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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노동 동일임금', 오히려 사용자 위한 법 될 수도

[주장] 30여 년 안 변한 동일가치노동 기준... 결국 노조 교섭력에 달려

등록 2023.06.22 17:15수정 2023.06.22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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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세대학교 과학관에서 청소노동자가 화장실을 청소하고 있다. 2022.7.6
연세대학교 과학관에서 청소노동자가 화장실을 청소하고 있다. 2022.7.6유성호
 
1988년 4월 처음 시행된 남녀고용평등법에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조항이 신설된 건 그로부터 1년 뒤였다. 다시 1년여 후 이 조항을 위반했다며 최초로 사용자에게 임금 청구 소송을 한 노동자들이 있다. 바로 연세대 청소노동자 남길자씨와 윤복순씨였다.

그녀들은 20여 년을 일했어도 받는 돈은 신입과 같았다. 일용직 신분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연세대에서 근무하던 여성 청소노동자는 모두 일용직으로 고용됐다. 반면, 남성 청소노동자 중에는 정규직도 있었다. 청소노동자가 정규직으로 채용되는 경우는 일용직으로 일하다가 승진하는 길뿐이었다.

그런데 여성은 단 한 번도 정규직이 된 사례가 없었다. 심지어 같은 일용직으로 일해도 여성의 월평균 기본급은 18만 6천 원으로 남성보다 6만 6천 원이 적었다("남녀 분리호봉체계 개선을", <한겨레> 1990년 11월 8일). 이는 남성 정규직의 월평균 기본급과 비교하면 5분의 1도 안 되는 액수였다고 한다('임금性차별' 다시 爭點化, <경향신문> 1990년 11월 7일).

단지 성별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같은 청소일을 하고도 임금과 채용 과정에서 차별을 받는 상황은 충분히 이의를 제기할 만했다. 하지만 1심 재판 결과는 원고 패소였다. 이유는 이랬다.
 
원고 등의 여자 청소원들은 옥내 청소 업무에만 종사하는 반면 남자 청소원은 여자들에게 부적합한 옥외 청소, 야간 경비, 도서관, 수영장 등의 관리 업무까지 맡고 있어 동일노동으로 볼 수 없다.
- "男女 청소원 임금 같을 수 없다", <동아일보> 1991년 7월 6일

이 판결은 동일한 가치의 노동 기준을 업무의 가짓수로만 한정했다. 당시 법에서 동일가치 노동으로 보는 기준은 "노동 수행에서 요구되는 기술, 노력, 책임 및 작업 조건 등"이었다.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에서 이는 어느 누구에게도 유리하게 해석될 수 있었다. 그래서 이런 판결이 나올 수도 있었다. 

'여성의 옥내 청소 업무는 남성이 그동안 맡아온 일인 옥외 청소, 야간 경비, 도서관·수영장 등의 관리 업무와 비교해서 '질적'으로 같은 가치의 노동이다.'

1심 판결 이후의 기록은 잘 보이지 않는다. 남씨와 윤씨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는지 혹여 그랬다면 항소심에서는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 기록을 찾을 수 없다.

하지만 그로부터 30여년 후 연세대 청소 노동자들의 노동 현실이 어떤지는 잘 알려져 있다. 지난해 연세대 재학생이 임금 인상 집회를 하던 청소 노동자들에게 법적 조치를 취함으로써 드러난 그들의 기본급은 여성이 옥내 청소를 하든, 남성이 옥외 청소를 하든 상관없이 같았다(관련기사: "연대 청소노동자 월급 300만~400만원" 고소 학생 주장은 '거짓' https://omn.kr/1zob3).


겉보기에는 연세대가 앞선 판결과 무관하게 남씨와 윤씨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한 듯하다. 문제는 남성 청소노동자도 이제 더 이상 연세대의 정규 직원으로 승진할 수 없게 됐다는 점이다. 연세대가 청소 업무 자체를 외주화했기 때문이다. 그 여파는 청소노동의 가치를 최저임금 인근에 머물게 만들었다.

'남녀' 청소 노동자가 '같은 임금'을 보장받는다는 점에서 연세대는 결과적으로 남녀고용평등법상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조항을 '잘' 지키는 일터가 됐다. 이것이 바로 이 법의 중대한 결점이다. 최저임금법을 위반하지 않는 선에서 임금만 같으면, 합법이 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이 발의한 '동일노동 동일임금'
 
 김형동 국민의힘 의원
김형동 국민의힘 의원이희훈
 
지난달 31일 김형동 국민의힘 의원은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조항을 신설한 근로기준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표면상 이 개정안은 같은 사업장에서 같은 가치의 노동을 하고도, 고용 형태가 달라 임금의 차별을 받는 노동자를 위한 법 같다. 하지만 "노동시장의 이중구조와 정규직과 비정규직, 원·하청의 임금격차 해소"라는 대의명분의 뒷면을 찬찬히 살펴보면, 오히려 사용자를 위한 법이 될 가능성이 더 크다(관련기사: "보수정당 최초 동일노동 동일임금 법안... 민주당 반대할 텐가" https://omn.kr/24cij).

