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안산분향소 조문은 연출된 드라마"

[전문] KBS 38·39·40기 기자의 세월호 사고 보도 '반성글 ①-④'

등록 2014.05.07 17:13수정 2014.05.07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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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 사고를 취재한 KBS 38·39·40기 취재·촬영기자 40여명은 7일 오전 사내 기사작성용 보도정보시스템에 자사의 세월호 사고 보도를 반성·비판하는 글 10건을 올렸다. 글을 공개한 언론노조 KBS본부(새노조)의 동의를 얻어, 10건의 글 전문을 게재한다. 다만, KBS 내부에서 문제제기를 하기 위한 글이라는 기자들의 뜻에 따라, 기자들의 이름은 밝히지 않는다. [편집자말]
ㄱ기자는 이날 오전 사내망에 올린 글에서 큰 자괴감을 나타냈다. 이 기자는 "며칠 전 <이 시각 현장> 라이브 중계를 위해 광화문에서 2시간 정도 대기했다, 지나가시던 많은 분들이 'KBS 개XX들', '보도 똑바로 해라'고 욕을 했다"면서 "욕한 분 옆에 서 있던 친구 분이 제게 오셔서 죄송하다고 했다, 제가 죄송하다, 저 또한 진도에서 침묵하고 있었던 한 명"이라고 밝혔다.

다음은 이 글의 전문이다. 또한 다른 기자 3명이 쓴 글 전문도 덧붙인다.

[반성합니다①] "우리는 소홀했습니다"

세월호 침몰 속보를 접한 취재팀이 비행기에 내려 처음 향한 곳은 팽목항이 아닌 목포였습니다. 현장으로 가지 않은 기자들...어쩌면 저희는 이때부터 팽목항 가족들을 향한 귀를 반 쯤 접은 채 시작한 것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16일 해경에서 밤을 샌 후, 짧은 휴식을 갖고 13시 쯤 목포국으로 향했습니다. 목포국 방송부를 가득 메운 취재기자들, 하지만 촬영기자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뉴스 제작의 중요한 두 부분을 맡고 있는 취재기자와 촬영기자의 헤드쿼터가 목포와 진도로 나눠지면서, 뉴스 제작의 두 축 사이에는 물리적 거리가 생겨 있었습니다.

목포에서 아이템을 발제한 취재기자는 진도에서 촬영기자와 만나 아이템을 만들었고, 현장의 촬영기자는 취재기자와 아이템 공유 없이 현장 그림을 만들기 바빴습니다.


현장에서 2시간 떨어진 목포국, 여기서 만들어 낸 아이템이 실종자 가족들과 국민에게 어떤 공감을 줄 수 있었을까요.

며칠간 같은 곳에서 촬영한 영상은 가족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현장의 모습이었을까요.
우리는 현장에서 울렸던 울음과 우리를 불렀던 목소리에 귀를 닫았습니다. 취재기자는 목포국에 있는 컴퓨터가 아닌 현장에서 귀를 열어야 했고, 촬영기자는 현장 이면을 전달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공유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멀어진 거리만큼이나 우리는 서로에게 소홀했습니다.

며칠 전, <이 시각 현장> 라이브 중계를 위해 광화문에서 2시간 정도 대기했습니다. 지나가시던 많은 분들이 욕을 하시더군요.

"KBS 개새끼들"
"이 새끼들, 보도 똑바로 해라."
"KBS 정말 싫어...."

욕한 분 옆에 서있던 친구분이 제게 오셔서 죄송하다고 하네요.
죄송하긴요. 제가 죄송합니다. 저 또한 진도에서 침묵하고 있었던 한 명이었기에.

[반성합니다②] 사라진 목소리

"개새끼들아 찍지 마 찍지 말라고 카메라 치워"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실종자의 아버지가 가족대책본부 천막 앞에 진을 치고 있던 취재진들에게 욕을 하며 카메라를 모조리 부셔버릴 듯 달려들었습니다.

대통령의 방문을 앞두고 취재진과 경호원들 실종자 가족들이 천막 앞 좁은 통행로에서 뒤엉키었습니다.
이중삼중경호를 받으며 대통령이 천막에 들어서고 한동안 정적이 흐르다 천막 밖으로 거친 음성들이 터져 나왔습니다.

'나가라 내 아이를 살려내라' 등등
분노로 떨리는 어머니의 음성. 아버지의 고함소리. 흐느낌에서 통곡소리까지. 우리 뉴스에서 볼 수 없었던 기자로서 제가 현장에서 보고 들은 것들입니다.

