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열을 떠올리게 만든 헥터 피터슨의 사진

[아프리카 여행기] 아프리카의 오늘날 모습은 30여년 전 내 어릴 적 모습

등록 2007.12.18 20:03수정 2007.12.19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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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하네스버그의 아름다운 야경
     
그레이하운드는 오후 6시 30분 정각에 파크 스테이션 정류장을 출발했다. 버스가 큰길로 나오자 요하네스버그 대학 광고 간판이 크게 보인다. '앞장서라, 도전하라, 창조하라, 탐구하라(Lead, Challenge, Create, Explore)'는 대학의 비전을 제시한 내용의 광고이다. 대학이 추구할 젊은이의 도전정신을 잘 집약한 표현이다.

 

밤이 되자, 요하네스버그는 건물에 전등을 비춰 아름다운 도시 야경을 만든다. 다른 아프리카 국가의 어두운 밤 풍경과 달리 건물마다 전깃불이 환하게 들어오면서 번화한 도시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중에서도 커다란 빌딩들이 빨강과 파랑, 노랑의 조명 속에 우뚝 솟아 있다. 요하네스버그의 밤은 아름답다.

 

그레이하운드는 한 바퀴 원을 그리듯 시내를 크게 돌더니 빠른 속도로 빠져나갔다. 시내에서 외곽으로 빠지는 길은 약간 높은 언덕인데, 언덕을 넘어가는 버스 안에서 바라보는 요하네스버그의 전깃불이 노란 꽃봉오리를 연상시키는 듯했다. 요하네스버그에서 케이프타운까지는 무려 1400km나 되는 먼 거리다. 시 외곽으로 빠져나오자마자 소웨토 고속도로 팻말이 보인다. 남아공 최대 빈민촌인 소웨토로 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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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에 맞은 헥터 피터슨을 한 동료학생이 옮기는 사진. 왼쪽이 그의 누이 ⓒ 삼 은지마

총에 맞은 헥터 피터슨을 한 동료학생이 옮기는 사진. 왼쪽이 그의 누이 ⓒ 삼 은지마

소웨토(Soweto)는 도시 자체의 존재가 바로 인종차별 정책의 상징이다. 백인정권 시절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에 의해 흑인집단 거주지로 지정된 지역이다. 요하네스버그 남서쪽 16km 떨어진 소웨토에는 89만여명(2001년)이 몰려 살고 있다. 요하네스버그에 가면 소웨토를 꼭 가보고 싶었다. 흑인 서민들의 실제 삶과 아파르트헤이트의 현장을 직접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과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가 살던 집뿐 아니라 헥터 피터슨(Hector Pieterson)의 집과 박물관도 찾아보고 싶었다.

 

나는 아프리카 배낭여행을 위해 인천에서 홍콩으로 날아간 뒤 남아공 요하네스버그를 거쳐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로 갔다. 홍콩에서 남아공 요하네스버그로 가는 남아공항공사의 비행기 기내 잡지 표지에는 총에 맞아 옮겨지는 소년의 사진과 함께 '소웨토 폭동 30주년'이라는 제목의 특집 기사가 실려 있었다. 표지 사진의 주인공이 바로 소웨토 항쟁의 첫 번째 희생자인 어린 학생 헥터 피터슨이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아프리카 여행에 나선 2006년 6월은 남아공에서 소웨토 항쟁이 일어난 지 정확히 30주년이 되는 해이다.

 

경찰의 총에 맞아 옮겨지는 헥터 피터슨의 사진 한 장은 전 세계에 아파르트헤이트의 야만성과 소웨토를 아파르트헤이트 반대 운동의 상징이자 자유와 인권, 민주주의의 성지로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헥터 피터슨이 숨질 당시 그의 나이는 단지 12살. 1976년 6월 16일 학교에서 네덜란드 백인들의 언어인 아프리칸스로만 수업을 하도록 하라는 백인 정권의 정책에 반발해 소웨토 학생들이 들고 일어났다.

