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공립유치원을 민간에 맡겨라? 애초에 말이 안된다

[주장] 박찬대 의원은 법안 철회했지만... '유아교육 공공성',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야

등록 2019.06.10 15:54수정 2019.06.10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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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공립유치원 위탁경영 반대연대' 소속 현직·예비 유치원 교사들이 지난 7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국공립유치원을 사립학교법인 등 민간에 위탁해 운영할 수 있게 허용하는 유아교육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집회를 하고 있는 모습.
국공립유치원 위탁경영 반대연대' 소속 현직·예비 유치원 교사들이 지난 7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국공립유치원을 사립학교법인 등 민간에 위탁해 운영할 수 있게 허용하는 유아교육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집회를 하고 있는 모습.연합뉴스
 
지난 9일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인천 연수갑)이 '국공립유치원을 민간에 위탁'하는 내용이 담긴 유아교육법 개정안 발의를 철회했다. 

박 의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지난 7일 이뤄진 긴급간담회(학부모·교원단체·임용준비생·전문가·교육부·경기도교육청)를 비롯해 법안 입법예고 기간에 접수된 많은 우려와 의견을 반영해 더 깊은 논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이같은 결정을 했다"라고 전했다. 지난 5월 15일 법안발의 이후 27일 만이다.

철회된 유아교육법 개정안의 핵심은 국공립 유치원을 ▲사립학교 법인 ▲대통령령으로 설치된 국립학교 ▲그 밖에 이에 준해 공익 증진에 기여할 수 있도록 판단되는 자 등에게 위탁해 경영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었다.

법안 발의 이후 학부모를 비롯해 여러 단체에서 개정안에 대한 우려를 표시했다. 법안은 철회됐지만, 국공립유치원의 공공성 등과 관련한 사회적 비용·논의가 발생해 이 지점에 대한 평가가 필요해 보인다. 하나하나 짚어보고자 한다.  

하나. 법안 취지부터가 '어불성설'이었다

개정안 발의의 배경은 '국공립유치원에 대한 수요 증가'였다. 그러면서 유아 교육의 공공성을 위해 현재 국가·지방자치단체가 직접 운영하고 있는 국공립유치원을 민간에게 운영하도록 하겠다는 결론을 내놨다. 

지난해 들끓었던 '사립유치원 사태'에도 불구하고 유치원 3법은 패스트트랙이라는 안갯속에 있다. 현재 교육청의 감사를 받은 사립유치원은 전체의 20%에 미치지 못하며, 나머지 80%의 유치원에 대해서도 교육당국이 제대로 된 감사를 실시할지 불투명하다.


이러한 시점에서 국공립유치원까지 민간에게 위탁하는 개정안은 비리 사립유치원 사태를 주시한 국민들에겐 받아들여질 수 없었다. 학부모단체 및 시민단체, 예비교원, 현직 국공립유치원 교사들은 해당 개정안을 강력하게 반대했다. 결국 대표발의자인 박찬대 의원은 개정안을 철회했다.
 
질의하는 박찬대 의원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진은 지난해 10월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교육위원회의 서울시교육청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질의하고 있는 모습.
질의하는 박찬대 의원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진은 지난해 10월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교육위원회의 서울시교육청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질의하고 있는 모습.남소연
  
둘. 바른 길 말고 '빠른 길'을 택하다

유아들은 자신들의 권리 침해에 대해 정확하게 인지할 수 없고, 어렴풋이 잘못된 것을 안다고 해도 명확하게 의사소통을 하는 데 어려움이 따른다. 물론 유아교육의 사회적 효과, 교육 투자의 사회적 가치 환원이 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유아기의 특성 때문에 사립유치원의 비리 행태는 전국민의 공분을 샀고 자연스럽게 유아교육에는 공공성이 확보돼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그러나 빚을 끌어다 쓰듯 교육당국은 국가와 지자체가 유아의 교육을 직접 책임지기보다 재정 투입과 관리 감독 방기라는, 바른 길이 아니라 '빠른 길'을 택했다. 과도한 빚의 결과는 아이들의 몫이었다. 유아교육의 폐단은 쌓였고, 우리 아이들의 권리는 침해당했다.

유아교육 전문가들은 전두환 정권시절 무분별하게 유치원 설립을 허용하고, 유아교육의 공공성이 담보되지 않은 상황 속에서 박근혜 정부의 누리과정 도입으로 연 2조 원에 가까운 국가 재정을 투입한 결과 지금의 사립유치원 비리 사태가 일어났다고 평가했다.

