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그들은 길 위에 있다

<천지간><소는 여관으로 들어온다 가끔><부석사>의 분석

등록 2013.05.19 17:53수정 2013.05.19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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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의 세 소설의 여정을 함께하고 난 후에 아직 여독(旅毒)이 풀리지 않았다. 언제든 사람들을 만나고 대하고 이해하는 것은 일상과 같은 일이지만 언제나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제각기 다른 성격, 경험과 상처를 가진 개개인은 저마다의 특수성을 지닌다. 인간 사이에 어떠한 만남이 있으면 그들 간에는 인연이라는 끈이 있다고 한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듯, 만남이 있으면 항상 헤어짐이 뒤 따른다. 여기서는 처음 보는 이와 속사정을 나누고 보듬으며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상처를 씻어내고 다시 소생하는 이야기가 세 소설에서 공통적으로 보여진다. 개인적인 계기에서 촉발된 여로들은 끊임없이 그들 간의 소통을 요구하고 감정의 일치를 이루어내기를 유도하며 이야기가 종결되는 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천지간>의 중심 인물은 '나'와 여자, 횟집 주인사내와 소리꾼이다. 나와 여자의 만남으로 여정이 시작되며 그녀를 주요히 관찰하는 관점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주인사내의 조력으로 나는 여자를 죽음에서 구원하고 새 삶을 부여하는 역할을 한다. 여기서 소리꾼은 여자의 심리상태와 진실을 대신 드러내고 여자의 상태를 간접적으로 대변해준다. 그는 심청가의 대목을 읊는다. 심청이가 아버지를 위해 공양미 삼백석과 자신의 몸을 바꾸어 인당수의 자신의 몸을 던진다. 범피중류, 여자에게 드리워진 죽음이 완전한 삶의 포기가 아니라 새 삶에 대한 희망이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주인공인 '나'는 외숙모의 부음을 듣고 문상을 가는 길에 우연히 한 여자를 만나게 되고, 여자가 비춰내는 산죽음의 형상을 김지하고 망설이다 그녀를 따라가게 된다. 그들이 향한 구계등은 섬의 이미지, 미로같은 방풍림으로 둘러쌓인 곳이라서 외부와의 접근성이 더욱 떨어지고 이러한 요소들로 인해 더욱 신비하고 고립된 곳으로 느껴진다. 이런 의도로 삶과 죽음의 경계라는 배경으로써 구계등을 인식할 수 있으며 '죽음'으로부터 시작된 나와 여자의 인연이 결과적으로 그곳에서 상처를 치유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게 한 초석의 장소로써 보여 진다. '나'와의 동침을 통해 개인적인 고통을 덜게 된 여자는 떠나고 '나' 역시 과거의 상처를 그녀를 도와주면서 씻어내고 그곳을 벗어나게 된다.


<소는 여관으로 온다 가끔>은 '나'와 금영, 밀짚모자 여인, 금영의 부친이 중심인물이다. 금영은 다섯 살 때 생모를 잃었다. 그에 대한 아버지의 침묵으로 생모의 삶과 죽음에 대해 모른 채 양모 밑에서 자라고, 부친의 장례가 끝난 후 그녀는 입산을 하게 되지만 양모의 간청에 다시 속세로 돌아온다. 그러나 생모를 찾기 위해서 청평사로 떠난다. 그녀의 연인인 '나'는 그녀에게 현실에 적응해서 살라고 조언하나 그녀는 육신의 근원인 어머니를 모르는데 어찌 마음이 편안하냐며 끝없이 어머니 즉, 소를 찾아 떠난다. '나'는 가까이 갈수록 멀어지는 여자인 금영을 찾으러 청평리로 떠나고, 그곳에서 나와 같이 누군가를 찾아 양구로 떠나는 밀짚모자 여인을 만나게 된다. 금영의 이야기를 전설처럼 밀짚모자 여인에게 말해주고 그녀와 그는 서로 일체감을 느끼게 되며 <천지간>의 나와 그녀처럼 하루를 함께 보내게 된다. 밀짚모자 여인 역시 미련없이 깨달음과 함께 떠나고 나는 언젠가 나그네가 되어 소를 타고 여기 오리라 다짐한다.

"여긴 나그네를 태운 소가 가끔 들어올 법한 그런 곳이에요."
"여기가 법당이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두 사람은 원하는 곳으로 향하는 것은 실패했지만 자기 자신에게서 깨달음을 얻었다. 이 작품에서 소는 사랑의 마음을 근원적으로 이야기한다. 자기 품에 안긴 여자에게서 소를 찾고 관념적인 공간이 아닌 세속적인 공간인 여관에서 사랑을 찾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교감을 통해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고 극복해 나간다.