 

흑인 학생들은 코사어 등 자신들의 고유 언어로 수업을 받아왔는데, 부족어로 하는 수업을 금지시키고 전혀 알지도 모르는 아프리칸스어로 가르치도록 한 것이다. 백인정권의 아프리칸스어 강제 수업정책은 일제 강점기 조선어 교육을 금지시키고 일본어로만 가르치도록 한 조선어 말살정책과 다를 바 없다.

 

경찰의 총에 맞은 헥터 피터슨이 피를 흘린 채 한 학생에 의해 옮겨지고 그 옆에는 그의 누이가 울부짖으며 따라 가는 한 장의 사진은 언론 보도를 통해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나는 비행기 기내 잡지에 실린 헥터 피터슨의 사진을 보면서 이한열을 떠올렸다. 1987년 6·10 민주항쟁 당시 경찰의 최루탄에 맞아 숨진 연세대생 이한열이 피를 흘리며 동료 학생에 의해 옮겨지는 사진이 오버랩 되었다.

 

이한열의 사진 한 장이 독재정권을 무너뜨리는 민주항쟁의 기폭제가 되었듯이, 헥터 피터슨의 사진 한 장은 아파르트헤이트 반대운동의 전환점이 되었다. 백 마디 말보다 한 장의 사진이 역사를 바꾸기도 한다. 헥터 피터슨과 이한열의 사진이 그렇고, 월남전 당시 소이탄에 불바다가 된 마을을 벌거벗은 채로 뛰어나오며 울부짖는 아홉 살 소녀의 사진은 세계적인 반전여론을 불러와 베트남 전쟁에 종지부를 찍기도 했다.

 

소웨토에는 민주화 이후 2002년 헥터 피터슨 박물관이 그가 숨진 장소에 세워졌으며, 그가 숨진 6월 16일은 '청소년의 날'로 국경일이 되었다. 소웨토 항쟁으로 500명 이상의 학생들이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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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4월 한국에서 공연한 뮤지컬 <우모자>팀의 훈련모습 ⓒ 김성호

2007년 4월 한국에서 공연한 뮤지컬 <우모자>팀의 훈련모습 ⓒ 김성호

 

뮤지컬 <우모자>의 도시를 지나다

 

버스는 소웨토로 가는 길이 아니라, 케이프타운으로 내려가는 국도1번(N1)쪽으로 달린다. 버스 차창으로 '골드 리프 시티(Gold Reef City)' 팻말이 보인다. 말 그대로 '금광의 도시'라는 뜻이다. 옛날 금광촌의 역사를 보여주는 거리 구경보다는 남아공 댄스 뮤지컬 <우모자>의 도시이다. 내가 재즈 바를 구경하고 싶어 했던 곳이다. 나는 오래 전 남아공의 뮤지컬 <우모자>를 본 뒤로 언젠가 요하네스버그에 가면 흑인들의 영감이 담겨 있는 재즈음악을 듣고 싶었다.

 

스와힐리어로 '공동체 정신' 또는 '함께 하는 정신'이라는 뜻의 <우모자(Umoja)> 뮤지컬은 1940년대 요하네스버그 금광지대를 중심으로 유행했던 스윙재즈와 탄광노동자들의 애환을 노래로 표현하고 있다. 남아공 탄광 노동자들의 삶과 인종차별의 역사, 아프리카 전통의 공동체 정신을 <우모자>처럼 그렇게 춤과 노래로 신명나게 표현한 뮤지컬을 본 적이 없다.


