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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 개성공단팀을 꿈꾸며

[주장]꿈은 결국 이루어진다

06.06.15 15:34최종업데이트06.06.15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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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열기에 묻혀 흐릿한 기억 속에 잠겨 있으나 오늘은 6·15 남북 공동 선언 6주년이 되는 날이다.

어제는 굵은 비가 쏟아지는 중에도 6·15 공동선언 여섯 돌 기념 민족통일 대축전이 광주에서 열렸다. 그리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6월 말 방북을 앞두고 있다. 돌이켜 보면 벌써 6년, 아니 겨우 6년밖에 안 흘렀지만, 6·15 이후 무수한 시간의 모래밭에 남과 북은 많은 흔적을 남겼다.

6·15는 당시로서는 대단히 파격적인 아이디어(?)에서 시작된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훗날 통치행위라고 항변했지만, 당시로서는 당연히 비합법적일 수밖에 없는 대규모의 대북지원을 결정했고, 이를 통해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이끌어냈다.

육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이 아이디어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고 있다. 물론 이 아이디어의 결과물로 우리가 얻어낸 것은 지극히 많다. 개성공단의 본격화와 남북 간 철도 연결이라는 가시적 성과가 거의 눈앞에 아른거린다. 그러나 이 아이디어가 남남간의 분열을 촉진시킨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베이징 북핵 6자회담에서 보듯 남과 북의 문제는 남과 북 두 당사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엄정한 국제질서 속에 존재한다. 이니셔티브 게임의 측면에서 볼 때, 6·15는 통일의 문제를 주요 당사자인 남과 북이 직접 행사할 수 있게 한 결정적인 터닝 포인트였다. 통일은 아직까지도 골치 아픈 민족적 과제지만, 최소한 6·15 이후 남북의 문제는 우리가 풀어야 할 자격이 있는 문제지가 되었다.

하지만 이제 확실히 남북관계는 정체기에 빠져있다. 뭔가 새로운 아이디어 - 남과 북 사람들의 가슴을 뜨겁게 하는 흥미로운 아이디어가 끊임없이 나와줘야만 한다.

그러나 앞으로는 김대중 전대통령의 아이디어처럼 남과 북 어느 한쪽이 강력한 경제적 지원 또는 대포동 미사일 같은 군사적 압력으로 한쪽을 협상 테이블로 이끌어내는 일방적인 게임은 불가능해졌다. 특히 과거의 제왕적 대통령제를 극복하겠다며 방임적 리더십을 내세운 노무현 행정부의 대북송금특검 수용은 이후 어떠한 정권도 이런 밀실적이고 일방적으로 수혜적인 대북지원을 카리스마를 내세운 결단으로 시행하는 식의 대북관계 리드를 불가능하게 한다.

따라서 시민의 차원에서, 우리가 고민하고 계승할 것은 오히려 6·15의 방식이 아니라 6·15가 가지고 있던 혁신적이고 모험적인 아이디어의 정신이다. 즉 남과 북 모두가 이익이 되는 "승자의 게임"을 계속 해나가야 한다.

여기에 필요한 아이디어로 '개성공단 축구팀'의 창단과 K-리그 참여를 나는 제안한다.

아이디어 : 개성공단 K-리그 팀을 만들자!

1) 이 아이디어는 개성공단에 입주한 남한 업체들이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평화를 상징하는 브랜드를 하나 만들고,
2) 이를 홍보하는 축구팀을 만들어 이 축구팀의 주요 선수들을 북한선수들로 주로 채용하며
3) 이 축구팀이 K-리그의 정식 팀리그에 참여하는 것이다.

마침 월드컵이기도 하지만, 화려한 월드컵 경기를 보면서 드는 걱정은 4년 전 붉은 악마가 한일 월드컵 한국팀의 마지막 경기에서 카드섹션 구호로 'CU@K리그'를 채택했음에도 K리그는 지독한 침체를 겪었다는 것이다. 지금의 월드컵 열풍이 K-리그로 내려가 K-리그를 발전시키는 에너지원으로 되지 않는 한, 한국축구의 고질적인 문제들은 결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 아이디어가 가져다 줄 이익으로 다음과 같은 것을 예측한다.

1) K-리그 활성화

K-리그에 만약 북한 선수들이 주력으로 뛰는 '개성공단 팀'이 참여한다면, 그리고 그들이 경기를 위해 전국의 축구장을 방문한다면, 나는 그것만으로도 지역의 축구팬들이 축구장을 찾을 충분한 동기가 되리라고 예측한다. 경평축구가 가졌던 인기를 K-리그가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며, 특히 북한문제에 대해 이중적인 감정을 가질 수밖에 없는 실향민들이 K-리그를 찾을 것이다.

K-리그가 살아야 한국국가대표 축구팀이 산다. 먼저 관중이 볼만한 경기, 볼 수밖에 없는 경기라는 이벤트 구조를 만들어 그 힘을 바탕으로 유소년 축구를 활성화하고 K-리그를 국가대표 축구팀의 에너지원으로 박동치게 하자.

