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도덕한 진보의 오명...이정희의 운명은?

[진단] 이 대표 거취논란의 막전막후... 유시민도 '방어 모드' 선회

등록 2012.03.22 22:19수정 2012.03.2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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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가 22일 오전 <오마이뉴스> 팟캐스트 방송 '이슈 털어주는 남자'(이털남)에 출연하고 있다. ⓒ 권우성


[기사 수정 : 23일 오전 9시]

통합진보당 대표단은 21일 밤 심각한 대책회의를 열었다. 이날 회의의 핵심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윤원석 전 민중의 소리 대표의 성남중원 국회의원 후보 사퇴 문제였고, 다른 하나는 이정희 공동대표의 서울 관악을 국회의원 후보 사퇴 문제였다. 무엇보다 야권연대 경선에 나섰던 민주통합당 후보들이 줄줄이 사탕으로 '탈당 후 무소속 출마'를 선언해, 이에 대한 대책 마련에 부심했다. 결국 야권연대를 파국으로 몰 것인가 고뇌에 찬 숙의가 진행된 것이다.

무엇보다 성추행 파문으로 도덕성 시비가 일어난 윤 전 대표 문제가 심각하게 거론됐다. 유시민 공동대표와 심상정 공동대표는 이날 회의에 앞선 양자회동을 통해 윤 전 대표가 후보에서 사퇴해야 하고, 만일 후보사퇴를 하지 않겠다고 한다면 공천자격을 철회해야 한다는 데까지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유의선 당 여성위원장은 이날 밤 열린 대표단 회의에 참석해 정진후 전 전교조 위원장의 성추행 축소 논란에 이어 잇달아 터진 윤 전 대표의 성추행 문제에 대해 당이 확실하게 결단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후보사퇴는 물론이고, 필요하다면 공천박탈까지 해야 한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이날 통합진보당 대표단은 계열사 여기자를 쫓아가 성추행했던 윤 전 대표 문제에 대해 비교적 쉽게 결론을 내린 것으로 전해진다. 강용석 전 한나라당 의원의 성희롱 파문이 있었을 때 당이 문제제기를 세게 했던 만큼 자당의 후보라 해도 도덕성 시비가 있을 때는 당연히 물러나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은 것이다. 

윤 후보는 이날 새벽 보도자료를 내고 "제 개인의 불미스러운 과거 행적으로 당에 누를 끼치고 나아가 야권연대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판단에 따라 후보직을 사퇴한다"며 "야권연대를 통한 4.11 총선승리를 위해 평당원의 한 사람으로서 묵묵히 헌신하겠다"고 말했다.

윤 후보의 자진 반납 형식으로 이번 사건이 마무리됐지만, 당 내부에서는 만일 윤 후보가 직접 사퇴하지 않을 경우에는 더 큰 문제가 터질 수 있다는 걱정이 흘러 다닌 것으로 전해진다.


이처럼 윤 후보가 사퇴하면서 경기 성남 중원 지역은 김미희 전 민주노동당 최고위원이 새로 공천됐다. 김 전 최고위원은 원래 성남 수정에 공천을 신청했으나, 윤 후보가 성추행 파문으로 물러나면서 대신 이 지역을 뛰게 된 것이다. 김미희 후보는 2010년 지방선거 이후에는 이재명 성남시장 인수위원장을 지내기도 했다.

부도덕한 진보 오명은 계속... 이정희의 선택은?

문제는 제2라운드에 있었다. 이정희 공동대표의 서울 관악을 후보 사퇴 문제다. 대표단 중 일부는 '여론조사 연령조작 파문'이 이번 선거 내내 당에 엄청난 부담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하는 눈치다. 보수언론을 필두로 '부도덕한 진보'라는 오명을 씌우고 지속적인 흔들기를 한다면, 그것이 선거 여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불을 보듯 자명하다는 것. 

이에 따라 대표단의 일부는 21일 밤 이 대표에게 "이대로 가다가는 모두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의견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 공동대표는 이 자리에서 "후보사퇴할 뜻이 없음"을 내비친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이 공동대표는 22일 오후 <오마이뉴스> 팟캐스트 방송 <이슈 털어주는 남자>에 출연해, "이번 일은 상대 후보 측에서 노골적으로 '노년층에게 젊은 층으로 답하라'고 했다는 제보를 받고 동료 두 분이 그런 일을 한 것으로 안다"며 "오염이 두 군데 같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김희철 후보 측도 똑같이 부정한 일을 저질렀기 때문에 사실상 사퇴할 뜻이 없음을 공식화 한 것이다.

