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나오는 교과서는 출판사에서 아무나 불러서 막 쓴 글이 아니다. 전문가를 불러서 쓴 글이고, 무엇보다 중요하게도 '교육부가 검토를 마친' 교과서다."
연합뉴스
보수적 역사학계는 할 말이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의 교과서를 만드는데 보수적 역사학계는 많이 손을 대지 않았으니까. 진보적 역사학계에는 '무슨 그런 교과서를 만들었느냐'면서 비판을 할 수 있고, 교육부에는 '무슨 그런 교과서를 인정했느냐'며 비판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보수적 역사학계에 하나의 질문을 던지고 싶다. 보수적 역사학계는 그동안 무엇을 하셨느냐고. 진보적 역사학계가 7종에 달하는 교과서를 만들었을 때 보수적 역사학계는 무엇을 하고 계셨느냐고.
물론 보수적 역사학계에서는 반론을 펼칠 수도 있다. '우리가 교학사 교과서를 만들었는데도 학교 현장에서는 0%대 채택률을 기록했다. 진보적 역사학계가 패권주의를 휘두르고 있다'고. 이렇게 말이다.
사실 일면 맞는 말이다. 보수적 역사학계도 노력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교학사 교과서'라는 교과서를 실제로 만들기도 했지 않은가. 그런데도 이 교과서는 교육 현장에서 철저히 외면당했다.
그렇다면 한번 같이 곰곰이 생각해 보자. 전국의 고등학교 개수가 약 2500개 정도 된다. 그중에 단 한 개의 학교도 교학사 교과서를 선택하지 않았다는 것을 단순히 '패권주의'의 문제로 환원할 수 있을까.
솔직히 아예 가능성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교학사 교과서를 선택했다는 이야기가 들리면 반대 여론이 거세게 일 테니까. 하지만 역시 일본에서 비슷하게 문제가 된 우익 교과서도 채택률이 0%는 아니었다.
나는 여기서, '교사들을 물로 보지 말라'는 이야기는 하고 싶다. 적어도 이 땅에는, 날짜 기재가 틀리고, 5·18의 공수부대 폭력을 언급하지 않고, 5·16을 장면 정부가 자초했다고 주장하고, 반민특위 해체를 다루지 않고, 4·3에서 우익이 살해 당한 것처럼 묘사하고, 훈민정음을 소개하지 않고, 인터넷 사이트를 표절한 교과서를 쓰려고 하는 교사는 단 한 명도 없다. 그건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니다.
보수적 역사학계는 노력했다고 주장하고 싶은가. 노력을 해서 교학사 교과서를 만들었다고 주장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그 자체가 보수적 역사학계의 자기부정이다. 노력을 해서 만든 교과서가 저런 수준이라면 보수적 역사학계는 '학계'라는 이름을 달기 부끄러워해야 맞다.
보수적 역사학계는 무엇을 하셨는가. 교학사 교과서를 만들었다고 주장하신다면 그 자체가 자기부정이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신다면 무슨 면목으로 현행 교과서의 편향성을 비판하시는가.
보수적 역사학계는 단 한 번이라도 고등학교 교육의 '이념적 편향성'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해본 적이 있는가. 묻고 싶다.
자유시장경제의 상식으로 접근한 교과서 문제여기서 잠깐 이야기를 다른 곳으로 돌려 보자. 국정교과서 이야기를 '치킨'에 한 번 비유해 보자.
보수적 역사학계의 주장은 이런 거다. 나는 양념치킨을 좋아한다. 그런데 시장에는 '후라이드 치킨'밖에 팔지 않는다. 결국 시장의 논리 때문에 양념치킨을 좋아하는 사람은 양념치킨을 먹지 못한다. 고로 국가에서 나서서 '반반 치킨'만을 만들어 공급해야 한다(실제 어느 보수논객은 역사 교과서 '국정화가 필요한 이유'라며 "시중 치킨집이 온통 후라이드 치킨만 판다면, 정부라도 나서서 '양념 반 후라이드 반'을 국민들에게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트위터에 썼다).