소웨토의 아파르트헤이트 박물관과 만델라의 집을 방문하지 못한 아쉬움은 케이프타운에 있는 '디스트릭트 식스 박물관(District Six Museum)'과 로벤섬 방문으로 대체할 수 있지만, 뮤지컬 <우모자>에서 보았던 스윙재즈와 탄광 노동자들의 검은 장화를 이용한 대화방식에서 유래한 검부츠 댄스, 아프리카 특유의 재즈음악을 즐기지 못하고 떠나는 것은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소웨토 갈림길과 골드 리프 시티를 지나면서 나는 잠에 떨어졌다. 한참을 피곤에 절어 몸을 뒤로 젖히고 자는데 내 무릎에 '쿵'하면서 무엇인가 떨어진다. 깜짝 놀라 눈을 뜨니 내 옆 자리 승객의 두 발이 내 무릎에 올려져 있다. 신발을 벗은 채로 두 발을 앞좌석 등받이에  올려놓고 자다 미끄러지면서 내 무릎으로 떨어진 것이다. 현지인으로 보이는 60대 중반의 백인은 내가 다리를 내려놓아도 다시 앞좌석 등받이에 발을 걸친 채 잠을 자다 또다시 내 무릎을 내리친다.

 

잠시 뒤에는 아예 내 무릎에 두 발을 올려놓고 잔다. 술에 취한 것 같기도 하고, 약간 정신이 나간 사람 같기도 하다.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어 여승무원에게 좌석을 바꿔달라고 했다. 승무원도 혀를 끌끌 차더니 마침 승객이 내려 비어 있는 앞좌석으로 자리를 바꿔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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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웨토의 초저녁 모습 ⓒ 김성호

소웨토의 초저녁 모습 ⓒ 김성호

 

동부아프리카와 너무 다른 남아공의 버스들

 

그레이하운드는 밤새 달리면서 정확히 3시간마다 휴게소에 정차한다. 승무원이 미리 머무는 시간까지 차내 방송으로 안내하는데, 보통 15분 정도 쉬었다. 휴게소는 남아프리카의 대부분이 그렇듯 대형 체인 주유소이다. 쉘(Shell), 토탈(Total), 엔젠(Engen) 등의 주유소이다. 주유소에는 매점과 패스트푸드점, 식당 등을 겸해 공중화장실도 갖춰놓고 있다. 이들 주유소는 대개 24시간 영업하기 때문에 밤새 운항하는 장거리 버스들의 휴게소로서는 최적이다.

 

주유소는 매점을 통해 수익도 올리고 정차하는 차량들의 기름도 넣어주기 때문에 경쟁적으로 휴게소를 제공한다. 주유소 휴게소에는 은행의 현금자동지급기도 설치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 현금을 뽑아 쓸 수가 있다. 승객들은 정차하는 동안 화장실을 가고, 매점과 패스트푸드점에서 요기를 한다. 먹을거리를 사서 차 안에서 먹기도 한다. 휴게소에는 늦은 밤에도 그레이하운드뿐 아니라 인터케이프, 트랜스룩스 등 장거리 고속버스들이 정차해 북적거린다.

 

그레이하운드는 인터케이프와 마찬가지로 운전사 두 명이 교대로 운전하고 여자 승무원도 요하네스버그와 케이프타운 중간에서 교체해 교대근무를 한다. 차 안에 3대의 텔레비전 모니터가 설치되어 비디오를 보여주고 맨 뒷좌석 왼쪽에는 화장실도 갖춰져 있다. 주로 3시간마다 정차하는 휴게소에서 볼 일을 보지만, 급한 경우에는 버스 안 화장실을 이용하기도 한다.

 

주로 나이가 많으신 노인들이 버스 안 화장실을 이용한다. 일흔이 넘은 백인 할머니가 제대로 걷지 못하자 여자 승무원이 부축해 화장실로 안내한 뒤, 일을 보고 나오면 다시 좌석에 앉도록 도와준다.

 

커피와 차는 수시로 서비스해주고, 언제든지 요구하면 갖다 준다. 간단한 비스킷 등 스낵을 제공하는데, 요금이 비싼 만큼 서비스도 좋다. 좌석은 가운데 통로가 있고 양쪽으로 각각 두 좌석씩 모두 50석이고,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고, 잠자기 위해 뒤로 마음껏 젖힐 수 있는 안락한 좌석이다. 승객들도 조용하기 때문에 편안한 여행에 최적이다.

