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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한복판에 '벌' 위한 호텔 짓는 뉴욕시

위험에 처해있는 토종 벌들의 생존을 돕는 정책... "생태적으로 의미 있는 일"

등록 2024.05.22 14:29수정 2024.05.22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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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들의 호텔과 벙커를 뉴욕 도심 광장 곳곳에 설치하겠다."

지난 4월 25일 지구의 날 주간에 발표된 뉴욕시의 보도자료 내용이었다. 위험에 처해있는 토종 벌들의 생존을 돕기 위해 뉴욕시 공공광장 7곳에 마치 새집을 연상시키는 '벌들의 호텔'과 '벙커'를 설치하겠다는 발표였는데, 사진을 보니 이렇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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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시 도심에 설치된 벌 호텔과 벙커 출처 : 뉴욕원예협회 누리집 ⓒ 뉴욕원예협회

 
갈대와 대나무 등 천연 재료로 지어진 공간은 벌과 애벌레에게 둥지와 휴식공간 역할을 하게 된다. 그 밑에 큰 화분이 '벌 벙커'인데, 땅 속에 굴을 파고 살며 겨울을 나고 자신이 사는 곳 3-4블록 이내거리에서 먹을 것을 는 찾는 벌의 특성을 고려해 조성한 서식용 토양이다.

쏘지 않을까?

가장 궁금한게 '쏘지 않을까' 였다. 그런데 뉴욕시는 이렇게 답한다. 이 시설은 일반적인 꿀벌을 위한게 아니라 땅 밑에 굴을 파고 살아가는 '간지럼 벌'(tickle bees)이라는 작은 야생벌을 위한 시설이라고.
 
"꿀벌은 도시 지역에 서식지가 적고 도시의 녹지 공간과는 먼 거리에서 서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오늘 발표된 설치는 도시 전역의 녹지와 녹지를 연결하고 거의 쏘지 않는 작은 토종 벌인 간지럼 벌(tickle bees)을 유인할 것입니다."(뉴욕시 보도자료)
 

뉴욕시는 포드햄 플라자(Fordham Plaza), 파크사이드 플라자(Parkside Plaza), 쿠퍼 스퀘어 플라자(Cooper Sq Plaza), 퀴스케야 플라자(Quisqueya Plaza, Dyckman Plaza), 워터 스트리트(Water Street, Staten Island), 게이츠 애비뉴(Gates Ave), 34번가(34th Ave) 등  7군데 공공 광장에 벌들의 호텔을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뉴욕시는 뉴욕원예협회, 럿거스대학(Rutgers University) 연구자들과 함께 꿀벌 호텔 건립 계획을 발표했는데, 사실 이들이 발표한 내용의 핵심은 메마른 도시에 벌들도 살 수 있을 만한 녹지환경을 조성하고 이를 계속 늘려 도심 전체 녹지공간을 통한 치유효과를 높여가는 녹지 운동의 일환으로 계획된 '수분 매개자 포트 프로젝트' (Pollinator Port Project)에 있다. 꿀벌도 살 수 있을만한 생태도시를 만들어가겠다는 거다.

"벌은 우리의 친구입니다. 말 그대로 이 지구상에서 생명을 유지하는 열쇠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은 우리 도시가 꿀벌을 환영하는 도시, 다채로운 색상과 생물 다양성으로 가득한 도시 환경을 만드는 것입니다." (뉴욕시 부시장)

뉴욕의 공공광장을 '벌들의 무릎'으로 만들겠다?

그런데 뉴욕시 보도자료에는 낯선 단어가 나온다. 앞으로 뉴욕 공공광장을 'Bee's Knees'로 만들겠다는 표현인데요, Bee's Knees? 벌의 무릎? 찾아봤더니 보기에는 작고 사소해서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지만, 볼펜의 심이나 자동차의 바퀴처럼 없어서는 안될 핵심적 기능을 담당하는 '최상급 존재'를 일컫는 표현이었다.

