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안전운임제가 정착하지 못하는 이유

[주장] 제도 정착하려면 차종·톤급별 최저운임 정해 운송·주선업자에게만 강제해야

등록 2022.06.20 10:47수정 2022.06.20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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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주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위원장과 화물노동자들이 지난 8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 교육장에서 열린 '국민 안전에 일몰은 없다! 화물연대 총파업 기자 간담회’에 참석해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와 안전운임제 전차종, 전품목으로 확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지난 6월 7일부터 시작된 화물연대 파업이 1주일여 만에 막을 내렸다. 산업계 피해 누적을 우려한 정부는 "도로안전운임제 일몰제 시한 연장과 품목별 확대 검토"를 화물연대와 합의하며 파업 불길을 잠재웠다. 하지만 불씨는 여전히 남아있다. 파업 철회 이후에도 정부 관계자들은 "현재 도로안전운임제는 문제가 많다. 개선 없이 연장은 불가능하다"며 화물연대와 날을 세우고 있다.

도로안전운임법안은 4년 전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에 담겨 국회 입법 과정에서도 반발을 샀었다. 현재 여당의 전신인 새누리당의 한 의원은 "시장경제체제를 흩뜨리는 사회주의, 규제 일변도 법"이라고 주장했다. 

20년부터 3년만 시범 실시하기로 한 일몰제 이 운임법안의 연장이 위태로운 것은 정권교체 때문만은 아니다. 

올해까지 3년을 시행하며 이 법안의 수혜를 받은 컨테이너/시멘트 품목을 운송하는 화물차주 기사들의 수익개선 효과와 명분으로 내세운 과속, 과적, 과로 등 도로안전을 위협하는 지표들도 상당히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관련 화주나 운송사들의 불만은 쌓여갔다. 해마다 열리는 도로안전운임위원회와 매년 10월 말까지 결정, 고시해야 하는 안전운임은 연말이나 해를 넘겨서 어렵사리 결정되는 등 그 진행과정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이러한 극단적 양면성을 가진 법안이 3년 시한부가 다가오니 화주나 운송사에서는 법안 폐지를, 수혜 화물차주 기사들을 대변하는 화물연대는 일몰제 폐지는 물론, 전품목 확대를 주장하며 결국 이번 파업에 이르게 된 것이다.

정부에서도 유가 급등 등의 상황과 맞물려 운임 인상의 필요성은 공감하고 있지만 지금도 지속적인 영구 시행에 대해서는 난색을 표하고 있어 아무래도 도로안전운임제 정착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왜 이렇게 됐을까? 기자는 도로안전운임제가 정착하지 못하는 이유로 기회가 있을 때마다 다음 두 가지 문제를 지목했다. 그래서 법안의 첫단추를 잘못 끼웠고, 계속 어긋나게 시행될 수 밖에 없었다고 단언한다.

첫째, 도로안전운임제는 처음부터 현재 컨테이너 등 품목이 아니라 자동차관리법상 차종과 톤급을 기준으로 산정되었어야 한다는 점이다.


25톤 트레일러에 컨테이너를 싣고 A지점에서 B지점으로 운송하든, 같은 구간을 철근이나 냉연코일을 싣고 운송하든 품목별 부대작업을 별도로 감안만 하면 모든 운송원가는 큰 차이가 있을 수 없다. 운반구인 차량의 구입/유지비용과 감가도 큰 차이가 없고, 연비도 큰 차이가 없다. 품목별 상이한 부대작업 비용은 부대조항으로 할인/할증 적용하면 될 일이다.

또한 25톤 일반트럭에 합성수지 톤백을 싣고 운송하든, 시멘트 포대 파렛트를 싣고 운송하든 같은 구간이면 원가도 거의 비슷하다. 그러면 운임도 비슷해야 정상이다.
그렇지 않은 불공평과 불합리를 양산하는 현재의 품목 위주의 도로안전운임제는 차종/톤급 위주로 개선해야 한다.

