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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어 교체하다, 대한민국의 장래가 걱정됐다

불안 자극해 고객에게 선택 유도... 불신 사회를 마주하다

등록 2024.05.12 19:45수정 2024.05.12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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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어 ⓒ 픽사베이

 
대한민국의 위기를 동네의 자동차 정비업체에서 실감한다. 정치인은 헛공약으로 국민을 현혹하고, 언론은 정파성에 갇혀 가짜뉴스만 양산하며, 시장 상인들은 무시로 손님을 속인다고 생각한다. 소비자는 생산자를 믿지 못하고, 학부모는 교사를 험담하며, 어른들은 가족이 아니면 누구도 믿지 말라며 자녀들을 다그친다.


대한민국은 총체적 불신 사회다. 누구든 다른 사람의 말이면 의심부터 한다. 겉으로는 맞장구치며 고개를 끄덕여도 속으로는 잇속을 챙기는 수작이라고 단정하며 어떻게 대응할지 주판알을 튕긴다. 상대방의 말이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서부터 거짓인지 스마트폰을 켜 일일이 찾아보는 수고로움도 마다하지 않는다.

불신과 불신이 맞닥뜨리면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소비자가 인터넷 이용 후기에 자기의 '눈 뜨고 코 베인' 경험을 남기면, 일반적인 평판으로 작용하여 해당 업체는 상당한 타격을 입는다. 기실 이는 소비자로서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로서, 다른 소비자들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품을 파는 선행이기도 하다.

문제는 해당 업체뿐만 아니라 동종 업계를 넘어 사회 전반적인 영역에 엄청난 파장을 미치게 된다는 점이다. 한 사람의 불신이 다른 사람의 불신을 야기하고, 나아가 공동체 전체의 불신으로 비화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업체는 제발 믿어달라고 아우성치지만, 소비자는 당최 믿을 수 없다고 손사래를 친다.

언제부턴가 식당 간판에 '원조'라는 수식어가 붙더니, 얼마 안 있어 '원조 중의 원조'라는 말이 생겨났고, 요즘엔 '진짜 원조'라는 웃지 못할 표현까지 등장했다. 말하자면, 다른 데는 가짜고, 자기가 진짜라는 식이다. 불신이 워낙 팽배하다 보니, 마치 두더지가 땅 위로 머리 치올리듯 제 살 깎기식 경쟁을 벌이고 있다.

눈품 팔아야 아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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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수리 ⓒ 픽사베이

 
인터넷에서 타이어를 주문한 뒤 가까운 정비업체에 교환을 의뢰했다. 최저 가격을 내세우는 시중의 타이어 전문 업체보다 인터넷이 훨씬 싸다는 사실을 최근에서야 알게 됐다. 공임을 고려하더라도 개당 몇만 원에 이를 정도로 둘의 가격 차이는 컸다. 인터넷에서 타이어까지 파느냐고 물었던 나를 몇몇 동료들은 '호구'라고 놀려댔다.


같은 인터넷이라도 판매 사이트마다 가격 차이가 천차만별이다. 장착 조건 등을 꼼꼼히 따지면, 가격을 더 낮출 수도 있다. 이젠 타이어 갈아 끼울 때도 스마트폰을 산 뒤 복잡한 요금제를 선택할 때처럼 이것저것 따져봐야 한다. 손품과 발품을 넘어 '눈품'까지 팔아야만 돈을 한 푼이라도 아낄 수 있는 강퍅한 시대가 됐다.

업체는 나를 그닥 반기지 않는 눈치였다. 배달된 타이어를 보여주며 심드렁한 표정으로 자신이 주문한 게 맞는지 확인하라고 했다. 묻지도 않았는데, 요즘 고객들은 영악해서 대부분이 인터넷에서 구매한 뒤 교환 작업만 동네의 영세 업체에 맡긴다고 투덜거렸다. 수익은 대부분 인터넷 유통 업체가 가져간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곤 곧장 '영업'이 시작됐다. 타이어 밸런스가 맞지 않아 편마모 현상이 심하다면서 휠 얼라인먼트 작업을 권했다. 또 브레이크 라이닝이 거의 닳아 위험하니 교체가 필요하다고도 했다. 물론, 작업 기사의 막무가내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쯤은 안다. 군에서 운전병으로 근무했고, 오래전이지만 자동차 정비를 배운 적도 있다.

다른 작업은 필요 없다며 말을 잘랐다. 1년 전쯤 약간의 편마모가 있는 게 보여, 한번은 장난삼아 버니어캘리퍼스로 타이어 양쪽 트레드의 간격 차이를 재본 적도 있다. 아무리 밸런스를 완벽하게 조정한다고 해도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틀어지기 마련이다. 무려 7년 동안 도로를 구른 타이어에 그 정도 편마모는 당연하다고 봤다.

