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에선 화장실 갈 필요가 없다

[생뚱맞은 과학선생의 아프리카 여행 25] 나미비아 빈프후크, 나미브사막

등록 2008.02.03 20:55수정 2008.02.03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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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미비아 비자신청서 ⓒ 조수영


미혼, 결혼, 이혼, 미망인?

지금까지 거쳐 온 나라들은 공항이나 국경에서 돈만 내면 비자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나미비아는 남아공에 있는 나미비아 관광청에서 사전발급을 받아야 했다. 게다가 비자신청서는 종이 앞뒷면에 문제가 가득하고 그 답을 모두 채워야 한다.

질문내용도 너무 세세해서 과연 이런 조사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범죄사실이 있는지, 지금의 집에 얼마 동안 살았는지, 나의 고용인의 이름이 무엇인지, 학생이면 교장선생님의 이름을, 가족의 생일까지 모조리 써 넣어야 한다.

'미혼-결혼-이혼-미망인'은 왜 구분해야 하는 걸까? 엉터리로 써 넣어도 확인할 방법도 없으면서….

작성이 끝나면 직원의 검토를 받은 후, 은행으로 가서 알려주는 계좌로 비자비를 입금하고, 그 영수증을 다시 관광청에 제출해야 한다. 이리저리 불려다니니 귀찮아 죽을 지경이다. 체류할 날짜에 대해서도 여유를 두고 비자를 내주는 것이 보통임에도 이들은 체류날짜를 정확하게 여권에 써넣었다. 그렇다고 친절하고 정확하게 알려주는 직원들에게 짜증을 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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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와코문트 시내. 20년이 넘는 독일 식민지 시절의 영향으로 도시 곳곳은 독일풍이 느껴진다. ⓒ 조수영



시간이 지나면서 느낀 사실이지만 나미비아 사람들은 그냥 아프리카 사람들이 아니었다. 섭섭할 만큼 정확하고 깔끔한 성격은 도시 곳곳 정갈한 분위기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케냐의 초원, 짐바브웨의 폭포와 강물이 마구잡이로 개발되고 있는 반면, 나미브 사막은 철저한 자연보호정신으로 있는 그대로 깨끗하고 소중하게 보존되고 있었다. 이것은 자신의 문화와 자연을 아주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보수적인 독일인의 모습과 비슷했다.

시간을 끌고 웃돈을 요구하면서 비자를 내주었던 다른 나라 사람들과 달리 비자비를 국제송금이라는 방법으로 본국으로 입금하고, 그 영수증으로 확인하는 치밀함 또한 처음 느끼는 것이었다.

비록 전체가 아닌 극히 일부의 사람들에게서 느낀 점이겠지만 나미비아 사람들은 그냥 아프리카인이 아니라 유럽에서도 정확하고 정갈하기로 이름난 '독일식 아프리카인'이었던 것이다.

여행 25일째(1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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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에서 내려다보이는 테이블마운틴의 평평한 정상. ⓒ 조수영



케이프타운 공항으로 향했다. 목적지는 나미비아의 수도, 빈트후크(Windhook).

기내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저 멀리서 낯익은 풍경 하나가 다가온다. 우리를 추위와 공포에 떨게 했던 테이블마운틴이다. 나도 모르게 "미친 테이블마운틴"이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누가 가라고 한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화가 난다. 자연에 순응하고 자연은 결코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은 익히 알지만 왠지 저 테이블마운틴에게 당한 것 같다.

하늘에서 보니 전망대는 새끼손톱만 하고, 사람은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전망대의 반대편으로 가는 길은 위에서 내려다봐도 만만치 않은 거리다. 저곳을 두 시간만에 끝까지 횡단하려 했다니 '미친 테이블마운틴'이 아니라 내가 '미친 관광객'이다.

나미비아, 아프리카 최후 독립국의 아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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쎄서림 캠프사이트로 가는 길. 모래언덕의 붉은 색은 푸른 하늘과 보색을 이룬다 ⓒ 조수영



나미비아는 남아공 바로 위에 붙어 있지만 우리에겐 매우 낯선 나라이다. 지도를 보니 북쪽으로 앙골라, 동쪽으로 보츠와나와 접하고 있으며 식민지의 역사를 보여주듯 자로 그은 반듯한 일직선 국경선을 가지고 있다.

나미비아는 한때(1890∼1914) 독일의 식민지 지배를 받았다. 그래서 지금도 시내 곳곳에 독일풍이 느껴진다.