우리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랄 권리, 학습 받을 권리, 안전할 권리 등은 그렇게 침식당한 것이다. 길지 않은 유아 교육의 역사 속에서 쌓여온 폐단들에 대해 분명하게 목도했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교육당국과 정치권은 바른 길이 아닌 빠른 길을 택하려 했다.

셋. "어디 살아요?"라는 질문받은 학부모

유아교육법 개정안 발의 이후부터 철회 전까지 박찬대 의원실의 대응은 아쉬운 대목이 많았다. 가령, 의원실 관계자는 반대의견을 개진하는 학부모에게 "어디 살아요?"라고 묻기도 했다. 법안에 대한 정당한 의견개진을 하는 국민에게 불쾌한 태도를 취해 법안에 대한 설명·설득의 자세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개정안 준비 과정에서 정부의 태도 역시 문제가 있었다. '정치하는 엄마들'이 교육부 유아교육정책과에 '유아교육법 개정안을 마련하는 동안 교육 당사자인 학부모와 교원들과의 논의가 있었는지'를 물었다. 그러자 교육부는 6월 7일에서야 '박찬대 의원실에서 간담회를 갖는다'고 전했다. 이전 과정에 대해 질의하자 '전문가들과 논의했다'는 짧은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일련의 과정을 보며 법안의 수혜자가 누구인지 묻고 싶다. 한유총, 한사협(한국사립유치원협의회) 등은 정치권에 지속적으로 사립유치원의 퇴로를 열어달라는 요구를 했다. 민주당에서 '유치원·어립이집 공공성 강화 특위'를 열었을 때도, 장현국 한국사립유치원협의회 공동대표가 함께하는 자리가 있었다. 그러나 학부모, 교원단체를 자리한 적이 있었는지는 아는 바가 없다.

그러므로 이 개정안의 수혜자가 누구였을지 합리적 의심을 거둘 수 없다. 당사자인 학부모와 교원들의 소통과 참여가 없다면 또다시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하고, 수혜자가 불분명한 오늘의 정책 실패가 반복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의 한 공립유치원에서 어린이들이 선생님과 수업을 하고 있는 모습(2018.12.5.).
서울의 한 공립유치원에서 어린이들이 선생님과 수업을 하고 있는 모습(2018.12.5.).연합뉴스
 
넷. 아이들의 학습권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안 보였다

교육부 유아교육정책과에 개정안에 대해 공공성 제고를 위한 세부 사항이 있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 '위탁 법인과 계약을 맺을 때 공공성과 관련된 사항을 넣고 이를 어겼을 시에는 계약 기간이라도 언제든지 위탁계약을 해지하게 하는 장치를 마련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렇다면 우리 아이들이 안정적으로 학습받을 권리는 어디로 가는 것인가? 교사와의 상호작용이 중요한 유아기의 특성상 안정적인 교사와의 관계는 필수적이다. 공공성이 확보되지 않는 순간 위탁 계약이 해지된다는 장치는 아이들의 안정적인 학습권을 담보로 한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또한 학교법인이 위탁을 맡는다면 이중, 삼중의 관리 감독 체계가 설정되는 것이고, 관리 감독 체계가 분산되면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구조가 될 것이라는 것이 합리적인 추론도 가능하다. 국공립어린이집의 경우 민간 위탁으로 인한 폐해가 적잖이 지적돼 오지 않았나.

그래서... 세부내용 재검토보다 '처음부터 다시'

유아교육법 개정안 발의부터 철회까지 일련의 사건은 수많은 사회적 비용을 초래했다. 뿐만 아니다. 국민은 교육당국과 정치권에 유아교육이 정상화돼야 한다고, 또 국공립유치원을 증설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돌아온 답은 '0'점도 아닌 '-100점'짜리였다. 이번 기회로 국민들은 더욱 선명하게 알게 됐다고 본다. 유아교육 공공성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부터 교육당국, 정치권의 인식이 우리와 얼마나 멀리 있는지 말이다.

개정안에 대한 세부내용에 손을 보라는 것이 아니다. 이번 기회로 근본적인 물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것이다. 유아교육의 공공성이란 무엇인가? 국민들이 요구하는 유아교육 공공성의 수준은 어디인가?

(* 박찬대 의원실에 따르면 이 법안은 교육부 유아교육정책과의 협의로 마련됐다고 한다. 이외에도 천정배, 김상희, 박홍근, 장정숙, 조승래, 맹성규, 이학영, 신경민, 김해영, 윤호중, 윤관석 의원과 공동으로 발의됐음을 밝힌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남궁수진씨는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입니다.
#국공립유치원 #유아교육법 #박찬대 #정치하는엄마들 #유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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