브레이크 라이닝의 경우, 새 차를 구매한 뒤 한 번도 교체하지 않았으니 그러잖아도 갈 때가 됐다고 생각하긴 했다. 막상 낡은 타이어를 내린 뒤 들여다보니 아직 얼마간 더 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평소 브레이크를 잘 밟지도 않을뿐더러 내리막에선 엔진 브레이크 거는 운전 습관이 몸에 밴 덕분이라 여긴다.

멈추지 않은 영업, 결국은...

그러나 업체의 '영업'은 멈추지 않았다. 새 타이어를 휠에 장착한 뒤 다시 말을 걸어왔다. '기본' 밸런스 작업과 '고급' 밸런스 작업 중 어떤 걸 선택하겠느냐는 거다. 난생처음 들어본 작업 이름에 그 차이가 뭔지 물었더니, 답변이 가관이었다. 시속 100km 이내로 주행할 때는 별 차이가 없는데, 고속 주행 때 핸들 떨림이 나타날 수 있다고 했다.

하도 황당해 되물었다. 고속 주행 때 핸들 떨림이 있다면 상당히 위험할 수도 있는데, 어떻게 '옵션'일 수 있느냐고 따졌다. 안전을 위해 타이어 교체 때 필수 작업이 되어야 마땅하지 않으냐고 덧붙였다. 반문에 대한 업체의 답변은 더욱 황당했다. 모든 작업에는 부대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고객이 결정하는 게 맞는다는 거다.

타이어 교체를 비롯해 자동차를 정비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자동차의 결함은 생명과 직결된 문제다. 결함이 있는지 없는지는 자동차 전문가인 업체가 판단할 문제인데, 이를 고객이 결정하라는 답변을 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다. 고객 스스로 자동차 정비에 대해 미리 공부하고 오라는 말과 하등 다를 바가 없다.

이번에도 추가 비용이 없는 '기본'을 선택했다. 이후 업체는 사소한 질문에도 무성의한 답변으로 일관했다. 앞쪽 두 타이어를 뒤쪽에 장착할 때 보통 'X'자 방향으로 옮기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대뜸 "그렇게 해드릴까요?"라며 그마저 선택하라는 투였다. 전문가라면, 이러저러한 자동차 하부 구조상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어야 옳다.

결국 타이어 위치 교환에 따른 추가 비용 2만 원만 지불했다. 타이어 개당 1만 원이라는 설명인데, 이 또한 이현령비현령 가격이다. 듣자니까, 개당 5천 원을 받는 업체도 있고, 2만 원을 청구하는 곳까지 있다고 한다. 자동차 정비 비용이야말로 지역과 업체마다 천양지차여서, 말 그대로 '복불복'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업체의 사장은 언뜻 '고백 같은 푸념'을 늘어놓았다. 몇 해 전 한 타이어 업체에서 고객을 속이고 의도적으로 고장을 낸 뒤 바가지를 씌운 사건이 적발되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된 뒤로 생계가 위협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자신과 같은 양심적인 업체가 되레 손해를 입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며 울상을 지었다.

실상 그도 그렇게 떳떳하진 못할 성싶다. 굳이 지금 당장 하지 않아도 될 작업을 권유하고, 불안을 자극해 고객에게 선택하도록 유도하는 모습은 흡사 의사들의 '과잉 진료'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가진 정보가 철저히 비대칭인 상황에서 정비업체나 의사의 권유를 뿌리칠 수 있는 고객과 환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상호 신뢰가 깨져버린 사회에서 믿을 건 '돈'밖에 없죠."

이번 사달을 술안주 삼아 한 동료에게 들려주었더니, 그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이렇게 말했다. 자신은 타이어 교환을 비롯해 자동차 정비 일체를 굴지의 '브랜드' 업체에 맡긴다고 했다. 뭐든 조금 비싸긴 해도, 이것저것 따지고 셈하고 의심하며 노심초사할 바에야 그게 낫다는 거다. 사람들이 브랜드를 신뢰하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했다.

아이들조차 "불신이 팽배한 사회에서 정직하게 살면 나만 손해"라고 스스럼없이 말하는 부도덕한 사회로 급격히 퇴행하고 있다. 정작 사람은 믿지 못하고 돈의 힘에 의존하는 현실에서 해당 정비업체의 '영업'을 나무라기도 뭣하다. 이른바 '신뢰 자본'이 없는 조직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는데, 타이어를 교체하다 '불신 사회' 대한민국의 장래까지 걱정하게 될 줄은 몰랐다.
#불신사회 #신뢰자본 #타이어교체 #휠얼라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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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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