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정 공조와 DJP연합이 다른 이유

<13인위원회의 신문읽기 50>

등록 2002.12.16 15:03수정 2002.12.16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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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난항을 겪던 것으로 보이던 민주당과 국민통합21의 대선 정책공조가 매듭이 지어져 오늘부터 정몽준 대표가 노무현 후보 진영의 명예선대위원장에 취임하여 선대위 회의를 주재했고 대전에서 합동유세에 참여하는 등 본격적인 선거공조에 나섰다는 소식이다.

노무현 후보 쪽 입장에서 보면 고무신을 신고 뛰다가 새 운동화를 갈아 신고 뛰는 것 같은 기분일 것이다. 이제 ‘결전의 날’이 일주일도 안 남은 지금, 노-정의 본격 선거연대는 결정적인 시너지 효과를 낼 것으로 보인다.

이 문제에 관해서 왠지 <조선일보> 사설은 침묵을 지키고 있지만, <동아일보>와 <중앙일보>의 사설들은 발빠르게 대응을 보였다. <동아>의 ''노-정 공동정부’정체 뭔가'라는 사설과, <중앙>의 '노무현·정몽준 정책공조 이면은 없나?'라는 사설이 그것이다.

그 사설들의 핵심은 이 공조가 ‘DJP 공조’와 유사하다는 것이다. <동아>가 “그대로 5년 전 DJP공조의 전철을 밟고 있다”고 단언한 반면, <중앙>이 “(유권자는) 이번 공조가 DJP의 전철을 밟지나 않을까 하는 측면을 세심히 지켜볼 것이다”라고 약간 빠져나갈 여지를 만들어 둔 것이 차이라면 차이일 것이다.

그들 사설자들은 노-정 공조가 정책공조 아닌 ‘정책합성’으로 절충적이며 사실상 자리배분의 제도화를 전제하고 있고, 갈등이 예정된 불안한 것이며(동아), 국민통합21 측이 정책보다 자리 나눠먹기에 급급할 가능성이 크며, 이면계약이나 흥정이 존재할 가능성이 크다(중앙)는 점에서 이번 노-정 공조가 DJP 연합과 차이가 없다고 보는 듯하다. 그리고 “공동정부의 정체를 밝혀라”(동아)라고, “남은 선거운동 중 두 사람의 행태와 발언을 지켜보면서 유권자들은 최종 판단을 내릴 것이다”(중앙)라고 자못 협박성의 결론을 내리고 있다.

나 역시 민주-통합21, 혹은 노-정 공조의 미래가 불안스럽지 않은 것은 아니다. 향후 민주당과 노무현 후보에게 보다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행보를 기대하는 입장에서는 국민통합21과의 공조가 그 발목을 잡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노-정 공조를 DJP 공조와 같은 종류의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 두 개의 공조는 ‘공조’라는 점과 그것이 대선에서 작용하는 영향력이라는 점에서만 같을 뿐 그 맥락과 과정, 그리고 향후의 방향에서는 전혀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우선, 그 맥락이 전혀 다르다. 잘 알다시피 1997년의 DJ는 범접할 수 없는 강력한 리더십과 카리스마로 민주당을 지배통합하고 있었지만 강력한 지역구도 속에서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이념적 거리는 멀지만 지역구도 속에서는 제휴가 가능한 JP와 능동적으로 손을 잡았다.

그것은 고도의 능동적인 정치공학의 산물이었다. 하지만 노무현 후보가 정몽준 대표와 손잡게 되는 과정은 경선을 통해 후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내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거듭되는 위기를 돌파한 끝에 도달한 피할 수 없는 결론인 것이다.

둘째, 그 과정이 전혀 다르다. DJP 연합이‘고도의 정치공학의 산물’이라곤 하지만 사실상 파벌 보스끼리의 ‘밀실 거래’의 결과였음에 반해 노-정 공조는 비록 완전한 경선은 아니었지만 여론조사라는 국민적 검증과정 결과 이루어진 승부와, 그 결과에 대한 패자의 깔끔한 승복을 통해 이루어진 공조라는 것이다.

