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노동자들이 콘크리트 기초 작업을 하고 있다. 자료사진.
유성호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면서 전 산업에서 산재사망재해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건설업에 이목이 집중됐다. 건설노조는 2022년 4월 '작업중지권 신고센터'를 개설해 한 달간 운영했다.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면 건설노동자가 노동조합에 연락하고, 노동조합에서 건설사와 노동부 등에 관련 내용을 알리고 시정을 요구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신고센터를 개설하기 전, 노동조합에 위험 상황 신고가 쏟아지면 어쩌나 우려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신고는 매우 저조했다. 이유는 건설노동자들이 작업중지권을 요구한다는 것 자체가 매우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상시적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다단계 하도급 구조와 연계 공정에 대한 부담감이 맞물린다. 떨어져 죽는 것보다 굶어 죽는 게 더 무서운 건설노동자들이다.
보장하진 않지만, 행사하지 않는 것은 안 된다?
"작업할 때 위험한 장소로 작업자들이 통행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하고, 건설기계 유도자가 배치돼 있지 않은 경우 작업을 중단하고 공사 관계자에게 유도자 배치를 요구하는 등 굴착기 작업으로 인한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업무상 주의 의무가 있었다." (창원지법 마산지원 2023. 8. 25. 선고 2023고합8 판결)
건설현장에서 발생한 안전사고에 대한 법원의 판결문이다. 건설사나 사업주가 받은 판결문이 아니다. 굴착기 조종사가 받은 판결문이다. 굴착기 조종사들은 개인사업자로 등록돼 있지만, 대부분 대출이 물린 장비로 먹고 사는 특수고용직 노동자다.
일감을 찾아다니는 굴착기 노동자들은 항상 고용불안에 시달린다. 건설사의 작업지시에 따라 일할 수밖에 없다. 법적으로는 건설사 사업주가 건설기계 작업계획서 등을 작성해 굴착기 노동자들에게 사전 공지해야 한다. 그러나 현장에선 작업계획서를 작성하지 않거나, 작성해도 형식에 그치거나, 계획서를 공지하지 않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현장을 조금만 둘러봐도 굴착기 조종사가 신호수나 유도자 배치 여부를 사전에 확인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굴착기 조종사에게 작업중지권을 행사하지 않은 죄를 물은 판결은 건설현장의 특성과 고용구조를 부러 무시하거나 아예 알지 못하는 판결이다.
이 사건의 굴착기 조종사는 산재사망사건의 '공범'으로 금고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의 징역형이 선고됐다. 공사현장의 위험 통제 내용을 담은 작업계획서를 작성하고도 따르지 않고, 차량 건설기계 유도자를 배치하기 위한 예산을 편성하지 않고, 안전보건관리책임자 등이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평가하는 기준 등을 마련하지 않은 사업주와 사용자. 그들이 시키는대로 일을 한 굴착기 조종사가 '공범'이 됐다. 보장되지도 않는 작업중지권을 행사하지 않았다는 게 이유다.
국토교통부 장관도 무시하는 작업중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