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시유'는 민물복어 황복의 흰 내장

복어는 이독치독(以毒治毒)의 별미

등록 2007.05.28 17:12수정 2007.05.28 17:12
0
원고료로 응원
우리는 낚시를 하면서 땅 위의 변화로써 물속 나라의 계절적 상황을 짚어나간다. 기온과 수온은 불가분의 관계이므로 개나리·진달래가 피면 봄 붕어가 만삭이 되고 벚꽃이 피면 망상어가 새끼를 낳을 시기라는 것을 안다. 4월 20일경 곡우가 되면 임진강에는 누치가 알을 낳으러 강을 거슬러 오르며 아카시아가 만개할 즈음에는 쏘가리·꺽지 그리고 바다의 감성돔이 산란할 때라는 사실을 떠올리며 남해 바다를 그리게 된다.

이처럼 동식물의 변화로써 물속 세계의 계절을 짐작하는 것이 대단히 효율적임을 낚시꾼들은 자신들의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

옛사람들도 그랬다. 중국 당나라 때의 시인 소동파는 황복이 강을 거슬러 오르는 5월의 모습을 이렇게 노래했다. 황복이 한창 맛이 있는 시기여서 그 맛을 떠올린 때문일까?

대밭 너머 복숭아꽃 서너 가지 피었구나
봄 강물 따뜻해진 것을 오리가 먼저 알고
땅에 가득 쑥잎, 억새며 갈대 새순도 돋았으니
지금쯤 황복이 강을 거슬러 오르려 하겠지


이 복어는 우리나라 옛 선비들의 시화(詩畵)·도자기 등에 흔히 올리던 대상물로, 그만큼 우리 생활과 가까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중국인과 한국인은 상품으로 만드는 재주가 없었다. 늦게서야 복어를 먹는 법을 중국과 한국에서 배워간 일본인들이 이젠 복어 요리와 복어 연구에 세계적으로 가장 앞서 있고, 또 일본 국민들은 복어 맛에 죽고 못 산다.


중국이나 한국에서 오랜 옛날부터 먹어온 이독치독(以毒治毒)의 별미인 복어는 주로 황복이었다. 오염되었던 한강에도 어쩌다 황복이 돌아오고 임진강에도 4~5월이면 산란을 하러 황복이 돌아온다. 이제는 꽤 많은 양이 돌아온다고 하는데, 이 시기에 임진강에 가서 복어매운탕을 먹으려면 금값의 서너 배는 주어야 한다. 그 까닭은 그것이 별미인 것도 한 이유가 되겠지만 아직은 잡히는 양이 별로 많지 않기 때문이다.

황복은 불과 40~50년 전만 해도 한강이나 임진강·예성강·대동강·압록강 그리고 중국의 황하나 발해만 북서쪽의 요하(遼河)에도 많이 올라오던 물고기이다. 강에 살아서 강복이라고도 하며 우리나라 대동강에서 나는 황복은 일본의 어류학자인 우치다 게이타로가 이미 1937년에 그 실체를 소상하게 밝힌 바 있다. 우치다 게이타로는 자신이 많은 물고기를 접할 수 있는 입장이어서 그랬는지 그 역시 복어 중에서는 자주복과 졸복이 가장 맛이 있다 해서 자주복과 졸복을 꽤 좋아하고 즐겼다고 한다.

황복을 중국에서는 강돈(江豚) 또는 황돈(黃魨)·하광(河胱)이라고 한다. 강에서 나는 고기로서 돼지고기에 버금가는 맛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강돈이며 누런 색을 띠고 있는 까닭에 황돈이다. 복어 뱃속에 들어있는 하얀 색깔의 ‘이리’는 특별히 서시유(西施乳)라고 한다. ‘서시의 하얀 젖’이라는 의미이다. 지금은 모든 복어의 흰 뱃속 이리를 서시유라고도 하지만 본래는 황복의 흰 내장만을 지칭하던 말이었다. 서시는 오나라 부차(夫差)의 애첩으로 월왕(越王) 구천(勾踐)이 보낸 미녀.

중국 춘추시대 월나라의 미인으로 구천이 오나라에 패한 뒤에 미인계로 오왕 부차에게 서시를 보내어 부차를 정신 못 차리게 만들었다. 서시에게 푹 빠진 부차는 고소성대(姑蘇城臺)를 짓고 놀자판을 벌이다가 그만 구천에게 망했다. 자신의 애첩을 적에게 보내 상대를 무너트린 이 고사를 빌어다가 서시는 복어의 이리와 같은 존재, 즉 복어의 이리는 천하별미이자 매우 위험한 것임을 뜻하게 됐다. 다시 말해 목숨을 담보로 먹는 특별요리이자 특미(特味)라는 별도의 의미를 갖게 된 말이 바로 서시유라 하는 별칭인 것이다.

복어라는 놈은 태어나면서 곧바로 배를 부풀리는 기술을 연습하는 특이한 습성을 갖고 있다. 알에서 깨어나 1~2cm 정도밖에 안 되는 자어 때부터 배를 부풀리는 습성을 부단히 기르는 것이다. 일단 내장기관이 형성되고 나면 배를 부풀릴 수 있는데, 이처럼 ‘공기를 머금어서 배를 부풀리기 때문’에 복어를 옛날에는 기포어(氣泡魚)라고 하였다.

복어는 눈 가장자리에 둥근 형태의 근육으로 이루어진 안검(眼瞼)이 있어서 이것을 움직임으로써 눈을 감았다 떴다 할 수 있다. 물고기 치고 재수없게시리 눈을 껌뻑이는 놈이지만, 물론 사람처럼 완전히 감았다 떴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므로 떨떠름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www.coeo.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www.coeo.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황복 #복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한국 및 중국 고대사 연구자이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원룸 '분리수거장' 요청하자 돌아온 집주인의 황당 답변
  2. 2 나이 들면 어디서 살까... 60, 70대가 이구동성으로 외친 것
  3. 3 서울 사는 '베이비부머', 노후엔 여기로 간답니다
  4. 4 '검사 탄핵' 막은 헌법재판소 결정, 분노 넘어 환멸
  5. 5 택배 상자에 제비집? 이런 건 처음 봤습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