이는 결선투표제가 없는 우리 대선제도에서 보면 일종의 1차투표 과정을 대신한 것이라고 보아야 하며 그런 점에서 이는 ‘밀실 거래’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셋째, 향후의 방향도 다르다. 노-정 간의 노선차이가 분명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어느 방송토론회에서도 언급된 바 있듯 이를테면 한나라당 내의 이른바 ‘개혁-보수’ 인사들 간의 거리보다 먼 것은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노-정은 공히 과거 한국정치의 적폐로부터 상당히 자유로운 정치적 신세대들로서 DJP 공조의 예정되었던 추한 말로를 반복할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아직 국민통합21의 정치노선이 뚜렷해 보이지는 않지만 적어도 구정치와 결별하고 정치개혁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일단 최소한의 신뢰성은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그 점에서는 순진한 낙관인지는 모르나 노무현 후보가 이끄는 새로운 민주당과의 신선한 결합을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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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김명인 ⓒ 희망네트워크

이런 차이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단지 결과의 유사성만을 놓고 노-정 공조를 DJP연합과 같은 성격의 것으로 도매금으로 처리하는 것은 그들 언론인들 스스로가 구시대적 정치관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이런 ‘의도적이고 자발적인 무지’는 이런 구시대적 정치관 속에서만이 누릴 수 있는 기득권을 지키고자 하는 무의식적이고 동물적인 방어본능의 발로에 다름 아니다.

이번 대선은 더러운 ‘정치 동물’들의 청산을 위해서도 절호의 기회이지만, 이런 냄새나는 ‘언론 동물’들의 청산을 위해서도 역시 다시 오기 힘든 기회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2002년 대선을 앞둔 시기, 신문의 편파·불공정·왜곡보도에 대한 감시운동을 위해 각계 전문가들이 자발적으로 나서고 있다. 민주화운동의 대표세대인 3,40대가 주축이 되어 결성한'희망네트워크'(www.hopenet.or.kr)의 <13인위원회의 신문읽기>는 매주 화, 목, 토 격일간격의 모니터링 칼럼을 이어가고 있다.

<13인위원회의 신문읽기>에는 김명인씨를 비롯해 김택수 변호사, 김근식 경남대 교수, 소설가 정도상씨,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권오성 목사,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의 저자 홍세화씨, 김창수 민족회의 정책실장, 전 중앙일보 문화부장을 지낸 방인철씨, 이용성 한서대 교수, 권오성 수도교회 목사, 대학생 오승훈씨, 민언련 사무총장 최민희씨 등 각계 전문가가 함께 하고 있다.

독자로서 필진에 참여하고자하는 분들은 희망네트워크 홈페이지(www.hopenet.or.kr)「독자참여」란이나 dreamje@freechal.com을 이용.- 편집자주

덧붙이는 글 2002년 대선을 앞둔 시기, 신문의 편파·불공정·왜곡보도에 대한 감시운동을 위해 각계 전문가들이 자발적으로 나서고 있다. 민주화운동의 대표세대인 3,40대가 주축이 되어 결성한'희망네트워크'(www.hopenet.or.kr)의 <13인위원회의 신문읽기>는 매주 화, 목, 토 격일간격의 모니터링 칼럼을 이어가고 있다.

<13인위원회의 신문읽기>에는 김명인씨를 비롯해 김택수 변호사, 김근식 경남대 교수, 소설가 정도상씨,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권오성 목사,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의 저자 홍세화씨, 김창수 민족회의 정책실장, 전 중앙일보 문화부장을 지낸 방인철씨, 이용성 한서대 교수, 권오성 수도교회 목사, 대학생 오승훈씨, 민언련 사무총장 최민희씨 등 각계 전문가가 함께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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