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이면서 패피로 유명한 율리아나 세르진코. 이재원씨가 가장 아끼는 사진 중 하나다.
이재원 제공
패션 사진가들은 보통 기존 작가들의 어시스턴트로 시작해 경력을 쌓아간다. 반면 스트리트 패션 사진가는 대개 블로그나 소셜미디어를 통해 일종의 포트폴리오를 공개하는 방식을 택한다. 이씨 역시
개인 블로그를 통해 패션 잡지 <쇼프>(Syoff)로부터 함께 일하자는 첫 제의를 받았다. 능력을 인정해주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는 사실에 신이 났다. 그는 더 열심히 일했다.
"처음 제안이 왔을 때 '나도 드디어 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쇼프는 고맙게도 엉망인 내 사진을 보고 런던 스트리트를 맡겼어요. 그때 찍은 사진을 보면… 제가 봐도 부끄러울 정도라니까요."이후 그는 국내외 패션 잡지와 누리집에 사진을 송고하고 있다. 지난 런던 패션위크에서는 브라질의 커뮤니티 회사로부터 부탁을 받아 세계적으로 유명한 패션 블로거 헬레나 보르동(Helena Bordon)의 전문사진 작가로 활동했다. 캐나다 잡지 <패션매거진>에서는 그의 사진을 전제하며 "사람들의 독특한 스타일을 섬세한 시선으로 포착했다"고 소개했다.
사진 한 장에 끌려 영국으로...이제는 방송국에서 직접 연락이 올 만큼 이름이 알려졌지만, 이 작가가 카메라를 들고 거리에 나간 건 1년이 채 되지 않았다. 패션에 무심했던 그는 군 복무 시절, 남성지를 보면서 사진에 관심을 갖게 됐다. 전역 후에도 꾸준히 패션사진을 보다가 우연히 우리나라 1세대 스트리트 포토그래퍼 남현범씨의 블로그에 방문했다.
그러다가 문경원 작가가 찍은 사진, 영국 신사가 애인과 우산을 쓰고 걸어가는 컷 한 장에 강렬하게 끌려 "나도 저런 사진을 찍어봐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마침 캐나다 어학연수를 준비하고 있던 차에 부모님의 권유도 있고 해서 행선지를 영국으로 바꿨다.
사진을 전문적으로 배워본 적 없는 그는 카메라를 들고 런던 거리를 뛰어다니는 사실 자체로도 행복했다. 잘 찍고 못 찍고는 상관없었다. 몇 장을 찍어야겠다는 계획도 없었다. 그냥 열심히 했다. 사진 2000장을 찍었는데 마음에 드는 사진은 2장 정도였지만 좌절하거나 실망하지 않았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동안에는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그렇게 사진이 쌓여가면서 이씨의 실력도 늘어갔다.
"진혁(스트리트 포토그래퍼 오진혁)이라는 친구를 만났는데, 처음 만났을 때 잘 찍었다고는 안 하고 '이렇게 찍으셨네요'라고만 말하더라고요. 친해지고 나니까 '그때 대놓고 말 못했지만 쓰레기였다'고 하더군요(웃음). 거리에서 피사체를 만나면 '이쪽으로 움직이고 있으니까 저 위치에서 이렇게 찍어야지' 하고 미리 생각해야 하는데 예전엔 무턱대고 찍기만 했으니까요.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부분인 것 같아요."이 작가는 1급 스트리트 포토그래퍼들이 촬영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도 큰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워낙 하루하루가 바쁘다 보니 별도로 모임을 만들기는 힘들지만 "카메라를 들고 나간 것 자체가 커넥션"이라고 그는 밝혔다. 교류를 하면서 정보를 교환하기도 하고 사진 구매처를 소개받기도 한다. 이 작가 역시 토미 톤(Tommy Ton)을 통해 <패션매거진>에 사진을 송고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먼저 하는 사람들이 그곳에 다 있더라고요. 경쟁한다기보다 배운다는 마인드로 바라봤죠. 처음에는 촬영하는 모습을 보기만 하는 데도 시간이 걸렸습니다. 모델이 어떤 모습일 때 찍는지, 어디에 포인트를 두는지 도저히 모르겠더군요. 이튿날이면 각자 블로그나 패션 관련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대단한 사람들을 실제로 보니 감탄밖에 안 나왔어요.""스트리트 사진의 매력은 바로 무지 속 아름다움"그는 여전히 화려한 런웨이보다 거리가 좋다고 말한다. 사진작가들 중에는 패션쇼나 화보 촬영만을 원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는 다르게 생각한다. 아직 경험이 부족하고 장비나 모델을 구하기 힘들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거리만이 가질 수 있는 매력이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