쪼그라든 국정감사, 이승만 때문이다

[주장] 국회의원 300명이 779개 기관 감사... 국정감사 제대로 못해

등록 2015.09.17 21:49수정 2015.09.17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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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감장에 선 최치훈 삼성물산 대표 홍완선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오른쪽부터)과 최치훈 삼성물산 대표, 조대식 SK주식회사 대표가 지난 14일 국회 정무위원회의 금융위원회에 대한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선서하고 있다. ⓒ 남소연


9월이 왔다. 사람들에게 9월은 많은 의미일 수 있겠지만 정치인들에게 9월은 '정기국회'의 시즌이다. 다른 때에 열리는 국회는 전부 다 '임시 국회'고, 사실 국회의원들의 진짜 활동 기간이라고 할 수 있는 기간은 9월부터 시작해 최대 100일 동안 진행되는 지금의 '정기국회' 시즌이다.

그리고 또 정기국회의 클라이맥스라고 할 수 있는 게 '국정감사'다. 그래도 국회가 정치적인 기능을 하고 있구나, 하고 실감하는 때이기도 하다. 국회가 공식적으로 정부의 행정을 비판하고 견제할 수 있는 때가 이 '국정감사' 시즌이다. 국정감사는 매년 관례적으로 9월 10일부터 20일 동안 진행한다. 오늘은 이 '국정감사'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두 가지의 길

국회의원들이 직접 정부의 행정을 조사하게 된 것은 1689년 영국에서 시작됐다. 당시 영국의 식민지였던 아일랜드에서 봉기가 일어났는데, 영국 정부가 이 봉기를 효율적으로 진압하지 못했다. 의회는 이 사건을 두고 행정부를 견제하기 시작한다.

사실 그 전 해였던 1688년에 명예혁명이 일어났고 같은 해인 1689년에 권리장전이 통과됐기 때문에, 당시는 의회의 세력이 한창 강화되던 때였다. 영국 의회는 이 사건을 계기로 정부에 대한 조사에 들어갔고, 나중에도 이런 사례가 있을 때마다 종종 직접 정부를 조사하곤 했다. 흔히 '국정조사'라고 하는 것의 시작이었다.

이런 전통은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국에도 이어졌다. 처음 미국이 세워질 때 헌법에 의회의 국정조사권이 명시된 것은 아니었지만, 청문회가 사실상 국정조사의 기능을 하면서 행정부 조사 기능을 충실하게 해냈다. 그리고 1921년에 이르러서는 상설 감사원이 의회 산하에 설치됐다. 어떤 사안이 있을 때만 조사위원회를 꾸려 조사를 실시하는 영국식 '국정조사'를 넘어서, 늘 상시적으로 운영되는 의회 산하의 수사 기관을 만드는 미국식 '국정감사'의 시작이었다.

정리하자면, 국회가 정부를 수사하는 데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특정 사건이 생기면 의회에서 임시 수사센터를 꾸리고 의원들이 직접 경찰이 되는 방식이 영국식 '국정조사'다. 이와는 다르게 의회 산하에 상설 감사원을 꾸리고 평소에도 늘 사건을 수사하는 방식이 미국식 '국정감사'다.


우리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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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 감사원 ⓒ 감사원


자, 그렇다면 우리의 역사로 가 보자. 우리는 어떤 방식을 선택했는지. 영국식 국정조사가 시작된 게 1689년이고 미국식 국정감사가 시작된 게 1921년이었으니, 1948년 우리가 처음 나라를 세우고 헌법을 만들 때에는 두 가지 방법 중에서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언제나 그렇듯 우리의 이승만 대통령이시다. 1948년 5월 10일에 제헌국회 의원들이 선출됐고 5월 31일부터 이승만 대통령은 제헌국회 의장으로 활동을 시작한다. 김구의 선거 불참으로 이승만의 대통령 당선이 확실한 상황이었다. 때문에 7월 17일까지 헌법이 만들어지는 데 이승만 의장의 입김은 상당히 강했다.