"우리의 오픈 스트리트와 공공 광장은 늘 붐비지만 올해는 Bee's Knees가 될 것입니다. 이 계획은 위험에 처한 수분매개곤충을 위한 서식지를 만들고 중요한 과학 연구를 촉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로드리게스 뉴욕시 교통국장)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메마른 도시는 꿀벌이 살만한 환경이 전혀 아니라서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콘크리트는 꽃가루를 분비하지 않습니다. 도시의 꿀벌은 지속가능하지 않아요. 그들이 먹이를 찾을 공간이 충분하지 않습니다." (뉴욕 꿀벌전문가 안토니 플라나키스의 뉴욕포스트 인터뷰, 2024.4.25)

그러나 럿거스 대학의 연구자들은 이 실험을 통해 도심 속 벌이 살아가려면 어떤 환경이 필요한지를 관찰할 작정인가 보다.

"대부분의 꿀벌 종은 벌통에서 살 수 없기 때문에 집을 지을 수 있는 다른 재료를 제공해야 합니다. 이 프로젝트의 초기 단계는 과학을 사용하여 서식지를 설계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희망은 이러한 수분 매개 포트가 녹지 공간을 연결하여 꿀벌이 도시를 돌아다니고 꽃을 수분하는 데 필요한 자원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킴벌리 러셀 교수 럿거스 대학 생태확과, 2024.4.25)

뉴욕원예협회는 이 행사를 통해 뉴욕시 거의 모든 공간(보도, 거리, 집주변, 심지어 감옥 부지까지)에 식물을 심고 이를 통한 치유효과를 얻을 수 있는 도시 원예 프로젝트를 벌과의 상생을 통해 이루려 한다.

'벌들이 특별한 서식지를 설치하고 도시 전역의 공공 장소에 토종 꽃을 심음으로써 우리는 녹지 공간 사이의 격차를 해소하고 토종 벌 개체수를 촉진할 것입니다.'
(뉴욕원예협회 누리집)


국내 곤충전문가 "생태적으로 의미있는 시도"

이러한 외신 자료를 국내 곤충전문가에게 물어봤다. 농림축산검역본부의 이흥식 농업연구관, 곤충을 전공하고 따로 '벌 볼일 있는 사람들'이라는 '벌 덕후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그는 이러한 회신을 보내왔다.

"어떻게 보면 벌들은 사람이 볼 때는 '필요 없다' 혹은 '쓰레기' 취급을 받는 죽은 나무나 나무에 난 구멍, 맨 흙바닥같은 공간이 필요하거든요. 그래서 일부러 벌들이 이렇게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벌 호텔'이라고 해서 공간을 마련하는거죠. 나무구멍에 집을 짓는 벌들에게 소중한 장소가 될 겁니다. 도시에서는 그런 장소들을 가만 놔두질 않으니까요. 당장 민원이 들어가면 죽거나 상처난 식물들을 다 제거하기 때문에 벌들이 살 공간이 부족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처럼 벌들을 위한 도심내 작은 공간 마련은 생태적으로 의미있다고 봅니다." (이흥식 농림축산검역본부 농업연구관, 2024.5.20)

서울에도 꿀벌호텔이 있다

서울에도 꿀벌호텔이 건립되어 있었다. 서울숲 안에 이미 만들어졌지만 노후화된 시설을 지난해 5월 리모델링했다.
 
꿀벌정원은 꿀벌들이 좋아하는 밀원식물이 어우러진 규모 637㎡의 공간으로 비호텔(Bee Hotel)과 도시 양봉장으로 구성돼 있다. 서울숲은 KB국민은행 후원으로 야생벌을 위해 노후된 비호텔과 도시양봉장을 새롭게 단장해 도심 속에 꿀벌의 새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포토존이 될 귀여운 캐릭터 벤치도 함께 설치했다.(파이낸셜뉴스, 2023.5.13)
 

네덜란드에서 시작된 시민운동이었다

벌 호텔의 기원을 찾아보면 네덜란드 시민들의 생태도시 프로젝트와 연관되어 있다. <뉴스펭귄> 기사에 따르면 네덜란드의 야생 벌 개체수가 194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줄어들자 네덜란드 일부 도시에서는 야생벌을 보호하기 위해 벌 호텔이나 벌 정류장을 도시 곳곳에 설치했다고 한다.
 
