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랴?

웃고 있어도 눈물나는 이유.

검토 완료

정청래(wjdcjdfo)등록 2008.04.20 17:46

아니 땐 굴뚝에서 연기가 나랴? 나는 이 속담이 갖고 있는 무서움을 이번에 절절히 느꼈다. 그것은 공포였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지 않았는데도 굴뚝에서 연기는 모락모락 피어났다. 한번 피어난 연기는 시커먼 먹구름이 되어 천둥번개까지 동반된 낙선 태풍으로 돌변해 나를 집어삼켰다. 결국 초등학교 녹색어머니회 행사장인 마포 평생학습관은 나의 무덤이 되었다.

 

결단코 나는 “교장, 교감의 목을 자르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돌아가신 어머니 아버지 이름을 걸고 하나님과 성경 앞에 맹세한다. 나는 행사시작 20분 전에 도착해 행사장 밖 엘리베이터 앞에서 이미 명함돌리기과 인사를 마쳤다. 행사장 안에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행사장 안에 들어갈 요량이었다면 왜 20분 전에 도착해 인사를 했겠는가?

 

녹색 어머니회 회장에서 작별인사를 하려 했던 것이 이렇게 큰 사건으로 변질된 것이다. 교감선생님이 ‘행사장 안에 들어가면 선거법 위반이다.’고 말했다. 나는 ‘공식 선거운동 기간 중에는 금품 향응 제공, 허위사길 유포, 상대방 비방 등이 아니면 선거법 위반이 아니다.’라고 응대했고 그러는 사이에 학부모들이 몰려들어 언쟁도 그만하고 돌아선 것이다.

 

사실 나는 선거법 위반도 아닌데 ‘정청래의원이 선거운동 못하고 쫓겨났다더라.’는 소문이 날까봐 그것이 걱정되었었다. 그래서 지루하지만 선거법 논쟁을 한 것이다. 아무튼 ‘국회의원을 떠나 잡상인에도 일반인에게도 이렇게 하면 되느냐?’는 말과 함께 이대로 억울하게 당하지는 않겠다.‘는 말을 남기고 행사장을 빠져 나왔다.

 

현장에서 교장 선생님은 교감선생님과 함께 나에게 사과를 했다. 교육장님도 나에게 사과를 했다. 그리고 내 사무실까지 공식적으로 찾아 오셔서 교장선생님이 또 한 번 사과를 한 사안이다. 내가 세 번씩이나 사과를 받은 사안이라면 억울해도 내가 억울한 일 아닌가? 내가 폭언을 하고 건방을 떨었다면 내가 교장 교감선생님에서 사과를 할 일이지 않겠는가? 진위가 180도 역전이 되어도 한참 거꾸로 되었다.

 

사건이 있고 4월 4일부터 총선 날인 4월 9일까지 문화일보는 사설포함 11차례, 조선일보는 사설포함 7차례 그리고 문화일보 자매 무가지 Am7은 4월 8일자 1면에 나의 죽음을 열망하는 장송곡을 게재했다. 북한에서 무슨 핵실험을 한 것도 아닌데 이들은 나의 목에 펜대를 꽂고 피를 토하는 나의 모습을 즐기고 있었다.

 

오늘 아침 선거이후 조기축구연합회 첫 지역 행사에 참석했다. “떨어진 정청래입니다. 현역이든 아니든 나라와 지역을 위하는 것은 변함이 없습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박수가 터져 나왔다. 참 다행이었다. 어떻게 표정을 지어야 할 지 참 난감했다. 조용필 유행가 가사처럼 “아~아~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결혼식장에도 막 다녀왔다. 삼삼오오 나를 본 동네 분들이 그래도 찾아와 위로를 해 주셨다.

