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당동에서 오신 김OO님 계시면..."

할인점에서 목격한 우리 시대 슬픈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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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수(grajiyou)등록 2004.11.01 16:59
어제(10월 31일) 가족들과 함께 용산에 있는 한 할인점에 쇼핑을 하러 갔다. 오후 6시쯤 할인점에 도착하여 이것저것 필요한 것들을 사고 매장 여기저기를 구경하다 보니 시간은 어느새 오후 8시를 훌쩍 넘겼다.

쇼핑을 마친 후 작은 누나가 전에 샀던 물건을 환불할 것이 있어, 우리 일행은 함께 고객만족센터 앞에 서 있었다. 그때 할인점의 안내요원 한 사람이 초췌해 보이는 할머니 한 분을 모시고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할머니는 쇼핑용 카트에 허름해 보이는 가방 2개를 싣고 있었고, 행색 또한 워낙 남루해 보여 필자는 '노숙자를 데려왔나 보다'하고 별스럽지 않게 생각했다.

잠시 후 그 안내요원이 안내 부스에 있는 남자직원에게 뭐라고 말을 건네고, 그 남자직원은 메모지에 뭔가를 적어 방송실에 있는 여직원에게 건네주었다. 평소 호기심이 많은 편인 필자는 안내방송을 귀기울여 들어 보았다.

"매장 내에 사당동에서 오신 김OO님 계시면 지하2층에 있는 고객만족센타 앞으로 와 주시기 바랍니다."

이 방송을 듣는 순간 필자는 '혹시 가족들이 할머니를 놔두고 간 것 아닐까?'하는 의심이 들었다. 할머니가 끌고 오신 쇼핑용 카트에 놓인 가방을 자세히 살펴보니 가방 1개는 굉장히 큰 등산용 가방이었고, 다른 1개는 학생들이 메고 다니는 가방이었는데 둘 다 빽빽할 정도로 꽉 채워져 있었다. 아무래도 짐을 싸 놓은 것 같았다.

쇼핑을 하러 온 할머니가 가방 2개에 가득 짐을 채워 오실 이유가 없지 않은가? 아무래도 사람이 많은 곳에 할머니를 버려 놓고 간 것 같았다. 필자는 곁에 있던 집사람과 작은누나에게 내 생각을 말했다. 그러자 두 사람 모두 내 생각이 맞은 것 같다며 '불쌍해서 어떻게 하냐'고 혀를 찬다.

환불을 한 후 우리는 허기를 달래기 위해 매장 내에 있는 음식점에서 저녁 식사를 하기로 했다. 여러 음식을 시켜 나눠 먹으면서 맛있게 저녁을 해결한 후 필자는 잠시 화장실에 들렀다. 손을 닦고 있는데 앞서 그 방송이 또 들린다.

"매장 내에 사당동에서 오신…"

필자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고객만족센터 앞으로 가 보았다. 역시나 아까 그 할머니가 한쪽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계신 것이 아닌가. 안내 방송이 처음 나간 때부터 거의 한 시간이 지났는데도 가족이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할머니를 버린 것이 아니라면 가족들이 먼저 할머니를 찾기 위해 고객만족센터를 찾아야 하는 것이 순서일 테고, 그런 생각을 못했을지라도 계속 나오는 방송을 듣고도 할머니를 찾으러 오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꽁꽁 묶인 가방 두 개를 보고 있노라니 할머니의 굴곡 많았을 인생이 그 가방 속에 갇혀 있는 것 같아 착잡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집에 와서 잠을 청하려는데 그 할머니의 고통스러워 보이는 얼굴이 자꾸 눈에 어른거려 한참을 뒤척이며 잠을 설쳤다.

나는 혹시나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해서 매장에 전화를 해보았다. 전화를 받은 매장 직원 말이 할머니와 함께 왔다는 가족이 나타나지 않아 할머니를 파출소로 모셔다 드렸다는 것이다.

70세 가량의 성치 않아 보이는 할머니를 복잡한 할인점 매장에 놔두고 간 사람들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일까.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만 노약자석이 준비되어 있을 뿐, 정작 우리 사회 전반에는 노인들을 위한 자리가 마련되어 있지 않은 것 같아 씁쓸할 뿐이다. 이제 노인들을 버리는 가족들에게 부양의무니 존속유기 및 학대죄니 하며 비난만 할 것이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시급한 대책을 마련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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