5월4일 대통령은 사고 이후 두 번째로 진도를 방문했습니다. 팽목항에서의 혼란스러움과 분노들을 우리 뉴스는 다루지 않았습니다. 육성이 아닌 씨지로 처리된 대통령의 위로와 당부의 말씀만 있었을 뿐입니다. 톱으로 대통령의 방문을 다룬 것도 모자라 두개의 꼭지로 대통령의 동선을 따라 장소별로 보도했습니다.

다행히 두 번째에는 바지선 위의 희생자 가족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만 너무나 정제되었다는 느낌을 지우긴 어려웠습니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분노와 절규는 사라졌고 대통령께 부탁을 하고 대통령이 위로와 당부를 하는 모습은 너무나 잘 짜인 연출된 모습 같아 보였습니다.

왜 우리뉴스는 대통령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 건가요?

이 나라는 대통령은 없고 물병 맞고 쫓겨나는 총리. 부패하고 무능한 해경. 구원파만 있는 건가요? 대통령은 찬사와 박수만 받아야 하고 아무 책임도 없는건가요? 정권을 감시하고 비판해야 하는 언론은 어디로 간 겁니까? 왜 현장을 있는 그대로 보도하지 않는 건가요.

대통령의 첫 진도방문 리포트는 진도체육관에서 가족들의 목소리를 모두 없앴습니다. 거친 목소리의 채널투는 사라지고 오로지 대통령의 목소리. 박수 받는 모습들만 나갔습니다. 대통령의 안산분향소 조문은 연출된 드라마였습니다. 조문객을 실종자의 할머니인 것처럼 편집을 해서 시청자들이 객관적 사실을 왜곡되게 받아들이게 했습니다.

타 매체가 그 실종자 할머니처럼 보인 그 분이 유족이 아니라고 보도했지만 우리뉴스에서 그 소식을 보긴 어려웠습니다.

희생자 가족에게 기레기다 보도 똑바로 해라.
욕을 듣고 맞고 하는 것도 참을 수 있습니다. 다만 카메라를 들고 다니기가 부끄럽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10kg가 넘는 무게를 어깨에 메고 견디는 이유는 우린 사실을 기록하고 전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보도본부장과 보도국장, 세월호 보도에 관여한 모든 기자들이 참석하는 토론회를 제안합니다. KBS가 재난주관방송사로서 부끄럽지 않은 보도를 했는지 반드시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물을 우리 9시뉴스를 통해 전달하고, 잘못된 부분은 유족과 시청자들에게 분명히 사과해야 합니다.  침몰하는 KBS 저널리즘을 이대로 지켜보기만 할 수는 없습니다.

[반성합니다③] "현장에 답이 있더라고요"

사실 우리가 즐겨 쓰는 '세월호 취재 현장'이라는
말은 거짓말일지도 모릅니다.

세월호가 가라앉은 저 먼 바다는
어떤 언론사도 접근할 수 없는 '현장'이니까요.
설사 가까이 간다해도 정부와 해경, 언딘이
철저히 통제하고 있죠.
정부가 불러주는 구조인원, 선박 숫자를
언론이 그대로 받아 적을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우리가 진짜 접근할 수 있는 '현장'이 있다면
그건 '사람'일 겁니다.
깊은 바다 밑에 자기가 제일 아끼는 사람을
남겨두고 온 바로 그 사람들이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현장'에 있었지만
'현장'을 취재하지 않았습니다.
유가족들이 구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울부짖을 때 우리는 냉철한 저널리스트 흉내만 내며
외면했습니다.
'현장'이 없는 정부와 해경의 숫자만 받아 적으면서요.

그 숫자가 제대로 된 숫자인지 그 자리에서 검증하고
뜯어보기는 어려울 수도 있겠죠.
하지만 '현장'의 목소리에 조금만 더 귀 기울였다면
이렇게 늦어지지는 않았을 겁니다.
정부의 '숫자놀음'에 대한 우리의 비판은
사건 발생 12일 후에나 나왔습니다.
그것도 비중 없는 뉴스 후반부 단 한 꼭지.
취재기자의 발제에 떠밀려서였습니다.

중소 언론사라면 분명히 버거운 일일지도 모르죠.
하지만 KBS잖아요. 공영방송.
가장 우수하고 풍부한 인력.장비.
정부 발표를 검증하고 비판하라고
그 풍요로운 자원을 받은 것 아닌가요.
다름 아닌 국민들로부터요.

그런데 왜 우리는 그 자원을
가장 적합한 목적에 쓰지 않나요?
설마 아무 내용도 없이 앵무새처럼
같은 말만 반복하는 '중계차'나
'조간 우라까이'가 KBS의 존재 목적에
더 부합한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죠?

