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사) 효순 미선에게

효순 미선 추모및 소파전면개정을 촉구하는 기도회(12.17 오전 10:30 인천 강화)

검토 완료

박철(pakchol)등록 2002.12.16 17:21
효순 미선에게!

내가 너희를 만난적도 직접 본 적도 없지만, 이젠 나뿐만아니라 사천만 온 국민이 너희 이름을 부르고 있구나. 아기 예수의 성탄을 기다리는 대강절에 너희 둘은 이 민족의 양심을 일깨워주는 촛불이 되어, 이 민족의 서러운 마음을 달래주고 있구나.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어린애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손을 마주잡고 꺼져가는 촛불에 다시 불을 붙여주며 온 국민의 허전한 가슴에 환한 등불이 되었구나.
효순 미선아! 올 여름, 월드컵 경기로 온 국민이 ‘대한민국’을 연호하며 흥분과 열광으로 충만하고 있을 때, 우리는 너희 둘의 이름을 주목하지 못했단다. 참으로 미안하구나. 텔레비전에서 너희의 죽음이 잠간 소개되었을 때, 우리는 이 나라에서 허구헌날 사고만치는 미군이 또 사고 쳤구나 하고 너희 둘의 죽음을 태연하게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비켜서고 말았구나. 미안하다.
친구의 생일파티에 초대를 받아 재갈거리며 수줍게 길을 걷던 너희들이, 그 무지막지한 미군 장갑차에 깔려 참혹한 죽음을 당했는데, 우리는 우리나라 선수들이 추구골대에 한 골 더 넣으라고 소리소리 지르며 즐기느냐고 너희의 비명소리를, 두 딸을 잃은 부모님의 통곡소리를 듣지 못했구나. 효순아 미선아! 정말 미안하다.
너희의 참혹한 죽음의 실체에 눈을 뜨지 못하고, 아니 미쳐 날뛰던 미군 장갑차를 멈추게 하지 못한 어른들의 무관심과 기성세대의 잘못을 용서해 다오. 불과 한 달 전에 미군 법정에서 너희들에게 비참한 죽음을 안겨준 미군 두 병사가 무죄평결을 받는 걸 보고나서, 우리가 지금껏 얼마나 어리석었는가를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단다.
아무리 고의가 아니어도 조금만 주의를 살피고 안전운행을 했어도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아니 장갑차가 운행할 수 없는 좁은 도로에서 훈련이라는 미명아래 사전신고도 없이 너희의 꽃다운 목숨을 앗아가 놓고선 아무 죄가 없단다. 그리고 먼지 털듯이 두 미군 병사는 가방 챙겨 자기 나라로 가버리고 말았구나. 대명천지에 세계의 일등국가라고 하는 미국이 젊은 두 목숨을 갈기갈기 찢어놓고서는 미군법정에서는 나무망치 두들기며 아무 잘못이 없단다.
지난 달, 너희에게 죽음을 안겨준 미군 두 병사가 1차 무죄평결을 받은 후, 성난 국민들이 미군부대 앞까지 쳐들어가 “효순이 미순이를 살려내라”고 “무죄평결이 웬 말이냐고, 재판 다시 하라”며 시위를 하는데, 한국 경찰이 무술시범 하듯이 경찰봉을 휘두르자 여기저기서 사람들 이마에 피가 줄줄 터지는데, 저만치 그 장면을 구경하는 미군병사들이 키득키득 웃는 모습을 보고 나는 치떨리는 분노를 느끼며 동시에 우리의 자화상을 보는 듯 했단다.
억울한 너희의 죽음을 항의하는 국민들에게 마구잡이로 경찰봉을 휘두르는 한국경찰들과 그것을 재밌게 구경하는 미군병사들과 너희의 참혹한 죽음이 교차되어 정말 머리에 피가 솟는 듯한 기분이었단다.
노벨평화상을 받은 김대중 대통령은 여전히 근엄한 표정으로 국익을 우선하여 점잖을 빼고 계시고, 법무부장관이라는 분은 소파개정은 현 실정에서 어렵다며 국민들은 호도하고, 미국의 부시대통령은 미동도 하지 않고 도무지 사과할 의사가 없었단다.
한달 전만해도 아무데고 믿을 데가 없었단다. 너희 부모님은 기진맥진한 채 눈시울을 적시고, 우리는 간간히 텔레비전을 통해 그 장면을 지켜보면서 아들 딸을 둔 애비로서 통한의 눈물을 삼켜야 했단다.
그런데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 너희의 죽음을 추모하며 인간말종의 소파개정을 촉구하는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모이기 시작했단다. 모진 바람이 부는 겨울 한밤중 벌판에 너나 할 것 없이 촛불을 들고 이 민족의 평화를 빌며, 작은 바람에도 가물거리는 촛불을 들고 천갈래 만갈래 펄럭이는 마음 거두어 이 민족의 양심에 불을 지피기 시작했단다.
효순아 미선아! 엊그제 서울 광화문, 또 시청 네거리에 십만명의 촛불 행렬을 보았니? 지난여름 월드컵의 열기와는 사뭇 다른 환희와 감동의 물결을. 나는 그렇게 아름다움 광경을 처음 보았단다.
효순아 미선아! 너희 두 이름은 내 아들, 내 딸 만큼 소중한 이름, 소중한 사람이 되었구나. 효순이 미선이의 죽음이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약속하마. 두 눈 부릅뜨고 이 민족을, 이 겨레를 업신여기는 미국을, 우리나라를 돕겠다는 미명하에 온갖 악행을 자행했던 오만한 미군에게 더 이상 당하고만 있지 않겠다고. 너희의 거룩한 죽음의 실체에 눈을 뜬 우리 국민이 두 번 다시 미국에 속지 않을 만큼 단결되었단다. 너희들이 참 자랑스럽구나.
효순아 미선아! 너희는 이 민족의 양심이 거룩한 촛불이 되었단다. 그 촛불은 어떤 바람에도 꺼지지 않는 촛불이 되어, 심지가 다 타도 다시 심지를 세울 것이고, 우리 민족의 자존과 자주를 우뚝하게 지키는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다.
효순 미선아! 이번 성탄절에 복 많이 받거라. 천국에서 만나자.

2002년 12월 16일
박 철 목사.
ⓒ 2007 OhmyNews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