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인해 텅빈 강의실
박해숙
왠지 3월 말까지도 휴원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학원 내 화분에 물을 듬뿍 주었다. 과일과 채소를 사서 집에 들어오니 그저 막막하기만 했다. 고정적으로 들어가는 돈은 일정한데, 원생들이 내는 수업료가 딱 끊기니 한달살이 영세학원 원장으로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평소 독서를 많이 하는 편인데, 책마저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2월 21일
주문하지도 않은 쌀 10kg과 생수 4박스가 도착했는데 울산 사는 후배 원장이 보낸 거였다. 구호품이라고 말만 들었지 받아보기는 처음이라 웃프고 고맙고... 여러 가지 감정이 섞여 목젖이 아파왔다.
2월 26일
일주일을 대책없이 보내고 나니 조금 정신이 들면서 원생들에게 미션을 보내고 독서를 권장하는 조치를 취했다. 학모들께 일일이 전화해서 안부도 묻고 건강 챙기시라는 당부도 했다. 단 한 분도 수업료 반환을 말씀하시지 않고 오히려 나를 걱정해 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3월 3일
팔공산 아래 전원주택을 짓고 사는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집에만 있으면 답답할테니 청정 지역에 와서 정원 잡초나 뽑자"고 했다. "벌써 잡초가 자라냐"고 하니 "코로나19 보다 더 빨리 퍼진다"고 해서 웃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느라 밖에 안 나가니 봄이 오는지도 몰랐다. 친구는 학원 건물 임대료 140만 원을 내게 송금해 놓았다. 영문을 묻는 내게 "자기가 대신 한 달치를 내주는 것이니 부담 갖지 말라"고 했다. "그냥 받는 게 불편하다" 하니 "가끔 와서 풀이나 뽑아주면 된다"라고 웃으며 대꾸했다.
3월 10일
갈수록 확진자가 점점 늘어가니 장기화 되겠다는 생각에 맥이 빠진 채로 살았다. 강사급여, 카드 대금, 공과금이며 보험료 등등 지출할 돈이 한두 푼이 아니었다. 게다가 암흑천지가 된 동성로 거리며, 상점마다 문이 닫힌 뉴스를 보니 더욱 암담하기만 했다.
3월 13일
대구를 지원하기 위해 전국의 의사와 간호사들이 대구로 지원온다는 뉴스를 들었다. 울산 사는 친구 아들이 의사라서 혹시나 싶어서 전화를 했다. 친구 아들내미도 자원봉사 신청을 해서 내일쯤 대구에 갈 것 같다고 했다. 친구는 내 걱정을 하면서 천만원을 무이자로 빌려 주겠다며 송금을 했다. 극구 사양했지만 맘 편히 쓰고 형편 될 때 갚으라고 했다. 생전 처음으로 친구에게 빚을 졌다고 생각하니 만감이 교차했다.
건물주도 임대료 한 달치를 면제해 주셨다. IMF 때도 임대료를 내려준 적이 있는 '착한 임대주'이시다.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그 외 학부모가 힘내시라며 합천에서 딸기 세 박스를 보내주셨다. 보험회사 다니는 친구는 국수를, 큰언니는 표고버섯 한 박스를, 작은 언니는 갓김치를 담았다며 종류별로 챙겨 주었다.
코로나19로 인해 나의 삶을 돌아보게 됐다. 경제적으론 힘들지만 주위의 따뜻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알게 되었다. 내 무형 자산은 무한하여 코로나19로 절대 쓰러지지 않을 자신감도 얻었다.
받은 은혜를 평생 잊지 않고 갚아나가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봉사를 하며 살기로 작정했다. 이런 긍정적 마음이 파동쳐 나가서 바이러스를 퇴치해나갈 큰 힘이 될 것을 믿는다.
지난주 수성구청에서 하는 지역방역 봉사에 참여했다. 다음 주에는 달서구 지역 방역 봉사를 계획하고 있다. 학원은 현재도 계속 휴원 중이지만, 코로나19 이후를 준비하느라 내 몸과 마음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