우리가 유족들과 '동화'됐다고요?
그럴지도 모르죠. 기자는 약자의 목소리를
가장 먼저 대변하라고 배웠으니까요.
하지만 적어도 '정권'이나 '정부'와 동화된
일부 기자들보다는 낫지 않나요?

많은 선배들이 입버릇처럼
'모든 취재는 현장에 답이 있다'고 말씀하시더군요.
그런데 왜 현장에 있는 답을
보지도 듣지도 못하시나요?

보도본부장과 보도국장, 세월호 보도에 관여한 모든 기자들이 참석하는 토론회를 제안합니다. KBS가 재난주관방송사로서 부끄럽지 않은 보도를 했는지 반드시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물을 우리 9시뉴스를 통해 전달하고, 잘못된 부분은 유족과 시청자들에게 분명히 사과해야 합니다.  침몰하는 KBS 저널리즘을 이대로 지켜보기만 할 수는 없습니다.

[반성합니다④] "신념을 저버리고 싶지 않습니다"

진도 팽목항 중계차 주자로 근무하던 지난달 25일 새벽 3시쯤, 전화가 한 통 걸려왔습니다. 타사에서는 사망자 수가 184명으로 나오고 있는데, 아직 우리는 181명으로 집계되고 있다며 빨리 확인해 달라는 전언이었습니다. 확인 결과 팽목항 가족대책본부의 상황판에는 181번째 사망자 발견이 마지막 소식이었습니다. 사고수습대책본부 등 다른 창구에서도 새로 들어온 소식이 없다는 답을 듣고, 사망자 수는 그대로라고 보고했습니다. 사망자 집계가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이뤄지는 곳이 팽목항 상황판이고, 상황판에 변화가 있을 때마다 실시간으로 보고를 하고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습니다.

그때부터 오후 1시쯤까지 비슷한 전화가 다른 선배들에게 연이어 걸려왔습니다. 같은 요청이었습니다. 왜 이렇게 확인이 느리냐는 질책도 섞여 있었습니다. 여전히 상황판에는 변화가 없었고, 사망자가 더 나왔다는 소식도 전혀 없었습니다. 전화가 올 때마다 같은 보고를 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184번째 사망자가 발견된 것은 오후 3시 23분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타사는 12시간 이상 오보를 내보내고 있던 셈이었고, 저는 발견되지도 않은 사망자를 찾아 헤맨 꼴이었습니다.    

상황이 종료되자 머릿속이 복잡해졌습니다. 타사 속보에 대해 확인하는 건 현장 취재기자가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하지만 타사 속보를 따라갈 수 없는 상황을 몇 차례나 알렸는데도 같은 질문이 잇따라 들어오는 것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사건의 국면이 바뀌는 결정적인 사안도 아니고,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확인될 게 뻔 한 사망자 수에 대해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뭘까. 어떤 소식이든 타사보다 늦어서는 안 된다는 관성이 작용한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문짝만하게 실리는 속보 자막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학생 전원 구출'이라는,  사고 첫날의 대형 오보가 다시 떠올랐습니다. 사고 당일 오전에 나온 오보는, 팽목항과 진도실내체육관에서 만난 실종자 가족들이 취재진에게 분노하기 시작한 이유였습니다. 학생들이 모두 구조됐다는 소식만 믿고 아이를 보러 왔다가 비보를 들었다며 오열하는 학부모를 지켜봤습니다. 그러고 나니 그들의 분노에 대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입사 전 최종면접에서 보도의 정확성과 신속성 가운데 뭐가 더 중요하느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공영방송은 당연히 정확성이 우선이라고 답했습니다. 특히 대형 사건사고의 경우 오보는 치명적일 수 있고, 재난주관방송사로서 KBS는 신뢰할 수 있는 방송을 해야 한다고도 덧붙였습니다. 불과 아홉 달 전의 일입니다. 저는 지금도 제 답변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막내 기자로서 갖고 있는 신념을 아직 저버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보도본부장과 보도국장, 세월호 보도에 관여한 모든 기자들이 참석하는 토론회를 제안합니다. KBS가 재난주관방송사로서 부끄럽지 않은 보도를 했는지 반드시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물을 우리 9시뉴스를 통해 전달하고, 잘못된 부분은 유족과 시청자들에게 분명히 사과해야 합니다. 침몰하는 KBS 저널리즘을 이대로 지켜보기만 할 수는 없습니다.
#세월호 침몰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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