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에반게리온 골수팬들의 진원지

우주를 노래하는 담백한 애니메이션, <왕립우주군:오네마이스의 날개>

08.08.01 20:29최종업데이트08.08.01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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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것들을 다 제쳐놓고 첫째로 <왕립우주군- 오네아미스의 날개>가 보고싶었던 이유는 역시 <에반게리온>의 영향이었다. <에반게리온>에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바쳤던 우리의 광풍은 곧 가지를 쳐서 뻗어나가기 시작했고 덕분에 그것은 <건담>으로 이어지기까지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에반게리온> 이전에 <왕립우주군>이 존재했다는 사실과 더불어, 이 영화가 당시로는 획기적이었을 소재와 터치들이 '전율을 만든다'라고까지 극찬해가며 소개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보다 앞서 <에반게리온>을 공유했던 세대들, 그들은 늘 그렇게 말하곤 했다.

 

나에게는 전부였던 초등학교 때의 <에반게리온>, 그 제작사의 우주를 배경으로 한 가장 첫 작품이 무엇이었는지는 정말 참을 수 없는 가려움을 느낄 정도로 궁금증을 유발시켰다. 정확히 말해 <에반게리온>의 결정적인 탄생과정이라 말하기는 어렵지만 <왕립우주군>은 우리 윗 세대의 전설로 남았던 애니메이션이었음은 분명했다. 나는 하루빨리 그것을 확인하고 싶었다.

 

<왕립우주군>의 배경이 되는 곳은 정확히 말하면 지구는 아니다. 지구와 꽤나 닮은 행성에서 말만 거창한 '왕립 우주군' 또한 실제적으로 커다란 군대는 아니다. '우주로 날아가보자'라는 한 발 앞선 시각을 가지고 우주비행사들을 키우고 있지만 사실 왕립우주군은 성적이 낮아서 모인, 소위 낙오자 집단에 가깝다.

 

따분한 하루를 할 일 없이 낮잠으로 때우는 시로츠크는 우연히 길을 걷다 길거리에서 '종말'에 대해 설교를 하는 소녀를 만난다. 그녀가 시로츠크에게 건넨 '우주 비행사는 멋진 일이로군요'라는 말 한마디에, 시로츠크는 지금까지의 나태한 일상을 벗어나 진정으로 멋진 우주비행사가 될 것을 다짐한다.

 

<왕립우주군>은 20년 전에 만들어졌던 애니메이션이다. 때문에 당시로서는 절대적인 동경의 대상이었던 '우주'를 배경으로 젊은이들의 온갖 동경과 갈등을 예찬하고 있다. 이야기 또한 매우 단순하게 진행된다. 주인공인 시로츠크는 철없이 하루하루를 소비하는 청춘이었지만 우연한 '각성'으로 인해 진정한 꿈을 되찾고 그것을 향해서 거침없는 질주를 하기 시작한다. 주인공의 각성으로 인해 그저 그런 삶을 살고 있는 주인공의 주변인들도 일제히 희망적인 미래를 꿈꾸며 돌진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결국은' 이뤄낸다. 그것도 매우 압도적이게, 진정한 진리를 노래하듯.

 

<왕립우주군>은 현란한 CG도, 위에서 말한 것처럼 갈등에 갈등을 낳는 서사구조도 가지고 있지 않은 지극히 투박한 애니메이션에 가깝다. 하지만 <왕립우주군>이 이런 시대적인 발달의 기교를 뛰어넘어 '놀랍게' 보였던 단 하나의 이유는 영화가 주는 자체적인 메시지다. <왕립우주군>은 청춘에 대한 단면을 화두로 하고 있지만 사실 그것이 전체의 이야기를 확실하게 지탱해주는 버팀목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청춘몽'을 바탕으로 해서 보여주는 영화의 세계관은 혀를 내두를 정도로 치밀하고 복잡하게 존재한다.

 

<왕립우주군>에 내포된 큰 주제들은 '전쟁', '평화', '종교' 그리고 '꿈(혹은 희망)'으로 축약된다. 사회적 현상이라고 정당화시킬 수 있음은 물론이고 때론 독보적으로 존재하는 위의 단어들은, 일반적으로 하나의 매개체로는 존재할 수 없을 정도로 부피가 큰 '정의'들이다.

 

예를 들어 '전쟁'이라는 주제만을 놓고 서사를 진행한다고 해도 수만 가지 담론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형성될 수 있음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왕립우주군>에서는 논란의 요지가 분명하게 작용하는 인간론적 주제들을 한꺼번에 통합시킨 후 그 '자체'만을 보여준다. 다시말해 <왕립우주군>은 절대 말꼬리를 잡거나 원인과 결과에 치우친 시대적인 결말에 동정을 호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화가 보여주는 현상은 과거나 현재나 인간이 살아간다면 늘 따라다닐 수 밖에 없는 갈등이다. 그렇기에 이 모든 것들이 뒤섞인 <왕립우주군>속 행성의 모습은 이기적이며 때로는 도발을 꿈꾸기도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비관론을 중심으로 살아가고 있고, 그것이 행성의 존재가치를 부여하는 유일한 핵심의 에너지로 작용하기도 한다.

 

매우 오래전에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이지만 <왕립우주군>이 주는 메시지는 여전히 가슴을 울린다. 물론 영화는 감정에 호소하는 희망찬 구원의 메시지로 맺음을 선택하지는 않는다. 다만 영화는 현재의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가상속의' 그들을 보았을 때 느끼는 당연한 감정으로의 복귀를 꿈꾸고 있다.

 

제법 닮은 피조물들이 역경을 이겨내고 원하는 세상에 도달했을 때,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는 격려의 박수를 보낼 수 밖에 없다. 이유는 단 하나, 그들은 우리와 '너무도' 닮았으므로, 우리의 삶이 그들이 행했던 방식으로 전개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왕립우주군>은 부정적인 사고로 얼룩진 타락한 삶, 그리고 그 속에서 깨우침을 받고 발전으로 거듭해 꿈을 이루는 구원론적인 방법을 택한다.

 

그 모든 것의 시발점(주인공에게 소녀가 했던 단 한마디)에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바라보는 종교가 존재하고, 인류는 사실상 그 종교로 인해 전환점을 받아 정치적, 사회적 갈등을 맛볼 수 있게 된다. 모든 것이 진정되고 결국에는 우리가 살아갈 수 밖에 없고 그래야만 하는 결정적 이유는 인류가 가진 '꿈'이라는 희망적인 생각에 기대어 <왕립우주군>을 대한다면, 아무리 그것이 허상의 가치를 품고 있다고 해도 동의할 수밖에 없다.

 

20년을 뛰어넘어 '정말' 놀라운 애니메이션 <왕립우주군>, 그 속에 허구와 진실의 대립과 인간과 신의 창조적 갈등은 시대에 구애받지 않고 존재하고 있다. 무에서 유를 창조했던 오래된   한 편의 영화, 이것만으로 꿈을 꿀 용기는 충분히 '복습'되어질 수 있다. 아주 작은 희망의 씨앗, 온 인류가 꿈꾸는 진정한 유토피아로의 동경 또한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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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01 20:29 ⓒ 2008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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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립우주군 에반게리온 애니메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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