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두고온 내 아내, 금메달 따다

남편 없이 둘째 출산한 아내여... 미안하고, 고맙고, 사랑해!

등록 2008.08.18 10:10수정 2008.08.18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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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5일 톈안먼 광장 모습. 맑은 하늘을 뒤로 하고 오성홍기가 걸려있다. ⓒ 유창재


올림픽의 열기로 한껏 뜨거운 지난 8월 15일, 간만에 베이징 하늘이 맑고 파란 모습을 드러냈다. 열흘 전 중국 베이징에 온 이후 뿌연 스모그가 낀 하늘만 보다가 며칠 전부터 비가 내리면서 베이징 사람들도 보기 드문 푸른 하늘을 본 날이기도 했다.


낮 12시 30분경. 로밍해 온 전화기가 울렸다. 아내였다. 국제전화 요금 때문에 문자메시지를 보내면 내가 전화를 걸기로 했는데, 먼저 전화가 왔다. 아! 드디어….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아내의 목소리는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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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16일 오전 10시 14분 핸드폰으로 보내온 컬러메일. 둘째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인다. 누굴 닮았을까? ⓒ 유창재


"서방님, 태어났어!"
"어! 그래, 수고했어."
"건강해, 아기 봤는데 이목구비 뚜렷하고, 얼굴도 작고, 머리숱도 많아."
"그래, 몸은 어때?"
"괜찮아."
"휴, 이제 마음이 놓이네.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

불과 17초 정도의 통화였다. 더 이야기하면서 이것저것 묻고 싶었지만, 애 낳은 지 얼마 안 된 산모를 붙잡고 이야기하면 안 될 것 같아서 다시 전화하기로 하고 끊었다. 창밖을 바라봤다. 파란 도화지 위에 선을 긋듯 흰 구름이 지나가고 있었다.

솔직히 믿기지 않았다. 첫째 애는 직접 아내와 출산을 같이하면서 내 손으로 탯줄도 잘라주고, 엄마 젖을 빨기 위해 기어가는 모습도 봤다. 특히 목욕을 시켜주니 눈을 떠서 내 눈과 맞았을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오는 순간을 보냈다. 너무나 경외로운 순간이었다.


그런데 둘째 아이와 아내에게는 미안하지만, 이번엔 그 순간을 함께하지 못하고 말았다.

결정, 그 망설임의 순간... 메달을 딴 선수들의 감격도 나와 같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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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개막식이 열린 8일 냐오차오 근처에서. ⓒ 남소연

나는 <오마이뉴스> 베이징올림픽 특별취재팀의 일원으로서, 현재 올림픽 현장 주변에서 취재를 하는 시민기자들을 돕고, 또 직접 취재를 하기도 한다. 하루하루 한국에 있는 독자들에게 차별화된 올림픽 소식과 현장의 목소리를 생생히 담고자 땀흘리고 있다.

이날(15일)은 양궁 남자 개인전에서 한국 대표팀 박경모 선수가 은메달을 획득한 날이었다. 또한 광복 63주년이 되는 날이기도 했다. 여러모로 기념될 만한 날인데, 나에게는 어느 것도 견줄 수 없는 날이 된 것이다.

이번 올림픽은 내게 특별한 변화를 가져온 기회였다. 취재 현장에서 편집부 내근으로 들어와 생활한지 2년만에 (잠깐 동안이지만) 다시 현장으로 나왔고, 첫 해외 출장(취재)이기도 하고, <오마이뉴스>에서 가장 큰 규모로 꾸린 시민-상근기자가 함께하는 취재단을 선배를 도와 이끌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올림픽을 위해 취재팀을 꾸리고 준비하는 작업은 개막일 한 달여 전부터 시작했다. 취재팀에 참여 여부를 제의 받고 참여를 결정할 때는 이미 아내의 배가 제법 나왔을 때였다. 임신한 아내를 두고 20여 일간의 장기 취재를 나 혼자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것은 아니어서 조심스럽게 아내와 상의를 했다.

그랬더니, 대뜸 아내는 "갔다와!"라는 한마디였다. 오히려 고민고민 끝에 말을 꺼낸 내가 어리둥절할 정도였다.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아기 날 때 옆에 없으면 널 평생 원망할 거야"라며 "말은 '갔다와'라고 해도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원망할 걸?"이라고 경고했다.

이런 이야기를 전하자, 아내는 "걱정하지마! 어차피 옆에 있어서 별로 도움 안 되잖아"라며 "서방님 없어도 잘 할 수 있을 거야"라고 말했다. 특히 "4년만에 열리는 올림픽 취재 기회를 얻기란 쉽지 않을 거야"라며 "둘째가 생기면 오히려 장기간의 취재를 가기가 힘들 거니까 기회가 있을 때 해보고, 재충전의 시간도 가져봐"라고 힘을 실어줬다.

어디로 가야 하나... 병원? 공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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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가 태어난 15일 오후 핸드폰으로 받은 사진. ⓒ 유창재

아내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취재팀을 꾸리고 준비하는데 충실할 수 있었다. 순조롭게 잘 준비하고 있었는데, 또 다른 고민은 출발 일이 다가오면서 생겼다.

