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랑 백가지를 써 보자.

2. 아름다운 마을을 여는 힘 - 대전마을어린이도서관 만들기 교육일기

검토 완료

한미숙(maldduk2)등록 2007.09.04 10:31
날마다 오전 10시까지 생활나눔을 하기로 했다. 이 시간에는 어떤 이야기든지 우리들 생활이야기라면 다 좋다. 종이컵을 쓰지 않고 내 컵을 갖고 다니자는 얘기, 화장실과 교육장 청소는 모둠별로 돌아가면서 하자는 얘기, 아이들얘기, 내 주변 곳곳에서 일어나는 깨알같은 이야기들이 쏟아진다. - 5월 15일(화) 일기

모둠(조)별로 나눴습니다. 낯익은 이름이 있나요? ⓒ 한미숙


‘함께 나누는 기쁨과 슬픔/ 함께 느끼는 희망과 공포/ 이제야 비로소 우리는 알았네 작고 작은 이세상/ 산이 높고 험해도 바다 넓고 깊어도 우리 사는 이세상 아주 작고 작은 곳'

악보가 적힌 종이를 한 장씩 받았다. 기타와 노래진행은 놀이에 재주가 있는 정봉현씨가 이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고 했던가. 우리는 ‘작은세상' 노래를 부르며 앞사람의 허리를 잡고 둥글게 둥글게 돌았다. 서로에게 가깝게 다가가는 놀이로는 몸을 부딪치는 것만 한 것이 없다. 우리는 작은세상 노래를 천천히 혹은 빨리 부르며 진행자가 숫자를 가리키는 대로 모이고 흩어지느라 허둥대기도 하고 아이들처럼 깔깔거렸다.

‘에루화 에루얼싸/에루화 에루얼싸/에루화 에루얼싸/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고/ 우리 모두 힘 합하여/반딧불터 밝혀보세/ (빨라지면서) 에루얼싸 4번 반복.

머리를 뒤로 곱게 묶고 웃음이 잔잔한 이선아씨가 노래 한 소절을 부르자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에~루화 에루얼싸!' 어디서 그렇게 바위만큼 단단하고 야무진 소리가 나오는지. 우리는 ‘에루화 에루얼싸'를 돌림으로 부르며 서로의 마음이 하나로 뭉치고 있었다.

몸을 움직이며 노래를 부르니 땀도 나고 숨도 찬다. 빙 둘러 앉아 그 자리에서 우리는 악보로 나눠준 뒷종이에 ‘자기자랑 100가지 쓰기'를 했다. 다 쓰고 돌아가면서 발표하기로 했다. ‘열가지 쓰기도 어려운데 백가지를 어떻게 쓰라고?' 여기저기 수군거린다. 열심히 번호를 붙여가며 쓰는 사람도 있다. ‘나는 S라인이다' ‘된장 고추장을 직접 담가 먹는다' ‘검정고무신의 행복한 기억이 있다' ‘다양한 새소리를 들으며 빨래를 널고 왔다' ‘부모님이 건강하다' ‘오래된 친구들과 지금도 마음을 나누며 산다'... 자랑하기는 계속 이어졌다.

모이고 어울려서 함께 만들어가요. 아름다운 사회, 아름다운 어린이도서관. ⓒ 한미숙


자기자랑 쓴 것을 발표하는 것이 처음엔 쑥쓰러웠다. 그러나 한 사람도 빠짐없이 발표하면서 서로에게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다. 주부로 엄마로 며느리로 살아가는 여성들이 함께 느끼는 자부심은 자신감으로 이어지고 감사하며 사는 내 생활의 모든 것들이 자랑이었다. 자기자랑 100가지는 숫자에 한하는 것이 아니라 많이 써보라는 것이었고, 그렇게 쓴 글은 현재 나 자신을 돌아보게 했다. 발표하는 시간, 새삼 부모님 은혜와 내 존재를 인식하며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잠시 숙연한 분위기가 되기도 했다.

'열공'하고 먹는 밥이 맛좋습니다. ⓒ 한미숙


점심을 먹는 방법으로, ‘도시락 싸오기'와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는 도청구내식당에서 1,500원짜리를 먹는 방법' 그리고 ‘공동식당운영매식 1,500원짜리'가 설문으로 나왔는데 공동식당에서 먹기로 결정이 났다. 아토피가 있어서 꼭 도시락을 싸와야 되는 사람도 공동식당에서 먹기로 했다. 조미료를 쓰지 않아 담백하고 깔끔한 점심은 친정 어머니가 정성껏 해주시는 음식맛과 같았다.

작은예술제로 인형극을 하면서 모둠별로 둘러앉은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막연했다. 주어진 시간에 극본쓰기와 등장인물 그리기 등을 즉석에서 연출하는 것이다. 혼자는 막연했지만 여럿이 머리를 맞대니 절벽같은 앞길이 훤하게 뚫린다. ‘궁하면 통'했다. 모둠별로 나온 인형극의 주제는 옷투정부리는 아이, 사교육의 현실, 가정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식구들의 얘기등이 나왔다. 지금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 그러나 아이들의 미래에 이 문제를 그대로 넘겨줄 수 없다는 의지가 읽혀지던 인형극이었다.

‘한라'가 세상에 태어난 지 100일째 되는 오늘, 케잌위에 촛불을 꽂고 축하노래를 불렀다. 둥글게 모인 사람들이 한라에게 덕담을 해주었다. ‘행복하고 건강하게, 밝고 씩씩하게 자라거라!' 먹고 자고 놀고... 한라의 순진무구한 모습이 사랑스럽다. 어린이도서관을 찾아오는 아이들을 보는 마음도 이러해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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