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를 과연 '동해'라 불러도 좋은가

제 이름 찾기의 첫걸음은 일본해 삭제부터

등록 2002.09.06 20:31수정 2002.09.07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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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해양조사원은 최근 2003년 발행 예정인 동해의 명칭이 삭제된 '해양의 경계' 4판 최종안을 담은 CD롬을 국제수로기구(IHO) 사무국으로부터 전달받았다고 밝혔다. 이번에 접수받은 IHO의 최종안은 지난 1929년 초판 간행 이후 '일본해'로만 표기되어 왔던 것에서 명칭을 삭제한 후 공백으로 남겨둔 것이다.

이같은 IHO의 결정에 대해 많은 국민들이 환영하는 한편 나아가 동해(East Sea 또는 Eeat Sea of Korea)라는 명칭으로 복원되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동해표기 문제와 관련, 한일간 별도의 합의가 있을 때까지 `일본해'로 단독 표기된 동해 지도를 `해양의 경계' 제4차 개정판에 포함시키지 않겠다는 IHO 제안에 반대하지 않기로 입장을 정리했다고 한다.

그러나 '양국이 수용할만한 적절한 대안에 합의할 때까지는 현재의 일본해 표기를 계속 쓰자'는 논리로 일관하면서도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던 일본의 입장에서는 이번 IHO의 최종안에 대하여 분명한 반대의사를 밝히고 있는 가운데 오는 11월 30일까지 회원국들에 의해 서면으로 이루어지는 최종안의 확정을 위한 찬반 투표의 부결을 위해 치열한 외교적 노력을 기울일 것으로 전망된다.

언론을 통해 보도된 정부의 안은 '동해'와 '일본해'를 병기하는 안이라지만 이번 IHO의 결정은 동해 표기문제가 한·일 간에 외교 마찰을 빚고 있는 점을 고려해 관련 당사국들이 협의를 통해 해결책을 모색하기를 바라고 있으며 그렇지 않을 경우 명칭에 관한 분쟁 해역으로 간주, 명칭 자체를 삭제하겠다는 의사로 볼 수 있다.

물론 명칭의 삭제만으로도 그동안 양국에 공동으로 인접한 해역이 어느 일방국가의 해역으로 불리어진 사실에 대한 부당성을 인정한 것이란 점에서 커다란 의의가 있다.

16~19세기 중반사이에 발행된 세계지도들 중 영국 국립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고지도 90여 점에 나타난 동해의 명칭을 분석한 서정철(한국외국어대) 교수의 논문에 의하면, 16세기 이후 동해에 대한 각국의 지도상에 등장하는 이름들은 한국해(62점), 동해/한국해(2점)라는 명칭 외에도 중국해(4점), 동방해(Oriental Sea, 8점), 일본해(10점), 무표기(4점) 등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18세기 발행된 지도에는 한국해라는 이름이 전체 81점 중 62점으로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 남가주대 동아시아도서관(http://www.usc.edu/isd/locations/ssh/eastasian/maps.htm)에는 18, 19세기에 걸쳐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미국 등에 의해 작성된,동해를 '한국해'로 표기한 서양 고지도 130점이 공개되어 있기도 하며 이 가운데에는 물론 동해와 한국해가 같이 표기되어 있거나 중국해 또는 동방해로 표기되어 있는 경우, 표기가 없는 것들도 소수이지만 함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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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가주대 소장 1740년 런던에서 작성된 아시아 지도, 동해를 한국만(Gulf of Corea)으로 표기된 것이 이채롭다. ⓒ USC

그러나 19세기 중반 후부터 발행된 세계지도들에서는 '일본해'란 명칭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으며 이는 쇄국정책을 고수했던 한국과는 달리 일본의 적극적인 해외교류와 러·일전쟁, 청·일전쟁 등 군사적인 확대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1919년부터 시작된 IHO에 의한 국제수로회의에서는 1957년부터 가입한 한국의 입장과는 무관하게 외교권을 강탈한 일본의 관점에서 주요 사안들이 다루어질 수밖에 없었으며 1929년 초판 발행 이후 1953년 3판이 개정 발행된 '해양의 경계'를 통해 동해는 일본해라는 명칭으로 국제적으로 통용되어 왔었다.

이와 같은 사실을 종합해 볼 때 과거 16~19세기 중반까지 동해의 국제적인 이름으로는 한국해가 절대적으로 많았으며 19세기 후반부터는 일본해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국제적인 지도와는 달리 시기에 관계없이 국내에서 작성된 지도들은 동해로, 일본에서 작성된 지도들은 일본해로 대부분 표기되어 있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를 국제적 관례로 주장하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2000년 11월 '지명과 바다 명칭에 대한 국제학술세미나'에서 김신(경희대 지리학과) 교수는 IHO의 해양의 경계 4판에 반영될 동해의 명칭과 관련하여 '동해(East Sea)' , '동해/일본해(East Sea/Japan Sea)' , '미정(Undefined Name)', '표기를 하지 않는 안', '개정판을 발간하지 않는 안' 등 다양한 의견을 내놓으면서 결론으로 동해를 가장 적절한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앞서 서 교수의 논문자료에서 보듯이 동해란 명칭이 역사적인 기원을 가진다고 주장하기에는 미약하며 오히려 역사적인 기원측면에서는 한국해가 훨씬 더 타당성을 가질 것이다.

