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화폐 개혁 나선 진짜 배경은?

[김광수경제연구소 경제시평] 거듭된 미봉책이 체제 위기 부를 수도

등록 2009.12.08 17:10수정 2009.12.09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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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수경제연구소의 경제시평을 연재합니다. 김광수경제연구소는 정직하고 도덕적인 지식의 생산기관을 자임하며 건강한 민주주의 시장경제를 구현하고자 노력하고 있는 민간 연구기관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편집자말]

<조선신보>가 공개한 북한의 신권 화폐 ⓒ 조선신보

북한이 최근 화폐 개혁을 단행했다. 이번에 단행된 조치는 북한의 5번째 화폐 개혁으로서 1992년 7월에 단행된 화폐 개혁 이후 17년 만에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2002년에도 '7.1경제관리개선조치'를 통해 큰 폭으로 가격조정을 한 적이 있어, 이번 조치로 인해 북한 사회 내에서 적지 않은 혼란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에 단행된 화폐개혁이 이전과 가장 다른 점은 신구화폐의 교환비율이 100대 1이라는 것이다. 즉 구권 1천 원이 신권 10원으로 교환된다. 92년의 화폐개혁에서 신구화폐의 교환비율이 1대 1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북한 주민들에게 대단히 충격적인 조치라 할 수 있다. 그나마 30만 원으로 제한된 가구당 교환한도 내에서의 비율이 100대 1이고, 저축을 조건으로 하는 추가교환 비율은 무려 1000대 1에 달한다(북한당국은 교환한도 액수를 수 차례 바꾸었다).

이처럼 북한 주민들에게 큰 혼란뿐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일정한 반발조차 불러일으킬 수 있는 조치를 북한당국이 취한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북한 내 만연한 극심한 인플레이션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북한에서 인플레이션이 만성화된 배경으로는 극도로 악화된 산업생산력 저하로 인한 절대적 재화 부족을 들 수 있다. <도표 1>에서 보는 바와 같이 현재 북한의 산업생산력은 아직 1990년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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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표1> 북한의 산업생산력, 쌀 가격, 환율 추이 (주) 각종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 김광수경제연구소


이처럼 만성적인 물자 부족은 북한 화폐가치의 계속적인 하락을 초래했는데, 이는 북한의 대표적 생필품인 쌀가격과 북한 원의 환율 추이에서 나타난다. <도표 1>에서 북한의 대표적 생필품인 쌀가격의 국정가격과 시장가격의 차이가 엄청나게 벌어지고 있다.

이는 북한내 쌀의 열악한 수급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북한 화폐의 실질적 가치가 계속 하락해왔음을 보여준다. 환율 역시 공식환율과 시장환율이 큰 폭의 간격을 나타내왔는데, 이번 화폐개혁으로 암시장 환율이 달러당 4000원까지 오르기도 했다. 말하자면 북한에서는 지난 2000년 이후 이미 하이퍼인플레이션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북한경제 시스템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도표 2>에서 북한의 현금유통 과정을 살펴보기로 하자. 기본적으로 '조선중앙은행'이 발행하여 공장/기업소에 공급한 현금은 근로자들에게 임금으로 지급되고, 주민들이 국영상점에서 물자를 구매하거나 남은 돈을 은행에 예치함으로써 중앙은행으로 다시 환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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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표2> 북한의 현금유통과정 (주) KSERI 작성 ⓒ 김광수경제연구소


그러나 장기간에 걸친 극심한 생산력 저하로 인해 국영기업 상품부족이 만성화되고 유통망이 붕괴되면서 북한 주민들은 국영상점이 아닌 농민시장에서 물건을 구매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물가가 급등하게 되었다.


