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대 대자보 "하나의 해석 순간, 역사학은 사라진다"

사학과 학생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 역사학과 학생회연합 결성

등록 2015.10.20 20:08수정 2015.10.20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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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대학교 정문 쪽에 있는 게시판에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한다'는 제목의 대자보가 붙어 있다. ⓒ 윤성효


경남지역 대학가에서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주장이 계속 나오고 있다. 20일 창원대학교 정문 게시판에 학생이 쓴 대자보가 붙어 있고, 또 역사학 관련 학과들이 모임을 결성해 공동 시위를 벌이기로 했다.

창원대 김경민 학생(사학과)은 '나는 국정화 교과서에 반대한다'는 제목의 대자보를 붙였다. 김 학생은 전지 크기의 종이 2장에 주장하는 내용을 적어 놓았다.

김 학생은 "역사는 하나의 사건을 단 한 줄 문장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며 "하나의 사건이 있다면, 그것을 수많은 관점에서 해석하고 다양한 의미를 부여하며, 그것이 지속되기도 또 뒤집히기도 하는, 살아 있는 생명체와 같은 것"이라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역사는 단 하나의 해석으로 다른 모든 것들이 부정되는 순간 역사학은 사라진다"며 "정의롭지 못한 것에 항거하며 이 땅을 만들어 주셨던 모든 독립, 민주지사들의 정체성을 부정하면서, 사실이 아닌 것을 권력의 고집 때문에 받아들여야만 하는 이 상황이 과연 올바른 사회인가"라고 했다.

한편, 경상대 역사교육과 설성원 학회장과 창원대 사학과 손다빈 학회장은 부산울산지역 대학 사학과 학회장 등과 함께 '부산울산경남 역사학과 학생회연합'을 결성하고, 오는 25일 부산대 앞에서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침묵시위행진을 벌인다.

다음은 창원대 김경민 학생이 쓴 대자보 전문이다.

나는 국정화 교과서에 반대한다


아무 것도 모르던 시절, 또 한 번의 새로운 교복과 함께 시작된 고등학교의 생활은 소위 이야기하는 '꽉 막힌 시절'만은 아니었다. 고등학생이 되어 만난 나의 첫 국사 선생님 때문이었다. 일주일에 두 번, 각 50분의 국사시간은 단 한번도 졸지 않을 만큼 흥미로운 것이었다. 교과서에 충실하게, 우리들에게 역사에 대한 사실들을 가르쳐주셨을 뿐만 아니라, 교과서 외적으로 또 다른 자료들을 소개해 주시면서, 더 넓은 세상으로 이끌어 주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교단에서 멈추지 않고 당시 사회적 현상이었던 촛불집회에서 실천하시는 모습은,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려주시던 분이셨다. 그것을 하나의 계기로 삼아 역사를 공부하게 되었고, 그곳에 가면 내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모두들 위험하게 바라보았지만, 당당히 자부심을 가지고 사학과에 진학하였다. 결국 4년의 배움에도 타는 목마름으로 심화공부를 선택하게 되었고, 좋은 교수님들의 제자가 되어 더 많은 공부를 위해 학교에 남게 되었다. 그래서 역사를 기억하는 방식, 사회 안에서 우리의 역사가 어떻게 기억되고 있는지에 대해 신중하고도 가슴 뛰는 설렘으로 공부를 하고 있는 중이다. 진정한 역사학도가 되기를 꿈꾸면서.

하지만! 지금 사회 안에서의 역사는 그 순수성이 위협받고 있다. 내가 알고 있던, 여지껏 배워왔던 역사는 단 하나의 것이 아니었고 단 한 명의 것이 아니었다. 내가 여태까지 알고 있던 역사는 하나의 사건을 단 한 줄 문장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하나의 사건이 있다면, 그것을 수많은 관점에서 해석하고 다양한 의미를 부여하며, 그것이 지속되기도 또 뒤집히기도 하는, 살아 있는 생명체와 같은 것이었다.

특정한 해석에 무게가 실린다고 하더라도, 결코 다른 것들이 부정되지 않고, 주변에서 더 많은 생각을 이어나가게 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는 것들이었다. 그러한 다양성은 과거를 미래로 바꾸는 역할을 하고, 사회를 변화하고 발전시키는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그것이 역사였다.

해방 이후 우리 역사 교과서는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했지만, 이면에는 일제식 황국식민교육의 관성이 여전히 작용했다. 그래서 그 속을 들여다 보면 후진적인 것이 가득한 국가주의 이데올로기 통제방식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실제로 행해졌을 때가 있었다. 한국사에서 절대로 사라져서도 안 되고, 사라질 수 없는 암흑의 시대 때였다.

일개 군인의 쿠데타가 혁명으로 둔갑하여 정의로웠던 4.19를 계승한다는, 그야말로 사실을 왜곡하고 주입시키려는 시대에나 존재했던 '국정화 교과서'라는 것이 지금 내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현실이 되려 하고 있다. 역사는 단 하나의 해석으로 다른 모든 것들이 부정되는 순간 역사학은 사라진다. 정의롭지 못한 것에 항거하며 이 땅을 만들어주셨던 모든 독립, 민주지사들의 정체성을 부정하면서, 사실이 아닌 것을 권력의 고집 때문에 받아들여야만 하는 이 상황이 과연 올바른 사회인가.

대한민국 헌법의 첫 부분인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사회'라는 것이다. 그 사실을 부정하는 것이 국정화 교과서다. 이 사회의 구성원인 우리는 어떻게 나아가야 할 것인가. 반짝거리는 호기심과 더 나은 세상에 대한 기대를 가진 한국의 수많은 역사학도들의 죽음을 보아서야 되겠는가. 나는 국정화 교과서에 진실로 반대한다. 사(史) 김경민.
#역사 교과서 #창원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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