 

휴게소도 없고, 정해진 정차 시간도 없고, 입석으로 꽉 채워 숨 막힐 지경인 다른 아프리카 국가와는 천양지차이다. 남아공은 모든 것이 미국이나 유럽식이다. 승객 우선의 원칙이 지켜지고 있다. 운전사가 왕인 동부 아프리카와 비교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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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 요하네스버그의 야경 모습 ⓒ 김성호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의 야경 모습 ⓒ 김성호

 

남아공의 수도가 3곳으로 나눠진 이유는

 

요하네스버그에서 6시간 정도 달려 한밤중에 정차한 곳은 블룸폰테인이다. 현재 남아공의 대법원이 있는 사법 수도이고, 옛날 보어인(아프리카너)들이 1854년 세운 오렌지 자유국의 수도였다. 남아공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수도가 3곳으로 나눠져 있다는 것이다. 대통령과 행정부처가 있는 행정수도는 츠와니(프리토리아)이고, 사법 수도는 블룸폰테인, 국회가 있는 입법 수도는 케이프타운이다.

 

남아공의 수도가 이처럼 분산된 것은 애초부터 독립 국가들이 모여서 만든 연방 국가이기 때문이다. 1910년 현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의 전신인 남아프리카연방(남아연방)이 탄생할 때 케이프식민지와 나탈 공화국, 트란스발 공화국, 오렌지 자유국 등 사실상 4개의 공화국이 합쳐졌다. 이 때 트란스발 공화국의 수도였던 프리토리아는 행정 수도로, 오렌지 자유국의 수도였던 블룸폰테인은 사법 수도로, 케이프식민지의 수도였던 케이프타운은 입법수도로, 수도를 갖지 못한 나탈 공화국의 수도인 피터마리츠버그는 경제적 보상이 주어졌다.

 

아프리칸스어로 '꽃피는 샘'이라는 뜻의 블룸폰테인(Bloemfontein)은 금광이 발견된 요하네스버그와 마찬가지로 킴벌리의 다이아몬드로 인해 수난을 당한다. 당시 오렌지자유국의 영토였던 180km 떨어진 킴벌리에서 1869년 다이아몬드가 발견되자 영국이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 요하네스버그에서 금광이 발견되자 영국의 케이프식민지가 보어전쟁을 일으켰듯이, 킴벌리에서 다이아몬드가 발견되자 영국은 1900년 아예 오렌지자유국을 케이프식민지의 영토로 병합해 버렸다.

 

금과 다이아몬드를 둘러싸고 영국과 네덜란드계 백인의 보어전쟁에 깊숙이 관련된 인물이 바로 영국의 제국주의자이자 광산업자인 세실 로즈이다. 당시 케이프식민지 수상이었던 세실 로즈는 요하네스버그의 금과 킴벌리의 다이아몬드를 둘러싼 1899년 보어전쟁을 실질적으로 부추긴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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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4월 한국에서 공연한 뮤지컬 <우모자>팀의 훈련모습 ⓒ 김성호

2007년 4월 한국에서 공연한 뮤지컬 <우모자>팀의 훈련모습 ⓒ 김성호

 

세실 로즈와 다이아몬드는 영원하다

 

세실 로즈가 벼락부자가 된 곳도 킴벌리다. 다이아몬드와 금이라면 물불가리지 않고 찾아다니던 그가 다이아몬드가 발견된 킴벌리를 그냥 지나칠 리 없었다. 킴벌리로 간 세실 로즈는 '드 비어스(De Beers)'라는 다이아몬드 회사를 세워 엄청난 돈을 벌게 된다. "다이아몬드는 영원하다(A Diamond Is Forever)'는 기발한 광고로 지금도 세계 다이아몬드 시장을 지배하는 바로 그 회사이다.

