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더러운 것들을 왜 만나?"

나는 출입국관리사무소 앞에만 서면 부끄럽다

검토 완료

이영주(wizard73)등록 2005.05.04 19:07

ⓒ 이영주



인천출입국관리사무소.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출입국을 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별다른 인연이 없던 이곳.
그러나 오늘로써 벌써 네 번째 이곳에 왔다.


ⓒ 이영주



이주노동자들을 관리하고 단속하는 기관이
바로 출입국관리사무소였기 때문이다.

내가 이곳에 올 때는 꼭 사연 하나씩이 있었다.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이 전기총으로 이주노동자를 잡았다든지
단속을 피하다 2층에서 떨어진 이주노동자가 사경을 헤맨다든지
출입국 직원들이 이주노동자 내에 프락치를 심었다든지
몇 달째 체불된 임금을 받으러 사장 집에 찾아간 이주노동자에게
공갈협박죄를 씌워서 구속했다든지
사연 하나 하나가 죄다
내가 이 나라 백성이라는 것을 부끄럽게 만드는 것들 뿐이었다.


ⓒ 이영주



오늘 내가 이곳에 오게 된 것은 암저드 후세인이라는
8개월 전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온 파키스탄 노동자 때문이다.

그는 며칠 전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다니던 공장 사장에게서 고향에 다녀오라고 50일의 휴가를 받았다.
고향에 가려던 암저드는 사촌이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에 가지 못하고 사촌 병문안을 갔다.
아픈 사촌에게 고향 음식을 먹이고 싶어서
파키스탄 음식 전문점에서 음식을 사들고 사촌에게 향하던 암저드는
갑자기 들이닥친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들에게 연행이 됐다.

그들은 말로만 "출입국 직원"이라고 했을 뿐
영장도 신분증도 보여주지 않았다.
암저드가 자신은 합법체류 노동자라고, 외국인 등록증을 보여줬지만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들에게는 소용이 없었다.
"공장이 수원인데 왜 부천에서 돌아다니냐?"
그것이 그들에게서 돌아온 유일한 대답이었다.
그들은 암저드의 손에 수갑을 채운 채 봉고차에 태워 연행해갔다.

암저드가 다니던 회사에 전화를 한 출입국 직원들은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휴가를 줬다는 회사 사장에게
어서 이탈신고를 하라고 종용했다.
만약 이주노동자 인권단체가 이 사실을 알지 못했더라면
암저드씨는 합법체류 이주노동자임에도 불구하고
회사에서 정식으로 휴가를 주어 사촌 병문안을 갔음에도 불구하고
강제추방을 당했을 거라는 게 인권단체 실무자들의 설명이다.


ⓒ 이영주



암저드씨가 연행됐던 파키스탄 음식점은
하진성이라는, 파키스탄인이었다가 한국인과 결혼해
3년 전 한국인으로 귀화한 사람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하진성씨는 암저드씨가 이유 없이 연행되는 것을 보고
왜 잡아가냐고, 이 사람은 합법체류 노동자라고 항변했지만
한국인과 다른 하진성씨의 피부색을 본 출입국 직원들은
하씨의 멱살을 잡고 팔을 꺾으며 하씨마저 연행하려 했다.

출입국 직원들에게 우리보다 조금 검은 이주노동자의 피부는
마치 반역자에게 찍힌 낙인과도 같은 것이었다.
귀화심사를 한번에 통과하던 3년 전,
마치 세상을 다 얻은 듯 부인과 부둥켜안고 눈물 흘리며 기뻐했는데
그렇게 귀화한 이 나라는 하씨를 그렇게 취급했다.


ⓒ 이영주



규탄집회를 하는 내내 출입국관리사무소 정문 안에는
검은 정장을 입은 사복과 정복 경찰들이 줄지어 지키고 있었다.
그들은 이주노동자들의 울분에 찬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인권단체와 사회단체 인사들의 죄책감 어린 연대사를 들으면서도
그늘 아래서 비실비실 웃고 있었다.

항의서한을 가지고 출입국관리사무소 안으로 들어가니
사복경찰과는 또 다른 법무부 직원인 출입국 관리들이
처음에는 무척이나 정중하게 대표단을 맞아들였다.
그러나, 소장실로 향하는 대표단의 등뒤로 꽂히는 소리

"저 더러운 것들을 왜 만나?"

끝내 인천출입국관리소장은 코빼기 한번 내보이지 않았고
명백한 인권유린은 '저 더러운 것들'의 허튼소리로 치부되었다.

출입국 관리란 사람들이 내뱉는 언설이 기가 막혔다.
"외국인들 앞세워서 왜 나라 망신 시키냐?"
"당신들이 뭔데 인권이니 뭐니 떠드냐?"

지금껏 NGO단체가 관과 면담하는 장면을 수 차례 취재했지만
이렇게 안하무인에 오만과 편견으로 가득찬 관리들은 처음이었다.

그들은 이주노동자를 인간으로 대하지 않고
개, 돼지처럼 전기총으로 그물로 잡아들이는
비인간적 단속이야말로 국제적인 나라망신이라는 것을,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날아갔던 우리 조상들이
그곳 백인들에게 갖은 차별과 인간적 모멸을 당했던 것을
다시금 동남아시아, 중국, 러시아 노동자들에게 되풀이하는 것이
끝내 식민지 피지배 국민으로 자신을 주저앉히는 짓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는 백치 같은 인간들이었다.

그런 백치들이 고위 관리직을 차지하고 있으니
인천출입국관리사무소 단속반들이
얼마나 비인간적이고 비윤리적으로 이주노동자들을 단속할지
보지 않아도 눈에 훤했다.

끝내 항의서한 전달조차 하지 못한 채 집회를 마무리한 뒤
구름 한 점 없이 쾌청한 하늘을 올려다 보니
출입국관리사무소 안에서는 나오지 않던 눈물이 차올랐다.
더러운 새끼들, 망할 놈의 나라...
아무리 욕을 해도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출입국관리사무소 앞에만 가면
내가 이 나라 백성인 것이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 2007 OhmyNews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