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 오랜 우회로 거친 정면 승부

현실 인정에 불과... 미국, 강경책 쓸 가능성 낮아

등록 2004.11.16 11:48수정 2004.11.16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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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의 '북핵 저지 무력 사용 반대' 발언의 내용을 정리한다면 "북한은 체제 안정이 보장된다면 핵을 포기할 것이다. 따라서 미국은 북한이 핵을 포기할 여건을 마련해 줘야 한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북한이 핵을 포기해야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성역같은 논리 구조에 손을 댔다.

외교부재, 한국에 신선한 충격

노무현 대통령의 의견 표명은 두 가지 면에서 상당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한-미 공조 확인'이라는 신성불가침 원리에 종속된 외교 부재 한국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주장은 일단 한나라당을 포함한 기존 보수층에 이질적 언어로 비쳐지는 것 같다.

또 다른 측면에서는 그간 정상회담 특검 수용, 이라크 파병 결정으로 말미암아 노무현 대통령에게 큰 기대를 하지 않던 진보층에 뜻밖의 반가운 소식으로 들리는 것 같다.

현실을 논리화한 것

그렇지만 노무현의 대통령의 논리는 이미 대부분 사람들이 현실로 받아들이는 상황과 원칙을 논리로 공식화한 것일 뿐 하늘에서 떨어진 '난 데 없는 것'은 아니다.

냉전색깔론이 정치 정국 양상에 여전히 큰 위력을 떨치고 있는 상황에서 대북 대미 발언은 매우 민감한 사안이다. 그런 만큼 노 대통령의 논리는 치밀했다. 하지만 내용은 의외로 간명한 것이다.

요약해 보자. 북핵 불용은 확고한 원칙이다. 문제는 어떻게 이것을 실현할 것인지인데 무력 행사는 전쟁 가능성 때문에 선택하기 어려우며, 봉쇄 전략은 불안의 장기화를 가져온다. 그리고 이에 따른 북한 붕괴는 한반도의 또 다른 재앙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대화밖에 없다. 그런데 대화가 해결책이 되려면 대화가 북핵 보유를 저지할 수 있는 현실 수단인지에 답해야 한다. 여기에 노무현 대통령은 "대화가 현실적이다"라는 점을 공식 인정했다.

그 근거는 북한은 핵폐기 없이는 한국은 물론 중국, 러시아의 지원도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에 체제 생존을 위해서 핵을 폐기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북한도 이미 시장개혁을 상당히 진척해 개혁과 개방이 북한으로서도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는 것이다.

북핵 보유 논리 인정

그러면 북한은 왜 핵을 보유하려고 하는가. 여기에 대해 노 대통령은 체제보위의 최후수단으로 핵 보유를 추진한다는 북한의 논리를 인정했다. 그러므로 미국이 북한에 체제 안전 보장을 해준다면 북한 핵문제는 평화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미국에 평화적 해결을 위한 조건을 충족시켜 줄 것을 요구한 것이다.

오는 20일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노 대통령은 간접적으로 한국의 의견을 사전에 전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사전 정지 작업의 결과

노무현 대통령이 예민한 문제를 우회로 없이 액면 논리 그대로 해결하려는 근거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벌써부터 한나라당과 조선일보와 같은 반공 기조 정치그룹에서는 "미국보다 북한을 더 신뢰한다"는 것을 문제로 삼으며 정부 여당에 이념 공세를 시작하고 있다.

그리고 파월 미 국무장관의 사임에서 보듯이 부시 2기 행정부는 한층 강경한 세력이 포진할 것으로 보여 정면 승부가 불리할 수 있는 측면도 있다.

이 대목에서 두 가지 점이 중요하다고 본다.

첫째, 남북 당국간 신뢰수준과 합의수준이 일반 예상보다 상당히 진전되어 있다는 점이다. 노 대통령의 발언은 현 정부가 북한 핵 전략의 진의에 대해 확신을 하고 있다는 뜻이라 볼 수 있다. 또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남북이산가족 상봉, 당국간 회담 진척으로 남북관계는 소문 없이 실제 진전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 정부의 대북 정책의 한 특징은 크게 떠들지 않고 진전시킨다는 데 있다. 그 한 예가 개성공단 착공식을 국장급 수준 행사로 낮춤으로써 여론의 역풍을 사전에 막은 것이 될 것이다.

그리고, 대북송금 특검 수용으로 대북사업에 대한 불필요한 오해 여지를 사전에 차단한 측면도 현 시점에서는 긍정적인 측면으로 작용하고 있다.

둘째, 미국의 선택 여지가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이다. 쉽게 말해 미국은 이라크 외에 또 다른 전쟁을 벌일 정치군사적 여유가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노무현 정부가 이라크에 대규모 병력을 보내 한-미 공조의 기본을 다하고 있는 데다 미군 기지 이전과 관련해 상당한 양보를 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미국이 한반도 전략을 최강경으로 몰고가기란 어렵다고 볼 수 있다.

낙관적 전망 기대 무난

그렇다면 향후 전개될 6자회담과 남북관계는 한반도의 분위기를 일신하면서 순조로이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그 가능성에 대한 판단은 20일 한-미정상회담 결과에서 어느 정도 내려져 지금 보수층의 반발이 얼마 안 가 무색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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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경기도 경제과학진흥원의 원장이다.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일리노이 주립대와 프랑스 사회과학대학원에서 공부했으며 LG경제연구원, 우리금융경영연구소, 정치경제연구소 대안에서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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