 

'다이아몬드와 영원한 사랑'을 동일시하게 하는 놀라운 광고는 상업성의 극치를 보게 된다. 다이아몬드는 아프리카 분쟁지역에서 반군들의 자금원으로 이용되면서 '피의 다이아몬드(Blood Diamond, 또는 분쟁 다이아몬드)'로 국제적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보석이다.

 

'드 비어스'라는 회사 이름은 킴벌리의 다이아몬드가 발견된 논의 애초 주인이었던 농사꾼 '드 비어스'라는 형제 이름을 따서 붙인 것이다. 드 비어스의 본사는 지금도 킴벌리에 있다. 세실 로즈가 다이아몬드와 금으로 쌓은 부를 죽으면서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에 남긴 장학금이 유명한 '로즈 장학금(Rhodes Scholarship)'이다.

 

옥스퍼드 대학에 유학하는 영국연방과 미국, 독일의 외국 학생들에게 주어지는 로즈 장학금은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 밥 호크 전 호주 총리 등 영어권 세계 지도자들이 혜택을 받았다. 엘리트 코스로 정평이 나 있는 로즈 장학금은 어떻든 영어권 국가에서는 장학생으로 선발되는 것 자체가 큰 명예다. 세실 로즈가 죽으면서 그의 재산을 대부분 장학금으로 사회에 환원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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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덮인 스와트버그 산 ⓒ 위키피디아

눈 덮인 스와트버그 산 ⓒ 위키피디아

 

하얀 눈이 덮인 그레이트 카루지대를 달린다

 

한참을 자다 깨다보니 어느덧 차창 밖으로 밝은 빛이 들어온다. 눈을 뜨니 벌써 오전 8시. 차창 밖에는 이미 햇살이 강렬히 비추고, 멀리 커다란 산맥이 보인다. 남아공의 케이프 주에 있는 그레이트 카루(Great Karoo)라는 고원지대를 달린다. 버스는 블룸폰테인을 지나 콜레스버그에서부터 그레이트 카루 고원에 접어들었다. 내가 탄 버스는 '1번국도(N1)'를 따라 보포르트 웨스트, 프린스 앨버트 로드, 드비카, 랭스버그를 거쳐 마키스폰테인까지 펼쳐진 그레이트 카루 지대를 달려간다. 그레이트 카루가 끝나면 버스는 케이프타운에 다다르게 된다.

 

그레이트 카루는 건조한 반사막 지대지만 평균 해발고도가 1200m나 되는 고원이어서 겨울에는 눈이 내린 산맥의 아름다운 설경을 볼 수도 있다. 동쪽으로는 리틀 카루라고 하고, 서쪽 대서양쪽으로는 콰마 카루라고 한다.

 

아름다운 들판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길가의 도로 표지판에는 '우스터(Worcester) 236km'가 보인다. 우스터라는 도시가 236km 남았다는 표지다. 우스터에서 케이프타운까지는 104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점점 목적지인 케이프타운에 가까워지고 있다. 4시간 정도만 더 달리면 된다.

 

내가 탄 버스는 요하네스버그에서부터 어느새 웨스턴 케이프 주의 프린스 앨버트 로드 지역을 지나고 있었다. 멀리 보이던 산맥이 가까워지면서 보니 가장 높은 산의 정상에는 하얀 눈이 쌓여 있다. 보기보다 꽤 높은 산이다. 아프리카에서 눈을 보기는 탄자니아 모시의 킬리만자로 정상에서 본 이후 처음이다. 남아공의 겨울에는 이처럼 높은 산에서 종종 하얀 눈을 볼 수 있다.

 

아프리칸스어로 '검은 산'이라는 뜻의 스와트버그(Swartberg) 산맥이다. 정말로 검은색의 바위산들이 이어진다. 큰 산 밑으로는 아기자기한 구릉을 이루고 있는 작은 동산들이 아침햇살을 받아 빛난다. 프린스 앨버트 로드에서 스와트버그로 뻗는 고원지대를 리틀 카루라고 한다.

