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콘서트' 없는 '인권 대한민국'을 꿈꾸며

'따뜻한 슬픔' 과 함께 했던 열일곱번째 인권콘서트에 다녀와서

등록 2005.12.12 16:30수정 2005.12.12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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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엔 이 모든 이들이 '사람대접' 을 받을 수 있기를... ⓒ 장우식

10일, 한양대 올림픽체육관에서 민가협 20주년 기념을 겸한 '열일곱번째 인권콘서트'가 열렸다.

애초 같이 가기로 한 '츠자(처자)'와의 약속이 취소돼, 공중에 붕 뜰 위기에 처한 표를 잡은 개혁네티즌 '아줌마'와 얼마 전 내린 눈이 아직 녹지 않은 한양대 올림픽체육관을 찾았다.

역시나 추웠다. 애초에 표값만을 생각하고 어묵 국물을 식도로 넘길 돈조차 가지고 오지 않은 터라, '아줌마'가 오실 때까지 주구장창 찬바람을 맞으며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입장. 우리가 들어가기 전에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들어가서 우리는 양 사이드보다는 좀 멀어도 중간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중간 자리로 정하고 앉았다. 그리고는 입장할 때 2000원이란 '거금'을 주고 산 팸플릿 속의 크라잉넛과 김종서, 이은미씨를 눈에 넣으며 '오늘 헤드뱅잉 좀 세게 하겠는 걸?' 하며 괜스레 목을 풀어봤다.

첫 순서. 최광기씨 특유의 '복식 고함'으로 시작된 인권콘서트. 아이들이 '세계인권선언문'을 낭독하며 노래를 불렀다. 저 아이들이 조금 더 커서 굵직한 목소리로 세상을 향해 소리 지를 때 쯤이면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진정 '사람'으로 인정받으며 '사람' 답게 살 수 있을는지.

이윽고, 광란의 파티가 시작되었다. 크라잉넛이 우리였고 우리가 크라잉넛이므로. 기타 치고 드럼 치고 머리 흔들고 어깨동무 하고 뛰기. 같은 플로어에서 보고 계신 민가협 '어머니'들이었지만 어머니들은 그냥 앉아서 보고 있었다. 하지만 입가에 퍼지는 그 웃음들은 멀리 2층에 앉아있어도 가슴으로 느낄 수 있었다.

어머니, 당신들이 싸워준 덕분입니다

정혜신씨가 나왔다. 한 남자를 소개한다. 가족을 만나기 위해 북파공작원으로 자원해 내려와서 자수를 하고 가족을 만나 멀쩡히 잘 살고 있는 사람을 간첩으로 몰아서 모진 고문을 당한, 그리고는 '당신은 간첩이 아닙니다'라는 말 한 마디 듣기 위해 소송을 걸어 싸워왔고 결국에는 '당신은 간첩이 아닙니다'라는 말을 국가로부터 들어버린 한 남자.

걸개그림의 젊은 모습에서 무대위에 나온 백발 희끗희끗한 모습이 되는 동안 그 얼마나 가슴이 시렸을까. 억대의 돈을 바란 것도 아니었는데, 높은 자리를 바란 것도 아니었는데…. 그가 듣고 싶은 말은, 오히려 몇 억을 바쳐서라도 듣고 싶은 그 말은 바로 '당신은 간첩이 아닙니다'라는 말 한 마디였을 텐데 말이다.

아, 이은미씨다. '맨발의 디바'라는 애칭이 무색하게 검정 정장을 말끔하게 차려입고 나와 몇 년 동안 잠적했더니 적응이 안 된다며 말한다. 하지만 그 목소리만은 여전하다. "제가 이 노래 부르면 오늘 집에 가셔서 다들 이 노래 분명히 다운로드받으실거라 장담합니다"라고 하면서 노래를 부른다. 노래가 끝나고, "노래 좋죠? 다운로드 받으실거죠?" 하는데 누가 "CD 사서 들을게요!"라고 한 모양이다. 이은미씨가 "CD사시겠다는 말이 굉장히 따뜻하게 다가오네요. CD가 짭짤해요"라고 답한다.

