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교수 해임 작전', 참 구차하다

[정연주의 증언 58] 신태섭 교수의 외로운, 그리고 의로운 싸움

등록 2011.06.03 10:00수정 2011.06.03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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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 후보 시절에 언론 특보까지 지낸 인사가 이명박 정권 쪽으로 '전향'하고(증언 56), 2008년 5월 초 친 이명박 정권 인사로 평가받아 온 방석호 홍익대 법과대 교수(현 정보통신정책연구원장)가 KBS 이사로 돌아오면서(증언 57), 친 이명박 정권 KBS 이사가 5명으로 늘어났다. 졸지에 KBS 이사회는 6 대 5의 아슬아슬한 구성이 되어 버렸다. 이제 한 명만 '전향'하거나, 그만 두면, 이명박 정권이 원하는 '정연주 사장 해임 제청'의 순서를 밟을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정권의 문제돼 버린 신태섭 교수의 KBS 이사직 축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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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주 전 KBS사장 해임 과정에서 이사직을 박탈당한 신태섭 전 KBS 이사와 정연주 전 KBS사장이 2009년 9월 3일 오후 서울 명동거리에서 열리는 언론악법 원천무효 서명운동에 참여해서 시민들의 동참을 호소하고 있다. ⓒ 권우성

바로 그 한 자리를 위해, 부산 동의대 신태섭 교수를 KBS 이사 자리에서 쫓아내려 그렇게 혹독하게 겁박한 것이다. 신 교수의 KBS 이사직 축출 작전은 3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3월 21일, 강아무개 부산 동의대 총장은 총장실에서 신 교수와 첫 면담을 했는데 이 자리에서 강 총장은 "신 교수가 KBS 이사를 계속하면 학교가 어렵다. 언론, (KBS) 노조, 정치권, 교육부에서 신 교수를 징계하라는 압박이 심하다. 학교에 불이익이 오지 않도록, 그리고 신 교수에게 불행한 사태가 오지 않도록 하려면 당신이 KBS 이사를 사퇴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 뒤 4월 17일, 신 교수를 다시 만난  강 총장은 "민주언론 운동을 하려면 학교 밖에서 해야지, 왜 학교에 피해를 주느냐"며, KBS 이사직 사퇴를 거듭 촉구했다.

이후 신 교수에 대한 압박은 더욱 드세어졌다. 4월 29일에는 김아무개 부총장이 "신 교수가 KBS 이사직을 사퇴하지 않으면 교육부의 추가 감사 들어온다. 감사 들어오면 학교가 견딜 수 없다"고 말했고, 1주일이 지난 뒤인 5월 7일에는 다시 강 총장이 "사퇴를 할지 안 할지 즉시 답할 것"을 요구하면서 "교과부에서 상임이사(동의대 학교법인 설립자 아들)를 불렀다. (교과부) 차관 만날 때 당신 문제에 대해 답해야 한다. 내일까지 부총장에게 답하라"고 '최후통첩'을 하기까지 했다.

대학 당국, "KBS 이사 관두지 않으면 학교가 견딜 수 없다"

5월 15일, 강 총장은 신 교수와 마지막 면담을 했다. 이 자리에서 강 총장은 "이번 사태가 교과부 차원을 넘어섰다. 내일(16일) 교과부가 아닌 다른 곳에 당신 문제를 어떻게 매듭지을지 답해야 한다. 그곳이 어딘지는 묻지 말아 달라"고 말했다. '그곳이 어딘지 묻지 말아 달라'고 했다는데, 권력의 핵심부가 아니면 굳이 그렇게까지 말할 필요는 없었을 터였다. 


이로부터 약 한 달 뒤인 6월 20일, 동의대는 신태섭 교수에게 7월 1일자로 해임한다고 통보했다. 해임 이유는  ▲ 총장의 허락을 구하지 않고 KBS 이사로 활동한 점 ▲ 총장의 승인 없이 KBS 이사회에 참석해 직장을 무단 이탈한 점 ▲ KBS 이사회에 참석하면서 학교 수업에 소홀히 한 점 등을 들었다. 