이승만 의장이 미국 유학생이었던 탓인지 우리 정부 체제를 꾸리는 데는 미국의 영향을 상당히 많이 받았다. 일단 내각책임제가 아닌 대통령 중심제를 선택한 것부터가 그랬다. 뭐 대통령을 의회에서 선출하는 게 조금 기형적이긴 했지만, 권력이 대통령에 집중된 것은 미국의 대통령 중심제에다가 권위주의적 사상이 결합된 결과였다.

그러면 이제 국정감사 제도를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지도 결정해야 했다. 미국식 대통령제를 택했으니 사실 미국식 국정감사 제도를 선택하는 게 맞는 거였다. 사실 의회 중심인 영국이었으니까 사건이 있을 때마다 행정부를 조사하는 정도로 괜찮았던 거지, 대통령 중심인 미국으로서는 상설적으로 행정부를 감시하는 기관이 필요했다.

그런데 여기서 제헌헌법의 선택은 이상했다. 권위주의적인 정치를 원했던 이승만의 성향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상설 감사원을 의회에 설립하는 것을 거부하고, 상설 감사원을 정부에 설치하기로 한 거다. '감찰위원회'를 만들어 국무총리 직속으로 설치했고 '심계원'을 만들어 대통령 직속으로 설치했다.

그러니까 상황이 요상하게 되어 버린 거다. 감사원은 행정부를 수사하는 기관인데, 행정부를 감사하는 기관이 행정부에 속하게 된 거다. 자기 자신을 감찰하도록 제도를 만든 거다. 정부의 자기객관화를 믿는, 놀랍도록 도덕적인 제도가 만들어졌다.

그렇다고 국회가 행정부에 대해 아무런 견제도 할 수 없는 것은 이상하니까, 국회가 사안이 있을 때 국정조사를 할 수 있는 권한을 주기는 했다. 실제로 발동이 잘 되지는 않았지만.

그 뒤에 박정희 정부를 거치며 '감찰위원회'와 '심계원'은 통합되어 '감사원'이 됐다. 소속도 완전히 대통령 소속으로 바뀌었고. 유신을 거치며 국정조사권은 박탈됐지만 유신 종결 이후에 '국정조사권'을 다시 얻어오고 추가로 '국정감사권'을 얻어오기는 했다.

그런데 이 '국정감사권'이라는 게 국제적인 관행처럼 늘 상시적으로 정부를 견제하는 감사원을 의회 밑에 설치하는 게 아니었다. 대신 9월 10일부터 20일 동안 매년 정기적으로 국회의원들이 나서서 정부의 활동을 감시하는 '국정감사'라는 제도가 만들어졌다. 이 역시 대통령의 절대적 권력을 보장하는 권위주의 체제의 특성을 반영하는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자, 그럼 이제 현재의 제도를 정리해 보자. 원래대로라면 국회 산하에 상설 기관으로 있어야 할 기관인 감사원이 대통령 아래로 넘어갔다. 일단 국회에도 국정조사권과 국정감사권이 있는데, 이 '국정감사권'이라는 건 1년에 20일 정도만 실시하고, 상설적인 것은 아니다. '국정조사권'이라는 것은 태생적으로 상설적인 게 아니니, 의회가 정부를 상시적으로 감시하는 제도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대통령 중심으로 권위주의적인 제도다. 국제적인 기준에서 봤을 때 상당히 기형적인 상황인 거다.

오늘의 국정감사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2015년에도 이런 기형적인 상황은 이어지고 있다. 사실 국정감사 자체에 대한 비판이 정치권에서 크게 논의가 된 적도 없는 것 같다. 올해 국정감사도 지난 10일부터 20일 일정으로 열리고 있는 중이다. 국회에서는 오늘도 국정감사가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자. 2013년 국정감사 대상 기관은 630곳. 2014년 국정감사 대상 기관은 672곳. 올해 국정감사 대상 기관은 779곳이다. 국정감사에 참여하는 국회의원은 모두 300명이다.