 

드비카(드와이카) 역이 가까이 있다는 '드비카 역(Dwyka Station) 10km'라는 도로 표시판도 보인다. 10분 정도 더 달리니 차가 철길과 나란히 다가섰다. 요하네스버그에서 케이프타운으로 달리는 철길과 1번국도가 나란히 붙은 것이다. 철길 옆으로 전봇대들이 세워져 있고, 전선들이 연결돼 있다. 전기 기차인가 보다. 빨간 벽돌집과 푸른 벽돌집의 송전실이 철길 양쪽에 있는데, 쭉 뻗은 철도와 어울려 낭만적이다.

 

드비카강을 건넌 버스는 랭스버그라는 작은 도시에 정차했다. 간단한 아침식사를 위해 25분간이나 시간을 준다. 케이프타운으로 가는 길에 마지막 휴게소이다. 사방이 작은 언덕 같은 산으로 둘러싸인 아담한 도시이다. 쉘 주유소에 딸린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로 아침을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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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마운틴 케이블카 타는 곳에서 내려다본 케이프타운 시내 모습 ⓒ 김성호

테이블마운틴 케이블카 타는 곳에서 내려다본 케이프타운 시내 모습 ⓒ 김성호

 

질주본능을 자극하는 남아공의 오토바이족

 

화창한 아침 날씨이다. 간단히 끼니를 때운 승객들도 활기를 되찾은 듯 표정들이 밝아졌다. 차안의 분위기가 생동감을 느끼게 한다. 아침 햇살과 간단한 식사가 승객들을 깨운 것이다. 잡지를 읽는 승객들도 있고, 편안한 자세로 좌석에서 커피를 마시는 승객, 옆 사람과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승객, 텔레비전 모니터에서 비디오가 방영되자 그것을 보고 웃는 소리도 들린다. 아침 햇살과 함께 차안도 살아 움직인다.

 

풀과 작은 관목만 자라는 사바나 지형이 나타나고, 많은 양들이 이른 아침부터 풀을 뜯는 모습이 보인다. 다른 아프리카 국가에 소들이 많다면, 남아공에는 양들이 많다. 양들 뒤로 보이는 산들도 마치 모래언덕이 쌓여 생긴 모습이다. 초원 위에 작은 언덕이 겹겹이 쌓여있는 모양으로 산들이 겹쳐 있다. 랭스버그는 반사막지대인 카루 고원지대이다.

 

조금 더 지나자 '우스터 74km, 케이프타운 176km'라는 간판이 보인다. 간판을 지날 때 추월선을 통해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를 탄 15명의 남자들이 우리 버스를 앞질러 달린다. 똑같은 검은색 가죽옷과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를 타고 달린다. 아마도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 동호회에서 단체로 여행을 가나보다. 오토바이족들은 조금 달리더니 우스터, 케이프타운 방향에서 오른쪽으로 갈라지는 몬타구(Montagu)라는 표지판이 있는 길쪽으로 빠진다.

 

끝없이 펼쳐진 길과 잘 포장된 아스팔트 도로, 곳곳의 도로 표지판, 수많은 주유소와 휴게소, 어디 가나 찾을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나 롯지 등 여행객 숙박시설, 아름다운 국립공원, 바다를 보고 달릴 수 있는 해변길, 낮고 푸른 하늘과 사시사철 항상 나무와 풀이 자라는 상록의 나라….

 

남아공은 오토바이족을 유혹한다. 해방감과 속도의 질주감을 기대하는 오토바이족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다. 내가 어린 시절 면사무소에 다니던 아버지는 늘 자전거를 타고 수십 년 동안 출근하다, 어느 날 작은 오토바이를 사셨다. 물론 아버지는 나이가 드시고는 다시 자전거로 돌아가셨고, 정년퇴직할 때까지 자전거를 타고 다니셨다.