참 구차스러운, 나중 법원 판결에 의해 모두 배척된 이유들이다. 신 교수는 2006년 9월부터 KBS 이사직을 수행해 왔으나 이명박 정권 출범 전에는 학교 측으로부터 KBS 이사직과 관련하여 문제 제기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신 교수가 KBS 이사가 되었을 때 총장을 비롯한 교수진들은 학교의 명예를 높여주었다며 축하 인사를 했다. 그리고 1년마다 제출하는 '교육 업적 보고서'에서 KBS 이사직 수행 내용도 점수로 인정되었다. 그런데 그렇게 업적으로 인정을 받고, 학교 명예를 높인다며 축하 인사까지 받았던 KBS 이사직 수행이 '해임'의 이유가 되어 버렸다.

KBS 이사라고 교수 해임하고, 교수 해임됐다고 KBS 이사 자격 박탈하고

동의대에서 '해임' 결정을 내리자 방송통신위원회는 7월 18일 '긴급안건'으로 신태섭 KBS 이사 건을 올려 그의 결격사유를 확인하고, 보궐이사로 강성철 부산대 교수를 추천했다. 이날 회의에는 당초 이 안건이 상정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나 한나라당 추천의 송도균 부위원장(전 SBS 사장)과 이명박 대통령이 임명한 형태근 상임위원이 '긴급안건'으로 상정했다. 이렇게 예정에도 없는 '긴급안건'으로 상정된 신태섭 교수의 KBS 이사 자격 문제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통과되었다. 방통위는 이사 자격 상실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방송법에 의거하여 공무원 결격사유에 해당되는 자는 KBS 이사가 될 수 없다. 신태섭 이사는 사립학교법 상 징계에 의한 해임조치를 받은 바 국가공무원법 제 33조 제 8호에 규정하고 있는 '징계에 의한 해임'에 해당, KBS 이사로서의 결격사유가 발생한다.

쉽게 이야기하면, 신태섭 KBS 이사가 동의대 교수직에서 해임되었기 때문에 KBS 이사 자격이 상실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동의대에서 교수 해임을 당한 이유는 KBS 이사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KBS 이사를 했기 때문에 교수직에서 해임되었고, 그것이 다시 되돌아와 교수직에서 해임되었기 때문에 KBS 이사 자격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참으로 해괴망칙한 일이었다. 이런 해괴한 일이 21세기 대명천지에 대학가에서,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신태섭 교수 "일신상 안위를 위해 비겁해질 수 없었다"

신태섭 교수가 동의대에서 해임되었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정말 가슴이 아팠다. 나야 그때 KBS에서 해임되더라도 임기가 1년 남짓 밖에 남지 않았지만, 신태섭 교수는 앞으로 교수 정년까지 15년이란 긴 세월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담대하게 '역사의 책무'를 담당하겠다는 자세를 보였다.

해임되고 난 직후인 2008년 7월 7일 그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 언제부터 한국방송 이사직 사퇴 외압을 받았나?
"대통령직 인수위 시절이던 지난 2월, 한국방송 정연주 사장과 이사들 모두 (퇴진 대상에) 거명됐다는 얘기가 돌았다. 몇몇 이사들은 "정 사장과 신 이사가 퇴진 최우선 순위에 들었다더라. 괴로울 것이다"라고 전해주었다. 하지만 어떻게 괴로울지 당시엔 몰랐다. 그 뒤 학교에서 부르기에 '아, 학교를 통해 압력이 들어오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 2006년 9월 한국방송 이사에 선임됐을 때 학교 쪽 반응은?
"온통 축하 분위기였다. 이사 후보에 거론되고, 후보가 압축되고 확정될 때까지 중계 방송하듯 학교에 알려졌다. 그 해 8월 말 이사로 확정됐을 때 동료 교수들 모두 축하해줬다. 9월 1일 임명장을 받은 직후 강 총장과 재단 관계자를 찾아뵈었는데, 그 자리에서 강 총장도 직접 '축하한다'고 말했다."

- 해임을 감수하면서까지 이사직을 사퇴하지 않은 이유는?
"강 총장은 "버텨봐야 소용없다. 해임까지 당할 이유가 뭐 있냐. (한국방송 이사직을) 사퇴하면 없던 일로 하겠다"고까지 얘기했다. 그러나 한국방송 이사회 구도가 역전되면 불행한 상황이 올 것이고, 우리 사회가 어렵게 쌓은 민주적 절차가 훼손된다고 생각했다. 일신상의 안위를 위해 거기에 비겁하게 일조할 순 없었다. 한나라당이 다수당이 됐으니 민주적 절차에 따라 법을 개정하면 되고, 정 사장과 나는 그 절차에 따라 그만두면 된다. 그런데 왜 폭압적 방법을 사용하는지 모르겠다. 이번 해임조처는 방송독립 저해이고 교권훼손이며 민주주의 말살이다."