여우를 피하고 나니 호랑이가 나타난다고 했던가. 독일의 지배를 벗어나니 남쪽의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쳐들어왔다. 이번에는 영국식민지인 남아공에 예속되었다. 무려 76년간이 지난 1990년에야 아프리카 최후의 독립국이라는 기록을 남기고 독립하게 되었다. 나미비아 랜드와 남아공 랜드의 화폐 이름과 가치가 같고, 남아공의 랜드가 나미비아에서 그대로 통용되는 데에는 그런 역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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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미브 사막으로 가는 비포장도로 투어버스의 운전석 모습은 트럭에 가깝고, 여행자들의 공간인 몸체는 버스에 가깝다. ⓒ 조수영


"한국 여교사들 단체관광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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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나미브 사막의 붉은 모래언덕이 보이기 시작했다. ⓒ 조수영



나미비아를 찾은 이유는 붉게 빛나는 나미브 사막을 보기 위해서다. 사막투어는 우리나라 단체 여행팀에 끼여서 참가하기로 했다. 빈트후크 공항에 도착하니 예약했던 투어버스와 함께 갈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막투어는 여행사에서 특수 제작한 여행용 트럭을 이용한다. 운전석의 모습은 트럭에 가깝고 여행자들의 공간인 몸체는 버스에 가깝다. 차량의 본체를 높이고 그 사이의 공간에 배낭이나 텐트 등 커다란 짐을 싣도록 했다.

운전사 한 명과 요리사 한 명이 같이 가는데, 운전사는 몸체와 운전석 사이의 커다란 구멍을 통해 사막의 환경을 설명하거나 위기상황을 알려준다. 근육질 몸매에 검은 피부가 매력적인 찰스는 경력 7년의 베테랑 운전사 겸 가이드였다.

찰스는 이렇게 동양인들로만 구성된 그룹은 처음 본다고 했다. 게다가 나를 포함하여 구성원이 대부분 한국인 여교사들이다. 찰스가 물었다. "한국여교사들 단체관광인가요?"

모든 것에는 일장일단이 있다. 한국 사람들로만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에 그동안 못했던 우리말을 실컷 할 수도 있었고, 사막에서 함께 먹는 깻잎 장아찌 맛은 일품이었다. 그러나 거의 한국인끼리만 이야기하고, 영어에 제한이 있어 찰스의 설명이 점점 간단해지는 것 같았다.

일단 빈트후크 시내에 있는 투어회사 사무실로 가서 계약서를 쓰고 비용을 지불했다. 2박 3일의 사막사파리를 마치고, 스와코문드까지 데려다 주는 3박 4일의 일정에 2천랜드. 우리 돈으로 30만원이 넘는 가격이다.

빈트후크는 독일어로 바람이 많이 부는 곳이라는 뜻이라고 하는데, 건물도 독일풍 그대로이다. 남아공과 마찬가지로 식민지시절 아파르트헤이트가 실시되었기 때문에 백인거주지역과 지저분한 흑인 거주지역으로 나누어져 있다. 찰스는 해가 지기 전에 나미브 사막의 입구인 쎄서림 캠프 사이트(Sesriem camp site)까지 가야 한다며 서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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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트후크를 출발한 버스는 나우클루프트 국립공원을 향해 비포장도로를 5~6시간동안 달렸다. ⓒ 조수영



황무지를 달린다. 빈트후크에서 나미브사막 일부분인 나우클루프트(Naukluft) 국립공원까지는 약 400km 떨어져 있다. 5~6시간을 비포장도로를 달려야 한다. 하지만 돌멩이 없이 흙만 있는 비포장이라 생각보다 불편하지는 않다. 먼지를 뽀얗게 일으키며 흙길을 시속 100킬로미터로 질주하건만 황무지와 지평선이 보일 뿐이다. 투어버스는 붉은 평원과 푸른 하늘 사이를 가로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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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미브 사막이 붉은 이유는 철 성분때문이다. 공기 중의 산소에 의해 산화되어 붉은색을 띠는 것이다. ⓒ 조수영



나미브 사막은 증발량이 강수량의 200배에 가깝워서 매우 건조하다. 입술이 바짝바짝 마르고, 흐르던 땀도 금세 말라버린다. 목이 말라 물을 많이 마셔도 땀으로 모두 증발되기 때문에 화장실에 갈 필요도 없었다.

사막에 웬 홍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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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에 홍수라니...오전에 내린 비로 쎄서림 캠프장으로 향하는 길이 박혔다. 찰스는 가까운 솔리테어 캠프장에서 텐트를 쳐야 한다고 했다. ⓒ 조수영



더위에 지쳐 한숨 늘어지게 자고 있는데 찰스가 차를 세웠다. 사막 여우를 보라고 했다. 큰 귀를 쫑긋 세우고 있다. 사막 여우의 귀가 큰 것은 더운 날씨에 체온 조절을 하고자 진화한 흔적이다. 한 시간을 더 달렸을까? 처음으로 사람이 사는 마을이 나타났다.