하지만 한국해라는 명칭이 비록 역사적 기원에서 일본해 또는 중국해에 비해 비교우위를 가진다고 할지라도 해양에 대한 국가간의 경계의 개념이 아닌 연안을 마주하며 공유하고 있는 바다이름을 결정한다는 점에서 우리가 일본해를 받아들일 수 없듯이 일본의 입장에서 한국해란 명칭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며 중국 또는 러시아의 입장에서 볼 때도 반가운 일은 아닐 것이다.

일부에서는 'East Sea'가 아시아의 동쪽이란 의미를 갖는다는 주장도 있지만 결국은 한국의 남해, 동해, 서해의 한 부분이며, 한국인의 관점에서만 인정될 수 있는 '한국의 동쪽에 위치한 바다'로써의 동해라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부인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아시아의 동쪽 끝바다는 동해가 아니라 태평양이란 점에서 사실은 명백해지며 일본이 대륙에서 시작된 해양산맥에 기원을 둔 열도라는 점도 아시아의 대륙의 끝이 한국이라고 주장할 수 없는 이유가 될 수 있다.

또한 우리가 서해로 알고 있는 우리나라의 서쪽 바다는 황해(Yellow Sea)란 이름으로 국제적으로 통용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특정지역 또는 국가의 관점에서 이해되는 동해라는 이름을 주장하기에는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생각된다.

명백하게 분쟁의 당사자가 되고 있는 한국과 일본과는 달리 동해의 또다른 주변국들인 중국과 러시아가 동해를 보는 시각은 흥미로운데 이는 동해의 국제적인 명칭을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공평한 것인지를 생각하게 해 준다.

고대 중국에서는 동해를 자국의 방위개념에 따라 동해와 남해로 나누어 불렀던 적이 있었으며, 러시아의 경우 비교적 근대에 들어와 아시아 주변의 지도를 제작하면서 한국해란 명칭을 많이 사용하였으나 두 나라 모두 사회주의 체제로 돌아선 이후 발행한 지도에서는 일본해로 표기해오고 있다.

일부에서는 북해(North Sea)에 대한 사례를 근거로 동해의 타당성을 주장하기도 하지만 이는 유럽대륙 국가들과 영국의 동의가 전제된 것이란 사실을 간과한데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즉, 일본의 동의 없이는 동해란 이름은 국제적으로 통용되기 어려우며 마찬가지로 한국의 동의 없이는 일본해란 이름도 쓰일 수 없다는 것이 국제관례에 대한 정확한 이해로 보면 될 것이다.

대양 또는 여러 국가가 인접한 해양에 대한 국제적인 명칭을 그들 개개의 국가가 어떻게 부르는가와는 상관없이 특정한 국가의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형평성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가지고 있으며 과거에 어떻게 불리었는가는 하나의 근거로써 사용될 따름이며 결정을 위한 열쇠는 당사국들의 동의와 협의에 있다고 해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그래서 정부의 대안도 동해만을 대안으로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동해와 일본해를 병기하는 것으로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대안에도 몇 가지 중대한 논리적 허점을 가지고 있다.

한·일 월드컵에서 어느 나라의 이름을 먼저 사용하느냐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는 사례를 떠나 한국의 입장을 우선 고려하여 'East Sea/Sea of Japan'이라고 한다면 한국 또는 일본이 아닌 동해의 역사적 기원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볼 때 일본해 중의 하나인 동해로 오해할 소지가 제법 있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오해를 없애기 위해서는 'Ease Sea of Korea/Sea of Japan'이라고 해야 하나 이는 한국의 명칭에만 방위개념이 들어가 있어 결국에는 'Ease Sea of Korea/North-West Sea of Japan'이라는 다소 어정쩡한 이름 또는 'Sea of Korea and Japan'정도로 결말이 지우는 것이 형평에 맞지 않을까 싶다.

또한 이와 같은 명칭이 채택된다면 또 다른 이해당사자인 중국이나 러시아의 입장은 어떨까 궁금해지기도 하는 대목이다.

국가와 국가간이 아닌 한 나라안에서도 항만 또는 도시의 특정지역이나 교량의 이름을 정하는데 있어서도 지역의 이름을 사용하는 문제는 민감한 사안이 되고 있다. 항만이나 교량의 경우 나름대로 관례가 정해져 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사례로써 존재할 뿐으로 이해당사자의 의견차이가 있다면 반드시 합의가 선행되어야하는 것이다.

