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 3일 경기도 용인우체국에서 열린 용인우체국 차선우 집배원의 영결식에서 우정사업본부 직원과 동료 집배원 300여명이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차씨는 2011년 7월 27일 폭우 속에서 우편물을 배달하다 실종됐다.
연합뉴스
집배원이 한 번 우체국을 나서면 휴게공간 없이 6~7시간을 실외에 머무른다. 때문에 집배원에게 가장 큰 업무 위험은 날씨다. 특히 최근 기후변화로 인한 다발성 호우 및 폭우가 반복되거나 혹한 및 혹서로 인한 극한의 날씨가 집배원 업무에 직접적인 위험 요인이 되고 있다.
15년 차 집배원인 오현암 공공운수노조 전국민주우체국본부 사무처장은 "재난문자가 하루에도 수 차례 오지만, 집배원들에게는 스팸 문자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외부 활동 자제하라고 문자가 와도, 폭우가 쏟아져도 이륜차를 이용해 야외에서 배달 업무를 하기 때문"이다.
우편법에 작업중지 명시되어 있지만 무용지물
한국은 우편법 및 '우편물 이용제한 및 우편업무 일부 정지에 관한 고시'를 통해서, 자연재난 또는 사회재난 위험이 높은 지역을 위험급지 1, 2, 3급지로 구분한다. 읍면지역의 경우 가장 위험하다고 보는 1급지가 전체의 20% 내외, 2급지는 30% 내외, 3급지가 50% 내외로 규정돼 있다. 법은 우체국장이 폭설·폭우·태풍 등 자연재난과 황사·폭염·미세먼지 등 자연·사회재난시에 집배업무의 정지와 해제를 결정하도록 한다.
그러나 집배업무 정지는 현실에서 작동하지 않는다. 우체국장이 업무 중지를 결정할 수 있는 건 1급지에 국한하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어쩌면 폭설 속에서도 편지를 배달하다 죽는 것을 '미담'이라고 여기는 사회적 인식이 더 큰 문제일지도 모른다.
법은 '집배원은 총괄우체국장 등의 집배업무 정지 결정과 별개로 우편물 배달 등이 곤란하거나 대피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우선적으로 업무를 정지하거나 긴급 대피한 후 이를 지체 없이 총괄우체국장에게 보고하여야 한다'고 명시한다. 그러나 이 또한 현실에선 잘 적용되지 않는다.
우정사업본부는 정부기관으로서 대부분 집배원이 우정직 공무원으로 근무하는 상황에서 상급자의 명령을 따라야만 하기 때문에 상급자의 명시적인 집배 업무 중지 명령이 없다면 현장에서 스스로 업무를 중단하기는 매우 어렵다.
우체국장의 권한으로서가 아니라, 실제 작업 현장에서 일하고 위험에 노출되어 일하는 집배원이 작업중지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법과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기후위기(변화)가 심화됨에 따라서, 하루 6~7시간 옥외노동을 하고 이륜차를 운행하는 집배 업무의 위험이 가중되는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 업무량을 산출하고 그에 따라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인력 체계를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 회사에는 당신이 다치면서까지 해야 할 중요한 일이 단 하나도 없다."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안전할 권리, 건강할 권리, 죽지 않고 일할 권리를 외치며 싸우는 사람들이 외칠 만한 이 말은, 현대중공업 건물에 새겨진 글귀이다. 1972년 창사이래 474번째 산업재해 사망자가 발생한 현대중공업은 계속되는 산업재해 속에서, 예방이 최우선이라며 공장 건물에 이같은 문장을 새겼다. 이윤 추구가 생존 이유인 기업에서도 깨달은 이 진리를 우정사업본부라는 공공기관에서는 모르고 있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다.
충청도 천안시 소재의 우정인재개발원 입구에는 동상이 하나 있다. 이 동상에는 집배원을 포함한 우정노동자의 노고를 기리기 위하여 '눈이 오나, 비가 오나'라는 문구가 있다. 헌신에 대한 노고를 기리는 마음은 이해하나 이제는 '눈이 오면, 비가 오면 배달은 중단해야 한다'는 사용자의 적극적인 태도가 필요한 시점이다. 당신이 다치고 죽어가면서까지 배달해야 할 우편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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