<부석사>는 갑작스럽게 사랑하는 사람에게 실연당한 여자와 남자의 이야기이다. 서로 다른 이유로 현실의 아픔에서 도피하기 위해 같이 부석사로 향한다. 그와 그녀 둘다 대인관계에서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다. 그녀는 자신을 두고 다른 여자와 약혼한 남자 P에게 끝까지 연락하지 않고, 그는 다른 남자를 만나는 K를 보며 그냥 돌아선다는 점에서 세상에 맞서지 않고 소극적으로 살아가며 상처를 받아들이는 방식이 닮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대신 그녀는 그런 삶을 극복하는 방식으로 여자는 운전을 배워 거칠게 도로를 질주하거나 정렬된 물건을 흩뜨리며 방황하는 내면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출한다. 남자는 방어적으로 직장을 그만두고 은신한다. 이야기는 그녀와 그의 관계를 부석사의 붙어있는 듯 보이지만 닿지 않고 떠있는 형세, 그들이 부석과 같음을 이야기 한다. 여정의 끝에서 그들 또한 각각 나름대로 자신의 삶을 되짚고, 서로간의 자연스러운 인식과 소통을 통해 자신의 아픔과 상처를 치유해 간다. 결국 그들이 부석사에 도달하지 못하고 낭떠러지에서 이야기를 종결 시킨 것도 그들이 이제 어떻게 삶의 방향을 정할 것이냐를 열린 결말로 표현한 것이다. <부석사>는 만남의 유한함을 이야기 한다.

"저 여자와 함께 옛집에 가 볼 수 있을는지"


수리부엉이와의 이별, 개의 안락사 이야기, 그와 그녀의 지난 사랑이야기 등이 그것이다. 작가는 유한함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희망을 보여준다.

여자는 자신의 전생을 지우기 위해 나와의 관계를 원했고 그리하여 아이는 살리되 아이의 아비에게서는 놓여 날 수 있었다고 중얼거리며 내 팔 안에서 깊이 잠이 들었다. <천지간>

"언젠가 소를 탄 나그네가 되어 여기 오리라." <소는 여관으로 들어온다 가끔>

여행의 끝에서 그들의 만남이 끝나는 것이 아닌, 그 후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관계의 지속인 것이다.

세 소설은 목적지가 아닌 자기 자신으로 가는 길을 그리고 있다. 그들은 각기 춘천, 구계등, 부석사로 향하지만 그들은 결국 그 장소에 의의를 두고 있는 것이 아니다. 모두 애초에 가고자 했던 장소에 도달하지 못했다. 결과적인 목적지는 결코 중요하지 않았다. 결국 마음이 향하는 곳으로 가면서 '콜 니드라이'라는 음악이<부석사>와<소는 여관으로 들어온다 가끔>에서 언급된다. 이 음악은 속죄의 날에 민중이 부르던 민요를 따왔다고 했다. 신의 날이라는 뜻이며 낭만적인 정취가 물씬 풍기는 음악의 선율이 극 속에 흐른다. <소는 여관으로 들어온다 가끔>의 '나'는 밀짚모자 여인이 이 음악을 듣는 것을 통해 자신에게 음악을 이야기 해주던 금영을 떠올리게 하는 역할을 한다. 이 음악으로 인해 그녀에게서 금영을 보게 하는 것이다. <부석사>에서는 '불운했던 음악가의 사랑'을 녹여서 이야기 해줌으로써 그들이 겪었던 이별과 고통을 비유해 말해 주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정을 함께하는 남녀가 서로를 인식하게 해주는 분위기를 주었다.

이는 <천지간>에서도 이어진다. 서로를 멀리서 지켜보다 소리꾼의 죽음으로 인해 당황한 남자가 그녀에게도 혹시 무슨 일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그들은 서로를 인식한다. 그리고 '그녀'는 그와 잠자리를 같이 하며 자신의 상처를 꺼내 이야기한다. 그가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녀가 원하는 대로 그 기억속의 아픔을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덮어주는 일 뿐이었다. 세 소설의 남녀들은 자기만의 방식들로 그들 스스로를 도와주고 아픔을 풀어나간다. 아직 그들은 길 위에 있다. 마침내 '여인들'이 자신의 마음을 치유하고 그 여행의 마침표를 찍었지만 그것은 그 상처의 끝일 뿐 사람사이의 관계의 끝을 뜻하는 바는 아닐 것이다.

"이것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김으로 말미암아 저것이 생긴다."
"이것이 없음으로 말미암아 저것이 없고,
이것이 멸함으로 말미암아 저것이 멸한다"

모든 것은 인(因)과 연(緣)의 화합에 의한 결과라는 말이다. 우리는 영문도 모른 채 내 던져져진 삶 안에서 항상 답을 구하고 그 과정을 밟아나가는 길 위에 서 있다. 세 소설도 역시 그 과정을 더 중요시 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우리를 역동적이게 하는 그 힘이야 말로 자신을 치유하기 위해 떠나는 소설속의 그들의 마음가짐과 합치된다고 느낀다.

천지간 - 1996년 제20회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윤대녕 외 지음,
문학사상사, 1996


#부석사 #소는 여관으로 들어온다 가끔 #천지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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