과거 국가가 지정한 충남 장항과 전북 군산을 축으로한 '군장(群長)국가공단'을 놓고 충남에서 '장군(長群)국가공단'으로 명명해 지역간 갈등을 빚었던 사례나 항만분리 운동이 일고 있는 평택-당진, 부산-진해의 사례는 명칭으로 인한 논란이 자칫 지역갈등의 원인으로 발전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최근 일본과 한국의 신문 칼럼에서 대안으로 소개된 '청해(Blue Sea)'란 이름으로 부르자는 주장이 화제가 되는 것도 역사적인 배경을 가지지는 못할지라도 어느 한쪽에 치우치는 안보다는 서로가 감정적인 충돌 없이 비교적 쉽게 합의에 도달할 수 있는 차선책으로 나온 대안이라는 점에서일 것이다.

동해의 명칭 논란과 관련하여 어느 네티즌은 동해를 청해라고 해야 한다면 애국가도 '동해물과 백두산이~'이 아니라 '청해물과 백두산이~'으로 고쳐야 한다며 반대의견을 나타내었는데 따지고 본다면 백두산도 중국에서는 장백산으로 부른다는 점에서 기우라고 하고 싶다.

경계를 같이하는 지명이나 바다의 명칭의 경우 특정국가에서 사용하는 명칭을 굳이 따를 필요도 없거니와 국내에서 통용되는 명칭과 국제적으로 사용되는 명칭이 같아야 할 필요도 없다. 다만 자국의 입장에서 통용되는 이름을 국제적으로 공인 받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지사이겠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주변국들의 동의 또는 합의를 통해 가능할 뿐이다.

동해의 명칭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이 자칫 국제관례 또는 군사·경제적인 논리가 적용되는 영해 또는 경제수역(EEZ), 조업협상 등과 같은 배타적인 권리와 관련하여 오해되지 않기를 바라며 동해의 바른 이름 찾기 작업은 한국과 일본 나아가 중국과 러시아 등 주변국가들의 이해관계가 상존하고 있는 해역에 대해 과거 IHO가 해역에 이름을 부여할 당시 한일관계의 부적절함에서 비롯된 역사적 오류를 바로잡고 적절한 이름을 찾아주는 작업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70년이 넘게 일본해란 이름으로 잘못 불리어진 동해의 이름을 제대로 찾는 작업의 첫 번째 성과는 '그 바다는 반드시 동해여야 한다가 아니라 일본해란 사실은 명백한 오류이다'란 사실을 구체적으로 확인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동해의 명칭을 일본해도, 동해도, 그렇다고 두 이름을 병기한 것도 아닌 공란으로 비워두기로 한 IHO의 최종안은 정부 및 관련 단체의 구체적인 외교·학술적 성과로 보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바다의 명칭은 지방, 인명, 국명 등과 같은 인문환경이나 색채, 방위, 염분, 수온, 해류 등과 같은 자연환경 등으로부터 유래된 다양한 이름들로 불리어지고 있다.

여러 가지 대안들 중 현재 사용되고 있는 일본해란 명칭을 삭제하고 동해의 새로운 국제적인 이름으로 어떤 안이 채택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다음의 IHO '해양의 경계 5판'에서 다루어져도 충분하다는 심리적인 여유를 가지고, 지금은 일본해를 삭제하는 안이 회원국들의 동의를 얻어 최종 확정될 수 있도록 외교적인 활동을 강화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다루어야 할 과제이며, 이후로도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대안들을 보완하는 노력들을 지속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또한 단시간에 가시적인 성과가 없더라도 일본과의 협의를 지속하는 것은 신의성실을 강조하는 국제사회의 규칙을 존중하는 차원에서도 계속되어야하며 필요할 경우 중국, 러시아 그리고 북한을 포함한 주변연안국들로 논의를 확대하여 감정이나 아전인수격 해석에 의한 결과가 아닌 논리와 실리를 함께 찾을 수 있는 대안이 마련될 수 있도록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한편 전 세계의 해양, 해협, 만 등 모두 156개의 바다 명칭과 한계를 표시하고 있는 IHO의 최종안은 남극대륙 주변의 아문젠 해협 등 60개의 명칭을 새로 정하고, 일본해 등 4개 명칭을 삭제하는 등 지난 1953년 발행된 3판에 비해 내용이 크게 보완된 것이며, 당초 올해 안에 발행할 예정이었으나 다소 연기된 일정인 오는 11월 30일까지 72개 회원국으로부터 최종안 전체를 대상으로 찬반 서면투표를 받아 과반수 이상이 찬성하면 내년 4월에 4판을 발행할 계획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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