신태섭 이사는 동의대를 상대로 해임무효 확인소송을 제기하여 1년 6개월 동안 외롭게 법정 싸움을 벌였다. 다행히 그는 법정에서 이겼다. 1, 2심에서도 승소했고, 대법원에서도 최종적으로 이겼다. 2009년 12월 17일이었다.

법원 판결, KBS 장악의 불법성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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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7월 8일 신태섭 동의대 교수가 부산고등법원 454호 법정에서 열린 교수해임무효확인소송 항소심 선고 공판을 받고 나온 뒤 웃고 있다. ⓒ 윤성효


법원의 판결은 한결 같았다. 법원은 동의대가 해임 이유로 내세운 이유, 즉 ▲ 총장의 허락 없이 KBS 이사직을 맡았다 ▲ KBS 이사회 참석을 위해 총장 허락 없이 근무지를 이탈했다 ▲ KBS 이사회 참석으로 학부와 대학원 수업에 지장을 초래했다는 등 세 가지 이유에 대해 조목조목 이를 반박하고 배척했다.

법원은 ▲ KBS 이사는 교원인사규정에서 말하는 겸직 허가 대상이 아니다 ▲ 설령 허가 대상이라 하더라도 대학 측이 신 교수의 KBS 이사직 수행에 사회봉사 점수까지 부여한 것을 보면 이사직 수행을 사실상 승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 수업차질에 대해서도 보충강의를 성실히 수행했으며 이를 이유로 해임한다는 것은 사회통념상 가혹한 처분이다, 라는 이유로 '해임 무효' 판결을 내렸다. 신태섭 교수의 완벽한 승리였다.

나는 신태섭 교수가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 판결을 받게 되자 하늘을 날 것처럼 기뻤다. 큰 바위 덩어리가 내 마음을 짓누르고 있었는데, 그 바위 덩어리를 내려놓은 듯한 해방감을 느꼈다. 신태섭 교수는 대법원 최종 판결이 있은 얼마 뒤 교수직으로 복귀했다. 내가 승소하여 다시 KBS 사장으로 가는 것보다 더 기뻤다.

신태섭 교수에 대해 온갖 압박이 가해지고, 결국 KBS 이사를 한다는 이유  때문에 동의대 교수직에서 해임되고, 그렇게 교수직에서 해임되었다고 KBS 이사 자격을 박탈당하는 그런 일들이 벌어지는 그 시기 동안 나를 퇴진시키기 위한 공작은 공작대로 전방위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 최시중 방통위원장은 김금수 KBS 이사장을 몇 차례 만나 계속 정연주 사퇴 압박을 가했고 ▲ 검찰은 나에 대해 배임죄 혐의 사실을 언론에 흘리면서 소환을 계속 요구하고 있었으며 ▲ 감사원은 KBS 특별 감사에 착수했고 ▲ 국세청은 KBS에 프로그램을 공급한 외주 독립제작사 6개사에 대한 특별 세무조사에 들어갔던 것이다.

이 뿐이 아니었다. 거의 모든 언론은 연일 나를 맷돌에 찧듯이 그렇게 인격 살해를 했다. 이런 과정에 KBS 노조도 '정연주 퇴진' 공세의 끈을 더욱 조여가고 있었다. KBS 안팎은 말 그대로 나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된 검찰, 감사원, 국세청, 방통위, 한나라당, 언론, KBS 노조, 우파 시민단체들이 총공세를 퍼붓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당시 나의 마음은 그렇게 혼란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평안하기조차 했다. 옳은 일이라 믿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퇴근하기 위해 사장실을 나서기 전 내가 좋아하는 성경 구절을 늘 혼자 되뇌었다.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다."
#정연주 #신태섭 #KBS #동의대 #방통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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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동아일보 기자, 한겨레 워싱턴 특파원, 논설주간, kbs 사장. 기록으로 역사에 증언하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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