 

나는 아버지의 교통수단을 따라 어릴 때부터 자전거와 오토바이에 익숙했다. 젊기 때문에  자전거보다는 오토바이에 더 눈길이 갔다. 아버지가 자전거를 선택하셨을 때, 오토바이는 나의 몫이었다. 나도 젊었을 때는 한순간 오토바이 속도감에 빠지기도 했는데, 한번은 내리막길에서 미끄러지면서 오토바이와 함께 아스팔트 도로에 넘어져 청바지가 찢어지는 부상을 당했다. 그 때의 사고로 왼쪽 허벅지 위쪽에 둥근 상처가 흔적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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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프타운의 빈민촌 어린이들 ⓒ 김성호

케이프타운의 빈민촌 어린이들 ⓒ 김성호

 

몸에 난 상처는 인생의 나이테

 

자신의 몸에 난 상처는 바로 자기 자신의 삶이다. 나의 온 몸에도 크고 작은 상처들이 있는데, 내 삶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왼쪽 엄지손가락에는 초등학교 시절 소에게 줄 풀을 베다 낫에 베어 반달모양의 상처가 있고, 왼쪽 엄지발가락은 발톱과 살이 붙어 삼각형의 우뚝 솟은 피라미드 같은 기형적인 발톱을 갖고 있다. 어린 시절 동네친구들과 맨발로 축구를 하다가 땅을 차는 바람에 발톱이 빠지는 상처를 입었는데, 시골에는 병원이 없어 치료를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시 시골에는 축구공은커녕 운동화도 없어 타작을 한 벼이삭을 둥그렇게 묶어 축구공으로 대신했다. 신발은 고무신이 있기는 했지만, 고무신은 미끄러워 잘 벗겨지기 때문에 축구를 할 때는 오히려 고무신을 벗고 맨발로 맨땅에서 공을 찼다. 병원도 한참을 걸어 면사무소 소재지에나 가야 개인의사 한 명이 하는 작은 의원이 있기 때문에, 헝겊으로 피나는 부위를 단단히 묶어 지혈을 하는 것으로 끝이었다. 아프리카의 오늘날 모습은 30여 년 전 나의 어릴 때 모습이다.

 

오른쪽과 왼쪽의 다리에는 어릴 때 모기에 물려 생긴 상처가 도장 자국 같은 흔적으로 곳곳에 남아 있다. 모기에 물려 가려운 부위를 손으로 긁어 부스럼을 만든 것이다. 시골에는 누구나 여름밤에 모기와의 전쟁을 치러야 했다. 모기 때문에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한 기억이 많다. 모기들은 왜 다리와 발목 등 신체의 아래 부분을 좋아하는지 모른다. 상처는 어릴 때만 생기는 것이 아니다. 어른이 되어 몇 년 전 축구를 하다 오른쪽 인대가 끓어질 정도로 늘어나 1년 넘게 고생했다. 공을 차기 위해 점프를 했다 땅에 내릴 때 삐걱한 것이다. 아직도 오른쪽 발목 밑 인대는 많이 걸으면 통증이 온다.

 

내 몸은 이처럼 상처투성이다. 온몸의 상처는 지울 수 없는 내 삶의 흔적이고 나이테다. 수많은 상처만큼 험한 길을 걸어왔고, 좌절하지 않고 극복해왔다. 아프리카의 험한 도로들을 오랫동안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은 이미 내 삶 속에 오래 전 걸어왔던 길이기 때문이다. 나의 길은 잘 포장된 아스팔트길이 아니라, 먼지가 휘날리고 덜컹덜컹거리는 진흙투성이의 비포장도로이다. 흙탕물에 빠져 온몸이 뒤범벅이 되고, 가시밭에 넘어져 상처가 나도 벌떡 일어나 뚜벅뚜벅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인생이다.

