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과 사랑과 자유의 도시인 파리, 보주광장의 오후풍경
강재인
"아니, 난 네가 느낀 소감을 듣고 싶은 거다."
"파리는 아름답죠. 하지만 그런 상투적 표현을 넘어서는 뭔가 묘한 매력 같은 게 있어요. 사실 파리를 여행하는 동안 머릿속에 자크 프레베르의 시가 자꾸 떠올랐어요."
수천 년 수만 년도 Des milliers et des milliers d'années
충분친 않을 거야 Ne sauraient suffire
그 영원의 짧은 순간을 Pour dire
말하기에는 La petite seconde d'éternité
네가 내게 입 맞춘 Où tu m'as embrassé
내가 네게 입 맞춘 Où je t'ai embrassèe
어느 눈부신 겨울날 아침 Un matin dans la lumière de l'hiver
파리 몽수리 공원에서 Au parc Montsouris à Paris
파리에서 A Paris
지상에서 Sur la terre
우주의 한 별 위에서 La terre qui est un astre.
파리를 여행하는 동안 어떤 시점부터는 그 영원의 짧은 순간을 포착한 듯한 기분이었다. 내가 포착한 순간이란 새로운 생각과의 입맞춤이다. "발견의 진정한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찾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는 데 있다(Le véritable voyage de découverte ne consiste pas à chercher de nouveaux paysages, mais à avoir de nouveaux yeux)"는 프랑스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말처럼.
여행은 생각의 산파다. 새로운 생각을 공급해주는 샘(泉)이고 삶의 자신감이다. 내가 깨달은 것은 인생은 단 한 번밖에 볼 수 없는 책인데, 나는 너무 띄엄띄엄 읽어왔다는 점이다. 이제부터라도 찬찬히 읽어보자.
그런 각오와 다짐은 쳇바퀴 돌듯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실타래같이 뒤엉켜 어디가 시작인지도 모를 스트레스와 공허감으로부터 빠져나올 용기와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강력한 충전이다. 우주의 별인 지구 위에서, 지상에서, 파리에서, 파리 거리의 한 모퉁이에서, 나는 속도감 있게 축소돼 진주처럼 영롱해진 나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그날 오후, 공항으로 달리는 우버 안에서 옆자리를 보니 아빠는 연일 계속된 강행군으로 피로하셨던지 깜빡 잠이 들어 계셨다. 어릴 때 부모는 아이들의 우주다. 하지만 내 우주였던 아빠는 이미 연로하셨다. 그렇게 생각하자 나도 모르게 핑 눈물이 돈다.
차가 흔들리면서 무릎에 놓였던 아빠의 손이 떨어졌다. 그 손을 붙들어 무릎에 다시 올려놓았는데 아빠는 눈을 감은 채 내 손을 꼭 잡으셨다. 의외로 따스하다. 그때 비로소 깨달았다. 여행 중에 가장 만나고 싶었던 '아빠'를 이미 만나고 있었다는 사실을.
차창으로 보이는 파리의 하늘은 오늘도 도착하던 날처럼 맑고 푸르렀다. 나는 나를 발견하고 아빠를 만나게 해준 파리에 작별인사를 고했다.
"Au revoir Paris(안녕,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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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일주일... 그토록 원하던 '아빠'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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