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 소년들의 사랑스러운 학창시절 비밀 이야기

[리뷰] 성장소설로서 충분한 온다 리쿠의 <밤의 피크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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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junpei81)등록 2007.05.25 10:18
온다 리쿠. 참 낯선 작가이름이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다른 유명 작가와 어깨를 견줄 만한 정도다. 그녀의 책이 나왔다. <밤의 피크닉>이 바로 그것인데, 장장 362페이지에 해당하는 묵직한 장편소설이다.

그래서 꽤나 읽기 전에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드는 책이다. 더욱이 고등학생들의 이야기라는 사실이 더욱 흥미를 반감시킨다. 흔하디흔한 고교생의 첫 사랑과 학창시절의 추억들이라면 여러 책에서 언급되었으니 다소 식상한 소재다. 거기에 외우기도 힘든 여러 일본 이름이 눈에 거슬릴 정도로 많아 새로운 이름이 튀어 나올 때마다 외워야 한다는 압박감까지.

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묘한 매력이 있는 책이다. 그것은 장장 363페이지에 해당하는 이 이야기가 단 하루 24시간의 이야기라는 것과 학창시절의 첫 사랑과 추억 이야기가 들어있지만 다른 책들처럼 요란하고 핑크빛 무드로 물들인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에 다소 식상함이 덜어진다.

아마 그래서 일본 서점 직원들이 권장하고 싶은 책 1위로 올랐다는 것이 괜한 이야기가 아닌 듯싶다. 내용은 다소 진부할 수도 있다. 남녀공학인 북고에서는 해마다 ‘보행제’라는 것이 열리고, 아침 8시에 학교에서 출발하여 다음날 아침 8시까지 학교로 걸어서, 뛰어서 돌아오는 행사다. 재학생들은 굉장히 힘겹고, 괴로운 행사지만 졸업생에게는 학창시절 가장 좋은 추억으로 남는다.

사실 우리가 고교시절의 추억을 회상할 때쯤 불쑥 수학여행을 떠오르게 마련이다. 이처럼 이 책이 우리로 하여금 계속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이러한 친근함이다. 수학여행은 그렇다 하더라도 극기훈련이나 마라톤 대회는 우리도 재학생일 때는 끔찍이도 싫어하던 행사로 어떻게 하면 가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하고 꾀병을 부리고 했던 적이 있다. 그렇지만 역시나 졸업 후 그러한 고통도 추억이다.

이 책은 이처럼 보행제라는 추억을 건드리며, 주요 내용으로 다루고 있어 기나긴 장정을 해야 하지만 전혀 그러한 피로감 없이 책을 읽어버릴 수 있다.

하지만 내용을 본다면 분명 진부하다. 하지만 보행제를 하면서 나누는 학생들의 대화, 고교시절의 연애 등 소소한 학생들의 일상을 오로지 대화로서만 표현해 진부함을 다소 반감시킨다. 그뿐이 아니다. 그동안 나누지 못했던 친구들과 짝을 이뤄 걷고 달리는 사이 서로가 조금씩 비밀이야기를 털어 놓으며 서로 상처를 보듬고 치유하면서 한층 더 성숙해진다.

책은 그저 고교시절의 연애이야기에 국한하지 않고 이러한 성장의 고통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80km의 대장정이 성장 소설로 바뀐다. 또한 그러한 성장 고통이 남의 이야기 같지 않고 우리가 흔히 겪어 봤던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다.

누가 누구랑 사귀는 거 같다, 이웃 학교의 어느 여자애가 우리학교 3학년 남자애의 애를 배었다가 낙태했다더라, 그 여자애의 사촌언니가 지금 이 행렬에 있는데 여자애들한테만 사진을 돌리며 아는 걸 캐내고 있다더라, 쟤네 둘은 서로 미워하는 거 같은데 또 어찌 보면 좋아하는 것 같더라 하는 등등. 그래서 학생들의 이야기는 우리가 점심시간, 수학여행 때 늦은 밤잠을 청하지 않고 비밀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은 소소한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일까? 소설은 별다른 특별한 에피소드가 없다. 큰 이야기 없이 작은 이야기들이 오가기 때문에 다소 지루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소소한 학창시절의 일상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이어가면서 흔히 접했던 고교시절의 이야기와 또 다른 차별화를 이루고자 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하지만 작가는 그러한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들에 한정지어 소설을 끝내지 않았다. 그것은 수많은 학생들 중 두 남녀 주인공의 비밀이야기가 등장한다. 두 주인공은 나시와키 도오루와 고다 다카코가 이복남매인 것. 하지만 그들은 서로 같은 학교, 같은 반 친구이면서도 말 한 번 제대로 하지 않았다.

하지만 주변 친구들은 왠지 모르게 닮은 두 사람이 사귄다고 생각하고, 무성하게 둘이 연애를 한다는 소문이 퍼져있는 상황. 이 모든 것을 외면한 채 두 사람은 거리를 두고 지내지만 다카코는 가장 친한 친구들이 자신의 비밀을 알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보행제는 끝나 가고, 밤 12시가 넘기 전에 도오루에게 한 마디라도 먼저 건네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다카코는 지킬 수 있을지 스스로 자문하며 역시나 도오루도 시시각각 마음의 변화를 겪게 된다.

그들의 결망은 당연히 서로 상처를 보듬고 치유하는 모습이 등장하지만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와 함께 크다면 큰 에피소드를 만들어 다소 지루함을 덜어낸다. 또한 이복남매로서 상처를 받은 두 사람이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여는 과정을 친구들과 함께 이야기를 버무리면서 둘의 소통이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스럽게 흐른다는 점에서 이 책에 매력이 더해진다.

하지만 이 책이 빛날 수 있던 것은 이복남매의 이야기도 무엇도 아니다. 졸업을 앞둔 그들이 대학시험을 앞두고 겪는 마음의 고통, 걱정과 연애를 하고 싶은 마음, 자신들의 내면에 있는 문제들을 조금씩 풀어내면서 저마다 성장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밤의 피크닉>은 소녀, 소년들의 야간보행제에서 풀어내는 이야기들이 사랑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책은 고스란히 고교시절 학생들의 이야기를 다룬 성장소설로서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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