 

위험이 두려워 모험하지 않는 것은 젊음이 아니고, 실패가 두려워 도전하지 않는 것은 인생이 아니다. 젊었을 때의 배낭여행은 모험과 도전을 즐길 수 있는 가장 좋은 인생의 수업이다. 마르코 폴로는 17살에 동방여행에 나서 무려 24년만에 여행을 끝내고 돌아오지 않았던가. 그것도 영광의 귀환이 아니라 고국에서 전쟁에 휘말려 감옥에 갇히게 되고, <동방견문록>은 감옥에서 탄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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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프타운 빅토리아&알프레드 워터프론트 쇼핑센터 모습 ⓒ 김성호

케이프타운 빅토리아&알프레드 워터프론트 쇼핑센터 모습 ⓒ 김성호

 

체 게바라·김광석과 오토바이 여행을 꿈꾼다
 
여행 중의 상처와 실패는 오히려 삶의 자신감을 심어준다. 오토바이족을 보면서 나도 다시  한번 질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몸에는 질주본능이 숨어 있다. 언젠가 나 홀로 배낭을 메고 버스와 기차로 달려온 이 광활한 아프리카 길을 중고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꿈을 꾼다. 그때가 60대면 더욱 좋겠다. 더 넓은 아프리카의 더 깊은 세상이 보일 테니까.

 

그 때는 나 홀로 외로이 아니라, 체 게바라·김광석과 같이 말이다. 체 게바라는 20대 때 친구와의 중남이 오토바이 여행으로 의사에서 혁명가로 인생을 바꿨고, 김광석은 살아생전 40대가 되면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를 타고 세계 일주를 하리라고 말했다. 게바라와 김광석은 모두 마흔을 넘기지 못하고 다시는 오토바이 여행을 하지 못하고 떠났다.

 

게바라의 순수함과 열정이 우리의 아프리카 여행을 앞에서 끌어가고, 김광석의 다정함과 따뜻함이 외로움에 지친 여행객의 등을 다독이며 밀어줄 것이다. 그때는 에티오피아 하라르의 숨겨진 비밀창고에도 들어가고, 이미 흰머리가 희끗희끗해진 콩고민주공화국의 마운틴고릴라 가족과도 재회하고, 한걸음에 오토바이를 타고 킬리만자로 우후루 정상에도 오르고, 세렝게티 초원에서 치타와 빨리 달리기 시합도 해보자. 영화 <말아톤>의 '초원이'는 우리 옆에서 얼룩말과 마라톤을 하고 있다. 100살이 넘은 데도 하얀 머리카락의 정정한 넬슨 만델라도 만나게 되겠지.

 

버스가 케이프타운 근처에 다다르자 톨게이트가 나온다. 톨게이트 오른쪽 도로가에 커다란 개코원숭이 한 마리가 앉아 햇볕을 쬐면서, 왼손으로 오른쪽 옆구리를 가려운지 긁는다. 톨게이트를 지나자 길고도 긴 터널을 만난다. 터널을 빠져나오자 바로 앞에 높은 바위산과 계곡이 딱 버티고 섰다. 미국의 큰 바위얼굴과 같은 산이다.

 

사바나 지형에서 푸른 초원이 펼쳐진다. 날씨가 따뜻하면서 풀들이 파랗게 자라고 나무들도 푸른 잎을 띠고 있어 마치 여름 같다. 푸른 초원에서는 말들이 풀을 뜯어 먹고 있었다. 남아공은 늘 푸르름의 세상이다.

 

마침내 케이프타운에 이르렀다. 8월초의 케이프타운은 나무와 풀이 온통 푸른 전원도시이다. 푸른 잔디밭 축구장이 보이고, 집집마다 정원에는 푸른 나무들이 운치를 더해주고 있다. 깨끗한 거리와 높지 않은 건물, 언덕 위의 울창한 나무숲 사이에 들어선 유럽식 단층 가옥들, 언덕 길, 작은 호수들, 대서양과 연결된 운하, 그리고 마치 디즈니월드에 온 것 같이 고풍스럽고 환상적인 건물들이 많다. 멀리 테이블 마운틴도 보인다. 센추리 시티(Century City)라는 지역이다.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블룸폰테인 #헥터 피터슨 #센추리 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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