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한 존재로 살아가기

[그림책이 건네는 세상살이 이야기23] <비에도 지지 않고>

등록 2015.10.30 11:28수정 2015.10.30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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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길을 가다 참새의 사체를 보았습니다. 작고 가녀린 몸이 비를 맞아 완전히 젖은 채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모습은 참 애처로워보였습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어머나, 불쌍해라' 하는 생각이 지체 없이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순간, 나 자신에게 놀라기도 했습니다. 저기 저 자리에 쥐가 널브러져 있었다면 나는 '어머나, 불쌍해라' 할 수 있었을까? '에이, 더러러'라던가, '읍, 혐오스러워' 등을 떠올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생명이 있는 모든 존재는 존중받아 마땅한 것인데 어떤 생명은 소중하고, 어떤 생명은 없어져도 된다는 기준은 누가 만든 걸까요? 왜 우리는 생명의 존엄함을 존재마다 다른 잣대로 들이대는 걸까요? 가만히 돌이켜 생각해보았습니다. 하늘을 나는 새의 생명은 소중하며 시궁창을 누비는 쥐의 생명은 소중하지 않다는 잣대는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생명의 존엄함은 어디에서 사는가, 어떤 옷을 입었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가치를 아는 데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나만을 위해서 사는 이기적인 삶은 존엄한 인간의 모습이 아닙니다. 동물을 학대하는 삶, 존엄한 존재로서 부끄러운 짓입니다. 물질의 풍요만을 추구하는 삶, 존재의 가치를 높이는 일과는 거리가 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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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에도 지지 않고> 미야자와 겐지 시/야마무라 코지 그림/ 엄혜숙 옮김/그림책 공작소 ⓒ 최혜정

미야자와 겐지는 이렇게 살겠다고 이야기 합니다.

"비에도 지지 않고, 바람에도 지지 않고, 눈에도 여름 더위에도 지지 않는 튼튼한 몸으로,욕심은 없이, 결코 화내지 않으며, 늘 조용히 웃고, 하루에 현미 네 홉과 된장과 채소를 조금 먹고, 모든 일에 자기 잇속을 따지지 않고.......(중략) 동쪽에 아픈 아이 있으면 가서 돌보아 주고 서쪽에 지친 어머니 있으면 가서 볏단 지어 날라주고.....(중략) 모두에게 멍청이라고 불리는, 칭찬도 받지 않고 미움도 받지 않는, 그러한 사람이 나는 되고 싶다."
(미야자와 겐지 시/야마무라 코지 그림/ 엄혜숙 옮김/그림책 공작소)

인간의 존엄함은 이런 모습에 있지 않을까요?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가 떠오릅니다. 거센 자연과 맞서며, 무거운 세월의 무게와 맞서며 노인은 망망대해에서 청새치와 싸우고, 상어떼와 싸웁니다. 파도에도 지지 않고 상어 떼에도 지지 않고 오직 인간의 존엄함을 지켜냅니다. "인간은 파멸 당할지언정 패배하지 않는다"라고 하면서요.


부쩍 추워진 밤거리를 오늘도 바쁘게 움직여야 하는 지친 직장인들, 어디로 가야할지 갈 곳을 잃어 방황하는 취준생들, 모든 희망이 사라진 것 같은 좌절에 빠진 사람들.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우리가 존엄한 존재로 살아간다는 것은 삶을 대하는 태도에 달려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물질의 많고 적음, 지위의 높고 낮음에 있지 않습니다. 오직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달려있습니다. '비에도 지지 않고 눈에도 여름 더위에도 지지 않으며' 그렇게 살아간다면, 그러한 사람이 된다면 당신은 소중한 존재, 존엄한 존재입니다.

비에도 지지 않고

미야자와 겐지 시, 야마무라 코지 그림, 엄혜숙 옮김,
그림책공작소, 2015


#그림책 #비에도 지지 않고 #미야자와 겐지 #그림책공작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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