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을 물도 모자를 판에 세차를...

겨울가뭄과 세차, 물 사용에서도 부익부빈익빈

등록 2009.01.18 10:52수정 2009.01.18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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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심각한 겨울가뭄으로 경북·강원·동해안 지역의 주민들이 식수난을 겪고 있다. 인터넷 뉴스를 검색하다보면, 겨울가뭄으로 동네 간에 불화가 왔다든지, 가뭄으로 가족 간의 정까지 끊어졌다는 소식도 있었다.

 

기상청에서는 1970년대와 달리 2000년대에 비가 집중적으로 내리는 날이 증가하고 있다는 분석결과를 내놓았다. 지구온난화가 진행되면서, 집중호우를 포함하여 각종 이상기후현상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고, 강수의 집중으로 인하여 한국도 열대지역에서나 볼 수 있는 우기와 건기가 반복되는 기후구조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익광고에서 불과 몇 년 전까지 "한국은 UN이 정한 물 부족 국가이다"며 떠들던 이야기를 사람들은 직접적으로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분명 한국은 물 부족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여전히 '물을 물 쓰듯' 쓰고 있었다.

 

그런데 2009년이 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식수난으로 국토의 절반이 넘는 지역이 물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씻을 물이 없어서 며칠을 더럽게 지냈다는 이야기부터, 생수를 사서 밥을 지어 먹는다는 이야기까지 어떻게 보면 실감이 안가는 이야기일수도 있다. 사태가 이렇게 심각해지자 소방차까지 출동해서 가뭄지역에 물을 대는 형편이다. 물론 먹을 물조차 풍족하지 않은 곳에 농작물의 피해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겨울가뭄으로 때 아닌 세차 호황

 

기자가 살고 있는 충청지역도 오랜 가뭄을 겪고 있다. 비가 내리지 않아 차가 많이 더러워져 매일 주유소마다 세차하려는 차들이 폭주하고 있다. 기자가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어 셀프세차장의 사정은 잘 모르지만, 인근 주유소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세차구조가 용이한 곳은 하루에 80~100대, 기자가 아르바이트하는 주유소는 30~40대의 세차를 소화해내고 있는 실정이다.

 

전에 아르바이트를 하던 주유소 같은 경우, 요새 이야기를 들어보면 하루에 100~180대까지 세차를 하고 있다고 한다. 똑같은 한국에서 한쪽은 농사지을 물, 심지어 먹을 물조차도 모자라서 소방차까지 출동하는 판에 한쪽은 품위유지에 더더욱 신경을 쓰고 있다. 게다가 비가 오지 않는 날이 길어지는 만큼 차는 더욱 더러워졌다.

 

대한민국 사람들, 세차 얼마나 할까

 

이 부분에 관해서는 어떤 앙케트나 통계자료가 없다. 어쩔 수 없이 어림짐작 잡아 헤아려보면, 2008년 말 기준으로 전국에 자동차 등록대수는 1679만대이다. 이 중에서 정기적으로 세차를 하지 않는 화물차 216만대, 특수차 5만3천대를 제외한 승용차과 승합차가 1358만대 정도가 된다. 보통 사람들의 경우 2주에 한 번꼴로 세차를 하곤 하는데 이를 일 년으로 계산해보면 26번 정도가 된다. 그러면 작년 한해 대한민국 사람들은 총 3억5308만 번의 세차를 한 셈이다.

 

보통 자동세차기의 경우 한 번에 100~200리터의 물이 사용된다. 그래서 위의 전체 세차수를 물 사용량으로 따져보면 3530~7060만톤 정도의 물이 세차에 사용되는 셈이다. 따져보면 팔당댐의 3분의 1을 채울 정도의 물들이 세차에 사용된 셈이다. 물론 여기에는 세차폐수를 정화하는데 들어가는 물 사용량은 철저하게 제외한 수치이다.

