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회의실 앞 복도에 마련된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피해자 추모 공간에 권인숙 여성가족위원장과 의원들이 쓴 추모 메시지가 붙어 있다.
공동취재사진
고인의 죽음에 애도를 표합니다. 누군가의 죽음 뒤에 글을 쓴다는 것이 조심스럽습니다. 그럼에도 다시는 이러한 죽음이 반복돼서는 안 되기 때문에 우리는 말합니다.
저는 고인과 같은 여성 역무원입니다. 처음 사건 소식을 접했을 때 비통함과 두려움에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부끄럽고 미안하지만 '내가 죽었을 수도 있었겠구나' '나는 운이 좋아서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장 출근해서 취객 등 소란자를 상대할 생각에 무서웠습니다. 피해자를 노린 집요하고 계획된 범죄였다는 걸 알게 됐을 때는 판사가, 경찰이, 회사가 지켜주지 못했음에 분통했습니다.
이번 일은 불특정 승객에 의한 역무원 폭행이 아닌, 계획된 범죄였습니다. 하지만 근무환경이 안전했다면 일터에서 일하다가 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만성적 인력 부족... 2인 1조가 되지 못하는 상황
같은 역무원이었던 가해자는 피해자가 야간 근무를 하며 혼자 노출되는 가장 취약한 시간과 장소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만성적인 인력 부족으로 이례적 상황에 출동할 때 '2인 1조'가 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순찰업무는 당연히 단독으로 하고 있습니다. 순찰업무를 혼자 하지 않았다면 가해자가 공격할 생각은 하기 어려웠을 것이고, 피해자가 홀로 화장실 내 비상호출벨로 위험을 알리는 상황까지 가지는 않았을 것이며, 어쩌면 그날 죽음은 막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안전하지 못한 노동조건에서 발생한 산업재해이고 동시에 명백한 젠더폭력입니다.
서울교통공사와 서울시는 여성이 남성과 같은 노동자로서 같은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근무조건을 제공하지 않은 채 내부적으로 일어나는 젠더갈등을 방치하고 성차별적 인식을 방조해 왔습니다.
모든 역에 남성 직원 침실은 있는 반면 여성 직원 침실은 그렇지 않아서, 침실이 없는 여성 직원들은 막차와 첫차를 타고 침실이 있는 다른 역으로 이동하느라(이때도 혼자 무방비로 노출됩니다) 첫차, 막차 감시 업무를 하지 못합니다. 안전발판 등 각종 무거운 작업도구는 경량화 되지 않았습니다. 소란자 상대 업무도 남성 직원이 주로 맡습니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여성 직원과 같은 조를 하면 남성 직원만 힘들다'는 불만이 나옵니다.
역무원들은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각종 안전사고와 민원상황에 혼자 대처해야 한다는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충분한 인원이 있다면 위의 일들을 함께 나눠 할 수 있고, 혼자 대처하지 않아도 됩니다. 남성과 여성을 구분지을 것이 아니라 같은 일을 하는 노동자로서 안전하게 함께 존재할 수 있도록 공사와 서울시가 책임져야 합니다.
성차별에 기반해 발생했고, 안전하게 일할 권리가 지켜지지 않은 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