저게 뭐지? 하얀 스크린이 내려온다. 아, 민가협의 역사가 스크린 위로 올라간다. 민주화를 위한 길에 언제나 '보랏빛 몸빵'으로 함께 해오신 그녀들, 아니, 우리 어머니들. 독재정권에 신음하는 대한민국의 아들딸들 곁에 언제나 어머니의 마음으로 같이 기뻐하고, 같이 눈물 흘리고, 같이 배고파 가며 싸웠던, 아니 지금도 함께 하고 계신 우리 어머니들의 일기가 펼쳐진다. 콧등이 시큰거린다. 아니, 콧등이 시큰거리는 것조차 미안하다.

김종서씨다. 그가 남긴 한 마디가 지금까지 가슴에 남는다. "어쩌면 이런 콘서트가 없는 사회가 제대로 된 사회일텐데요"라며 "내년부터 이런 콘서트는 없어져야 해요"라며 노래하는 그. 나도 내년에는 인권콘서트와 god 콘서트 사이에서 방황하지 않고 god 콘서트장으로 향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정태춘, 박은옥씨다. 역시다 역시. 이상하다. 분명히 저 앞에 무대에서 노래하고 있는데 왜 이 울림은 내 몸 안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인지. 뭐라 말 못 할 울림. 또 울림. 그리고 그 울림을 깨우는 박은옥씨의 한 마디. 윤민석씨가 작곡한 노래를 부르고 나서 "외간 남자가 만든 곡을 거의 처음으로 부르네요. 태춘씨 미안해~” 그 한마디. 입가에 미소.

콧등 시큰거리기도 미안한 2시간 30분여가 어느덧 다 지나가고 마지막 순서가 다가오고야 말았다. 대한민국 사회의 소수자들이 줄줄이 무대에 올랐다. 성적 소수자들, 장애인들, 외국인 노동자들, 간첩조작 피해자들, 평택 미군기지 확장 반대 투쟁 시민들, 그리고…. 오늘의, 아니 대한민국 민주화의 히로인인 민가협 어머니들. 그 모든 소수자들이 한 무대에 섰다.

나, 가슴 무너짐을 느껴야 했다. '정부여당' 지지자로서 느껴야 할 가슴 무너짐. 바로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한 그룹 한 그룹 무대에 오를 때 마다 한 번씩 가슴이 "쿠~웅!" 소리를 내며 무너진다. 그들에게는 우리, 아니 나도 '깃발만 남기고 떠나간 동지' 였을까.

다들 일어나 어깨 걸고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을 부르며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이 노래를 부르면서도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혹시라도 무대 위의 그 누군가와 눈이 마주치지 않을까. 마주치면 눈물이 흐를 것 같았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정말 내년부터는 인권콘서트가 열리지 않아도 될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사람이 사람으로 대접받는 마당을 일부러 만들어야 할 정도로 대한민국 인권은 보호받지 못하고 있었더라는 말인지….

착찹하지만 따뜻한, 훈훈하지만 쓸쓸한 길을 되돌아오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도 가물가물하다. 불과 이틀도 안 된 일인데 말이다. 그러나 한가지만은 분명한 것 같다. 더 이상 '인권콘서트' 는 열리지 않는 '인권 대한민국' 이어야 한다는.

덧붙이는 글 | 라디오21(http://radio21.tv)에도 송고하였습니다.

덧붙임> 바쁘시더라도 세계 인권 선언문(클릭)을 찬찬히 한번쯤은 읽을 수 있는 겨울이 되었으면....

덧붙이는 글 라디오21(http://radio21.tv)에도 송고하였습니다.

덧붙임> 바쁘시더라도 세계 인권 선언문(클릭)을 찬찬히 한번쯤은 읽을 수 있는 겨울이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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