아내의 출산 예정일은 8월 23일. 내가 올림픽 취재를 끝마치고 들어오기 3일 전이었다. 한편으로는 아가가 아빠를 기다렸다가 태어났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그런데 보통 둘째는 출산 예정일보다 빨리 태어난 경우가 많다는 것. 그래서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의 준비는 그것일 뿐, 막상 출발 3일 전에 배가 아파 오는 것 같다는 아내의 말에 걱정은 시작된 것이다. 만약 출발 당일 아침에 진통이 시작되면 병원으로 가야할지, 공항으로 가야할지…. 어떤 선택을 하든지 내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아예 둘째가 출발일보다 먼저 태어나거나 베이징으로 떠난 후 태어나는 것이 어느 쪽이든 마음에 부담을 적게 할 것 같았다.

결국, 출발 당일 아침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둘째는 아빠를 선택의 기로에 서지 않게 하고 고이(?) 보내주었고, 아내는 멀리 떠나는 남편을 위해 졸린 눈을 비비며 따뜻하게 배웅해줬다. 첫째는 쿨쿨 잠을 잤지만…. 나는 "잘 다녀오겠다"는 말과 함께 가벼운 포옹을 하고 문을 나섰고, 문이 닫히는 순간까지 아내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그런 내 모습을 아내는 봤을까?

긴장, 기다림의 순간... 박태환 금메달 소식이 부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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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베이징 왕푸징 프라임호텔에 마련된 코리아 하우스에서 열린 박태환 선수 기자회견. ⓒ 문경미

그 이후 매일 매일이 긴장 속에 있었다. 로밍해 가지고 간 핸드폰을 항상 손에서 떼어 놀 수 없었다. 혹시나, 이제나 저제나 연락이 올까…. 사실 연락을 받는다고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취재 일정을 끝마쳐야 돌아가는 상황임에도 마음은 항상 아내가 있는 곳으로 향해 있었다.

무더운 날씨 속에서 첫째 아이를 돌보며 지내는 아내는 아침저녁으로 통화하면서 내가 걱정하지 않게 항상 밝은 목소리로 힘을 실어줬다. 그 격려에 8일 개막일 아침 톈안먼 광장의 '오성홍기' 게양식 취재부터 '냐오차오' 앞에서 보는 개막식 취재를 했다. 또 9일 중국인의 '미국인 살해' 사건 현장과 10일 한국-이탈리아 축구경기 취재, 12일 '마린보이' 박태환 선수의 기자회견까지….

참으로 오랜만에 취재 현장에서 땀흘리는 기쁨을 느꼈다.

계속되는 바쁜 일정에도 언제 나올까 하는 걱정이 마음을 가득 채웠다. 그러던 중 13일 아내가 병원에 가봤더니 양수가 부족해 유도분만을 해야겠다는 소식을 알려왔다. 걱정은 더 커졌다. 그리고 큰 탈없이 건강히 아기를 낳을 수 있도록 기도했다.

14일 저녁에 병원에 입원한 아내는 '잔통'이 있고, 15일 아침에 진통이 오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이후 한 시도 안심이 안됐다. 그리고 아내가 직접 걸어온 전화를 받았고, 아내 곁에서 나 대신 출산을 도왔던 처제와 1시간 후에 통화를 하고서 일에 마음이 놓였다. 함께 취재 중인 선후배에게 내가 한 일은 없지만 아이 둘의 아빠가 된 것을 축하받았다.

"누구 닮았대?"
"눈도 크고, 코도 오똑하고, 입술도 또렷하고…, 거기다 얼굴도 작대요!" 
"너 안 닮아서 얼굴 작은 거 다행이네."
"……."

나의 사랑하는 가족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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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가 태어난 날 15일 오후 외삼촌께서 핸드폰으로 보내주신 사진. ⓒ 유창재


2박 3일간 병원에서 보낸 아내가 17일 퇴원했다. 첫째 때와 마찬가지로 집에서 산후조리를 하기로 했다. 이날 아내는 통화에서 "서방님의 빈자리가 이렇게 클 줄 몰랐다"면서 주변 가족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고 있어 신세를 많이 지고 있다고 말해줬다. 힘든 출산을 하고도 자신의 몸조리 걱정보다 가족들에게 폐를 끼치는 것에 대해 걱정하는 아내다.

요즘 아내가 메일로 보내준 둘째의 사진을 보고 있는데, 솔직히 내 눈으로, 내 가슴으로 안아보지 못해서인지 잘 믿어지지 않는다. 가끔 아내 목소리 곁으로 "으앙∼" 소리를 내는 둘째. 하루 빨리 돌아가 아내와 첫째 아이, 그리고 세상에 태어난 둘째 아가를 안아보고 싶은 마음뿐이다.

끝으로 남편 없이 혼자서 순산한 아내여, 미안하고 고맙고 사랑해! 그리고 엄마 곁에서 동생을 맞이한 첫째 지예와 아내를 도와 출산하는 그 순간을 함께한 처제에게 정말 감사하다. 그 외에도 내가 올림픽 취재를 잘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 아내와 아이들을 돌봐주고 있는 가족들에게 미리 고마움을 전한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SK텔레콤 T로밍이 공동 후원하는 '2008 베이징올림픽 특별취재팀' 기사입니다.


덧붙이는 글 <오마이뉴스>-SK텔레콤 T로밍이 공동 후원하는 '2008 베이징올림픽 특별취재팀' 기사입니다.
#아내 #베이징올림픽 #둘째 #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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