현재 요율표만 A4용지 200쪽이 넘는 컨테이너 운송요율표를 정부에서 만들어놓았지만 그것이 큰 의미가 없는 이유라 본다. 

법의 지속가능한 안정적인 시행과 입법 취지를 감안하더라도 안전운임은 단순화되어야 하며, 최저임금제와 마찬가지로 화물차주 기사들의 최저임금과 다름없는 기본적인 가이드라인만 차종/톤급/구간별로 정하면 될 일이었다. 물론, 최초에 이렇게 될 경우 전체 화물차주 기사들에게 확대 적용하는 결과를 막기 위한 의도였다면 기자로서도 더 할 말은 없다.

둘째, 도로안전운임제는 모법인 화물자동차운수사업상 기본 규제를 받는 운송/주선업자 등에게만 강제하고 제조/유통 등 순수 화주는 제외했어야 한다고 본다.

그것이 시장 자유경제 질서도 지키고, 영세 화물차주 기사들의 생존권도 지키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 길이었다고 본다. 

현재 화주까지 규제 대상으로 삼은 그 취지와 배경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이렇다 보니 안전운임위원회를 열어도 운송/주선사들은 고객인 화주 눈치만 보고, 화주들은 운송/주선사들에게 알아서 하라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는 전언이다. 공익 위원을 제외하더라도 차주기사 입장에서 '기울어진 운동장'과 같은 회의가 제대로 진행될 수 없었을 것이다.

현재 도로안전운임은 어떤 면에서 과거 1990년대까지 화물주선업자 등에게 의무화했던 '신고운임제'를 법으로 강제한 측면이 있다.

따라서 최저운임과 같은 안전운임의 기본 가이드라인만 정하고 이를 화물운송/주선업자에게만 강제함으로써 이를 토대로 화주들에게 각자 영업력을 발휘해서 계약을 체결하고 운영해야 시장경제에도 부합하고 화물운송 고질병인 다단계 거래도 최소화할 수 있게 된다.

그럼에도 현재의 안전운임 요율표를 보면 화주가 주는 운임 최저선도 있는 반면, 운송/주선사가 받아야 하는 이익은 최고선으로 정해져 있어 차주기사를 제외하고는 모두 불만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자본주의 시장경제 및 경영 활동의 기본은 영업의 자유를 통한 매출 극대화와 원가 절감을 통한 이익 극대화라는 것을 경제 활동을 하는 사람이라면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차주기사들의 생존권과 안전을 보장해야 하는 최저 운임도 중요하지만 제도가 연착륙하고 지속가능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시장 자율기능도 어느 정도 보장해주며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 모두가 노력하는 동기부여를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국내 도로화물운송시장은 우리나라가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도입한 이후 비대해진 화물주선업과 지입업자들에 의해 화물차주 기사들은 운임의 결정권을 갖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한 정부 관계자가 "도로안전운임제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법"이라는 식으로 발언했다고 하는데 도로화물시장에서 화물주선업과 지입제가 성업 중인 나라도 우리나라 외에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지금의 도로안전운임제는 화물운송/주선업자에게 차주기사들에게 줘야 할 기본 최저운임을 법으로 강제하고 이를 토대로 화주를 상대로 능력껏 영업해서 자신의 이익을 챙기도록 하고, 화주는 자신에게 적합한 운송/주선업자를 선택하여 거래할 수 있도록 하는 방향으로 전면 개선되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필자는 트럭신문 기자 겸 경기도개인(개별)화물운송사업협회 서부지부장입니다.
#도로안전운임 #화물연대 #국토부 #물류산업과 #표준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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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현재 우리나라 물류산업을 대변하는 정론지인 주간 물류산업신문의 기자로 있습니다. 전문지의 특성상 제가 주로 취재하는 물류산업 분야외에 여건이 허락한다면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은 정치,사회 분야에서 취재가 가능한 경우 시민기자로 활동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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