그러나 당 내부에는 여전히 이번 사건이 선거 내내 통합진보당에게 큰 부담을 줄 것으로 보고 있다. 통합진보당의 한 관계자는 "상식적으로 판단하면 이정희 대표는 후보직에서 사퇴하는 것이 맞"지만, "이 대표를 중심축으로 하는 경기동부연합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동부연합은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존재하던 당내 정파다.

무엇보다 이 공동대표가 이번 '여론조사 연령조작 문자메시지 파문'으로 물러나게 되면, 이 당이 통합할 때 이룬 주요 세 축(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통합연대)의 한 축이 무너지는 상황에 몰리게 된다. 따라서 이 공동대표의 후보사퇴 문제는 단순한 셈법으로 계산이 안 되는 수준의 문제를 갖고 있다.

그럼에도 당 내부에서는 이 공동대표의 결단이 요구되는 시점이라는 의견이 있다. 통합진보당의 한 관계자는 "이정희 대표가 버틴다고 해서 결과적으로 관악을에서 살아 돌아올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지역의 여론과 평가에 상당히 민감해지지 않을 수 없다"고 한숨을 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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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관악(을) 야권단일후보 경선과정에서 통합진보당 측의 여론조사 조작 사실이 드러난 가운데,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민주통합당 김희철 의원이 기자회견을 열고 통합진보당의 여론조사 조작 문제에 대해 이정희 대표의 후보직 사퇴를 촉구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유성호


유시민 "노선의 진보성이 도덕성이나 인격의 성숙 보장하는 것 아냐"

그러나 정작 대표단은 이 문제가 당에 상당히 큰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는 판단을 하면서도 이 공동대표 스스로 결단할 때까지는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 공동대표에게 "후보 사퇴를 하라, 말라 하기 어렵다"는 입장인 것이다.

통합진보당의 한 관계자는 "진보정치의 도의상 이 대표가 스스로 결단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옳은 판단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지금 당장 이 대표에게 후보를 사퇴하라고 말하기 곤란하다"며 "스스로 판단해서 결정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여론이 너무 그를 몰아세워 극단으로 몰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시간을 주는 것도 지혜 아니냐"고 덧붙였다.

유시민 통합진보당 공동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정희 대표가 사퇴하면 민주당도 선거에서 데미지를 입는다"며 "실수와 실책이 있다고 수장을 코너로 몰아 정치적으로 매장시킨다면 민주통합당은 어디서 표를 얻을 것이냐"고 비판했다.

유 공동대표는 또 "이것은 야권연대 분위기를 완전히 죽여 버리는 것이 될 것"이라며 "유권자들에게 어느 정도로 중대한 사안인지 들어보고 판단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유 공동대표는 "노선의 진보성이 도덕성의 수준이나 인격의 성숙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다수 국민이 편하게 살 수 있는 공약이라는 거지, 도덕성 우월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의 이 말은 진보 정당의 가치에 도덕성이 최우선에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로 들린다.

그는 "저희도 실수할 수 있고 오류를 범할 수 있는 정치집단"이라며 "새누리당은 조금만 실수를 저질러도 돼서 도덕적이지 않아도 되고, 진보당은 티끌만한 조금의 책임에도 존재를 던져라, 이렇게 할 수는 없는 것이고, 이는 합리적인 것도 아니"라고 반박했다.

실제 민주진보진영의 학자들은 이번 사건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것을 상당히 꺼렸다. 잘 판단을 할 수 없다거나 애매한 지점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식으로 피했다. 잘못나섰다가 비판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손호철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번 사태를 면밀하게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민주당을 탈당해 무소속 출마를 강행한 김희철 후보가 좋은 정치인이라고 인정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정희 대표측이 저지른 '여론조사 연령조작 문자메시지 사건'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할 수도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정희 대표가 사퇴하는 것이 맞다"며 "사퇴를 안하는 것도 문제지만 그 이후 수습과정이 더 잘못됐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손 교수는 "유시민 대표의 해명을 보고 너무 기가 막혔다"며 "지금 사태의 심각성을 전혀 못느끼고 있는 것 같아 심히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어 손 교수는 "정치인 이정희는 이미 끝났다"며 "설사 그가 관악을에서 살아온다고 해도 이미 그는 소탐대실의 우를 범한 대표적 정치인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정치는 어떤 큰일이 있을 때 과감하게 던지고 버려야 산다"며 "이정희 대표는 생즉사 사즉생의 자세로 정치로 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그는 "지금과 같은 태도로 이정희 대표가 일관한다면 진보정치 전체가 다같이 죽을 수 있다"며 "남에게는 아주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진보가 자신에게 터진 문제에는 관대한 자세를 보였을 때 과연 어떤 국민들이 그 정치집단을 진보라 부르고 존경하겠나"라며 "그 이중잣대가 결국 자신들의 정치에 발목을 잡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정희 #유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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