 

주유소에서는 판촉과 수익증진을 목적으로 무료세차서비스를 시행하고 있고, 공짜를 좋아하는 한국인의 특성상 거의 대부분 필요하든 필요하지 않든 무료세차를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차량 1대당 연간 세차수를 스물여섯 번으로 잡은 것은 최소로 잡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순수한 세차 목적에서부터 폐수처리에 들어가는 물 사용량을 잡아본다면 위에서 따져본 3530~7060만톤의 사용량은 그야말로 최소 수치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최대효용의 추구에서 최소효용 추구 사회로의 전환

 

고전파 경제학을 비롯해 현대경제이론이 기본적으로 가정하고 있는 것은, 인간이 합리적인 경제인이며 최대의 효용을 추구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거기에 자원은 한정 없이 무한하다는 어리석은 가정이 따른다. 하지만 지금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에너지나 광물 등 전통적으로 자원으로 여겨졌던 것조차도 줄어들고 있으며, 심지어 과거에는 자원이라 여기지 않았던 공기나 물조차도 이제는 자원인 시대가 와버렸다.

 

1968년 12월 13일자 <사이언스>지에는 '공유지의 비극'이라는 논문이 게재되었다. 지금도 여러 곳에서 인용되고 있는 이 논문의 주요 결론은 "공유지의 자유를 믿는 사회 안에서, 각자가 최대한의 이익을 추구하게 되면 파멸을 향해 달려간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물이나 공기 같은 것들은 무한히 쓸 수 있는 공공재였다. 공공재의 위기는 잠복기간이 길고 치사량이 높은 질병과 같아서 직접적으로 해가 오지 않는 이상 그 실체를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인류는 그 많은 빙하가 녹고, 어떤 나라는 물에 잠길 위기에 처해있으며, 환경호르몬의 피해로 아토피와 같은 질병이 생기고서야 그 심각성을 깨닫게 된 것이다.

 

'공유지의 비극' 논문에서는 비극의 무대가 한 초원에 지나지 않았지만, 현재의 '공유지의 비극'의 무대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전체이다. 어느 한 국가의 오염발생행위가 그 국가에만 피해가 오지 않는다는 것은 봄철에 불어오는 황사를 보면 더욱 절실히 알 수 있다. 그래서 이제는 '공유지'에서 최대의 효용을 추구할 수 없는 현실에 직면한 것이다. 그나마 최소의 효용이라도 건지려면, 지금부터라도 '공유지'를 가꾸는 노력이 필요하다.

 

생활 속에서 작은 실천이 더욱 절실한 때

 

옥스퍼드 대학의 연구자, 노먼 마이어스는 2050년까지 2억 명 정도의 물 부족으로 인한 난민이 발생한다고 예상했다. 한동안 물 부족으로 인한 난민현상이 한국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처럼 들리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이번 겨울가뭄으로 겪으면서 한국도 지구적 위기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적어도 한국 내에서라도 한정된 물을 나눠 쓰기 위해서 우리의 생활 속에 작은 실천이 더욱 절실한 상황이다.

 

세차를 예로 들면 3~4일에 한 번씩 먼지 털이로 차를 털어주거나, 물걸레로 닦아준다면 논이나 산길을 달릴 때를 제외하고 굳이 세차를 할 필요가 없어진다. 아무리 천세차라도 미세한 흠집이 발생할 수 있어 차를 오랫동안 유지하는 방법이 되기도 한다. 자기 손으로 세차를 하면서 몸을 움직이니 운동부족을 약간이나마 치유할 수 있을 수도 있다. 또 주차를 할 때, 더러운 낙수가 떨어지는 곳을 피해서 주차를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외에도 생활 속에서 물이나 전기를 아끼는 방법은 아주 많다.

 

가장 큰 문제는 우리 속에 가득 찬 '귀차니즘('귀찮음'에 '~니즘'을 붙인 신조어)'이다. 스스로 하기에는 너무 귀찮고 비용도 얼마 안 들어가는 일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세차가 가장 예로 적절하다. 스스로 세차를 하기에는 너무 귀찮은데, 주유를 하면 무료로 세차를 해주니 굳이 세차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우리는 몇 십만원짜리 수도요금 고지서를 손에 쥐고 스스로 걸레를 드는 세상이 올 것이다. '나 하나쯤'이라는 말은 사라져야 한다. 지구를 너도 나도 사용할 수 없는 공유지로 만들기 전에 '나 하나부터'라는 말을 가슴 깊이 세기도록 하자.

2009.01.18 10:52 ⓒ 2009 OhmyNews
#환경 #세차 #가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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