평균으로 따지면 국회의원 한 사람당 2, 3곳을 감사해야 하는 것이다. 정부 기관 두 개가 1년 동안 일한 기록 전체를 국회의원 한 사람이 20일 안에 봐야 한다는 것이다. 보좌관들이 다 붙어서 감사해 봐야 수박 겉핥기밖에 되지 못한다.

거기에 국정감사라는 게 한 의원이 한 기관을 붙어서 감사하는 게 아니다. 한 상임위원회에 속한 국회의원 20~30명이 오늘은 어떤 기관 부르고, 내일은 어떤 기관 부르고 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예를 들어 산업통상자원위원회에서 오늘은 기획재정부 부르고, 내일은 특허청 부르고 뭐 이런 식으로 하는 거다. 어느 한 기관에 대한 깊은 감사가 이루어질 수 없는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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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감사원 미국 감사원 ⓒ GAO


미국에서 가장 강력한 기관 순위를 꼽으라면 1위는 의회, 2위는 백악관, 3위는 연방대법원이다. 입법, 행정, 사법 3권이니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언제나 4위에는 미국 감사원이 올라온다. 미국에는 다양한 수사 기관이 있다. 국방부도 있고, CIA, FBI에 국세청도 수사 기관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들 수사 기관 중에서 가장 강력한 것으로 언제나 '감사원'이 꼽힌다. 감사원이 행정부 전반에 대한 수사권을 가지고 있다 보니, 강력한 기관이 된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감사 시스템은 그렇지 못하다. 경찰청, 검찰청, 국세청, 국정원이 전부 대통령 아래로 들어가 있는 상황인데 감사원까지 대통령의 직속 기관이다. 국회의 정부 견제 방식인 국정감사는 제대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여기까지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운영되는 방식이다.

가장 중요한 것

1945년 독립 이래로 한국은 독재의 아래에서 신음해 왔다. 처음에는 이승만이 있었고 뒤에는 박정희가 있었으며 그 뒤에는 전두환이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너무도 많은 것들이 유산 혹은 적폐로 남았다.

그리고 그 수많은 적폐 중의 한 가지가 국정감사 제도다. 권위주의 체제 하에서 만들어진 제도, 정부를 견제하는 국회의 손발을 묶어놓은 제도다. 그런데 이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정치권에서 크게 들어본 적 없는 것 같다.

우리는 국회의원도 대통령도 모두 선거를 통해서 선출한다. 그렇기에 국회와 정부는 각자의 정당성을 가진다. 그래서 때로는 서로 협력하기도 하고 때로는 견제하기도 하면서 국가를 이끌어 나가게 된다.

그런데 이들 중 정부가 의회에 비해 과도하게 큰 권력을 가지게 되면 독재의 서막이 되는 거다. 국회의원 3분의 1을 대통령이 직접 임명했던 유신 헌법을 생각해 보자. '입법부'가 '통법부'가 되어버리면 민주적 정치가 불가능해지는 거다.

국회가 정부를 견제할 수 있는 수단인 국정감사가 과도하게 축소되어 있는 현실, 국정감사 제도의 현실은 어쩌면 아직까지 독재를 청산하지 못한 우리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여전히 독재의 유산이 멀쩡히 살아 숨 쉬고 있는 시대, 독재자가 '반인반신'으로 추앙받는 시대의 현실 말이다.

국정감사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것, 입법 활동을 열심히 하는 것, 모두 중요하다. 주어진 환경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일은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일은 룰 자체를 올바르게 고치는 일이다. 규칙을 제대로 만드는 일이다.

독재의 적폐는, 열심히 뛰지 못하도록 만드는 방식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아무리 열심히 뛰어도 결과가 나오지 않는 방식으로 작용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지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흔히 말하는 것처럼,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는 일 말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확인하실 수 있는 곳
이승로그』 / 『비더슈탄트, 세상을 읽다』 / 『딴지일보』
#국정감사 #비더슈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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