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백성으로 돌아온 김대중과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통 시인이 보내는 한편의 시

검토 완료

이종찬(lsr)등록 2003.02.26 15:57

밤하늘을 보니 별이 많이 생겨났네요/화가 현재호 선생의 그림 ⓒ 현재호

백조일손지지

1

위의 제목을 한문으로 쓰면
百祖一孫之地 이렇게 쓰는데요
무슨 뜻이냐 하면요
수많은 사람들이 한날에 죽어 누구의
시신인지도 모른 채 무덤도 같고 제사도 같이 치르니
한 자손이 백 명의 조상을 모시는 것과 같다는 뜻입니다

어느 달이 가장 잔인한 달이라 했던가요
서양의 어느 백인 시인이
죽은 라일락도 꽃을 피워낸다고 했잖습니까

선사시대의 조개무덤 얘기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얘기는 더더욱 아니구요

자, 그럼 시작할까요
이 땅 제주에서 무덤이 발굴되었습니다
어디 제주뿐이겠습니까
충북 영동에도 경북 문경에도
경남 산청 함양 거창에도
부끄러워라 부끄러워라 또 부끄러워라

2

지구촌에는 나라들이 많습니다만
동족이 동족을 학살한 예는 흔치 않을 겁니다
자기네들이 저질러놓았던 이승만 정권도
잠깐 동안의 장면 정권도
삼십여 년을 통치했던 박, 전, 노의 군사정권도
뜬구름 잡으려다 마감한 문민정권도
해내지 못한,
아아 내가 그렇게 했으면 하는 바람 중
하나를 이야기하라 하면
실로 반세기 만에 정권이 바뀐(제발 단지 자리바꿈이 아니길)
국민의 정부 그야말로
상해임시정부로부터 내려온 정통성 있는 정부라고 말하는
백성의 정부라면
용감하게 진실로 용기 있게
오십 년이 지나도록 잠들지 못하고
흩어져 있는 시신들
저승으로 가지 않은 떠도는 영혼들
백조일손지지 앞에 나아가 경건하게......
(대만은 천구백사십칠년 이월 이십팔일의 대학살에 대해 이동휘 총통이 마침내 국가가 저지른 범죄행위라고 규정하고 수난자들에 대한 묵념을 올리고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와 진상규명에 이어 희생자 명예회복, 희생자 유가족 보상, 왜곡된 학교 교과서 고침 등등을 했는데......)

이선관 시인의 편지 ⓒ 이종찬

3

무거운 이십세기는 가고
이십일세기에 접어드는 출발점에서
백성 즉 참여정부에게 조용히 건의하노니
아아 내가 그렇게 했으면 하는 바람 중
하나를 이야기하라 하면
아니 벌써
국민의 정부에게 이야기를 다했는가 봅니다
그래도 다시 한번,
어제는 미군 장갑차에 깔려 죽은 두 여중생의 어이 없는 죽음을
오늘은 대구 지하철 참사에서 죽은 사망자 숫자를
적당히 그렇게 어물쩡 넘어가려는 것처럼
얼마나 많은 문제를 화끈하게 해결하지 못하고
정체된 역사 그대로 흘러 왔습니까

늘 주어진 현실에 민감하게 대응하는 이선관(61) 시인이 전직 대통령과 신임 대통령에게 보내는 '백조일손지지'(百祖一孫之地)란 시를 한 편 썼다. 백조일손지지란 백명의 조상이 있어도 한 명의 자손밖에 이어가지 못한다는 그런 뜻이다.

이 시는 24일, 청와대를 떠나 동교동 자택으로 돌아온 보통 백성 김대중 전임 대통령과 25일 오전 11시 국회의사당 앞에서 제16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는 노무현 신임 대통령에게 보내는 보통 시민 이선관 시인의 보통 시이다.

현재 마산에서 활발한 시작활동을 하고 있는 이선관 시인은 지난 해 12월, 미군 장갑차에 깔려 죽은 두 여중생을 추모하고 미국의 횡포를 강력하게 규탄하는 시를 오마이뉴스에 발표하기도 했다.

"보통 백성으로 돌아온 김대중, 햇빛정책은 성공할런지 성공해야지만,
국내정책은 제로였다는 것 알고 만다. 돌아온 김대중한테 들려주고 싶은 시 한편. 대통령 집무 때 그렇게 하라고 부탁을 했는데.... " (이선관 시인의 편지)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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