'교과서'라는 생각은 걷어내고 철저하게 시장경제의 입장에서만 생각해 보자. 왜 시장에는 후라이드 치킨밖에 팔지 않았던 걸까? 왜 사람들은 양념 치킨을 만들지 않았던 걸까?
극도로 단순한 이야기다. 양념치킨을 원하는 사람이 적었기 때문이다. 양념치킨이 맛이 없어서일 수도 있고, 양념에 들어가는 재료의 질이 낮아서일 수도 있다. 아무튼, 양념치킨을 원하는 사람이 적어서 이윤을 창출할 수 없다면 시장은 절대로 양념치킨을 생산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제 양념치킨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옳은 것일까?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양념치킨을 홍보하고 사람들에게 양념치킨이 얼마나 맛있는지 알려서 수요를 창출할 수도 있다. '양념치킨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만들어서 자기들끼리 양념치킨을 만들어 먹을 수도 있다. 양념에 들어가는 재료를 높은 질로 바꾸자는 캠페인을 벌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국가와 영합해서 후라이드 치킨을 금지하고 양념치킨을 법제화하지는 않는다. '이념적으로 올바른 치킨을 만들겠다'면서 반반 치킨을 법제화하지도 않는다. 그렇지도 않고, 그래서도 안 된다. 이건 자유시장경제의 상식이다.
다시 교과서의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보수적 역사학계는 '교과서 시장'에서 외면 당했다. 그렇다면 보수적 역사학계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철저히 여러분 좋아하시는 자본주의의 논리로 판단하자.
보수적 역사학계는 시민들에게 자신들의 교과서가 얼마나 우수한지 알릴 수도 있다. 자기들끼리 모임을 만들어 역사적 사고를 공유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국가와 영합해 '절반씩 섞인 교과서'를 법제화할 권리는 없다. 이건 상식적인 이야기다.
보수적 역사학계는 현행 교과서를 좌편향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면, '제대로 된 우익 교과서'를 만들었어야 한다. 스스로 경쟁력 있는 대안이 돼야 했다. 이것에 실패한 보수적 역사학계는 시장에서 묻히고 도태되는 것이 맞다.
물론 '교과서'라는 것의 특수성은 존재한다. 교과서는 '학교'라는 국가적 교육기관에서 핵심 자료로 쓰는 내용이고, 그래서 중요할 수 있다. 시장경제의 '쌀' 같은 존재라고나 할까. 실제로 쌀은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이므로 때로 정부가 개입해서 안정적으로 만들려고 노력하지 않는가.
하지만 쌀을 예시로 들어도 우리의 입장은 변할 이유가 없다. 국가는 쌀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노력한다. 쌀의 품질을 높이고 관리 체계를 우수하게 만들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국가가 혼자 쌀 브랜드를 만들어 모든 쌀을 독점적으로 공급하지는 않는다.
교과서도 마찬가지다. 국가가 역할을 해야 한다면, 그것은 교과서의 품질을 일정 정도 이상으로 높이고 교과서를 만들고 관리하는 체계를 우수하게 만드는 것에 한정되어야 맞다. 국가 혼자서 교과서를 만들어 모든 교과서를 독점할 수는 없다.
보수적 역사학계는 다른 선택을 했어야 했다. 국가와 영합해서 오직 하나의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데 협조해서는 안 된다. 직접 양질의 역사교과서를 만들어 실력으로 경쟁했어야 했다. 그것이 '시장경제'의 아주 기본적인 원칙이고 상식이다.
우리의 비판은 어디로 향하는가'독재(獨裁)'는 '혼자'라는 뜻의 '독(獨)'과 '결정하다'라는 뜻의 '재(裁)'가 결합한 단어다. '홀로 결정하는 것'이라는 의미다. 그런데 '재(裁)'라는 한자에는 '교육하다'라는 의미도 있다. '하나로 교육하는 것' 그것이 곧 '독재(獨裁)'라는 말도 된다.