2) '개성공단'이라는 평화 브랜드의 인지도 향상

나는 우리나라 선수들이 뛴다는 이유만으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토트넘 홋스퍼, 트라브존스포르의 이름을 외우고 있다. 자주 보게 되면 외우게 되고, 외우게 되면 관심을 가지게 되고, 관심을 가지면 사랑하게 된다.

개성공단팀이 좋은 성적을 얻는다면 그것만으로도 선전효과가 발생해 이후 생산되는 개성공단 생산품들의 판촉에 지대한 효과를 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한국인의 눈에, 나아가 축구에 관심 있는 아시아권 국가와 전세계 사람들의 눈에 '개성공단 팀'의 활동이 보이기 시작한다면, 이는 폭력적 에너지를 합법적으로 해소하는 스포츠 정신으로 풀어나가는 한민족의 평화 마케팅이 될 것이다.

3) 북한 축구 발전에 기여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론 선택권은 북한에 달려있다. 하지만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팀의 경기를 북한이 녹화중계했듯이 K-리그에 북한 국적 선수들이 참여하는 스포츠 활동이 북한에 큰 체제 위협이 되리라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남한 일방의 이익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가장 현실적인 체제보장 이야기를 하자면,

개성 정도의 지리적 위치라면 개성공단팀의 본부가 개성에 있어도 국내리그에 참여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심지어 지금 광화문에서 개성으로 출퇴근하는 통근버스가 있을 정도가 아닌가. 그렇다면 북한선수들이 경기만 뛰고 당일 북한으로 되돌아 갈 수 있다. 북한 체제가 걱정하는 선수들의 확보는 확실해진다.

또한 K-리그에 북한 선수들이 뛴다면, 이는 북한 축구 발전에도 크게 이바지할 것이다. 몇몇 보도에 따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축구를 북한주민들의 체형에 적합한 종목으로 보고 "노력하기에 따라 충분히 세계 정상수준에 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북한 축구는 66년 잉글랜드 월드컵 8강 신화를 겨우 전설로만 간직하고 있다. 이번 독일 월드컵 예선전에서도 1승 5패로 40년째 본선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특히 이번 월드컵 예선전 당시 평양에서 열린 이란전에서 심판의 오심에 항의하는 관중들의 소요로 북한은 일본과의 경기를 무관중으로 타국에서 치르는 수모까지 겪었다.

이제 북한축구에도 확실한 자극과 세계축구에 대한 1대1 첨삭지도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런 쪽집게 강의의 수단으로 수준높은 상대자를 체험해보는 것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을 것이다.

이 정도라면, 선수 개개인에게 지불되는 연봉은 곧 외화벌이라는 이익은 오히려 사소한 것이 아닐까?

그러니 개성공단 팀이 과연 만들어질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은 버리자. 우리는 6·15라는 아이디어도 해냈다. 만들려고 하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월드컵에 보여준 기업들의 스폰서 지원의 100분의 1만 모여도 가능하며, 이 팀을 특별히 지원하기 위해 개성공단 팀의 K-리그 경기 시 특별입장료를 더 받는다고 해도 나는 기꺼이 가서 보겠다. 그리고 언제가 K-리그가 한·중·일·북의 많은 팀들이 참여하는 동북아 종합 축구 리그로 승격하게 하자.

꿈은 이루어진다. 결국 이루어진다

월드컵에 있어서, 최대한 우리는 차근차근 그 꿈의 계단을 밟고 올라가고 있다.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던 첫승리에서부터, 16강 진출, 4강 진출, 다시 원정경기 첫승리까지. 언젠가 가슴에 별을 달기 위해서 우리는 계속 꿈을 실현해 나갈 때다. 그리하여 결국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모두 월드컵 예선전에 나가듯, 남과 북이 함께 월드컵 결승에서 만나자.

나는 축구가 곧 전쟁이라는 명언에 동의한다. 축구는 인간의 타고난 폭력성을 그라운드라는 네모난 잔디밭 위에서 합리적으로 해소하는 좋은 종류의 전쟁이다. 강렬한 경기와 그에 몰입하는 뜨거운 응원 뒤에 밀려드는 땀내 나는 기분 좋은 허탈감을 우리는 이제 사랑하게 되었다. 좋은 경기를 보고 나면 폭력에 대한 갈구는 증발되고, 승패를 떠난 유쾌한 카타르시스가 남는다.

나는 기대한다.

그 축구의 강력하고 위대한 힘으로 우리를 감싸고 있는 이 분단의 무서운 전쟁의 공포심이 그라운드의 열광과 환희로 승화되기를. 그래서 그런 환희의 경험이 남과 북 모두에 축적되고 쌓이고 도저히 그 누구도 어쩔 수 없이 흘러내려, 10년 후에는 다시는 6·15가 아닌 그 어떤 다른 날을 뜨겁게 기념하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2006-06-15 15:34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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