이유는 이 법의 동일가치노동 기준(직무수행에서 요구되는 기술, 노력, 책임 및 작업조건 등)이 30여년간 거의 변한 것 없는 남녀고용평등법의 동일가치노동 기준과 같기 때문이다. 1996년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이래로 지금까지 줄곧 회원국 중에서 성별 임금격차가 가장 크다는 사실은 그동안 이 기준이 사용자에게 얼마나 유리하게 적용돼 왔는지를 방증한다.

한편, 노동자들의 기본급이 이미 (최)저임금으로 동일할 때는 어떤가? 일터 안에서는 분명 차별이 아니지만, 일터 밖에서 조망하면 차별적인 대우라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사법부는 비교군의 업무가 같은지만 판단하는 곳이지, 그 업무의 실제 가치가 얼마인지 측정해주는 곳은 아니다. 오히려 이는 노사의 합의에 의해 결정될 사안이다.

동일가치 노동의 기준이 노사 중 어느 쪽으로 유리하게 정립될지는 결국 교섭력에 의해 좌우된다. 차별이 그대로 유지될지, 그렇지 않다면 임금이 상향평준화될지 하향평준화될지 말이다. 현재 시행 중인 남녀고용평등법이든, 국회에 계류 중인 김 의원의 개정안이든, 이 기준을 정할 때는 사용자가 "노사협의회의의 근로자를 대표하는 위원"(남녀고용평등법)이나 "근로자대표"(김 의원의 개정안), 즉 노동자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고 규정한다. 노동자들이 힘을 얼마나 모으느냐에 따라 사용자와 대등하게 교섭할 수 있는 확률도 그만큼 높아질 것이다.

그런데 절차에 따라 조직된 노사협의회의 근로자 위원들은 협의회란 이름 그대로 사용자 위원들과 '협의'만 할 수 있다. 노동자들의 뜻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근로자 위원들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 중에 쟁의행위가 포함돼선 안 된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협의는 당연히 사용자의 뜻대로 흘러갈 터다. 무엇보다 30인 미만의 사업장에선 이런 협의기구조차 설치할 근거가 없는데, 그 대안으로 근로자 대표를 뽑아도 문제는 남는다. 그 절차에 대한 규정 자체가 법적으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결과 사용자의 입김에 의해 근로자 대표가 지정되기도 한다. 이 근로자 대표는 과연 누굴 위해 교섭하겠는가. 노동자들의 의견을 제대로 관철하기 위해선 결국 노조가 제일 필요한 셈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노조 조직률은 14.2%(2021년 기준)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남성보다 여성, 정규직보다 비정규직, 원청보다 하청, 대기업보다 중소기업 노동자의 노조 조직률은 상대적으로나 절대적으로나 훨씬 적다. 어쩌면 여성, 비정규직, 하청, 중소기업 노동자들은 그동안 교섭력이 없어서, 더 차별받았는지도 모른다. 아무리 사회적 약자를 '위한다'는 법이 존재해도, 그들이 처한 현실을 온전히 보호해주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남녀고용평등법만 해도 "남녀의 평등한 기회와 대우를 보장"하기 위해 제정됐다.

청소 업무가 외주화된 뒤로 한참을 '남녀 차별없이' 최저임금 또는 그 이하를 받고 일했던 연세대 청소노동자들은 노조를 조직하고부턴 그보다 좀 더 나은 급여를 지금까지 받고 있다. 역시나 남녀 차별없이.

물론 상향 평준화된 그들의 급여는 30여년 전 정규직 청소 노동자의 임금 수준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그럼에도 그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 제3자라고 주장하지만 실은 그들의 노동 조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진짜 사장' 연세대와 매년 '교섭'하려 한다. 교섭이 지지부진할 때는 투쟁도 불사한다. 솔직히 그들이 남씨와 윤씨의 소송 과정과 그 결과를 알고 있는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속에서 벌어지는 차별을 끝내야 한다는 남씨와 윤씨의 문제 의식만큼은 부지불식간에 공유하고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남씨와 윤씨는 법만 믿었지만 현재의 연세대 청소 노동자들은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노동자 #노동조합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임금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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