 

선거이후 동네를 돌아다니면 지역 유권자들은 대체로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 문화와 조선이 정청래에 대한 사적인 감정을 갖고 정치보복을 했다고 밝힌 KBS 미디어 포커스를 시청한 분과 그렇지 않은 분들이 확연히 반응이 다르다. KBS 미디어 포커스는 이례적으로 문화와 조선이 ‘정청래 죽이기’를 한 것은 언론개혁에 앞장섰던 국회의원 의정활동을 문제 삼은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두 신문사가 의도적으로 나를 죽였음이 그 실체가 공개되었다.

 

KBS 미디어 포커스를 본 분들 반응-“아이고 억울해서 어떻게 해. 도대체 기자들이 그런 짓을 다하다니....억울하고 원통해도 밥은 거르지 말어.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싸워야 하는데 힘들어서 어쩌지...쯧쯧. 재선거하는겨? 나도 처음에는 긴가민가 했어요. 어쩐지 이상하더라. 정의원이 인격이 있는데 설마 그런 말을 했겠어? 한 표가 아쉬운 판에 그런 말했다고 나는 처음부터 안 믿었는데 방송에서 잘 봤어요. 우리가 진실을 다 알아요. 힘내요. 4년 후에 또 찍어줄께요.”

 

KBS 미디어 포커스를 안본 분들 반응-“아이고 어쩌자고 그런 실수를 했어요. 다 된 밥에 코를 빠뜨려도 유분수지....정의원이 일은 참 많이 했는데 초등학교 교감 자른다는 말 듣고 우리 동네 분위기가 싸~해지더라구...정의원! 앞으로는 말조심해서 해야 돼. 한번 실수는 약이 됭께 담부턴 그러지 말아. 우리나라 언론이 문제는 문제야 그런데 아니 땐 굴뚝에서 연기가 나겠어?”

 

내가 동네에 돌아다니다 보면 온통 ‘자른다는 말을 했느냐? 안 했느냐?’는 논쟁이 곳곳에서 벌어진다. 그런데 논쟁이 뜨겁다가도 ‘아닌 땐 굴뚝에 연기 나는 것 봤어? 이 사람아!’로 마무리 되면 나는 그 자리에서 또 한 번 비참하게 죽곤 한다. 막바지 총선 기간 6일간 나는 마포구에서 수없이 죽었을 것이다. 아니 문화와 조선이 있는 곳이면 전국 어디에서나 나는 숨을 할딱거리며 피를 토하며 죽어갔다.

 

그러나 진실은 거짓을 누르고 부활하는 법. 검찰이 발 빠르게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의 수사의 방향은 대략 이런 것 같다. ‘자르겠다.’는 말을 했느냐?의 여부다. 내가 하지 않았으니 들은 사람도 없다. 교감선생님도 반박기가회견문, 경위서 그리고 동아일보 기자와의 통화에서 ‘정의원이 폭언한 적이 없다.’고 증언을 이미 했다. 옆에 있었던 학부모들도 한결같이 폭언을 들은 적이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왜 문화와 조선은 소설을 써서 나를 죽이려 했는가? 국민의 알권리 차원의 공익적 목적이었는가? 아니면 신문법을 만들어 신문사도 세금을 제대로 내라는 나의 의정활동에 대한 앙갚음이었는가? 그렇다면 강암남자를 강하게 질타 한 것에 대한 정치보복 정치테러로 정처래 죽이기였는가? 이것을 밝히는 작업이 법적 투쟁의 핵심이다.

 

나는 일시적으로 문화와 조선 그리고 한나라당 악의 트라이앵글로 잠시 죽었지만 끝내 나는 살아서 진실을 외칠 것이다. 법정에 서서 문화와 조선을 들고 외칠 것이다. ‘아니 땐 굴뚝에서 연기를 피운 것은 바로 이 더러운 문화일보와 조선일보였다.’고. 나는 죽을힘을 다해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정의의 전쟁에서 진정 승리할 것이다.

 

2008년 4월 20일

문화와 조선의 정치보복에 맞아 잠시 쓰러진

국회의원 정청래 올림

덧붙이는 글 | 질실규명을 위한 길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2008.04.20 15:08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질실규명을 위한 길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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