흔히 북한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북한 주민들이 잉여자금을 은행에 예치하지 않고 장롱 속에 보관하게 됨에 따라 현금누수가 커지게 되었다고 지적된다. 90년대 중반 이후부터 현금누수 규모가 급증하기 시작한 것은 사실이며, 북한 중앙은행이 화폐발행시 현금누수를 감안하여 통화를 공급하게 되므로 결국 북한내의 총통화량이 지속적으로 증가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북한의 하이퍼인플레의 주원인은 아니다. 하이퍼인플레의 주범은 무엇보다도 절대적인 물자부족에 있다. 절대적인 물자부족 상황에서 북한정부가 부족한 재정을 화폐증발을 통해 보전하려 한 것이다.

북한의 이번 조치는 공급부족에 의한 인플레에 화폐증발에 의한 화폐적 인플레까지 더하는 결과를 초래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 화폐가치가 급락하게 되자 북한 주민들은 인플레를 회피하기 위해 달러 등을 선호하게 되면서 <도표 1>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시장환율이 폭등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북한당국의 이번 화폐개혁 조치는 근원적인 문제해결을 방치한 채 화폐적 인플레만을 억제하려는 무리수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의 절대적인 물자부족을 해결하지 않은 채 화폐개혁과 같은 편법을 통해서는 절대로 북한의 물가폭등을 막을 수 없다. 오히려 무리한 화폐개혁은 북한주민들의 강력한 반발만을 살뿐이다.

절대적으로 물자가 부족할 경우 암시장이 극성을 부리게 된다. 국정가격이 장기간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매우 낮은 수준으로 책정되다 보니 상품과 외화가 암시장 등과 같은 비공식 부문으로 계속 몰려 인플레가 가속화되고 시장경제의 힘에 정권의 통제력마저도 크게 위협을 받게 된다. 일부 언론 등에서는 북한정부가 이번 화폐개혁을 통해 누수화폐를 회수하고 통화량을 조절하며 저축을 유도할 뿐 아니라 비공식부문에서 빠르게 성장하여 상당한 자금력을 지니고 있는 부유층들에 대한 통제력도 강화하려 한다고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하이퍼인플레가 장기간 지속되게 되면 경제가 붕괴해 어느 정권이든 권력을 유지하기 어렵게 된다. 그런 점에서 절대적인 물자부족을 해소하지 않은 채 단지 화폐개혁만을 통해 통제력을 강화하려고 하는 것은 북한정부의 임시방편적인 고육책이다.

북한경제의 이러한 구조를 본다면 북한당국의 가장 시급한 과제는 절대적인 물자부족을 해결하는 한편, 정부부문의 화폐 증발을 억제하고 비공식부문에서 떠도는 통화를 중앙은행으로 집중시켜 화폐가치를 안정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화폐개혁은 물자부족 해소보다는 인위적인 화폐량 조절을 통해 인플레를 억제하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앞서 지적한 것처럼 혼란만을 초래할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실질적인 문제해결에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당국이 화폐개혁을 밀어붙이는 데에만 치중한다면 이러한 조치를 취해야 할 상황은 또 다시 올 것이다. 그리고 만약 또다시 이런 상황이 온다면 북한체제의 안정성이 상당한 위협을 받을 것이다.

윤재원 김광수경제연구소 북한경제팀장.

이는 최근 북한에서 나타나는 모습에서도 알 수 있다. 법령이나 '내각결정'의 형태로 화폐개혁을 먼저 공고하고 시행했던 이전과 달리, 북한당국은 이번 조치를 취한 후 며칠이 지나서야 '내각결정 제423호'를 발표하고 언론을 통해 보도하고 있는 것이다. 주민들의 반응을 살펴가며 교환한도를 수 차례 변경한 것 역시 북한당국의 달라진 태도를 반영한다.

북한주민들 역시 화폐교환에 소극적으로 응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으며 일정한 반발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다. 이번 화폐개혁이 향후 북한 체제에 어떤 파장을 부를지는 좀더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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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윤재원 기자는 김광수경제연구소 북한경제센터장을 맡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윤재원 기자는 김광수경제연구소 북한경제센터장을 맡고 있습니다.
#북한 #화폐개혁 #인플레이션 #김광수경제연구소 #조선중앙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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