하는 식이다.


근엄한 표정으로 사극을 촬영하고 있는 중견배우 유인촌의 얼굴에 분장을 빙자한 낙서(?)를 하기도 하고, 차분한 이미지의 MC 임백천에게 날이 새도록 ‘얼레리 꼴레리’를 반복시키던 장면도 폭소를 자아냈다.

그때도 논란을 일으킨 경우는 있었다. 가수겸 작곡가 윤상에게 촬영을 빌미로 형틀에 매달아놓고 실제로 곤장 세례를 안기거나, 당시 최고 인기 가수이던 서태지와 아이들에게 가짜 뮤직비디오 촬영을 위해 야외로 데려가서 하루종일 춤과 노래를 무한 반복해서 시켰던 에피소드는 혹사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몰카 제작진은 강력하게 부정했지만 당시에도 어색한 설정으로 ‘사전 조작’이나 출연자들의 합의 가능성이 의심될 만큼 엉성한 에피소드들도 적지않았다.

하지만 몰래카메라에 가장 많이 당했던 당사자는 진행자 이경규였다. 이경규는 ‘박중훈 편’에서 처음으로 ‘역 몰래카메라’의 희생양이 된 이래, 김혜자 편에서는 추운 겨울에 수시간동안 빗속 장면을 촬영한다는 명목으로 물세례를 받기도하고, ‘박상원 편’에서는 스키장 리프트에 매달려 한나절 동안 벌벌 떨며 오프닝 장면을 반복하기도 했다.

그 강도가 역대 출연자들에 비해 결코 수월하지 않았으며, 몰카에 대한 아이템이 고갈되거나 비난 여론이 높아질 때쯤이면 ‘보상’ 카드로 이경규편이 간혹 등장하곤 했다.

몰카의 근본 매력은 거짓말과 훔쳐보기의 쾌감이다. 거짓말과 훔쳐보기는 중독성이 강한 반면 유통기한이 없다.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있는 은밀한 속성이기 때문이다. 트렌드에 민감한 예능가에서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몰카라는 아이템이 장수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상생활에서는  결코 하지 말아야 할 사기에 가까운 속임수와 인격침해가 방송이라는 명분을 등에 업고 버젓이 정당화된다. 몰카는 음식으로 치면 맛있는 불량식품을 먹을 때의 맛이다.

거대하고 치밀한 '블록버스터' 같은 2000년대 몰카

2000년대의 몰카는 90년대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만큼 거대하고 치밀해졌다. 세트 하나쯤을 새로 짓는 건은 예사고 필요에 따라 수십명이 훨씬 넘는 인력들이 동원되기도 했다. 90년대 몰카가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독립영화라면, 21세기 몰카는 그야말로 블록버스터였다.

그러나 커진 규모에 비해 21세기 몰카에는 90년대처럼 연예인들의 솔직한 이면을 바라볼수 있는 대중적 공감대가 없었다. 몰카의 취지는 곤란한 상황에 처한 연예인들의 인간적인 모습을 본다는 것이지만, 이미 10여 년이 넘는 세월동안 수많은 예능프로그램을 통해 변주되며 신선함이 사라지고 뼈대만 남은 몰카에는 오직 강력한 자극만이 필요했다.

21세기 몰카가 외적인 화제와 논란에 비해 대중들에게 거부감을 불러일으킨 원인은 ‘속임수를 위한 속임수’정서가 강했기 때문이다. 다수 인력이 한 개인을 무력화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다. 여기에 연예인은 이미지 관리상 제약이 많고 일반인에 비해 공권력이나 돌발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마지막 방송이었던 신화 편에서 드러난 휴대폰 전화번호 유출사건, 아이비 편에서의 공권력을 빙자한 유치장 감금 에피소드, 김진표 편의 출연자 물세례와 수건 투척사건 등은, 사실 몰카라는 코너의 특수성을 빙자하여 방송의 연예인 혹은 특정 개인에 대한 심각한 인격 침해의 소지가 높았다. 제아무리 불쾌한 상황이라 할지라도  방송카메라를 앞에 두고 이의를 제기할 수 있을 만한 연예인은 아직 그리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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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이 된 몰래카메라 마지막 회 4일 종영된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몰래카메라' 최종회에서 그룹 신화의 멤버 이민우의 전화번호가 화면에 그대로 나와 비판을 받고 있다 ⓒ MBC 몰래카메라 방송 화면


몰카가 표방했던 리얼리즘은 이제 몰카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것은 21세기의 철지난 몰카가 결코 부활하지 말아야 했던 이유기도 하다. 몰카는 이미 독자 포맷으로는 그 수명이 다한 코너이고, 대중에게 제시할 수 있는 새로움이라면 오로지 더욱더 강해지는 자극, 더 기발한 거짓말을 위한 거짓말일 뿐이다.

몰카는 너무 늦게 다시 우리를 찾아왔고, 10여 년 전보다 더 많은 논란과 파문을 남긴 채, 또다시 너무 늦게 종영했다. 90년대 몰카가 가지고 있던 일말의 순수함과 노력을 기억하고 있던 팬들에게 거대해진 몰카는, 억지로 연예인들의 망가진 모습을 끄집어내서 저급한 관음증을 만족시키려는 철지난 프로그램일 뿐이다. 이미 시중에 넘쳐나는 수많은 아류들 속에서 '원조'를 따지는 일은 처음부터 필요하지 않았다.
#몰래카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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