지금 우리가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를 비판하는 초점은 많은 경우 '친일독재를 미화하는 교과서'로 향하고 있다. 물론 심정적으로 동의한다. 지금의 기조대로, 교육부의 지금 주장대로라면 분명 국정교과서는 내용상의 오류도 많은 친일독재 미화 교과서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주관적인 사견에 불과하다. 아직 교과서가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는 설득력이 없을 수밖에 없는 비판이다.
우리가 비판의 논점으로 삼아야 하는 것은, 교육부와 보수적 역사학계는 지금의 교과서 문제에 대해 말할 자격이 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국정교과서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정책이라는 점이다.
'단 하나'와 '국가'를 강조하는 것은 북쪽에서나 통하는 발상이다. 단 하나의 당, 단 하나의 지도자, 단 하나의 이념. 북한은 국정교과서를 사용하는 대표적인 국가다. 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는 결코 '하나'를 강조하지 않는다. 다양한 정당, 다양한 지도자, 다양한 이념. 국민은 자유롭게 '선택'할 권리를 가진다.
묻자. "선진국 가운데 교과서를 국정으로 가는 경우는 없다는 얘기도 있는데 어떻게 보느냐"는 손석희의 질문에 "그렇게 보지 않는다. 러시아나 베트남, 필리핀 등이 국정 교과서를 하고 있다. 특히 북한은 국정 교과서를 쓰고 있다"고 답한 새누리당 염동열 의원이 있다.
그리고 한 쪽에는, "정부와 새누리당은 국민의 역사의식을 길들이고 통제하겠다는 독재적 발상을 그만두라. 감추고 미화한다고 해서 역사는 달라지지 않고, 그런 왜곡은 성공한 적도 없다"고 말한 문재인 의원이 있다. 누구의 생각이 더 공산주의에 가까운가?
하지만 현재 새누리당이 집권하고 있고, 국회의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총력 저지를 선언했지만 법적으로 이를 막아 세울 힘은 새정치민주연합에 없다.
남은 기간은 20일이다. 행정예고가 나온 상태에서, 확정고시가 나오기까지 20일이다. 이 기간을 넘어서면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되돌릴 방법은 없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제대로 된 비판의 쟁점을 찾는 것이다. 여론을 이끌어올 수 있는 비판을 끌어내는 것이다. 그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정부의 국정교과서는 친일·독재 미화 교과서가 아니다. 적어도 지금까지의 상황은 그렇다. 여론의 비판을 끌어올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식은 '상식'이라고 여전히 믿는다. 우리가 비판의 초점으로 맞춰야 하는 지점은 그래서 바로 이 지점이다.
만들지도 않은 교과서를 '올바르다'고 말하는 정부교육부는 이번에 만들 국정교과서를 '올바른 교과서'라고 지칭했다. '올바름'이라는 것은 누가 어떻게 정의하는가. 무언가를 '올바르다'라고 지칭할 수 있는 이는 세상에 셋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절대자거나, 스스로 절대자라고 생각할 만큼 오만하거나, 절대자가 되려고 하거나.
이 정권은 아직 만들어지지도 않은 교과서를 어떻게 '올바르다'고 정의할 수 있었을까? 아마 셋 중 마지막 경우인 것 같다. 절대자가 되려고 하는 정권. 가나의 독재자 콰메 은크루마는 자신을 '오사지에포', 즉 '오류를 범하지 않는 자'라고 부르기를 사람들에게 강요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도 그 당시의 가나처럼, 매일 아침 일을 시작하기 전에 외쳐야 하는 걸까. 한국의 정부와 교육부가 절대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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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가 검토한 역사 교과서, 이제 와 이념 편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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