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학교 아이들도 잊지 말아주세요!

지진으로 힘들어하는 조선학교 아이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보냅니다

등록 2011.03.17 16:20수정 2011.03.17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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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조선초중급학교 아이들 이 학교는 지금 유치원부터 중학교까지 50여 명의 아이들이 다니고 있다. ⓒ 백창화


일본에 지진해일이 몰아닥친 지 벌써 일주일이 되어가네요. 처음엔 설마 설마 했던 일들이 날이 갈수록 커져가면서 우리들 맘에 두려움과 안타까움도 깊어갑니다. 지금 당장 죽음의 공포를 뒤집어쓰고 있는 이들은 일본에 있는 이들이지만, 그들의 아픔과 고통은 우리 사는 세상, 자연과 이 대지에 아무런 가책도 느끼지 못하는 우리들을 깨우치기 위한 희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인간은 때로 이토록 어리석어서 엄청난 경고가 있어야만 비로소 잘못을 깨우치기도 합니다. 그러나 또 인간은 참으로 강인해서 어찌할 수 없는 재앙과 재난을 불굴의 의지로 딛고 일어나는 아름다운 존재이기도 하다는 걸 역사를 통해 배워 왔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이웃 나라, 옆 집 사람의 아픔과 고통을 함께 나누자고 마음을 모으고 있습니다. 평소에는 잊고 있었던 우리 안의 이런 연민과 따스함이 어려울 때면 늘 빛을 발하기 때문에 우리 사는 세상은 아직 아름답고, 또 희망이 있다고 하지요.

지금 어려움에 빠진 일본을 돕자는 목소리가 높고 실제 구호와 모금활동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참 고마운 일인데요, 저는 특히 일본 땅에 살고 있는 수많은 재일동포, 그중에서도 일본과 한국 어느 쪽에도 소속되지 못하여 일본 내 약자이자 힘 없는 소수집단으로 살아가고 있는 조선학교 학부모들과 아이들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저는 2005년부터 일본 내 조선학교와 교류하면서 그들의 안타까운 현실을 직접 보고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가졌습니다. 영화 <우리학교>, 그리고 정대세라는 축구선수 이야기들을 통해 지금은 한국 사회에 많이 알려졌지만 조선학교와 그곳에 소속된 재일동포들은 일본에서는 '북한'으로 취급받고 있습니다. 물론 '조총련'이라는 조직에서 만든 학교이고 그 조직은 북한을 조국으로 생각하는 단체이기 때문에 그런 규정이 꼭 잘못된 것은 아닐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민간 교류를 통해 만나왔던 조선학교 학부모들과 아이들은 단지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살고 있지만 '조선인'이라는 민족적 정체성을 버리지 않기 위해 '조선학교'를 선택했다고 합니다. 자신들을 식민화했던 일본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싫어서 우리 말과 우리 글을 배우고 우리 역사를 배우면서 학교를 지켜가고 있는 이들입니다.

그들에게 조국은 남쪽도 북쪽도 아닌 분단되기 이전의 나라, 앞으로 반드시 통일되어 하나가 되어야 할 나라를 뜻하며 그렇기에 그들에게 조국은 남쪽이기도 하고 북쪽이기도 한 것입니다. 부모가 이혼했다고 해서 어느 한 쪽을 편들 수 없는...그들에게 조국은 아픈 현실인 것입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그들의 이런 아픈 현실을 보아주지 않았습니다. 일본에 살면서 조선학교를 유지하고 조선인이길 유지하고자 하는 그들을 이해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조선학교는 일본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재일동포들은 누구보다 정당히 일본이라는 국가에 세금을 내면서도 당연히 혜택받아야 할 교육지원의 기회를 받고 있지 못합니다.

학부모들은 어려운 살림에 학교 운영비를 모아서 어렵게 어렵게 학교를 운영해나가고 있지요. 학교의 살림살이는 어렵기 짝이 없어서 대부분의 학교가 수 십년 전에 지어진 오래된 건물 과 열악한 교육여건을 견디며 우리 말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본에 대지진이 일어났네요. 3월 14일, MBC <뉴스데스크>는 센다이에 있는 한 조선학교의 모습을 취재했습니다. 운동장은 갈라지고 학교 건물 곳곳엔 금이 가서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한 모습입니다. 그래도 이재민이 된 재일동포들은 갈 곳이 없어서 이 학교에 모여 촛불 아래 밥을 해먹으며 서로가 서로를 보듬고 있었습니다.

일본 내 상황은 모든 곳이 어렵기 짝이 없겠고 순서대로 지원이 이루어지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겁니다. 시간이 지나 상황을 정리할 때 이런 대재앙 속에서 일본 정부가 조선학교를 차별 지원하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지만, 일본의 학교들과 똑같은 복구 지원을 받을 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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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학교는 우리 말과 역사, 우리 전통문화를 교육하고 있다 ⓒ 백창화


보도국 기자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일본 국민은 일본 정부에서 돌보고, 한국인 동포들은 한국 영사관에서 돌봐주는데 조선인 동포들은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돌아봐주지 않아 이들은 스스로를 돌볼 수밖에 없다고요. 마음이 아팠습니다.

어려움은 당장 무너진 센다이의 학교 뿐이 아닐 겁니다. 일본 경제 전체가 휘청거리고 나면 동포들의 경제도 휘청거릴 테지요. 학부모들의 후원으로 간신히 운영되던 조선학교 살림살이는 더욱 어려워질 듯합니다.

그곳에 우리 아이들이 있습니다. 유치원부터 초중고교에 다니는 그 예쁜 아이들은 국적이 뭔지, 전쟁과 분단이 뭔지, 디아스포라가 뭔지 실감하지 못하는 그저 티 없이 맑고 사랑스러운 우리 아이들일 뿐입니다.

이 아이들은 지금 일본의 모든 아이들과 똑같이, 한국의 모든 아이들과 똑같이 국가의 보호 아래 질 높은 교육을 받을 의무와 권리가 있습니다. 재일동포라는 특수한 집단 뿐만 아니라 일본의 모든 사람과 한국의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사랑받고 보호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버스를 타고 전차를 타고
우리는 학교로 가요.
학교 길이 멀다고 어머니는 걱정하지만
괜찮아요, 괜찮아요, 우리는 조선사람
우리의 학교가 기다립니다"

노래하며 하루 세 시간씩 버스를 타고 통학하는 일곱 살, 열 살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을 지켜주고 싶습니다. 일본대지진이라는 최악의 재앙에도 굴하지 않고 그 아이들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학부모님들이 용기와 희망을 갖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그들을 격려하고 싶습니다. 마침내 이 재앙이 모두 끝나는 그 날, 그 날이 오면... 더 이상 일본으로부터 차별받지 않고, 한국으로부터 냉대받지 않으며 한국과 일본의 미래를 견인하는 세계의 희망으로 우뚝 설 수 있도록 그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습니다.

일본 대지진, 그리고 일본 돕기의 인류애. 이것이 대지진 이후 새로운 한일관계의 밝은 역사를 쓰는 계기가 되며 그 가운데 가장 힘들고 소외되었던 일본 사회 최후의 약자이자 소수집단인 조선학교와 아이들에게 새로운 희망의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입니다.
#조선학교 #일본대지진 #재일동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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