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루탄만큼이나 고통스러웠던 그해 6월의 현장

[나의 6월 이야기] 침묵으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다

등록 2007.03.27 11:02수정 2007.03.28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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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의 6월, 나는 당시 스물아홉 살의 혈기왕성한 젊은이였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무언가 불의를 발견한다손 치면 참지 못하는 자칭 애국자이다.

주지하듯 지난 20년 전의 '6월 민주항쟁'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10·26사태로 암살된 후 군사정변으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정권과 그 다음번 대통령으로 낙점받은 노태우 민주정의당 대통령 후보 일당들에 대한 국민적 반감의 불씨가 도화선이 된 사건이다.

전두환 정권 당시는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숱한 부정과 비리가 많아 국민들 사이에서도 불만이 팽배해지던 즈음이었다.

그러던 중 군사정권의 모진 고문으로 말미암아 1987년 1월 14일 서울대생 박종철군이 사망하는 비극이 일어난다. 그러자 이에 대노(大怒)한 국민들까지도 급기야 학생과 정치인들의 뒤를 이어 거리로 나서게 된다.

당시엔 정부의 부정부패란 화두 이외에도 대통령 선거에 대한 논란, 즉 지금과 같은 국민이 직접 대통령을 뽑는 직선제가 아닌, 이른바 제왕적 점지 식의 체육관 선거에 의한 '짜고 치는 고스톱'과도 같은 당시의 대선 체제에도 국민들은 반항심을 진득하게 느끼고 있던 차였다.

하여 당시 국민들은 야당과 학생들의 거센 요구처럼 정부에 대해 대통령 직선제와 5년 단임을 요구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와 같은 국민적 요구를 여전히 치지도외(置之度外, 생각밖에 둔다)하던 당시의 군사정권에 돌이킬 수 없는 악재와 사단이 닥쳤으니 그건 바로 서울대생 박종철군에 이어 연세대 학생인 이한열군이 그 해 6월 9일 경찰의 손에 죽게 되는 비극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많은 국민들이 6월 항쟁에 참가하게 되었고 나와 같이 넥타이를 맨 직장인들도 대거 그 항쟁의 물결에 합류하게 되었던 것이다.

6월 민주항쟁의 발단 동기는 이쯤에서 거두기로 하고 지난 20년 전의 그 뜨거웠던 여름 한복판에 섰었던 때를 기억의 창고에서 꺼내본다.

비정규직 세일즈맨의 떨림

당시에도 나는 비정규직의 세일즈맨으로 입에 풀칠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나의 생업이란 것이 사람들을 찾아다니는 것이었기에 사람들(국민들)의 요즘 정서와 살림살이를 누구보다 예리하게 살펴볼 수 있었다.

그 시기를 살았던 분들은 익히 아는 사실이겠으되 당시의 전두환 군사정권은 광주의 피(血)를 먹고 자란 '덕분'과 삼청교육대와도 같은 악랄함 등으로 말미암아 정권에 대한 국민적 공포는 대단하였다. 하지만 아무리 발로 비벼도 그예 싹을 틔우는 잡초처럼 당시 정권에 대한 국민적 격앙의 반동(反動)은 누구라도 제어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당시 어느 직장으로 판촉을 나갔는데 한 무리의 직장인들이 하는 말이 내 귀를 비수처럼 찔렀다.

"전두환이가 물러나면 이번엔 그 친구인 노태우가 대통령 해먹는다며?"
"정말이지 별 거지같은 놈들 다 봤네, 대통령이란 자리가 무슨 아이들 소꿉장난인가?"


이어 나누는 말이 나의 가슴까지 덩달아 피를 끓게 하였다.

"나는 이러한 사태를 그냥 두고 볼 수 없어서 오늘 저녁엔 중앙로(대전역에서 충남도청 사이의 약 2킬로미터 구간)에 나가 데모할 거야!"

그러자 그의 말에 동조하는 이가 여럿 있었다.

"맞아. 멀쩡한 학생들까지 죽인 놈들이 무슨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한다는 거야? 나도 이따 자네랑 같이 감세."

신문에서만 보았던 "4·13 호헌조치 철폐와 직선제 개헌 쟁취, 독재정권 타도 등을 요구하는 넥타이 부대 드디어 시위 현장의 핵으로 등장!"이란 기사가 현실로 다가옴에 나 역시도 무언가 한 알의 밀알이라도 되고자 작심했다.

그렇지만 솔직히 단 한 번도 반정부적인 데모 내지는 시위를 해 본 경험이 없었음에 떨리는 것도 사실이었다.

하여간 퇴근길에 단골 식당을 찾았다. 지금은 상권이 쇠락하여 변두리로 격하된 장소에 있는 곳. 하지만 그 식당은 내가 어언 25년 동안이나 오매불망 단골집으로 다니고 있는 곳이었다. 위치는 현 '갤러리아 백화점 동백점'(옛 동양백화점)의 뒤쪽이었는데 그곳에서 중앙로와 충남도청은 그야말로 엎드리면 코가 닿을 만치의 지척이었다.

