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베끼는 기자님들, '취재'는 하셔야죠?

[뉴스 속 건강 69] 무비판적 보도자료 기사화, 국민건강에 혼란 줄 수 있어

검토 완료

엄두영(eomdy)등록 2008.12.01 12:01
"이러려고 했던 것은 아닌데…."

최근 의학계에 발표된 논문에 대한 의문을 갖고 보강취재를 하기 위해 통화를 했던 서상원 삼성서울병원 기억장애클리닉 교수의 첫 대답이었습니다. 제가 취재하려고 했던 내용이 이미 기사로 각종 포털사이트에서 주요하게 다루어졌다는데 부담을 느꼈던 모양입니다.

지난 27일 각종 포털사이트에는 '패치형 멀미약, 일시적 치매증상을 부른다'는 주제로 기사가 나갔습니다. 패치형 멀미약은 명문제약의 '키미테' 단 하나이기 때문에 이 약에 대한 기사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헬스조선>의 기사 제목이 '일시적 치매'에서 '치매'로 둔갑했다. 과연 해당 기사를 쓴 보도자료를 한 번이라도 읽어봤을까? ⓒ 헬스조선


실제로 <국민일보>를 포함한 일부 언론사에서는 '키미테'를 제목에 직접 거론하였고, <헬스조선>의 제목에서 '일시적'이라는 말을 빼서 제목만 본다면 흡사 패치형 멀미약을 사용하면 '치매'에 걸릴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국민의약품'으로 불리며 온 국민이 한번쯤 이용해 보았을 정도로 유명세를 떨쳤던 한 의약품이 졸지에 치매를 유발시키는 몹쓸 약물로 추락하는 순간이었습니다.

'키미테', 당연히 부작용 있다

'키미테'의 약전에 언급된 부작용.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부작용은 피부에 붙인 후 손으로 눈을 만졌을 때 생기는 동공이 커지는 증상이다. ⓒ 명문제약

스코폴라민(scopolamine)이 주성분인 '키미테'의 부작용은 비교적 잘 알려져 있습니다. 스코폴라민은 주의력과 학습에 관련된 뇌 속의 신경전달물질인 아세틸콜린의 활성을 떨어뜨리는 작용을 합니다.

그러나 이번에 발표된 내용과는 달리 패치제를 귀 뒤에 붙이고 나서 씻지 않은 손으로 눈을 만지고 난 후 눈이 부시는 경우가 발생하는 동공산대(동공이 커지는 증상)가 가장 흔한 부작용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키미테'에도 붙이고 난 후 손 씻을 것을 명시해 놓았습니다. 실제로 안과에서는 동공산대의 효과를 이용해 스코폴라민을 망막을 들여다보기 위해 사용하기도 합니다.

명문제약의 홍보팀 관계자는 이번 기사에 대해 억울하다는 반응입니다. 우선 논문 자체의 대상 연령이 72세로 높았고, 인원도 7명으로 너무 적었다는 것입니다. 한편 3명은 적정량의 2배를 사용했고, 나머지 인원의 경우에도 적정시간을 초과한 3일 이상 사용했기 때문에 부작용이 나타날 소지가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이어 그는 "드물게 기억력손상이나 방향감각상실 등의 부작용은 약전에 명시가 되어 있다"면서 "용법과 용량을 지켰을 때에는 안전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종로 ㅂ약국의 약사도 "부작용을 일일이 열거한다면 모든 약에 부작용이 있기 때문에 부작용이 무섭다면 쓸 약이 없다"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이번 기사가 의의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일시적 치매와 같은 우려할만한 부작용이 있는 약품임에도 의사의 처방없이 쉽게 구입할 수 있는 '일반의약품'이라는 점을 환기시켰다는 것만으로도 기사의 의도는 충분한 것입니다.

해당 기사의 논문을 담당했던 서상원 교수는 "(해당 의약품의) 약전에 있는 부작용의 내용을 보았다"고 전제하면서 "패치제를 붙였다가 일시적 치매증상이 나타나는 일부 노인 환자분들의 갑작스런 변화에 가족들이 당황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럴 경우 당황하지 말고 패치제를 제거하라는 취지의 논문이었다"고 해명했습니다.

기자님, '취재'는 하셔야죠?

각종 신문의 대부분의 내용들이 대부분 비슷하다. 과연 '취재'를 했는지 의문이 든다. ⓒ 신문 갈무리


그러나 이미 보도된 대부분의 기사에서는 위와 같은 내용이 없었고, 대부분의 내용이 천편일률적으로 똑같았습니다. 그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바로 보도자료를 그대로 복사했기 때문입니다. 즉 '취재'가 빠진 '기사'가 되었던 것입니다.

'취재'란 기사에 필요한 재료를 조사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나 보도자료를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기자의 이름을 달고 기사를 내보내는 일이 많습니다. 특히 전문적인 내용의 경우에는 사실관계의 정확한 파악이 절실하게 필요함에도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이번 기사의 경우에도 '보도자료를 그대로 베끼기' 전에 기본적인 사항들만 확인을 했더라도 자신의 이름을 달고 기사를 내보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선대식 <오마이뉴스> 경제부 기자는 "경제부 기자에게도 수많은 보도자료가 들어오는데, 부동산 정보업체의 보도자료를 그대로 베껴 기사로 내보내는 경우를 많이 본다"고 보도자료를 베끼는 행태가 광범위하게 퍼져있음을 증언합니다.

선 기자는 "기자가 기사를 작성하는데 있어서 너무도 당연하게 취재를 해야함에도 불구하고 보도자료를 무비판적으로 베끼는 경우가 많다"면서 "보도자료를 베끼는 기자와 그 기사를 실어주는 언론사의 자질이 의심스럽다고 생각했다"고 비판합니다.

기사의 말미에는 기자의 이름(바이라인)이 있습니다. 기사의 말미에 자신의 이름이 있다는 것은 그 기사에 책임을 진다는 기자 자신의 서명일 것입니다. 그러나 일부 기자들은 너무 기사를 쉽게 쓰려 하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보도자료를 참고하여 기사를 쓸 때에도 자신의 이름으로 기사가 나간다는 사실을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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