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동기 30여명이 만든 20년 우정 콘서트

민중가수 손병휘 제1회 콘서트, 동기모임이 주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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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홍(bugulbugul)등록 2005.09.12 11:38

지난 9-11일 첫 번째 콘서트를 개최한 손병휘 ⓒ 김대홍


이외 3일간 콘서트에는 '문화판 마당발'로 불리는 손병휘의 인맥이 총동원됐다. 시사개그를 펼치는 김구라를 비롯 집회사회를 자주 보는 탤런트 권해효와 '국민사회자' 최광기, '노래하는 시인' 김현성, '한국의 존 바에즈' 손현숙, 포크가수 이지상이 그의 첫 무대를 축하하기 위해 무대에 올랐다.

게다가 그의 팬클럽(회장 김희연)이 적극 나섰다. 온라인 예매 작업과 홈페이지 관리를 팬클럽이 맡았다. 또한 게시판 질문에 답하는 일을 도맡았고, 다른 사이트에 콘서트를 홍보했다.

특히 이번 콘서트의 가장 큰 특징은 대학교 동기 30여명이 의기투합해 추진했다는 점이다.

손병휘는 93년 1월 '임수경 석방 환영대회' 이후 500여회가 넘는 공연에 참여했다. 게다가 올해는 3집 음반까지 발표했지만 그동안 자신의 단독 콘서트는 한 번도 열지 못했다.

손병휘의 첫 번째 콘서트에는 다양한 초대손님이 참가했다. 사진은 11일 공연에서 초대손님으로 나온 가수 안치환. ⓒ 김대홍


이를 보다 못한 대학교 동기 30여명이 뭉쳐 만든 행사가 바로 이번 콘서트다. '만세회'(회장 김경섭)라고 불리는 동기 모임은 모두 손병휘와 같은 고대 86학번들. 모임 명칭은 '통일 만세'를 외치다 자연스럽게 붙여지게 됐다고.

만세회 회원들은 대학 졸업 이후 1년에 4~5차례씩 꾸준히 만났다. 올해 6월 모인 회원들은 손병휘의 3집 앨범 발매 소식을 듣게 됐고, 즉석에서 콘서트 개최가 제안됐다. 김경섭 회장은 "누구 먼저랄 것도 없이 만장일치로 행사가 결정됐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콘서트가 결정되자 회원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나누었다. 기획분야는 손병휘에게 맡기고 자신들은 행사자금 마련을 위해 발 벗고 나섰다. 게다가 관객동원에도 적극 앞장섰다. 결국 마지막날 공연은 발 디딜 틈 없는 인파 속에서 진행됐다.

김경섭 회장은 이날 깜짝 손님으로 초대돼 김민기의 '공장의 불빛'을 불렀다. 그 가운데 손병휘는 "공연 수익금은 평화박물관 건립과 고구려 연구 자금에 기증하겠다"고 깜짝 발언을 했다.

이날 초대손님으로 나온 개그맨 황봉알 ⓒ 김대홍


이날 콘서트는 만세회 회원들이 대부분 가족과 함께 참석해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어린이들은 흥겨운 노래가 나오면 춤을 추는가 하면, 열심히 박수를 따라 쳤다. 한 어린이는 돌발 발언으로 이날 행사를 유쾌하게 만들었다. 그는 손병휘가 서서 노래하기 위해 마이크를 '쑥' 뽑자 "드디어 일어섰군"이라고 큰 소리로 말해 좌중을 웃겼다. 곧이어 손병휘가 노래를 끝내고 다음 노래를 부르려 하자 "아직도 안 끝났어요?"라고 푸념을 털어놓아 또다시 웃음을 이끌어냈다.

미리 손병휘가 웃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노래 중간중간 특유의 입담을 선보이며 지루해질 수 있는 객석을 달구었다.

"이렇게 조용한 노래가 이어지고 있는데 아직까지 잠들지 않는 어린이가 있다는 것은 불가사의한 일이죠" "애들 떠드는 것 때문에 불편하신 분들은 조기교육 시킨다 생각해주시고 부디 이해해 주세요. 그런데 저는 이해 못하겠어요"와 같은 말 뒤에는 항상 웃음이 뒤따랐다.

'만세회' 김경섭 회장이 깜짝손님으로 나와 김민기의 '공장의 불빛'을 불렀다. ⓒ 김대홍


특히 잔잔한 노래인 '샤이를 마시며'를 부른 뒤 흥겨운 풍의 '더 늦기 전에', 8-90년대 민중가요 '불나비' '서울에서 평양까지', 가요 '아빠의 청춘을'을 잇따라 부르며 분위기를 띄웠다. 남과 북의 '백두산'을 연이어 부른 대목도 관객의 큰 박수를 받았다.

노정렬은 박정희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성대모사로 축하 메시지를 전했고, 안치환은 자신의 노래를 개사한 '병휘는 꽃보다 아름다워'를 열창했다.

다음은 만세회 회원들과 나눈 대화 전문이다.

- 만세회 모임에 대해서 설명해 달라.
"고대 86학번 동문들 모임이다. 그 당시 사회문제를 함께 고민하면서 모이던 이들이 있었다. 졸업할 때가 되면서 사회에서도 모임을 계속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모두 가졌다. 그 때 동기 중에 구속된 사람이 나타났고, 91년 후원모임을 만들면서 자연스럽게 '만세회'가 만들어졌다. 매년 감옥에는 2-3명의 동기들이 있었고, 한 친구는 7년 동안 감옥살이를 했다."