그 식당에 들어가 주메뉴인 두부 두루치기와 소주를 주문했다. 더운 날씨에 거푸 소주를 두 병이나 비우자 술기운이 달아오르면서 덩달아 치기마저 무럭무럭 샘솟았다.

땅거미가 지려면 아직도 멀었는데 별안간 충남도청 앞쪽에서 "호헌철폐! 독재타도!"란 함성이 들려왔다. '옳다구나! 나도 당신들의 뒤를 따르리.'

셈을 치르고 동양백화점 앞으로 나가니 많은 학생들이 스크럼을 짜선 그처럼 구호를 외치고 있었고, 대치한 경찰은 상공회의소(현재는 삼성화재로 바뀜)에서 대전역으로 내려가는 차로를 이미 봉쇄하고 있었다.

시위학생들의 숫자는 더욱 늘어났지만 나와 같은 '넥타이 부대'는 아직 눈에 띄지 않았다. 어찌할까에 골몰하며 잠시 우두망찰하는데 때마침 충남도청의 바로 앞에 있는 신동아화재보험과 그 건너편의 어떤 건물 사이에서 '넥타이 부대'들이 대거 몰려오는 게 아닌가!

순간 나 또한 기운을 얻어 그 대열에 끼어들었다. 그리곤 술기운을 빙자하여, 평소의 정부 규탄의 노도(怒濤)까지를 실어 마구 마구 외쳤다. "호헌철폐! 독재타도!"의 우렁참을.

"아저씨 잡히면 큰일나요!"

그렇게 '넥타이 부대'인 우리네 직장인들까지도 시위의 한복판에 들어서자 한눈에 보기에도 진압 경찰들 눈빛이 달라지는 듯했다. 하지만 점차 격류로 흐르는 시위를 수수방관만 하고 있을 경찰이 아니었다. 경찰은 마침내 최루탄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그리곤 곤봉을 들고 닥치면서 시위학생들의 검거에 나섰다. 순간 겁이 와락 났다.

여기서 잡히면 영락없이 시위주동자로 몰려 전과자가 되는 건 물론이고 설상가상으로 박종철군과 이한열군처럼 개죽음을 당할 수도 있을 거란 막역한 의심의 불안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주변의 학생들도 근방으로 뛰어 달아나기 시작했다. "아저씨, 잡히면 큰일나요!"라는 어떤 학생의 울부짖음을 따라 나 또한 그 학생을 좇아 소청 1번가(건물 명칭) 앞 정종한 약국 골목으로 달아나기에 바빴다.

하지만 어느새 시위대를 포위한 경찰은 바로 내 앞에 최루탄 한 방을 가차없이 쏘았다. 순간 그 최루탄은 뭐라 표현하기조차 어려운 고통과 눈물 바가지를 내게 선사하였는데, 아무튼 경찰에 잡히진 않고 어찌어찌 집에까지 왔으니 그나마 다행이라 믿었다.

아내는 그러한 나의 만용과 어떤 치기에서 기인한 시위 참여 소식에 손사래를 치면서 극구 만류했다. "다신 데모하지 말아요! 그러다가 붙잡혀 교도소라도 가게 되면 우리 애들은 누가 키우란 말요?" 하기야 당시 아들은 고작 다섯 살이요, 딸은 한 살이었으니 아내의 지청구도 그다지 무리는 아니었음을 모르는 바 아니었다.

아무튼 그러한 시위에 산발적으로나마 나는 몇 차례 더 참가했다. 그런데 넥타이 부대의 일원으로 참여한 때문이었을까. 결국 노태우 민주정의당 대통령 후보는 그해 6월에 이른바 '6·29 민주화 선언'이란 일종의 대국민 항복선언문을 냈으니 말이다.

세월처럼 빠른 건 다시 없다더니 어느새 6월 민주항쟁도 20년이란 연륜을 맞았다.

세월이 흘러 모두 이십대 청년과 대학생이 된 아들과 딸은 지난 20년 전의 6월 항쟁을 알 리 없다. 지금은 그러한 항쟁도 최루탄도 필요치 않은 문민정권인 때문이다.

하지만 이담에라도 혹여 모르는 일이다. 누군가 역사는 돌고 도는 물레방아라고 했음에 전두환과 같은 독재군사정권이 또 출몰할지를 말이다. 만에 하나 그런 최악의 경우가 다시금 발생한다 쳐도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내가 20년 전에 했던 그것처럼 시위의 중심에 서라고 권하고 싶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건 현실의 치지도외와 무관심, 그리고 침묵이 아니라 그걸 고치고 바꾸고자 하는 격정의 표현과 항거, 그리고 참여만이 그 해법일 수 있음에.

덧붙이는 글 | '나의 6월 이야기' 응모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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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광역시청보 [이츠대전] 명예기자 / 월간 <오늘의 한국> 취재본부장 / 월간 <청풍> 편집위원 / 저서 [경비원 홍키호테] & [사자성어를 알면 성공이 보인다] & [사자성어는 인생 플랫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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