야생벌을 보호하기 위해 2018년 '벌 호텔(벌이 둥지를 틀 수 있도록 구멍을 제공하는 얇은 대나무 모음)'과 '벌 정류장(지붕이 토착 식물로 덮여있는 버스 정류장)'을 도시 곳곳에 설치하고 공공장소의 풀을 토종 꽃 식물로 대체하는 방안을 실행했다. (뉴스펭귄, 2021.5.3)
 

실제로 네덜란드 위트레흐트시에서는 고속도로 대형광고판 타워 하부에 큼지막한 벌 호텔을 건립했고, 버스 정류장 지붕에는 벌들이 쉬어가는 '벌 정류장'을 만들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노력이 놀라운 결과로 이어졌으니, 1만 명이 넘는 시민 자원봉사자들이 벌 개체수를 조사해보니 이러한 노력이 벌 개체수 증가에 도움을 줬음이 입증된거다.
 
(2021년 4월) 27일(현지시간)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따르면 네덜란드가 1만 1000명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으로 '국가 벌 개체 수 조사'를 벌인 결과 꿀벌 호텔이 도입된 이후부터는 감소하던 벌 개체 수가 꾸준히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결과 양봉꿀벌(Apis mellifera)이 5만5000회 이상 관측으로 가장 많이 발견됐으며 붉은석조벌(Osmia bicornis)과 서양뒤영벌(Bombus terrestris)이 각각 1만 3000회, 1만 2800회 관측으로 뒤를 이었다. (뉴스펭귄, 2021.5.3)
 

5월20일은 세계 벌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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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들을 위한 벙커 (뉴욕시) 출처 : 뉴욕시 보도자료 ⓒ 뉴욕시

 
5월 20일은 세계 벌의 날이었다. 지난 2017년 UN이 전 세계 식량 생산과 생태계 보호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벌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 지정한 날이다. 이흥식 박사는 <오늘의 기후>와의 인터뷰에서 지구 상에 있는 무수히 작지만 많은 화분매개곤충과의 공생을 도모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올해도 광릉 국립수목원에 나와서 벌 볼일 있는 사람들과 함께 관찰하고 있는데 벌의 개체수가 줄었습니다. 수목원처럼 관리되는 곳에서도 벌들이 위협을 받고 있다는 심각성을 느낍니다.

세계 벌의 날은 화분매개 곤충의 중요성을 유엔이 인정해서 우리 인류가 경각심을 가지고 별을 보호하고 같이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자 하는 기념일입니다. 여러분들께서 벌하면 '무섭다'는 생각만 가지실 게 아니라 우리 인류 주변에서 얼마나 많은 우리들한테 혜택을 주고 같이 우리한테 이익을 주는 생물들인지에 대해서 이해를 하시고, 단지 벌의 날 뿐 아니라 1년 내내 벌들이 건강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주기 위해서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참고자료]
- 'Earth Week: Bee Hotels and Bee Bunkers to Make NYC DOT Public Plazas and Open Streets the Bee's Knees' (NYC Press Releases, 2024.4.25)
- Natalie O'Neill, 'Honey, they're home! 'Bee hotels' coming to 7 NYC plazas to help at-risk pollinators' (New York Post, 2024.4.25)
- 이설영, '서울에 '꿀벌호텔'이 있다?' (파이낸셜뉴스, 2023.5.13)
- 이후림, ''어서 와~' 꿀벌 호텔은 처음이지?' (뉴스펭귄, 2021.5.3)
덧붙이는 글 지상파 최초의 주7일 기후방송인 '오늘의 기후'는 매일 오후 5시부터 7시30분까지 FM 99.9 OBS라디오를 통해 방송됩니다. 며칠전 오늘의 기후 유튜브 독립채널이 개설되었습니다. 유튜브에서 '오늘의 기후 채널' 검색하시면 매일 3편의 방송주요내용을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 구독과 시청은 큰 힘이 됩니다. 고맙습니다.
#꿀벌 #기후변화 #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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