"초기 인원은 15명이었으나 지금은 30여명 수준으로 늘었다. 매년 4-5회씩 모인다."

손병휘의 앵콜

이날 손병휘는 '못생긴 것들이 산을 지킨다' '못난 것들은 얼굴만 봐도 기쁘다'와 같은 말로 '만세회'에 대한 애정을 표시했다. 이어 "제가 평생 빚을 갚아야 할 것 같다"고 속내를 드러냈다.

그는 앵콜 첫곡으로 1집에 실린 '난 언제나'를 선택했다.

"내 노래는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다 해도 나 언제나 이 자리에서 노래 부르리/ 내 사랑은 그대가 알아주지 않는다 해도 나 언제나 그대 위해 꽃을 보내리."

두 번째 앵콜 곡은 2집에 실린 '나란히 가지 않아도'

"누군가 누군가 보지 않아도 나는 이 길을 걸어가지요/ 혼자 혼자라고 느껴질 땐 앞 선 발자욱 보며 걷지요/ 얼굴 빛 다르고 하는 말 달라도 서로 마주보며 웃음질 수 있다면/ 나란히 나란히 가지 않아도 우리는 함께 가는 거지요."

그는 1집과 2집에 실린 대표곡을 통해 자신이 노래를 부르는 이유와 관객에 대한 마음을 표현한 듯했다. / 김대홍
- 구속된 동기 후원 외에 다른 활동을 하지는 않았나.
"구속자는 2001년 이후 더 이상 없었다. 우리는 동기생 외에도 양심수와 학교 후배들을 후원했고, 경조사 때문에 자주 모였다."

- 모임 회원이 적극적으로 시위에 가담한 '운동권' 위주인가.
"질문이 잘못 됐다. 당시에는 운동권 개념이 없었다. 거의 모두가 시위에 참여했으니까."

- 콘서트는 어떻게 계획하게 됐나.
"올해 6월 29일에 6.15남북정상회담을 기념하는 모임을 가지면서 병휘가 3집을 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모두 '대견하다'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학교 졸업하고 우리가 가진 생각은 변치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몸은 직장에 얽매인 상태였다. 그런데 병휘는 계속 노래운동을 하고 있었다. 저 친구를 우리가 도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촛불집회 하면서 몇 십만 명 속에서 노래를 했는데 정작 자기 콘서트는 한 차례도 없었다. 이래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뒤풀이 자리에서 '만세회' 회원들이 사진촬영을 위해 만세를 부르고 있다. ⓒ 김대홍


- '만세회'는 콘서트에서 어떤 역할을 맡았나.
"기획은 우리 전문분야가 아니다. 병휘에게 맡겼고, 우리는 비용 마련에 전념했다. 우리보다 팬클럽이 아주 고생했다."

- 콘서트에서 손병휘씨가 공연수익금을 평화박물관과 고구려 연구에 쓴다고 했는데.
"이번 공연 주제가 '전쟁과 평화'다. 병휘가 평화박물관에 지원하고 싶다고 했고, 공인수익금이 생기면 (병휘) 뜻에 따르겠다고 했다."

- 손병휘씨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병휘는 계속 노래해야 한다. 대중성은 없지만 우리가 살아가면서 반드시 필요한 가수다. 비나 신화처럼 뜨지는 못하겠지만…."

"우리는 먹고 사는 것 때문에 실천에 옮기지 못한 일이 많다. 그런데 병휘는 하고 있다. 우리가 병휘를 후원하는 것은 당연한 거다."

"오늘 공연에는 아는 사람들이 많았다. 오히려 병휘에게 중요한 사람은 첫날 참석한 전혀 모르는 관객들이다. 그들에게 다가서는 것은 병휘의 몫이다. 앞으로 병휘의 생각에 공감하는 사람이 훨씬 더 많아졌으면 한다.

"그들만의 세상 안 느껴져 좋다"
미니인터뷰-김희연 팬클럽 회장

- 팬클럽 규모와 창단 시기는?
"2001년 만들어졌고, 회원은 100여명이다."

- 이번 행사 진행에 참여했다고 들었는데.
"온라인 예매를 받은 게 가장 큰 일이었다. 그 외 홈페이지를 관리하면서 질문에 답하고, 다른 사이트에 공연 알리는 일을 했다."

- 개인적으로 열성팬이 된 이유는>
"누구나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아니다. 누구나 부를 수 있는 노래는 많지만 누군가 해야 하는 노래는 많지 않다. 그리고 병휘오빠는 무대와 객석간의 거리감을 없애는 가수다. 무대에 선 사람에게 느끼는 '그들만의 세상'이 느껴지지 않아 좋다."

- 공연을 보기 위해 많이 다녔겠다.
"전국 곳곳을 많이 다녔다. 섬까지 배타고 따라 들어간 적도 있다. 요즘에는 그렇게는 못하지만.(웃음)"

- 팬클럽 회장으로서 소망이 있다면?
"신랑과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로또에 당첨되면 병휘오빠에게 스튜디오와 작업실을 만들어주자고 약속했다. 아마 그렇게 되면 지금보다 훨씬 좋은 노래를 만들어낼 것이다." / 김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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