마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찰스가 비가 와서 강물이 불어나 길을 건널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쎄서림 캠프사이트 대신 가까운 솔리테어 캠프 사이트(solitare camp site)에서 텐트를 쳐야 하고, 그만큼 내일 아침 기상 시간도 한 시간 당겨야 한다고 했다.

사막에 웬 홍수? 의심이 들었다. 팀원들도 믿을 수 없다며 눈으로 확인해 보겠다고 했다. 찰스는 더는 설명하지 않고 묵묵히 차를 몰았다. 40분 정도 달린 것 같다. 주변은 여전히 사막 그대로인데, 거짓말처럼 골짜기의 물이 허리높이까지 넘쳐서 길을 막고 있었다.

찰스의 말을 들을걸. 괜한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시간만 허비했다. 주위는 벌써 어두워졌다. 불빛 하나 없는 캠프장에서 더듬거리며 텐트를 쳐야 했다. 게다가 텐트의 무게가 엄청났다. 사막의 바람을 견디려면 이 정도 무게는 되어야 한다고 한다. 두 명이 한 개의 텐트를 사용하게 되지만 네댓 사람이 힘을 합쳐 한 채씩 짓기로 했다.

마젤란이 본 것은 성운이 아닌 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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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언덕에서 일몰을 기다리던 일행. 가이드인 찰스는 우리에게 한국인 여교사들 단체관광이냐고 물었다. ⓒ 조수영



저녁을 먹고 세수를 하러 가야 하는데 남들 다 있는 손전등이 없다. 어둠 속에서 발끝으로 바닥을 더듬으며 세면대 쪽으로 걸어갔다.

순간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코앞에서 찰스가 손전등을 내밀고 있었다. 그는 나를 보고 다가온 거라 하는데, 나는 어둠 속에서 찰스의 새까만 얼굴이 보일 리 없었다. 찰스가 별을 보러 가자고 했다. 캠프장 불빛의 방해를 받지 않을 만큼 멀리까지 걸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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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미브 사막의 일몰 ⓒ 조수영


사막의 별빛은 너무나 맑고 선명했다. 쏟아질 듯 많은 별들과 남반구의 별자리는 모두 생소에서 마치 다른 행성에 온 듯한 착각이 들었다. 특히 맨눈으로도 잘 보이는 남십자자리(Crux)와 마젤란 은하가 장관을 이룬다.

남십자자리는 북반구에서 북두칠성의 역할처럼 남반구에서 하늘의 남극 방향을 알려주는 별자리이다. 뉴질랜드, 브라질, 호주 등 여러 남반구 나라들에서는 가오리연 모양의 남십자성이 국기 등의 상징에 많이 사용되었다,

마젤란 은하의 뽀얀 흐름이 선명하게 보였다. 마젤란 은하 앞에 있는 성운은 거미를 닮았다고 해서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독거미 타란툴라로 불린다. 과거에 마젤란 은하도 성운이라고 불리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후에 가스와 먼지로 이루어진 성운이 아니라, 별들의 집합체인 은하임이 밝혀졌다.

마젤란 은하는 포르투갈의 항해사 마젤란(Ferdinand Magellan, 1480~1521)이 남반구 바다를 항해할 때 발견한 것이라 해서 그의 이름을 땄다. 흔히 마젤란은 세계를 최초로 일주한 용감한 항해사로 알려졌지만, 그는 결코 세계를 일주하려고 계획을 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성공하지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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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리테어 캠프장에서의 저녁식사. ⓒ 조수영



스페인에서 출발한 마젤란은 향료섬을 찾아 나섰다. 대서양을 지나고 남아메리카 남단의 마젤란해협을 거쳐 태평양을 건넜다. 그러나 1521년 필리핀의 막탄섬에서 원주민과의 전투 중에 죽고 말았다. 전투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만이 항해를 계속하여 1년 후 세비아로 돌아옴으로써 세계 일주의 기록을 남겼다.

그러나 보통 마젤란을 최초의 세계일주를 한 항해사라고 부르는 것은 그가 원정을 계획하고 지휘하였기 때문이다.

덕분에 마젤란은 세계 곳곳에 자신의 발자취를 남겼다. '마젤란 해협'을 비롯하여 자신이 처음 보았다고 이름 지어진 '마젤란 펭귄', 잔잔하다고 붙여진 '태평양'이나 우루과이의 수도인 '몬테비데오' 등 그가 명명한 이름 그대로 오늘날까지 사용되고 있다.

야심한 밤에 둘이서만 낭만적인 별구경을 하고 있으니 내가 스테파니 아가씨로 보였나 보다. 자신이 목동이라 착각한 찰스가 어깨 위에 손을 쓰~윽 올렸다. 아까 면허증을 보니 나보다 열 살이나 어리던데 이모 뻘에게 무슨 수작이지? 내일 아침 밝은 햇살에 다시 본다면 생각이 달라질 텐데…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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