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이 지켜주지 않으면 서있기조차 힘든 존재들?

열린우리당 당사 이전으로 돌아본 당사 밖 풍경에 대한 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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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봉(finlandia)등록 2004.03.10 13:22

국회의사당 풍경. 그리고 전경들.. ⓒ 권기봉

영등포구 문래동의 농협 폐공판장을 찾은 열린우리당 당직자들이 혀를 내둘렀단다. "해도 너무한 것 아니냐"며 안타까워했단다. 어떤 당직자는 "쥐가 돌아다니고 천장에서 바퀴벌레가 떨어지더라"고 한탄했다고도 전해진다.

지난 해 여의도 국민일보 빌딩에 새 당사를 얻을 때 롯데그룹으로부터 받은 2억원의 불법 자금이 당사 임대료로 사용된 사실이 드러나자, 열린우리당이 급히 새 당사를 찾아나선 것이다.

이미 건물 임대계약을 끝낸 열린우리당은 총무팀 등 실무진을 시작으로 문래동으로 이사를 착착 진행하고 있다. 정동영 의장의 5일 발언이 있은 뒤 사흘만에 단행된 당사 이전. 총선에만 올인 해도 정신 없을 판에 열린우리당은 더 분주해졌다.

그런데 알고 보면 열린우리당만 바빠질 것 같진 않다. 열린우리당의 당사 이전으로 영등포 경찰서 역시 손길이 빨라졌다. 왜냐하면 새 당사의 상황에 맞는 경비 계획을 새로 짠 뒤 당장 경비에 착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열린우리당이 입주해 있는 국민일보 빌딩 4층 로비. 그리고 전경들.. ⓒ 권기봉

지금까지 우리 정당들은 스스로 요청을 하든 하지 않든 경찰이 자체적으로 판단, 당사 밖 경호를 서왔다. 그만큼 당사와 당사 주변은 ‘위험 요소’가 상존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민주노동당을 제외한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 민주당, 자민련의 경우 영등포 경찰서와 마포 경찰서에서 24시간 당사 경비를 하고 있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규모를 늘리느라 뚝딱거리는 소리가 났던 열린우리당사만 해도 그렇다. 열린우리당이 입주해 있는 국민일보 빌딩 주변은 24시간 전경들이 지키고 있었다. 특히 당사 앞에서 집회가 있는 날이면 전경이 대규모로 증원되며 건물 1층 로비는 경찰 관계자들로 가득하다.

다만 열린우리당은 건물 전체를 당사로 이용하는 한나라당이나 민주당과는 달리 국민일보 빌딩의 일부층(4~5층)만을 이용해왔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히 열린우리당과는 상관없는 일로 빌딩을 드나드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고, 이에 경찰은 당사 경비에 애를 먹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래서 택한 방법이 건물 밖이나 1층 로비뿐만 아니라 열린우리당이 이용하고 있는 4층과 5층 로비에도 전경들을 상주시키는 것. 국민일보 빌딩 4, 5층에 전경 10여 명이 돌아다니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한나라당사 앞. 그리고 전경들.. ⓒ 권기봉

그렇다면 지난 대선 과정에서 823여억원의 불법 자금을 수수한 것으로 알려진 한나라당은 어떨까.

한나라당은 다른 정당에 비해 당사 앞 집회가 많아 경비 병력이 상대적으로 많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국회의사당에서 100m 안쪽에서는 집회를 열 수 없지만, 그 100m 선이 지나는 곳이 한나라당사와 대한주택보증 빌딩 주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나라당을 대상으로 집회를 할 때 뿐만 아니라 국회에 대고 할 말이 있을 때 역시 한나라당사 앞에서 종종 집회가 열린다.

민주당사와 지하상가가 연결되는 지하1층 출입구. 그리고 전경.. ⓒ 권기봉

실제로 이라크 파병과 FTA 비준, 유아교육법 등 각종 현안들이 첨예하게 대립할 때마다 한나라당사 앞은 집회 참가자와 전경들로 한바탕 홍역을 치른다. 물론 서청원 전 대표가 구속되던 당시 그의 지지자들이 당사로 몰려오는 바람에 경찰이 건물 안까지 들어와 출입하는 사람을 일일이 확인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총무국 관계자는 “이라크 파병이나 FTA비준도 노무현 대통령이 하라고 한 건데 왜 맨날 한나라당 앞에서만 집회를 하냐”며 “국회 집회 저지선 100m에 가까이 있어 괜히 오해를 산다”고 말했다.

한때 여당이었다가 하루 아침에 야당이 된 민주당 상황은? 당사 밖 경비 상황은 한나라당이나 열린우리당과 별반 다를 바 없지만, 민주당사는 지하상가와 연결된 건물 구조상 지하 1층 출입구에도 전경이 한 명 경비를 서고 있다.

하지만 민주당은 야당이 된 이후 자신들은 전경 철수를 요청했다고 말하고 있다. 송찬식 민주당 총무국장은 “야당이 되면서 영등포 경찰서에 전경 철수를 요청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바깥 전경들이 경비 서는 것은 절대 우리의 의지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자민련 당사 앞. 그리고 전경들.. ⓒ 권기봉

민주노동당사를 제외하면 자민련도 비록 소규모이긴 하지만 24시간 경찰이 경비를 선다. 한마디로 우리 정당들은 하나 같이 경찰이 지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대해 박래군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는 “국민들이 정당에 가서 의사 표현을 하고 싶어도 정당 아닌 전경들에게 먼저 방문 목적을 말해야 통과할 수 있다”며 “이런 시스템의 원인이 경찰의 과잉 경비에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쉬운 현실임은 틀림없다”고 꼬집었다.

일반적으로 정당은 ‘정치권력의 획득을 목표로 정견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공통된 정책에 입각하여 일반적 이익을 증진시키고자 결합한 정치결사’ 혹은 ‘정치상의 이념이나 이상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 정권을 잡아 그 이념이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하여 모인 단체’(네이버 백과사전)라고 풀이된다.

그러나 우리 정당들은 정견을 같이 하는 사람이 모인 정치결사가 아니요, 공통된 정책에 입각한 것도 아닐 뿐더러 ‘일반적 이익’에는 별 관심이 없는 집단이기 때문일까? 이념이나 이상은 제쳐두고 그저 정권을 잡는 데만 관심이 있기 때문일까? 2004년 한국의 각 정당 당사들은 경찰의 보호를 받지 않으면 안될 존재로 전락해 버린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정대연 민중연대 정책위원장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정당이라는 곳이 국민들의 정치적 대의를 받아주는 곳인데, 오히려 원성을 사고 있으니…. 전경이 당사를 지켜줘야만 안심할 수 있는 현실…. 참 웃기는 겁니다.”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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